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5일 화요일

1602 LCD 모듈에 I2C 통신모듈 납땜하기

EZ Ardule MIDI Controller의 초기 설계에서는 2004 LCD 모듈을 디스플레이로서 사용하려고 했었다. 제어용 핀 수를 절약하기 위해 I2C 통신모듈이 붙은 형태의 부품을 구입해 놓고 한참을 방치하다가, 보다 단순한 형태를 추구하는 것이 제작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두이노 스타터 키트 구입 당시에 들어 있던 1602 LCD 모듈을 쓰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다루는 MIDI 채널의 수도 당초 4개에서 2개로 줄였다. 그래서 명칭은 Nano Ardule MIDI Controller로 바꾸었다. Nano는 작다는 뜻도 있지만 아두이노 나노를 쓰고 있음을 밝히는 뜻도 있다. 설계 요약 문서는 내 위키에 정리해 나가고 있다(링크).

처음부터 갖고 있던 1602 LCD에는 I2C 통신모듈은 붙어있지 않다. 그래서 쿠팡에서 당일 배송 가능한 I2C 통신모듈을 따로 구입하여 납땜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핀 헤더를 떼어내는 것이 약간 까다로워 보였다.


유튜브에서 납땜 실력자의 동영상을 보면서 핀 헤더를 떼는 요령을 참조한 뒤 실제 작업에 들어갔다.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구멍 하나의 패드가 떨어져 나갔다. 인두의 용량이 높은 편이고(40와트), 핀을 너무 강하게 잡아당긴 것도 원인이었을 것이다. 핀을 뽑은 뒤 남은 납을 처리하다가 문제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흡입기, 솔더윅... 오늘따라 어느 하나 마음에 들게 작동하는 것이 없다. 차라리 I2C 1602 LCD 모듈을 새 것으로 구입했더라면 이렇게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체형 부품을 추가로 구입하지 않아서 절약한 비용보다 내가 들인 노력(납땜에 따른 실내 공기 오염 효과까지)이 더 큰 것 같다. ICBANQ에서는 배송비는 별도지만 부가세 포함 2,585원이면 구입 가능하고, 알리익스프레스에서는 더 저렴할 것이다.

초록색 솔더 마스크를 칼로 살살 긁어서 망가진 패드로 연결되는 머리카락만큼 가느다란 패턴의 동박을 드러나게 한 뒤, 전선 조각을 덧대어서 핀 홀 주변에 남은 패턴과 납땜을 하였다. 하지만 I2C 모듈의 핀은 보드 반대편 패드와 납땜을 해야 한다. 전선 조각을 조금 길게 남겨 자른 뒤 반대편 패드에 확실하게 붙여버렸다.

이게 뭐란 말인가.

어설프게 수선을 했지만 16개나 되는 모든 접점이 제대로 납땜으로 이어졌는지 확신을 하기가 어려웠다. I2C로 LCD를 제어하는 간단한 코드를 만들어 테스트해 보았다.



다행히 LCD는 잘 작동하였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온도 조절이 되고 지금 사용하는 것보다 더 가느다란 팁을 꽂을 수 있는 고주파 인두를 갖고 싶어진다. 또는 USB-C 전원으로 작동하는 충전식 인두가 요즘의 대세인지도 모른다. GVDA GD300이라는 제품의 평이 좋은 것 같다.

줘버린 AI, 소버린 AI

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이 정말 뜨겁다. 중장기 계획도 아닌, 연구소의 단기 계획을 수립하는 데에도 인공지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면 마치 역적이 된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소버린(sovereign, 주권 또는 자주적인) AI'라는 신조어도 그런 인기 있는 용어 중 하나이다. 챗GPT에 물어보니 이 용어는 2024년 NVIDIA 블로그를 통해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What is sovereign AI?

이후 NVIDIA 젠슨 황이 이 개념을 적극 퍼뜨리면서 홍보를 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자사 제품을 많이 사 주어야 소버린 AI를 갖게 된다는 것 아닌가. 기가 막힌 마케팅 전략이다.

NVIDIA CEO: Every country needs sovereign AI

각 나라가 글로벌 테크 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문화와 언어, 데이터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AI(~'지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려면 NVIDIA의 제품을 더 많이 사 주어야 한다.

자, 그러면 국가 차원에서 이를테면 GPGPU farm을 구성해서 연구자나 기업이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옳은가, 또는 수요자가 알아서 하도록 놔 두는 것이 좋은가? OpenAI는 현재 미국 정부와 많은 계약을 체결했지만, 창립 초기에는 직접적인 정부 보조금 없이 발전해 왔다고 한다. 다만 Open Philanthropy Project에서 3년에 걸쳐 3천만 달러라는 막대한 지원금을 받았다. 이것은 바로 'grant'이다. Grant는 투자도 아니고 주식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수준의 자금이 나올 곳은 별로 없다. 

분위기를 바꾸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 보자. AI는 민간(기업을 포함하여)이 잘 한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미국처럼 민간 재단-결국은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가 그동안 번 돈을 이용하여 설립한 자선 재단-에서 지원금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걸 한국에서 기대하기는 아직은 어려운 것 같다. 정부의 지원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고, 새 정부가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정부 주도의 좋은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와 관련한 회의를 하다가 갑자기 '줘버린 AI'라는 말이 떠올랐다. 민간(기업)이 잘 한다고 하니, 꽉 막힌 규제만 잘 풀어주고 그들이 창의력을 발휘해서 알아서 할 수 있게 놔두면 어떨까? 그래도 GPGPU farm은 일종의 공공재이니 정부에서 조성하는 것이 옳은가?

질문 답변
정부가 GPGPU farm을 조성해서 기업이 쓰게 하는 것, 옳은가? ✅ 가능하나 조건부로만 정당화
핵심 쟁점 공공성과 시장 공정성의 균형
권장 모델 공공 인프라 + 민간 접근 허용, 단 투명하고 공정한 규칙 필수

보통 '○나 △나 줘버려!'는 책임 회피나 관심 없음을 표현할 때 많이 쓰인다. '개나 소나 줘버려!'는 너무 거칠고 냉소적인 표현이라 조금 점잖게 써 보았다. 줘버린 AI란 신조어는 지나친 간섭 없이 민간이 창의성을 발휘해 각자의 방식으로 소버린 AI를 만들기를 기대하고 만든 신조어이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정부가 너무 나서거나 뒤처지지도 않으면서 AI 시대의 자연스러운 마중물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2025년 8월 4일 월요일

EZ Ardule MIDI Controller 프로젝트는 용두사미로 끝나다

아두이노를 사용하여 볼륨 외에는 별다른 조작장치가 없는 SAM9703 모듈을 제어하는 장치인 가칭 EZ Ardule MIDI Controller를 만들려고 야심찬 계획을 세웠었다(링크). 기부금을 내고 Fritzng 소프트웨어까지 다운로드하여 아두이노 나노 기반 장치의 회로도까지 다 그리고 필요한 부품을 다 사서 모았으나...

결국 게으름으로 인하여 중도 포기에 이르렀다. 계속 주말에 다른 스케쥴이 생기면서 본격 제작에 착수할 시간을 내기 어려웠고, 케이스 가공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브레드보드에 대충 부품을 꽂아 만들어 두었던 MIDI IN 신호 처리 및 SAM9703 초기화 회로를 만능기판으로 옮기고, 본체 안에 MAX4410 헤드폰 앰프 보드를 넣는 것으로 계획을 대폭 수정하였다.

이번 작업의 의미는 크림핑 툴을 사용하여 커넥터를 직접 만들어 달았다는 것에 있다.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페놀 기판에 되는대로 부품을 붙여 나갔는데, 배선 실수 없이 잘 끝났다. 그러나 뒷면에는 점퍼선이 어지럽게 돌아다닌다...





만능기판 뒷면의 배선용으로 예전에 사다 둔 다음 사진의 단색전선을 쓰고자 하였다. 

사진 출처: IC114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납이 도무지 붙지를 않았다. 정말 어이가 없을 지경으로! 어쩔 도리 없이 적당한 연선의 피복을 벗겨서 배선재로 사용하였다. 납땜 작업은 일주일만 쉬어도 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 같다. 40와트짜리 납땜인두가 너무 뜨거워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큰 소켓이나 트랜스포머에 납땜을 하기에는 좋지만, 페놀 만능기판에서 이 인두를 가지고 작업을 하다 보면 과열로 인해 패드가 꼭 한두개씩 떨어지는 일이 생기니까 말이다.

너무 흉하게 작업을 마쳐서 다시는 뚜껑을 열기가 싫을 정도이다. 추가 작업을 한다면 기기 전면부에 MIDI activity를 보이는 LED를 달고 MIDI THRU 회로를 넣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Ardule 컨트롤러 프로젝트는 이와 같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차라리 라즈베리 파이를 이용하여 이를 구현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워낙 천재들이 많아서 Zynthian이라는 라즈베리 파이 기반의 오픈소스 디지털 신디사이저 프로젝트가 있다. 무대에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출처: https://zynthian.org/


라즈베리 파이와 아두이노를 조합하면 훨씬 다채로운 기능의 물건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아두이노 하나를 써서 만드는 것도 귀찮아서 이렇게 주저앉았는데, 과연 그런 '거대' 프로젝트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시간을 오래 두고 추진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Fluidsynth, Yoshimi, Pure Data를 이용한 SF2 연주 및 감산합성용 통합 기기라면 중장기 프로젝트로서 상당히 매력이 있다. 고려해 보자.

2025년 7월 29일 화요일

달리기 입문 1년차를 마무리하며

뛰고 난 다음날 아침은... 늘 졸음이 쏟아진다.

작년 8월 5일부터 런데이 앱을 이용하여 달리기를 시작하여 이제 12개월에 걸친 '입문'과정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되었다. 처음에는 전혀 운동을 하지 않던 나의 체력으로 1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반신반의하였으나 지금은 이틀에 한 번 꼴로 8km를 뛰어도 될 수준에 이르렀다. 다만 인터벌 달리기와 하체 근력 운동을 병행하지 않아서인지 페이스는 지난 4-5월에 정점을 찍고 지금은 약간 나빠졌다. 7월에 들어서 거리를 8km로 늘이면서 페이스 향상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한 때문일 것이다.

7월 중 8km를 달린 날은 어제(28일) 기준 총 닷새였다.

어제까지 달린 누적 거리는 886.85km이다. 약간 무리를 하면 7월 중에 900km를 채우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7월 중순에 집중적으로 내린 비로 인하여 연이어서 4일 동안 달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정말 잘 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하고 싶다. 중년에 시작한 달리기 2년차의 아주 현실적인,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목표는 1시간/10km를 이따금 달성하는 것이다. 지금 수준에서 6분 페이스를 몇 km나 지속하여 달릴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렵다. 또 다른 목표는 운동을 아주 싫어하는 아내를 끌고 바깥으로 나오기!

3년차에는 아마 하프 마라톤에 해당하는 거리를 뛸 수 있지 않을까? 3년째에 풀코스를 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만 하다.

2025년 7월 24일 목요일

"남의 데이터로 학습한 AI 모델은 쓰고 싶지만 이를 개선하는데 내 데이터는 내놓고 싶지 않아."

만약 취미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기 위해 챗GPT와 대화하고 있다면, 나는 대화 기록이 OpenAI로 넘어가는 데에 불만이 없다. 챗GPT가 등장하기 전에도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내 경험을 더하여 다시 공개하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누구든지 이를 이용하여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니겠는가? 자유로운 지식 공유와 활용 및 확산의 선순환 구조에 기여한다는 생각과 함께.

내 취미 프로젝트가 비즈니스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면? 즉, 뭔가를 DIY로 만들어서 개념 검증(PoC, Proof of Concept)까지 끝나서 어쩌면 제품화까지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 이와 관련한 정보를 더 이상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남이 내 데이터로 학습한 AI모델과 대화하면서 구체적인 내 아이디어를 '도용'할 가능성은 매우 적지만 말이다. 어쩌면 PoC까지 가기 전 단계에서 이렇게 차단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

업무용 목적으로 챗GPT를 쓰는 경우에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아직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은 설익은 아이디어가 챗GPT를 학습하는 용도로 흘러들어가 쓰이게 되면, 그 아이디어를 빼앗기는 것과 다름없으므로.  그래서 많은 기업에서는 사내에서 챗GPT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 챗GPT 사용 금지...보안상 별도 생성형 AI 개발(경향신문 2023년 5월 2일)

정부출연연구소는 민간 기업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주의를 할 필요는 있다. 위 기사와 같은 해에 국가정보원의 국가사이버안보센터는 챗GPT 등 생성형 AI활용 보안 가이드라인(2023.6.)을 배포한 바 있다. 이게 벌써 2년 전의 일이고, 그 사이에 생성형 AI의 발전은 정말 괄목할 수준이었다.

이러한 우려에 발맞추어 OpenAI에서도 사용자의 콘텐츠를 훈련에 사용하지 않도록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 설정은 이를 사용하게 허용하는 것이고, 거부하려면 옵트아웃(opt-out)을 해야 된다.

여러분이 우리와 콘텐츠를 공유하면, 이는 모델이 여러분의 구체적인 문제를 더 정확하게 해결하도록 돕고, 동시에 일반적인 능력과 안전성 역시 향상시키는데 기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콘텐츠를 우리의 서비스를 마케팅하거나 여러분에 대한 광고 프로필을 만드는 데 사용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그것을 모델을 더 유용하게 만들기 위해서만 사용합니다. 예컨대 ChatGPT는, 여러분이 옵트아웃(거부)하지 않는 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에 대해 추가 훈련을 거치며 개선됩니다. [출처: OpenAI Help Center - How your data is used to improve model performance]

참고로 OpenAI Help Center의 글은 정책이 바뀜에 따라서 수정될 수 있다. 대화 데이터를 학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본 설정을 그대로 유지한다 하여도 이 데이터는 익명화된다.

나도 오늘부터 기본 설정을 바꾸어 "옵트아웃"하기로 결정하였다. 웹브라우저로 접속한 뒤 왼쪽 아래의 설정으로 들어가서 다음과 같이 [데이터 제어] -> [모델 개선]을 끄면 된다. '모두를 위한' 모델 개선이라고 해 놓은 것을 보면 이 스위치를 켜진 상태로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느낌을 주려고 무척 애를 쓴 것 같다.




이 스위치를 켜면 파랗게 표시된다.


바로 이것이 제목으로 나타낸 바와 같이 요즘 우리의 솔직한 입장이다. "남의 데이터로 학습한 AI 모델은 내 업무에 철저하게 쓰고 싶지만, 내 데이터는 모델 학습에 쓰지 마라!" 나도 어쩔 수 없이 약간의 불안감에 이 스위치를 끄고 말았지만, 이는 매우 이중적인 태도이다. 상호주의 없이 얻기만 원하면서 동시에 관련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일이 될 수 있다.

저 파란색 스위치는 어쩌면 모두의 이익이라는 수사를 쓰고 있지만 OpenAI의 수익 증대를 에둘러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열망이 조금씩 버무려져서 균형을 맞추며 세상이 굴러간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그 '균형'의 바큇살에서 일단 빠져 나오기로 하였다. 유료 플랜을 구독하고 있는 것으로 내 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생각해보니 이 또한 맞는 말이다.

우선 일상적으로 수사학은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 박성창 <수사학>


라즈베리 파이 3B(볼루미오)에 3.5인치 TFT LCD 터치 스크린을 설치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휴대폰 볼루미오 앱으로 라즈베리 파이 3B(V1.2, 2015)를 제어하다가 가끔 연결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만약 라즈베리 파이에 터치 스크린을 달면 매우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잠깐 검색을 한 뒤 주문하였다. 이것이 고통의 시작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디스플레이에 따라서 그냥 꽂으면 작동하는 것도 있지만, GIPO로 연결하는 3.5인치 저항식 터치스크린(480 x 320 해상도, ADS7846 컨트롤러 사용)은 명령행 인터페이스에 직접 설정을 건드릴 것이 많다고 하였다. 화면을 나오게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참조한 것은 다음의 두 웹사이트.

볼루미오 3.819에서 테스트하다.

그러나 화면이 나온 뒤 터치 동작이 말썽이다. 스타일러스로 화면을 눌러서 움직이는 방향과 정반대로 포인터가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이는 볼루미오에서 잘 알려진 문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책이 꽤 많이 공개되어 있다. 그러나 몇 시간을 따라서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차라리 Raspberry Pi OS를 깔아보면 터치 디스플레이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보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마이크로SD카드에 새로 이미지를 구워서 시도해 보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치 직후 HDMI 케이블로 연결한 일반 모니터에서는 시원한 GUI 화면이 잘 나온다.


asda3.5인치 터치 스크린을 구동하기 위하여 LCD wiki의 3.5inch RPi Display의 설명대로 다음의 명령을 실행하였다. LCD-show는 라즈베리 파이용 LCD 드라이버인데, 볼루미오에서는 LCD35-show 스크립트를 실행해서 쉽게 설치하지 못한다.

sudo rm -rf LCD-show
git clone https://github.com/goodtft/LCD-show.git
chmod -R 755 LCD-show
cd LCD-show/
sudo ./LCD35-show

LCD-show 드라이버 설치 뒤 재부팅을 기다린다.

잔뜩 기대를 갖고 재부팅을 하였는데, 화면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텍스트 모드의 커서만 번쩍번쩍. SSH로 접속을 해 보면 작동은 하고 있다.

관련 글을 찾아보면 제발 로그 파일을 확인해 보라고 하는데, 리눅스 계열의 OS를 대략 30년 가까이 써 왔지만 X.Org와 관련한 비정상적 작동 상황을 로그 파일에서 확인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괜히 이 뜨거운 여름날에 새로운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를 맞게 된 것은 아닌지.

아주 기초적인 문서에 해당하는 Setting Up a 3.5-inch LCD Touch Display with Raspberry Pi: A Step-by-Step Guide(2024년 7월 10일)과 실제 과정을 설명한 다음의 유튜브 영상과 내가 한 것 사이에 별 차이가 없는데 도대체 왜 화면조차 나오질 않는지 알 수가 없다.



부품을 몇 주에 걸쳐서 다 준비한 뒤 본격적인 아두이노 나노 응용 DIY 프로젝트를 착수하려고 했는데 라즈베이 파이(볼루미오)가 발목을 잡을 줄이야...    


2025년 7월 28일 업데이트

Raspberry Pi OS(32비트 버전)에 LCD-show 드라이버를 설치한 뒤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터치 포인터는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USB 마우스를 꽂아서 움직여 보면 동작이 매우 부드럽지 못해서 사용이 불편하다.

Volumio는 최신판을 설치하고 다시 터치스크린을 띄우기 위해 노력 중인데 이제는 화면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 왜 일관성이 없나? 더 이상은 모르겠다. 지난 일주일 동안 마이크로SD카드에 두 종류의 OS 이미지를 몇 번이나 구워서 테스트했었는지...

2025년 7월 22일 화요일

모든 것은 먹는 문제와 생활 습관으로 귀결된다 - '내가 의대에서 가르친 거짓말들'

mTOR(mammalian target of rapamycin)라는 단백질을 모른다면 생물학 전공자로서 기본 소양이 부족한 것일까? 로버트 러프킨의 『내가 의대에서 가르친 거짓말들』이라는 책을 최근 읽으면서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난 미생물(유전체)학을 하는 사람이니까...'라는 변명이 통하기 어렵다. 미생물을 전공한다고 해도 감염병이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등 인체와 상호작용하는 통합적 시각에서 미생물을 바라보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 통합의 중심에 한상 인간이 놓여야 한다는 이기적인 사고 방식이 생명과학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은 다소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TOR라는 약자를 처음 보았을 때 'target of rifamycin(리파마이신)'이라고 착각을 했다. 직업병이다! 식물에 유익한 토양 미생물 Paenibacillus polymyxa E681은 rifampicin(=rifampin, rifamycin 계열의 항상제)에 대한 자빌적 돌연변이체이고, 리파마이신의 타겟은 세균의 DNA-dependent RNA polymerase다. 

라파마이신이라는 항생제는 1960년대 후반 칠레의 이스터 섬 토양에서 발견되었다. 흙을 캐서 그 속에 사는 미생물이 생산하는 유용한 생리활성물질을 찾는 것은 미생물학자라면 밥 먹듯이 늘 하는 일이다. 거대한 석상을 바라보면서 토양 샘플링을 하는 미생물학자! 참 낭만적이지 않은가? 가끔은 심해나 화산 분화구 근처, 또는 위험한 빙하 틈새에서 아찔한 샘플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스터 섬의 거대한 석상 모아이. "Dumb dumb, give me gum gum!" 출처: 나무위키 


토양 미생물 Streptomyces hygroscopicus가 생산하는 이 물질은 원래 항진균제를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한 것인데, 사람에게 쓸 정도로 충분히 안전하고 효율적인 항진균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강력한 면역억제 효과가 발견되면서 장기이식 후 면역억제제로 개발 방향이 바뀌어 결국 1999년에 면역억제제로 미 FDA 승인을 받았다. 바로 전형적인 drug repositioning 또는 drug repurposing의 사례일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동물에 먹였을 때 수명이 현저히 늘어나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미국 잭슨 연구소의 Richard A. Miller 연구팀은 생쥐에 이를 투여했더니 최대 38%나 수명이 늘어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에 대한 2009년 기사를 참고해 보자('Scientists discover Easter Island 'fountain of youth' drug that can extend by ten years'). 원래 이 연구의 목표는 노화 마커에 미치는 약물의 효과를 평가하는 것이었다. 2009년 Nature에 실린 논문의 제목은 'Rapamycin fed late in life extends lifespan in genetically heterogygous mice'이다. 

효모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mTOR이라는 단백질이 존재한다. 이 단백질은 라파마이신과 상호작용을 하라고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진화해 온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세포과정을 조절하는 단백질 복합체의 핵심 구성 요소 역할를 하기 때문에 여기에 들러붙는 라파마이신이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러프킨의 책 『내가 의대에서 가르친 거짓말들』은 바로 mTOR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전문 영양사였던 어머니를 둔 사람으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미국 사회에서 권장되는 '건강한' 식생활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러프킨은 고혈압·통풍성 관절염·이상지질혈증·당뇨 전단계라는 네 가지 병을 얻게 되었다. 몇 가지는 나와 비슷하다! 왜 그런가? 우리가 섭취하는 칼로리와 이에 반응하는 신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했고, 소위 건강한 식품이라는 것은 고과당 옥수수 시럽(HFCS, high-fructose corn syrup)이 들어간 제품을 계속 팔려는 식품 제조 업체의 로비가 빚은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로버트 러프킨, 『내가 의대에서 가르친 거짓말들』(Lies I taught in medical school)

저자가 믿고 가르친 세 가지 대표적인 거짓말은 다음과 같다.

  1. 비만 거짓말: "1cal는 1cal일 뿐이다."
  2. 당뇨병 거짓말: "2형 당뇨병은 인슐린 치료가 최선이다."
  3. 심장병 거짓말: "식이성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심장병을 일으킨다.:

인류는 진화 여정의 대부분을 수렵과 채집을 하면서 이따금 단백질(육류) 위주이지만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고 한참을 굶는 생활을 해 왔다. 우리의 몸은 여기에 철저히 맞추어져 있다. 그러다가 농업혁명이 일어나면서 탄수화물의 '폭우'를 맞게 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농경생활은 인류 최대의 실수라고 한다. 더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하고, 영양 불균형을 초래했으며,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물론 이를 통해서 문명이라는 멋진 결과물이 발생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m)TOR가 뭘 어쨌다는 것인가? 이 단백질은 영양상태를 감지하여 성장 상태를 끄고 켜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일종의 nutrient-sensing protein kinase이다. mTOR가 활성화되면 성장 모드요, 비활성화되면 정비 모드에 들어간다. 러프킨에 의하면 이 중간의 적당한 상태란 없다! 마치 디지털 신호와 같이 0 아니면 1인 것이다. 

TOR가 켜지면 우리 몸은 지방을 저장하고 연료인 포도당을 태우기 시작한다. 베타 세포로 인슐린을 만들고, 앞서 언급한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인 UGF-1을 생산한다. 염증이 생기지만, 성장도 일어난다. 음식이 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이다(74~75쪽).

이는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정말 무서운 것은 대사증후군의 근본적인 원인인 인슐린 저항성으로 발전하는 것. 고혈당 상태이지만 세포는 인슐린에 반응하지 않아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이는 만성적인 염증 상태와도 연결된다.

비만이든 아니든 자신의 현재 몸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긍정하자는 '자기 몸 긍정(body positivity)' 정신에 대해서도 러프킨은 부정적이다. 비만에 대해서 조롱하거나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만, 비만은 결국 대사 이상으로 나아가는 문제의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Fat pride 또는 fat acceptance로 표출되는 자기 몸 긍정은 요한 하리의 책 『매직 필(Magic Pill)』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내가 5월에 쓴 독후감 링크).

체중을 감량하려면 덜 먹고 더 운동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심지어 인공감미료를 넣어서 칼로리가 전혀 없는 음료를 마셔도 인슐린 분비가 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러프킨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음식을 먹는 시간대를 12시간 이내로 줄이라는 것(탄수화물을 일절 먹지 않아도 좋다는 주장은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영양적인 요인인 스트레스, 수면장애, 환경호르몬, 노화 등도 비만을 촉진하는 원인이 된다.

식이나 대사는 그동안 의대에서 인기 있는 주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들 유전체와 오믹스 및 맞춤형 의약에 몰두해 있는 동안 과연 그 막대한 데이터는 정말 인류의 건강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투입 대비 효과는 얼마나 있었는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그에 비한다면 건강한 식이와 생활 습관이 가져다 줄 효과는 '가성비'가 매우 높지 않겠는가?

"수명은 프로그래밍되어 있지만, 노화는 질병이다."

'그래요? 그러면 그 노화라는 질병을 막거나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주세요. 다른 노력은 하기 싫어요.' - 이것이 우리의 자세이다. 질병이라는 단순한 표적이 있고, 이를 제거하면 낫는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씨앗이론이라 하였다(316쪽). 루이 파스퇴르 이후 이 이론은 잘 먹혀 들어갔으며, 감염병이 아닌 질환에 대해서도 그런대로 잘 통했다. 문제는 대사증후군과 같은 만성병이다. 이는 생활습관을 통하여 고쳐 나가야 한다. 병원에 갔는데 이런 말을 들었다고 상상해 보라(319쪽).

약을 써보기 전에 먼저 환자분 스스로 설탕, 곡물, 씨앗기름은 드시지 마세요. 결핍된 영양을 바로잡고 독소를 제거하면서 근력 운동과 수면 개선 운동도 조금씩 해나가 보죠.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되면 그때 약을 드리겠습니다."

실은 이 조언이 맞는 이야기인데, 우리는 인내심이 부족하다. 먹으면 혈중 콜레스테롤이 곧바로 줄어들고, 식욕이 줄어드는 그런 약을 당장 원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인 12장 <건강 설계>를 다 읽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실천해야 되는지 감이 잡힐 것이다.

  • 영양 측면: 농업 이전의 수렵채집인 시절의 자연식을 섭취하자. 가공식품, 정제 탄수화물, 공장에서 만드는 씨앗기름, 곡물과 글루텐의 섭취량을 줄이자. 그리고 하루 중에서 첫 식사와 마지막 식사까지의 시간을 12시간 이내로 줄이자. 심지어 하루 한 끼도 좋다. 과일은 갈아서 주스 형태로 만들어 마시지 말라. 식사량 자체를 줄일 필요는 없다. 먹을 때에는 지방과 탄수화물로 시작하여 탄수화물은 나중에 먹는다.
  • 기타 요소: 스트레스를 피하고, 충분히 수면을 취해라. 수면의 질이 나쁘면 포도당 대사 능력이 떨어지고 코르티솔 수치가 증가하며, 인슐린 생산을 자극해서 혈당과 인슐린 저항을 높인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외국어나 악기 연주 등 두뇌를 써라.
  • 단식 또는 단식을 모방한 식단
수면의 질이 나쁘면 포도당 대사 능력이 떨어지고 코르티솔 수치가 증가하며, 인슐린 생산을 자극해서 혈당과 인슐린 저항을 높인다.

어떤가? 충분히 실천 가능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