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9일 토요일

낙선재 누마루 밑의 벽체의 빙렬문(氷裂紋)

가을 햇살이 좋던 주말 오후, 아내와 함께 창덕궁을 찾았다. 지난 8월 16일에는 창덕궁 후원(예전에 비원이라 부르던 곳)을 들렀었는데 너무 더워서 창덕궁의 본 모습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었다. 마침 조선시대 과거제 재현행사를 하느라 방문객들이 제법 많았다. 경복궁은 규모가 너무 크고 덕수궁은 늘 보수단체 집회가 문앞에서 열려서 소란스러운데 비하여 창덕궁은 정말로 편안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이 든다. 조선의 궁궐 중에서 창덕궁만이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에 오른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창덕궁 안에 유일하게 단청도 없이 사대부의 주택 형식을 갖춘 수수한(?) 집이 있으니 바로 낙선재다. 차 시음행사가 있다고 하여 기웃거려 보았으나 미리 신청을 한 방문객에 한해서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아쉬운 마음에 툇마루에 앉아서 쉬는데 누마루 밑에 있는 벽에 기하학적인 무늬가 있는 것이 눈에 뜨였다.



낙선재를 몇 번 왔었지만 누마루 밑까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었다. '저것은 무엇이지? 손으로 그린 것인가?' 궁금한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려 넣은 문양이 아니었다. 기와 같이 흙으로 빚어 구운 판을 끼워 맞추고 그 사이에 회반죽을 발라 채운 것이었다. 구운 판의 색깔도 한가지가 아니었다. 이런 기가 막힌 미적 감각이라니! 집에 돌아와서 구글을 뒤져보니 얼음이 깨진 것 같은 문양이라는 뜻의 빙렬문(氷裂紋)이라 부른다고 한다. 안쪽에 있는 아궁이에서 불똥이 튀어서 누마루에 불이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구조물이라고 한다. 벽체의 한쪽 면에만 문양을 넣은 것이 아니었다. 반대편을 돌아가 보면 그 모습 그대로이다.

낙선재와 석복헌 사이의 담에 만들어진 문양은 거북이 등껍데기와 같은 귀갑문이라 한다.

출처: [연합뉴스] 창덕궁 낙선재(2) 조선의 조형미가 응축된 장소(2014년 기사 링크)

능률과 편리함이란 잣대에서만 본다면 전통 건축의 형태는 현대의 '최적화'와는 거리가 멀다. 지붕에는 왜 그렇게 많은 공을 들여야 했으며, 문턱은 왜 이렇게 높게 만들어서 서둘러 통과하다가는 자칫하면 발이 걸려 넘어지게 만들었을까.



책고(冊庫). 나도 방 한칸을 채울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건물은 왜 대지 위에 간격을 두고 띄워 지어서 대청마루를 힘겹게 '오르게' 만들었을까. 마당에는 돌이라도 깔아서 마른 날에는 흙먼지를, 비가 내리는 날에는 진창을 피하게 만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걸 다 이해하려면 나이가 더 들어야 될 것 같다. 자연에 되도록 손을 대지 않고 조화를 이루려는 정신이 전통 건축 양식에 스며들어 있다고 당장은 이해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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