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일 월요일

독서 기록 -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외 5권

2017년 마지막 주를 남은 연차휴가로 집에서 편하게 보내면서 꼭 읽으리라고 다짐했던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드디어 읽었다. 두 권의 책을 합치면 총 1천 페이지를 훨씬 넘는 방대한 분량인데, 약 3일에 걸쳐서 정신없이 읽었다.


<사피엔스>는 인류의 역사를, <호모 데우스(Homo deus; deus = 신)>는 신의 영역에 도달한 인간의 미래를 그린 책이다. <사피엔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저자가 방한까지 하자 '한국은 우리의 문제를 남(외국)에서 답하려는 얼빠진 사회'라는 비판까지 일었다. 마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것과 비슷한 현상으로 보려는 것이다. 정작 저자의 나라에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책이 운좋게 시류에 적절한 순간 출간되어 우리나라에만 인기를 끌면서 수십만권 이상이 팔리고,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러한 반짝 인기에 편승하여 저자의 방한 이벤트를 통해 이득을 보려는 숨겨진 상술을 경계하려는 것이다. 인공지능·빅데이터·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요즘 부쩍 높아진 것도 유발 하라리의 책에 대중이 관심을 쏟게 만든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어쩌면 이 주제는 유난히 한국에서만 부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세계일보-박정진의 청신청담] 사피엔스, 인간의 내장된 종말 읽게 해
[한국일보]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는 제국주의자다

여러 부정적인 시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권의 책은 매우 큰 흡인력을 갖고 있다. 인류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서 큰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하여 탐구하듯이 쓴 책은 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내내 '유발 하라리는 역사학자가 맞나? 혹시 IT나 BT 전공자는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이나  제래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연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토리텔링은 유려하지만, '사피엔스'에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아마도 '앞으로 어떻게 하라는 거냐'라는 대안 제시가 부족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후편인 <호모 데우스>를 통해서 '앞으로 어떻게 것이다'에 대한 예측은 충분히 내세웠다고 생각한다. 시나 소설가에게 대안을 제시하라고 할 필요는 없듯이 말이다.

따라서 이 두 권의 책은 반드시 같이 읽어야 한다. <사피엔스>에서는 다른 동물들 사이에서 별볼일 없던 인간이 어떻게 '인지 혁명'을 통해서 지금의 문명을 이루었는지를 서술하였다. 보이지 않는 실재(그것이 비록 허상에 불과한 것이라 하여도)를 동료들에게 인지시키고 이로 말미암아 공동 목표의 달성을 위한 협력을 이끌어낸 것이 지구상에 인간의 세상을 만들어낸 주된 원인으로 파악하였다. 눈에 당장 보이지 않는 실재라는 것인 종교일 수도 있고 국가사회일 수도 있고 공익의 추구일 수도 있다.

<호모 데우스>의 결론 부분을 인용해 본다(맨 마지막쪽인 554쪽).

  1. 과학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교의로 수렴하고 있고, 이 교의에 따르면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며 생명은 하나의 데이터 처리 과정이다.
  2. 지능이 의식에서 분리되고 있다.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곧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인간은 영적인 존재임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세 가지 결론에 대하여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미 의식과 무관하게 인공적인 지능이 우리 주변에서 필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가 의식 또는 자아라 믿는 것 자체도 매우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이 현대 신경과학의 결론 아니었던가? 

의식, 자아, 감정, 경험, 기억 - 이 모든 것은 신경세포의 발화와 신호전달물질의 정교한 '뒤범벅'에 의한 결과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지나친 유물론적인 해석이 아니냐고 비판해도 좋다. 세포와 개체가 단지 유전자의 전달자를 위한 도구('생존 기계' - 리처드 도킨스의 입장)라고 해도 좋다. 물리적·화학적 현상에 우리의 정신 활동이 기반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나는 외부 자극에 반응하고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감정을 느끼면서 살아가도록 노력하고 협력하는 것은 분명히 의미있는 일이다. 

나머지 책은 제목과 저자를 소개하는 선에서 간략하게 끝내기로 한다.
  • 역사학자 정기문의 식사(食史) - 생존에서 쾌락으로 이어진 음식의 연대기
  • 명견만리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의 기회를 말하다 (윤리, 기술, 중국, 교육 편) - KBS <명견만리> 제작팀 지음
  • 츠바키 문구점 - 오가와 이토 지음|권남희 옮김. 나의 얄팍한 경험으로 일본의 문화예술을 논한다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할 것이다. <심야 식당>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등 내가 보았던 일본 영화의 중요 공식이 잘 나타난 소설이다. 즉 소소한 일상, 가업, 음식에 대한 상세한 묘사, 힐링이 되는 분위기 등. 이 소설은 주인공 하메미야 하토코는 도쿄에서 멀지 않은 가마쿠라에서 문구점을 운영한다(이 문구점은 가공의 것이지만 소설에서 소개된 관광지, 절, 음식점 등은 실제 존재하는 곳이다). 주인공이 물려받은 가업은 대필, 즉 고객이 의뢰한 편지를 대신 써 주는 일이다. 연말에는 연하장과 같은 의례적인 편지를 쓰느라 몹시 바쁘다. 하지만 지인이 키우던 원숭이가 죽은 것을 위로하는 조문 편지, 주변 사람들에게 의뢰자 부부가 이혼했음을 알리는 편지,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거절하는 편지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의뢰자가 츠바키 문구점을 찾아서 차 한잔을 앞에 놓고 마음을 열면서 필요한 편지 내용을 알려주고, 주인공은 의뢰자의 마음이 되어서 편지를 공들여 쓴다. 대부분의 경우 편지의 최종안을 의뢰인이 확인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대필가를 신뢰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주인공이 어떤 펜과 잉크, 종이, 봉투 및 우표를 사용했는지에 대한 상세히 설명한 것이 이채로왔고, 일년에 한 번 의뢰인이 편지를 보내주면(예를 들어 젊은 시절 주고받은 러브레터를 언제나 갖고 있을 수도 없고,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를 정성스럽게 태우는 의식을 치러준다는 것도 나의 흥미를 끌었다. 수고비는 미사용 우표를 같이 부치는 것으로 대신한다. 권 말미에는 소설 속에서 쓴 손글씨 편지가 소개되었다.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었다.
  • 세월호 참사 팩트체크: 밝혀진 것과 밝혀야 할 것 -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 지음
  • 사라지는 미래 인구축소가 가져오는 경제와 시장의 대변환 - 김성일, 정창호 지음. 시장 없는 인구는 존재해도, 인구 없는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는 동안 우리나라의 인구 구조는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비가역적인 변화를 겪고 말았다. 인구 축소 = 시장 축소의 데모-디플레이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이제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삼던 , 즉 팽창의 경제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로 기업 소득 환류 세제(기업의 사내 보유 현금성 자산에 대한 과세)를 제시하였으며, 아이를 낳은 엄마를 존경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 필요함을 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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