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5일 금요일

사람이 센서(sensor)가 된 시대

과거에는 개인과 관련된 기록이라 하면 학창시절의 성적표나 생활기록부, 주거지 정보, 주변사람들의 평판, 손으로 쓴 글씨, 직장의 인사 기록, 인화한 사진 정도가 전부였을 것이다. 이런 기록이 이제 디지털화하여 전송과 보관 및 분석이 용이한 형태로 바뀌고 있다. 게다가 모바일 기기나 인터넷에 접속된 PC를 이용하여 하루 동안에만도 엄청난 데이터를 생산하게 되었다. 또한 의료나 금융, 쇼핑 등과 관련한 수많은 정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러한 기기를 통하여 어디론가 흘러간다.

구글에서 humans as sensors로 검색을 해 보라. 상당히 많은 글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데이터를 만드는 주체이기도 하지만 유선전화, 모바일 기기 그리고 PC를 사용하면서 아주 자연스런 데이터의 전송 포인트가 되었다. 즉 컴퓨터에 연결된 '센서'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이를 이용하면 거대한 규모의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양산된 정보를 기업에서 편하게 쓸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도 점점 커지는 추세이다. 'AI'를 이용하여 '빅데이터'를 주무르지 않으면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마케팅'이 우리 주변을 안개처럼 휘감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데이터 자체이기도 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센서이기도 하고, 이를 인터넷 저편의 어딘가로 자발적으로 보내주는 일종의 data acquisition board이기도 하다. 90년대 후반 철없던 postdoc 시절에 매만졌던 Advantech과 LabVIEW 제품이 떠오른다.

경향신문의 2018 신년기획 "헌법 11.0 다시 쓰는 시민계약"에서는 지난 1월 3일 인간은 데이터, IT 기업이 '신'이된 세상이라는 기사(링크)를 실었다. 내 정보를 내가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권이 현재의 헌법에서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가? 모든 것이 경제 논리에 파묻히고 있다. 조금 전에 읽기를 마친 캐시 오닐의 책 <대량살상 수학무기(Weapons of Math Destruction - 대량살상무기는 Weapons of Mass Destruction이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이 책에 대한 독서 기록은 별도의 블로그 포스트로 남길 예정이다.

개방은 미덕일 수 있다. 그러나 이윤 증대, 비용 감소만을 목표로 하는 기업에서 이를 가져다가 불완전한 데이터 모형을 만들고 이를 개선할 피드백은 전혀 받지 않은채 알고리즘을 만들며, 이를 사용하여 대중을 제멋대로 구분, 대출광고를 뿌리고 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게 만든다. 책에서 소개한 많은 사례 중 이것은 극히 일부이다. 그런데 정작 불이익을 당한 우리는 그러한 데이터 모형과 알고리즘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기업은 개방화를 외치면서 우리의 데이터를 갖다 쓰지만, 그들이 구축한 방법은 영업 기밀이라는 이유로 개방하지 않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수학과 IT는 멋진 도구이다. 그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다. 마찬가지로 칼과 망치와 톱도 멋진 도구이다. 그러나 흉악범의 손에 칼과 망치와 톱이 들리면 무시무시한 흉기로 변한다. 이 도구는 요리사와 목수의 손에서 선한 의도로 쓰일 때 비로소 인류에게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으면 우리의 기본적인 권리가 잊혀진다. 더 이상 수동 소자가 되기를 자처하지 말자. 인간은 지성적인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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