2018년은 개의 해, 무술년이라고 한다. 음력설은 2월 16일이다. 내가 관심이 줄어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황금돼지의 해' '흑룡의 해' 등 역술인과 언론인의 마케팅에 덜 놀아나는 것 같아서 성가심이 덜하다.
2018년 블로그의 첫 블로그는 영화 <컨트롤러(원제: The Adjustment Bureau (2011)>에서 데이빗 노리스(맷 데이먼)이 했던 대사로부터 시작해 본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다음과 같았다.
"(인간에게) 자유 의지라는 것은 없는 겁니까?"이 영화에서 조정국 요원들은 천사이고, 가장 높은 곳에서 이를 지휘하는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또는 하느님)이라고 명백하게 선언하지는 않는다. 조정국에서는 인간이 세상을 자유롭게 만들어 나가도록 두었더니 계속 전쟁과 같은 참사가 벌어지는 것을 도저히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직접 계획에 쓰여진대로 인간이 행동하도록 주변 여건을 조작하는데 나선다. 물론 조정국은 완벽하게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라서 인간의 머리속에서 직접 생각을 바꾸지는 못한다. 맷 데이먼은 에밀리 블런트와의 사랑을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려는 조정국 요원들이 집요한 방해를 벗어나고자 투쟁한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이들은 각자 평범한 사람이 되지만, 만약 헤어지면 맷 데이먼
신경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유의지라는 것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감정이나 의식이라는 것은 결국 수많은 뉴런의 전기적 발화 및 신경전달물질의 작용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자유의지란 결국 이것들의 작용에 의해서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것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샘 해리스의 책 <자유 의지는 없다>를 통해서 나중에 확인해 보고자 한다. 나는 일단 자유 의지라는 것이 있고, 이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더 인간적이라는(다른 동물보다 낫다는 자만심?) 전제조건 하에 오늘의 블로깅을 하는 것이다.
영화 <컨트롤러>는 넷플릭스에서 본 것이다. 넷플릭스의 접속 계정은 하나이지만, 가족들이 제각기 프로파일을 따로 운영할 수 있다. 내가 '우리집'이라는 프로파일 하에서 주로 골라서 보는 영화는 드라마와 서정적이고 잔잔한 것들 위주이다. 이러한 취향에 따라서 자동으로 추천된 영화가 목록에 드러나게 되고, 이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보면 대체로 만족도가 높다. 수많은 영화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는 번거로운 작업을 넷플릭스가 대신해 주고 있는 것이다. 즉 내 '자유 의지'에 따라서 해야 하는 선택 작업의 수고를 덜어주는 셈이다.
넷플릭스의 영화 추천 알고리즘은 통계와 머신러닝에 의한 것으로서 만족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블로터 2016년 기사).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내가 볼 영화 한편도 내가 맘대로 고르지 못한단 말인가? 넷플릭스가 자동으로 추천해 주는 영화를 택함으로서 남은 시간에 내가 더 가치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착각할 것인가?
인간의 삶에서는 유전인자처럼 결정론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유전인자가 항상 100% 투명하게 발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유전자 세트에는 필수적으로 변이가 동반됨은 물론, 환경으로부터는 도저히 제어 불가능한 무작위적인 요인이 제공되기 마련이다. 결정론적 요인으로만 인간의 삶이 이루어진다면 발전과 변화가 있을 수 없다. 이른바 '난수 생성기'와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어떤 수가 나올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난수 생성기를 도입한다는 것은 나의 의지니까 말이다.
이러한 의도적인 반란의 시작으로서 도서관에서 드디어 소설책을 한두권씩 빌리기 시작하였다. 맨날 보던 기술비평·사회과학·경제 관련 책 일변도의 독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작은 시도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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