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란 한국의 미래에 커다란 밑그림과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제시해 온 비전코리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창조적 지식국가 건설을 위해 매일경제가 추진하고 있는 범국민 실천 운동입니다(출처).
여기에서 다루어진 주제가 정부의 정책과제로 채택되기도 하였으니 상당히 공을 들여 시의적절한 아젠다를 개발하여 제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2022년 5월에 열렸던 제32차 국민보고대회의 주제는 '용산 Renaissance'였으니(링크), 요즘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참으로 묘한 기분을 느낀다.
3월 19일에 열렸던 제35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의 주제는 '바이오 패권경쟁 - 대한민국 재도약의 갈림길'이었다. 이와 관련한 몇 개의 기사 링크가 있고, 매일경제 웹사이트에서 '제35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에 대한 AI 검색을 실시하면 다음과 같은 요약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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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개요
- 2025년 3월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최
- 매일경제 창간 59주년을 기념하여 열림
- 주제: "바이오 패권경쟁"
## 주요 내용- K바이오 산업의 현주소 진단 및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 제시
- 블록버스터 신약 확보 전략, 화이트·그린바이오 성장 정책, 항노화 산업 육성 방안 등 '액션플랜 V4' 발표
- 글로벌 컨설팅사 PwC·Strategy&와 함께 K바이오 필승전략의 경제적 효과 분석 결과 공유
## 주요 제안- 의료 데이터 활용 확대
- 혁신 신약 개발
- 바이오와 타 산업 융합
- 항노화 분야 개선
- 아시아 통합 임상 주도권 확보를 위한 '바이오 원아시아' 이니셔티브 제안
## 전망- K바이오 산업 규모가 2034년 244조원으로 성장해 반도체 산업(24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
정치권과 업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K바이오 산업 육성에 대한 지지와 협력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AI 결과물은 총 15개의 참고자료를 제시하였고, 그 중에서 매일경제의 정식 기사에 해당하는 것만 정리하면 다음의 3개이다.
이 행사와 관련한 모든 기획기사 모음은 여기에 있다. 2026년이 되어 제36차 국민보고대회가 열리면 이 목록은 또 바뀌게 될 것이다.
바이오 산업의 혁신 및 데이터 개방과 활용에 관한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는 요즘 분위기로 보아서는 적절한 시기에 만들어진 행사라고 생각한다. 특히 의료데이터를 활용한 세계 최초의 바이오(데이터)거래소 구축에 관한 제안(링크)는 검토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각기 성격은 다르지만, 이미 국가바이오데이터스테이션이나 K-CURE 및 이제 막 발자국을 뗀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이러한 사업이 이미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에서 데이터를 가져다 쓰는 것이 어렵다면, 그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반성해 보아야 한다.
이날 행사에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발표용 자료를 입수하여 음미하다가 서론 부분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하였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아마존을 떠나 항노화 벤처기업에 투자하면서 "생명체가 죽음을 피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자율적인 존재로 살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정말로 이런 말을 했을까? 정식 기고문이나 인터뷰 등에서 한 말일까? 어떤 맥락에서 한 말일까? 나는 지난해 말에 왜 측정해야 하는가? 아니, 측정을 정말 해야 하는가?라는 글을 통해서 유명인이 한 말이 잘못 전파되는 사례를 언급한 일이 있다. 악의적인 용도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정보 과잉 시대에는 잘못된 정보가 많은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일이 많기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자, 그러면 제프 베이조스가 했다는 말의 출처를 찾기 위해서 챗GPT와 대화를 시작하였다. 챗GPT의 첫 대답은 2024년 월 스트리트 저널 기사에 실려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알려준 URL로 접속해 보니 '404 not found'였다. 챗GPT에게 재차 물었다.
이 URL에 접근하니 "404 not found"라고 나옵니다. 더욱 정확한 결과를 알려 주세요.
챗GPT는 이 링크가 현재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하였다. 이 URL이 정말로 존재한 일이 있었는지 약간 의심이 들기 시작하였다. 챗GPT의 대답은 다음과 같은 제안으로 끝났다.
나는 "좋습니다. 마지막에 제안한 대로 다시 검색해 주세요."라는 요청을 하였다. 이번에는 2024년 3월 게시된 Business Insider 기사를 알려 주었는데, 이것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발언의 맥락과 요약을 다음과 같이 천연덕스럽게 제시해 주었다.
도대체 챗GPT는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간 것일까? 현재 존재하는 출처에서 직접적으로 확인이 되지 않는데 말이다. 이에 대해 가능한 시나리오는 '잘못 인용된 출처, 삭제되었거나 비곡개 전환된 기사, AI 또는 인터넷 커뮤니티 기반 허위 발언'일 것이라고 하였다.
베이조스가 했을지도 모르는 발언인 'If a living being doesn't actively work to avoid death, it's not automonous.'라는 문장을 그대로 구글 검색창에 넣어 보았다. 그랬더니 비로소 진실에 근접해 나갈 수 있었다. 이 말은 베이조스가 아마존을 떠나면서 투자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CEO 연례 서한('2020 Letter to Shareholders')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 작성은 2020년에 한 것이니 요즘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인공지능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베이조스는 이 편지의 'Differentiation is Survival and the Universe Wants You to be Typical"이라는 제목의 섹션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를 인용하였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것은 생물학의 기본적인 사실이라고 덧붙이면서.
“Staving off death is a thing that you have to work at. Left to itself – and that is what it is when it dies – the body tends to revert to a state of equilibrium with its environment. If you measure some quantity such as the temperature, the acidity, the water content or the electrical potential in a living body, you will typically find that it is markedly different from the corresponding measure in the surroundings. Our bodies, for instance, are usually hotter than our surroundings, and in cold climates they have to work hard to maintain the differential. When we die the work stops, the temperature differential starts to disappear, and we end up the same temperature as our surroundings. Not all animals work so hard to avoid coming into equilibrium with their surrounding temperature, but all animals do some comparable work. For instance, in a dry country, animals and plants work to maintain the fluid content of their cells, work against a natural tendency for water to flow from them into the dry outside world. If they fail they die. More generally, if living things didn’t work actively to prevent it, they would eventually merge into their surroundings, and cease to exist as autonomous beings. That is what happens when they die.”
이 글에 대한 챗GPT의 국문 번역은 다음과 같다.
"죽음을 막아내는 것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그저 내버려 두면—그리고 그 상태가 바로 죽음인데—몸은 주변 환경과 평형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온도, 산도, 수분 함량, 전위차 같은 어떤 수치를 측정해보면, 살아 있는 몸에서는 주변 환경과 뚜렷하게 다른 값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의 몸은 일반적으로 주변보다 더 따뜻하며, 추운 기후에서는 이 온도 차이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우리가 죽으면 이러한 '작업'은 멈추고, 온도 차이는 사라지기 시작하며, 결국 우리는 주변과 같은 온도가 된다. 모든 동물이 주변 온도와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애쓰는 건 아니지만, 모든 동물은 이와 유사한 노력을 한다. 예를 들어, 건조한 지역에 사는 동물과 식물은 세포 속 수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는 물이 자연스럽게 마른 외부 환경으로 빠져나가려는 경향에 맞서는 일이다. 이 노력이 실패하면 생명체는 죽는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살아 있는 존재가 이러한 변화에 맞서 적극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결국 주변 환경과 하나로 섞이게 되고, 자율적인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잃는다. 이것이 바로 죽음일 때 일어나는 일이다."
편지 원문에서 이 인용문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글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베이조스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이러하다. 도킨스의 글이 비록 은유(metaphor)로 쓰인 것은 아니지만, 이 내용이 모든 기업과 조직 및 각자의 삶에도 해당된다는 것이다. 비록 많은 노력(에너지)이 든다 하더라도 당신이 평범해지도록 수천 가지 방식으로 끌어당기는 세상에 순응하지 말고 당신의 독창성(특별함)을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생명체의 당연한 속성이기도 하다. 이 글은 딱히 노화에 저항하라는 의미로 쓴 글도 아니고, (더 큰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항노화 기업 투자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한 말도 아닌 것이다.
편지 원문을 제대로 인용한 CNBC의 기사 제목은... Jeff Bexos in his final letter as Amazon CEO: 'The world wants you to be typical. Don't let it happen'(링크). 이 글을 제대로 읽으려면 웹브라우저에서 광고차단기를 거둬 내야 한다. 오늘 쓴 글의 제목을 뽑으라면 아무런 주저함 없이 이 기사의 제목을 선택하리라.
오늘의 글은 매일경제의 행사의 성격이나 약간은 기대 이하였던 챗GPT의 정보 처리 능력을 에둘러 비판하고자 함은 아니었다. "인용문을 쓰려면 원래의 맥락을 되새기면서 정확하게 옮기고, 나의 인용 의도 및 (재)해석이 원본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면 이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