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8일 토요일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잡지 [마이크로 소프트웨어]를 읽다 - 코딩하는 공익 이야기

네이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면서 정자동에 위치한 그린팩토리를 찾는 것은 이율배반일까? 이런 이중적인 행태에 대해서 훗날 해명을 해야 될 날이 올까? 혹은 지나치게 사소한 일이라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일일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내가 정말로 양심에 맞게 한결같은 일관성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이러한 모습이 보여진든 말든 엄격한 자기 검열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배신을 했는지도 모른다. 네이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쓴 글의 시작 부분도 오늘 것과 거의 똑같다. 

어제 비가 내리고 나서 이른 더위가 잠시 가시고 공기도 무척 깨끗해져서 산책을 하기에 좋은 주말을 맞았다. 아내와 함께 필기도구를 챙겨들고 걸어서 그린팩토리를 찾았다. 잡지를 읽으면서 머리도 식히고, 예전에 사다 놓은 반도체 앰프용 정류회로기판을 6LQ8 PP 앰프에 사용하려면 어떻게 개조를 해야 될지 궁리를 해 보기 위함이었다.


Digital Insight라는 잡지에는 인터브랜드 그룹 전략 총괄 Manfredi Ricca가 발표한 글 Five changes in business가 실려서 이를 아주 간단하게(무성의하게?) 요약해 보았다.

  1. Commoditization : 복잡한 기술이 대중에게 쉽게 쓰일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2. Abundance of choice
  3. Speed of adaption
  4. Rising expectations
  5. Next is now
선택의 폭은 점점 넓어지고, 새로운 서비스에 적응하는 속도도 빨라지며, 소비자의 기대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단 5년 뒤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비즈니스 현실이므로 적절한 시기에 과감히 행보하는 'iconic moves'로 혁신하자는 것이다. 

잡지를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부분을 직접 수첩에 적어서 온 것이 혹시 의미가 없는 일인가 싶어서 구글을 뒤져봤더니 전문이 다 공개되어 있었다. 이럴 거라면 적당히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서 블로그 포스트를 작성하고 원본 글의 링크만 걸면 되는 것이 아닐까.


아내가 들고 온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국어판을 펼치니 DSLR 광고에 실린 봉준호 감독의 얼굴이 너무나 젊다. 몇 장을 더 넘겼더니 보아(그렇다. 가수 보아 말이다)가 올림푸스 디지털 카메라 광고 모델을 하고 있다. 오잉? 이게 도대체 몇년도에 나온 잡지란 말인가? 맨 앞으로 돌아가 보았다. 어이쿠, 2006년, 보아가 만 스무살이 되던 해에 나온 것이었다.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보아는 2003-2005년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2006년부터는 일본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톱스타를 데려다가 광고를 찍은 셈이다. 2006년의 봉준호 감독은 13년이 지난 뒤 칸 영화제에서 자신의 작품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게 될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혹시 기대했던 것보다 더 늦게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다음으로 읽은 잡지는 [마이크로 소프트웨어].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전문연구요원이 아니라 특이하게도 사회복무요원(우리가 아직도 공익근무요원이라고 부르는)으로 일하는 반병현(블로그) 상상텃밭 CTO가 기고한 글 [개발자 문서와 PMF]을 재미있게 읽었다. PMF란 product-market fit의 약자로서 스타트업 종사자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용어라고 한다. 이 신조어는 넷스케이프의 창업자인 마크 안드리센이 처음으로 쓴 것으로, 매력적인 시장의 니즈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일컫는다(링크).

가만, 이 책은 마이크로 소프트웨어 몇 월호인가. 표지를 살펴보았다. 발간월을 가리키는 힌트는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Vol. 396이라고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잡지가 이제는 매월 발간을 하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 계간지로 바뀐 것이다. 396호는 2019년 4월에 발간된 것이다.  그리고 잡지의 성격도 기자에 의한 취재보다 기고를 더 많이 싣는 것으로 바뀐 듯하다.

반병현은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면서 업무 자동화를 위한 파이썬 스크립트를 만들었다가 정보보안을 담당하는 기관으로부터 차단을 당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소셜 미디어 등에 글을 올리면서 드디어 정부 조직을 움직이게 한 에피소드를 곁들여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개발자는 기술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제안서는 지나치게 전문 분야의 용어로만 범벅을 해 놓아서는 안된다 정도로 요약을 할 수 있겠다. 인터넷 접속자가 많은 유머 사이트를 이용하여 일종의 바이럴 마케팅을 시도하여 성공적으로 자신의 글에 대한 지명도를 올린 사례도 소개하였다. 

'브런치'라는 사이트에 '코딩하는 공익'이라는 매거진의 형태로 반병현은 꾸준히 글을 올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염연히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신분으로서 화제에 오르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무언의 압력이 있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글은 비공개로 전환했다가 소집 해제가 되는 2020년 4월에 다시 공개한다고 하였다(링크). 단, 마이크로 소프트웨어 기고문에서도 언급한 다음의 글은 공개된 상태이다.


내가 석사를 갓 마친 당시와 비교해 보면 논리가 정연하고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사회복무요원이라는 불리한(?) 위치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결국은 사회를(그것도 정부 조직을!) 움직이게 만들었으니 크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나의 고리타분한 시각으로 보기에는 '뭘 이렇게 튀려고 애를 쓰나'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그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렇지 않고 과거에도 그렇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반성해야 할 일이다.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무슨 노력을 했었나?

마이크로 소프트웨어의 개기자(개발하는 기자) 오세용 기자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내가 입은 티셔츠에 새겨진 그림은 무슨 기계일까? 그린팩토리에서.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