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5일 월요일

데이터 주권에서 글로벌 리더십까지 - KOBIC의 INSDC 가입 도전

[일러두기] 이 글은 2025년 8월 24일 디지털타임스에 실린 저의 기고문 「'바이오 데이터, 韓이 국제규범 만들어야」의 원본입니다.

생명·의료 연구 분야에서는 아주 아름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논문에 실은 데이터를 공개된 저장소('repository'라 합니다)에 등록하여 누구나 쉽게 검증하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학술지에서는 아예 논문 투고 시점에 데이터를 공인된 저장소에 먼저 등록한 뒤 접근번호('accession number')를 발급받아 원고에 명시하도록 요구합니다. 공개된 과학연구 데이터는 논문에서 주장하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이자 2차적 활용을 통해 지속적으로 가치를 드러내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배려나 관행이 아니라 신뢰, 협력, 재현성을 통해 ‘좋은 과학’을 실천하는 숭고한 길이기도 합니다.

최근 단백질 구조 예측의 혁신을 불러온 알파폴드(AlphaFold)는 방대한 공개 연구데이터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연구자들이 Protein Data Bank(PDB) 등에 등록한 수백만 개의 단백질 구조와 서열 데이터 및 문헌 정보가 AI 학습의 토대가 되었음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글로벌 데이터 저장소로 인정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연구 커뮤니티을 통해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오랜 논의와 협의를 거쳐 등록 데이터에 대한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을 만들며, 이를 기술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운영 주체가 결정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4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국제염기서열데이터베이스협력체(International Nucleotide Sequence Database Collaboration, INSDC)입니다. 이는 미국 국립보건원 국립의학도서관의 NCBI,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의 EBI, 그리고 일본 국립유전학연구소 산하의 DDBJ로 구성된 연합체입니다. 정부나 국제기구가 나서서 시험을 치르듯 INSDC의 회원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 기관 모두 정부 기관이거나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 기관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생명·의료 분야의 연구 데이터 공유가 공익 목적에 부합하고, 이를 지원하는 인프라인 데이터 리포지토리는 오랜 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야 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INSDC의 어느 한 곳에 데이터를 제출하든지 등록 후 하루가 지나면 전부 동기화가 이루어져서 나머지 두 곳의 데이터베이스에서도 같은 접근 번호를 이용하여 동일한 데이터를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NGS가 보편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생물학적 서열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기화가 가능한 것은 IT 기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데이터의 표준화가 잘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데이터의 특성에 따라 메타데이터만 동기화하고 실데이터는 분산된 개별 리포지토리에 보관하는 형태도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단백체 데이터의 공유와 재사용을 위한 연합체인 ProteomeXchange에서는 동일한 접근번호를 이용하여 모든 회원 웹사이트에서 검색이 가능하지만, 실제 데이터는 사용자가 제출한 곳에서만 접근 가능합니다. 데이터가 매우 크거나 표준화 수준이 낮고, 동일한 실데이터가 여러 방식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경우라면 이러한 방식이 적합할 수 있습니다. 염기서열 데이터는 레퍼런스의 성격이 강하고 표준화된 주석화 방식 및 동기화 전통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성숙하게 되었습니다.

KOBIC의 국가바이오데이터스테이션(K-BDS)은 국내 바이오 분야의 연구개발사업에서 도출된 연구 데이터를 통합관리하기 위하여 2022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은 국내 연구자들은 관련 법령에 따라 생명연구자원 연구성과물(‘데이터’)을 K-BDS에 등록해야 합니다. 그러나 학술지에서 공인하는 저장소는 아니었으므로 논문을 내기 위해서는 이를 INSDC에 다시 등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점점 많은 학술지가 K-BDS를 데이터 저장소로 인정하고는 있지만, 아직 INSDC와 같은 정도로 인정을 받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 KOBIC과 오래 교류를 해 왔던 일본 DDBJ에 의해 우리의 존재가 INSDC측에 알려지게 되었고, 연합체의 멤버십 확장 정책화에 따라서 2024년과 2025년 2년 연속으로 연례 회의의 초청을 받아서 신규 회원으로서 가입 가능성을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데이터 폭증, 지역 데이터 주권 요구, 그리고 기술·표준의 성숙이 맞물려서 INSDC를 개방형 네트워크로 전환하려는 정책 변화의 일환입니다.

현재는 NGS 원데이터를 K-BDS에 등록하면 DDBJ를 거쳐서 INSDC로 전송되는 데이터 브로커링(data brokering)이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어서 최소한 NGS 데이터의 경우 논문 투고를 위해 INSDC에 별도로 등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기술적 준비 상황이 INSDC의 요구 수준을 충족하여 그 일원으로 인정이 된다면, 우리 데이터가 K-BDS에 등록된 그대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INSDC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앞서 설명드렸듯이 과제 평가를 위한 연구성과물 등록과 학술지에 논문을 내기 위한 국외 리포지토리 등록을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인 편익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이 편익을 더욱 뛰어넘는 의미가 있습니다. 선진국이 이미 만들어 놓은 생명·의료 분야의 정보 인프라를 이용만 해 오던 수동적 위치에서, 세계 10위권의 글로벌 중추국 위상에 어울리는 역할을 바이오 정보 분야에서 수행할 수 있음을 입증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메타데이터 표준 강화나 민감 데이터 보호 정책, DSI 이익 공유와 같은 정책 결정에 참여함으로써 국내 법·윤리와 국제 규범 간의 조율권을 확보할 수 있으며, K-BDS를 통한 국외 연구자의 데이터 등록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즉 단순한 데이터의 제공국에서 국제 생명정보 거버넌스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데이터 공유지’를 조성하기 위한 기술을 이용하여 만든 별도의 파생 데이터베이스 및 서비스에 INSDC의 숨은 매력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각 멤버들은 공유되지 않는 영역에서는 독자적인 기술력을 자랑합니다. KOBIC은 K-BDS가 본격 출범하기 이전부터 클라우드 기반의 생명정보 분석 워크플로우 설계 및 활용 시스템을 서비스해 왔으며, INSDC에서는 직접 다루지 않는 단백체·대사체·이미지·화합물 데이터를 수집함으로써 멀티모달 AI 시대를 위한 대비를 착실히 해 왔습니다.

INSDC는 오픈 사이언스를 위한 실천 모델이자 매우 구체적인 성공 사례입니다. 그러나 회원이 되었다고 하여 수집한 모든 데이터를 국경 바깥으로 내보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유전체 데이터는 재식별 가능성이 있으며, 다른 데이터와 결합할 경우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집니다. 또한 많은 국가에서 유전체 정보는 개인정보의 한 종류로 간주되어 제공자의 명시적 동의 없이는 국외 리포지토리에 저장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데이터는 제한된 접근을 표방하는 별도의 리포지토리에 안전하게 저장되며, INSDC의 자동 동기화 대상도 아닙니다. 

데이터 주권은 국내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국경 안에 가두고 국내 연구자와 산업계에서만 쓸 수 있게 만드는 소극적인 의미로만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국제 무대에 동참하면서 기술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책 마련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나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소버린 AI로 나아가는 지름길로 접어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INSDC 가입은 단순히 데이터가 국경을 넘어 흐르도록 하는 기술적 절차가 아니라, 한국이 세계 생명정보 질서의 한 축을 담당하겠다는 선언입니다. KOBIC은 준비되어 있고, 국제사회는 새로운 파트너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오래 열려있지 않으며, 우리가 이를 노리는 다른 국가도 존재할 것입니다. 데이터 주권을 지키면서도 세계 표준을 주도하는 나라, 국내 연구자를 돕고 해외 연구를 끌어들이는 허브 국가, 그리고 멀티모달 AI 시대의 기반을 다지는 전진기지—이 모든 길이 INSDC에서 시작됩니다. 지금이 그 문을 열고 나아갈 시간입니다.

Nano Ardule MIDI Controller 제작 - 실수를 통해 배우다

바로 직전의 글(링크)에서 감히 '완성 단계'라는 말을 했었다. 납땜은 이것으로 다 되었으니 앞으로는 코드를 작성하면서 단계별로 테스트를 진행해 나가면 최종 목표에 도달할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을 했던 것이다. 주말 작업을 하면서 정말 많은 실수를 발견하였다. 금요일까지만 해도 앞으로 기판 고정용 나사를 풀 일이 없으리라 여겼으니 얼마나 가소로운 생각이란 말인가!

정말 운이 좋았다면 문제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예: 절연 불량). 그러나 초심자의 행운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경험하지 못한 실수를 나의 실력으로 착각하고 있다가 언젠가는 나를 다시 찾아올 것이고, 그때에는 원인을 몰라서 더욱 헤맬 수도 있다. 비교적 초기 단계에 실수를 발견하여 바로잡게 됨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첫 번째 실수전원 공급 방식의 몰이해가 빚은 것이었다. 5V가 나오는 외부 전원 어댑터로 아두이노 나노를 작동할 때에는 Vin 핀이 아니라 5V 핀으로 넣어야 한다. Vin로 들어오는 직류전원은 아두이노 나노에 내장된 레귤레이터로 안정화를 거치면서 낮아지므로,  최소 7V는 되어야 한다.

USB 케이블을 연결하여 테스트하면서 LCD 밝기를 적당하게 맞춰 놓은 뒤 USB 접속을 끊고 외부 전원 어댑터를 연결하면 표시가 너무 밝아 알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LCD 모듈 뒤의 가변저항을 돌려서 조정하였다. 여기에서 뭔가 눈치를 챘어야 했다. LCD 등 외부 모듈을 위한 전원은 아두이노 나노의 Vin에서 뽑았다. 이게 중대한 실수였다. Vin은 전원 입력을 위한 곳이지, 출력을 위한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전압이 나올 수는 있지만 5V보다는 낮고, 충분한 전류를 공급하지도 못한다.

이보다 더 큰 실수는 어댑터에서 공급되는 5V를 Vin에 찔러 넣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Vin에는 7~12V를 넣어 주어야 한다. 올바른 전원 연결 요령은 별도의 문서(링크)로 정리하였다. 5V 핀의 성격이 다면적임을 잘 이해해야 한다. USB 연결 시에는 외부 모듈을 위한 5V 공급선이 될 수 있고, 어댑터 사용 시에는 외부 전원이 들어오는 입구가 된다.



두 번째 실수Burnley 솔더링 페이스트의 전류 누설 부작용을 가볍게 여겼던 것. USB 연결을 통한 시리얼 통신 시 RX/TX 단자가 다른 회로와 이어져 있으면 문제를 일으키므로 배선을 끊고 점퍼를 삽입하여 용도에 맞게 닫거나 열 수 있게 해 두었다. 그런데 이를 연결하지 않는 상태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스케치 업로드가 완료되지 않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두이노 나노를 소켓에서 뽑으면 업로드가 잘 된다. 이렇게 불편하게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점퍼를 꽂도록 만든 핀 양단을 멀티미터로 찍어보니 개방 상태가 아니라 수백 옴 정도로 측정이 되었다. 이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TX 핀을 납땜한 패드와 한 패드 건너 곁을 지나는 그라운드 레일 사이의 저항을 측정하니 비슷한 값이 나왔다. 페이스트 잔류물에 의한 전류 누설임에 틀림이 없었다. 패드 사이를 잘 긁어내고 물에 적신 칫솔로 문질러서 무한대 저항으로 만들었더니 비로소 스케치 업로드가 잘 되었다.

세 번째는 실수인지 오해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테스트용 스케치를 업로드한 상태에서 로터리 인코더를 돌리면서 LCD 화면에 나타나는 숫자를 관찰하면 갑자기 값이 튀는 것으로 보였다. 이를 개선하라면 바이패스 커패시터와 '강한' 풀업 저항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어떤 글에서는 바이패서 커패시터만으로 개선이 되었다고 하여 이를 따라서 해 보았다.

103 세라믹 커패시터(10nF = 0.01uF) 두 개를 업어서 인코더 모듈 핀에 직접 납땜을 하였다.


그래도 특정 값에서 튀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항상 같은 값에서 튄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LCD의 동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다른 오해가 그 원인이 아닐까? 숫자를 표시할 때 자릿수를 채우는 방식이나, 이전에 표시된 숫자를 지우는 방식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하여 인코더 수치가 튄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ChatGPT와 대화하면서 코드를 계속 최적화하였더니 최종적으로는 문제가 사라졌다. 이렇게 하여 LCD와 버튼(짧게 누름 및 길게 누름까지 전부 포함하여)의 동작은 전부 원활하게 되고 있음을 어제의 작업으로 모두 확인하였고,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어제 작업으로 단계별 코딩 로드맵의 단계 2-로터리 인코더 & 버튼 입력을 통과하였다. 순탄하지는 않았으나 값진 경험이었다. 다음부터는 본격적으로 MIDI 신호 처리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2025년 8월 21일 목요일

완성 단계에 이른 Nano Ardule MIDI Controller

Nano Ardule MIDI Controller 설계 요약 문서

완성 단계라고는 하지만 하드웨어 제작만 거의 끝나갔음을 의미한다. 아직 플라스틱 케이스 가공을 완벽히 끝내지도 못했고, 코딩은 거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 특별한 일이 없다면 회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기능을 하나씩 추가하면서 코드를 짜서 검증해 나가면 된다. 이 과정에서 ChatGPT가 친절한 코치 역할을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판 위 커넥터류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기판 뒷면의 배선을 되도록 단순하게 만들려고 애를 쓰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단순화했다는 수준이 이런 정도. 남에게 보이기 참 부끄러운 수준이다. 지금은 여기에 몇 개의 커패시터를 덧붙였고, 8월 24일에는 배선 오류도 수정하였다.


MicroSD카드에 담긴 MIDI 파일 재생은 브레드보드 수준에서 실험을 통해 성공하였었다. 당시에는 아두이노 나노의 TX 핀에서 나오는 MIDI 신호를 곧바로 SAM9703 보드로 보냈었다. 지금 만들어진 구성에서는 74HC14 슈미트 인버터 IC를 거쳐서 5핀 MIDI OUT 단자로 나간다. 이것과 GM 사운드 모듈을 MIDI 케이블로 연결하여 정말 MIDI 파일 재생이 잘 이루어지는지 확인해야 한다. LCD와 LED 작동은 만능기판에 제작한 상태에서 잘 작동함을 확인하였다. 

원래 올해의 전자 DIY는 6П6С(6P6S, equivalent to 6V6GT) 싱글 앰프를 고쳐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LibreCAD를 이용하여 상판을 다시 설계하고 필요한 부품도 다 사 두었지만 Korg X2 Music Workstation을 수리하는 것으로 갑작스럽게 방향을 틀었다가 전혀 예상도 하지 않았던 곳까지 흘러들었다. 만약 2004년에 중고 X2를 구입하지 않았다면? 2020년에 아두이노 나노 스타터 키트를 구입하지 않았다면? 만약 이런 초기의 시도가 없었다면 오늘의 뻘짓(또는 성취?)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직업과의 연관성이 당장은 적어 보이더라도 다양한 일을 많이 경험해야 나이가 들어서 삶이 풍성해진다. 어쩌면 그 일이 두 번째 직업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2025년 8월 22일 업데이트

케이스에 구멍을 뚫어서 5핀 DIN 커넥터를 고정해 놓으니 제법 MIDI 기기처럼 보인다.




단계별 코딩 로드맵에 따라 단계 2까지 진행했다가 멈춘 상태이다. 아두이노 나노 A6 핀에 버튼 스위치를 연결하여 디지털 입력용으로 쓰도록 하였는데, 풀업 저항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업로드 시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D0/D1(RX/TX)를 임시적으로 끊는 방법도 모색해 봐야 한다. 이 두 개의 핀은 시리얼 통신에 쓰이는 것으로서, 아두이노 보드를 PC와 USB 케이블로 연결하여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아두이노 나노를 아예 소켓에서 뺀 상태로 프로그램 업로드를 한 뒤 다시 꽂는 아주 무식한 방법을 쓰고 있다. 배선을 끊고 점퍼핀 처리를 하려니 상당히 번거롭다. 할까 말까 할때는 하라던데...

그림 출처: 나무위키 점퍼(부품).


2025년 8월 25일 업데이트

주말 동안 동안 RX/TX 연결선의 점퍼 처리, 오배선 수정, 절연 불량 문제 해결, 로터리 인버터의 바이패스 커패시터 연결 등 꽤 많은 일을 하였다. 74HC14의 8번 핀이 소켓에 제대로 꽂히지 않은 것도 새롭게 발견하여 다시 제대로 꽂았다. 이로써 LCD와 버튼 동작의 테스트까지는 완벽하게 진행하였다. 이날 소화한 작업의 분량과 배운 점이 상당히 많으므로 별도의 글로 정리하도록 하겠다.

2025년 8월 20일 수요일

샘 올트만 가라사대 'AI는 거품이다'

AI로 큰 주목을 받는 회사가 '우리는 AI 거품 속에 있다'고 말하였다. 이 발언은 증시에 영향을 끼쳐서 AI 관련주 중심으로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매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오픈AI는 이 분야를 선도하면서 대중적인 관심이나 투자 유치 등에서 가장 많은 수혜를 입는 기업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왜 이런 냉정한 발언을 했을까?



샘 올트만은 늘 자신감에 넘쳐 있으면서 누구보다 이미지 마케팅에서 열성적이었던 사람 아니었던가. 어느 댓글에서 본 표현을 가져오자면 '기대를 만들고 부추기는 사람'이라는 말에 아주 잘 어울린다. 어떤 맥락에서 AI가 거품이라는 말을 했는지-본인이 그 거품의 가장 큰 수혜자임이 분명한데-원문을 찾아보기로 했다. 원문은 The Verge라는 매체에서 직접 올트만과 진행한 긴 인터뷰 기사인데 구독을 하지 않으면 전체를 읽을 수 없다. 수익 창출을 위해 매우 현명한 방법이지만 얄밉다. 그러나 핵심 메시지를 추린 별도의 기사를 같은 매체에서 제공하고 있으니 그건 또 고마운 일이다. 아마도 게시한 글의 레벨에 따라서 완전공개와 구독자에게만 공개로 구별하는 것 같다.

Sam Altman says 'yes,' AI is in a bubble - The Verge 2025년 8월 15일

올트만은 투자자들이 AI에 비합리적일 정도로 과도하게 기대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 현상은 1990년대 말 닷컴 버블과 유사하다. 그는 '아이디어만 있는 3인 스타트업이 엄청난 가치로 평가받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하였다. 누군가는 돈을 벌지만, 그것은 돈을 잃는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전반적인 경제에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였다.

이 인터뷰는 8월 7일에 공식 공개된 GPT-5에 대한 실망스런 반응 직후에 나온 것이다.

GPT-5 failed the hype test - The Verge 2025년 8월 15일

어떤 글에서는 'GPT-5 launch fiasco'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Hype(사기, 과대 광고), fiasco(대실패)... 평소에 잘 쓰지 않던 말을 이번 기회에 접하게 되었다.

어쨌든 이 실패를 접하고 나서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돌리고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AI는 거품이란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얼마 전부터 ChatGPT 화면 왼쪽 위에 'ChatGPT 5'라는 낯선 번호가 보이는 것에 대해 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GPT-5에 관해서는 다음의 링크를 참조해 보라.

GPT-5: 출시 지연, 과대평가됐고, 기대에 못미침 그리고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 GeekNews 22448

원본 글(substack.com, 이것 역시 유료 구독을 해야 읽을 수 있음)을 쓴 Gary Marcus는 누구인지 찾아 보았다.

Scientist, author and entrepreneur, know as a leading voice in AI. Six books including The Algebraic Mind, Rebooting AI, and Taming Silicon Valley; NYU Professor Emeritus. 링크

그의 날카로운 분석도, 그리고 GeekNews의 댓글도 모두 유익하였다. 특히 댓글에서 드러난 Marcus에 대한 비판도 흥미로웠다. 비평가에 대한 비평이라!

  • 하필 포스트 쓴 사람이 헛소리만 하던 Gary Marcus라서 영...
  • Gary Marcus는 항상 분석이 얕은 편임
  • AI 커뮤니티는 Marcus 같은 독립 전문가가 더 필요함

'지금 GPT에 진짜 필요한 가장 큰 개선점은,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임'이라는 댓글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다. 다음의 댓글을 특히 시사하는 바가 커서 아예 화면을 캡쳐하여 그대로 옮기기로 하였다.


생명 및 의학 관련 연구계에서는 아직도 양질의 데이터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곧 데이터 생산을 위한 투자 논리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제 훈련 데이터는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의 상식으로는 합성 데이터가 어떻게 학습에 쓰일 수 있는지 감조차 잡기가 어렵다. 

이토록 세상은 빨리 변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Geek의 댓글 중에서는 '(AI로 인해) 모두 실업될 것처럼 호도되는 분위기는 정말 어이없다'고 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자의 분석이 100%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초짜 신입 직원 채용 고민과  '그거 AI로 대신 하면 되는거 아냐?'라는 생각 사이에 저울질을 하다 보면 결론은 너무나 자명하다. 물론 판교의 활력이 사라진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4050 고인물' 천국 된 판교…20대 초짜 신입 사라진 이유가 - 한경 2025년 8월 17일


2025년 8월 18일 월요일

납땜 용어 900M, 936, 937, T12

제목에 나열한 낱말은 전부 하코(HAKKO) 생태계에서 유래한 것이다.

요즘 내가 취미 작업을 위해 사용하는 납땜인두는 (주)엑소의 세라믹 히터를 사용한 40와트급 제품 JY-2200이다. 2019년부터 사용 중이며, 내 생애 네 번째의 납땜인두이다. 온도도 빨리 오르고 열량도 높아서 트랜스포머 단자 납땜 등 큰 작업물을 대상으로 납땜을 하기에는 매우 좋다.

칼팁이 있으면 편리할 것 같아서 얼마 전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별 생각 없이 팁 세트를 싼 값에 구입하였다. 그러나 나의 엑소 인두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인두팁의 규격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이 세라믹 히터를 쓰는 납땜인두라면 그냥 다 맞을 것으로 기대하고 덜컥 구입한 것이 화근이었다.

출처: 알리익스프레스.
구입 후 실제로 받은 제품.

900M이라는 것은 하코에서 제조한 온도조절형 스테이션 납땜인두에 쓰이던 인두팁 규격이라고 한다. 실제 개별적인 팁은 900M-T-I(뾰족한 콘형), 900M-T-K(칼날형) 같은 형식으로 부른다. 이 인두팁(+인두 핸들)이 쓰이는 스테이션은 하코 936/937이 대표적인데, 2009년에 공식 단종되었다. 936은 다이얼식, 937은 버튼식(+LED 디스플레이)으로 온도조절 메커니즘은 그렇게 정밀하지는 않다고 한다. 트랜스포머를 통해 약 24V 교류 전원을 세라믹 히터에 인가하고, 센서를 통해 온도를 측정하면서 과열되면 전원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요즘은 중국산 호환(카피) 제품이 널리 판매되고 있다. 인두핸들, 온도조절기 회로부 등 호환 부품의 가격도 싸고 사용자가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다. 907은 핸들의 형번이다.

Hakko 936의 호환품 TAIKD-936b. 가격은 배송료 별도 16,550원. 출처: 알리익스프레스.

그 후에 나온 모델인 FX-888은 DC 펄스파와 센서를 이용한 PID(Proportional-Integral-Derivative) 제어 방식을 사용한다. 여기까지는 팁과 히터를 분리할 수 있었다. 그보다 나중에 나온 T12 규격부터는 히터와 팁이 일체 형태를 띠고 있다. 이를 흔히 고주파 인두라고도 하는데, 사실 ‘고주파’라는 용어는 교류에 대해 쓰는 것이 옳다.

스테이션 타입의 인두는 인두 핸들과 이에 딸린 케이블이 가볍고 유연해서 편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스테이션의 무게를 생각해 보라. 이동하지 않고 작업대 위에 두고 쓰는 조건에서는 매우 적합한 물건일 것이다.

요즘은 한술 더 떠서 C-type USB 단자가 달린 ‘스마트 인두’까지 나왔다. 어떤 것은 충전도 된다! 몇 볼트의 직류라고 해서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된다. 불과 수 초 만에 무연납을 녹일 수준으로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GVDA라는 중국산 브랜드의 GD301 같은 제품이 꽤 인기인 것 같은데, 이런 부류는 LCD와 버튼까지 달려 있어서 떨어뜨리면 금방 망가질 것만 같다. 220V에 직접 연결해서 쓰는 인두는 내동댕이쳐도 망가질 일이 별로 없지 않은가.

JY-2200은 만능기판 작업을 하기에는 너무 용량이 커서 조금만 부주의하면 패드가 떨어져 나가거나, 또는 납이 산화되어 광택이 없어지면서 잘 흐르지 않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요즘은 원래 자작 트랜스포머 권선기에 사용하려고 만들었던 조광기(전동 드릴 속도 제어용)를 대충 연결해서 쓰고 있다. 그런대로 만족하고는 있지만, 기왕 구입해 놓은 900M 인두팁 식구들을 언젠가는 사용해 보고 싶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907 인두(iron)’로 검색하면 900M 팁을 사용하는 저렴한 스틱형 온도조절 인두(스테이션형 아님)가 꽤 나오니 나중에 적당한 것을 고르거나, 아니면 스테이션에 대한 호기심으로 936 호환품 중에서 고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

JY-2200을 구입하였을 때 T-B 기본 팁 외에도 끝이 더 뾰족한 교체용 팁(T-I)이 하나 더 들어 있었다. 어제 이것으로 바꾸어 놓으니 만능기판 작업을 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새로 교체한 엑소 SY 시리즈의 T-I 인두팁. 세라믹 히터 겉을 둘러싼 파이프가 살짝 휘어 있다. 열에 의한 변형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태에서는 나중에 내부의 세라믹 히터(구입처)를 교체하기 아주 곤란하다. 새 히터를 구입하느니 아예 납땜인두 자체를 바꾸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경주 보문호 주변을 달리며 많은 생각을 하다

작년(8월과 10월 2회)에 이어 올해 여름에도 휴가차 경주를 찾았다. 남들은 경주를 왜 그렇게 자주 가느냐고 하지만, 이곳은 나에게 항상 새로움을 주는 곳이다. 또한 변하지 않는 경주의 모습에서 평안함을 느낀다. 뜨거운 여름날, 첨성로를 걸으며 인왕리 고분군에 펼쳐진 거대한 무덤의 곡선을 보라. 거대하고 부드러운 윤곽선 아래로 꽉 채워진, 이보다 더 선명할 수 없는 잔디색(lawn green, #5EA152, color-hex 웹사이트)의 공간을 보고 있노라면 인공물 중에 이런 편안함을 자아내는 것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인교동 119호분. 이 동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분이기도 하다.

북쪽에서 바라본 월정교.


월정교 안에서 맞는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였던지!

태종무열왕릉을 중심으로 하는 서악동 고분군도 마찬가지이다. 이곳은 경주 중심가에 비하여 관광객의 발길은 적은 편이다. 소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새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이보다 더 좋은 휴식이 없다.

자연석 그대로의 소박한 호석(護石)이 무덤을 둘러싸고 있다.

거북 모양 받침돌(귀부)는 하나의 바위를 정교하게 깎아서 만든 것이다. 몸통돌(비신)은 어디로 갔을까?

이번에 찾은 경주는 오는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열리는 APEC 준비로 매우 분주한 모습이었다. 몹시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그룹으로 가이드와 함께 탐방 중인 외국인 관광객도 꽤 많이 보였다. 첫날에는 고속도로에서 경주 IC로 진입하기 위해 몇 km나 줄을 지어서 1시간이 훨씬 넘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경주를 그렇게 많이 왔지만 이렇게 교통체증을 겪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특히 황리단길 인근은 차량이 얼마나 몰려드는지 여기를 지나는 것을 후회할 지경이었다. 겨우 쪽샘지구 임시주차장에 차를 대고 대릉원을 찾을 수 있었다.

대릉원에서.


이틀째에 찾은 불국사는 언제는 옳다! 그래서 나는 여기를 불굳(good)사라고 부를 만큼 경주 여행에서 언제나 들러도 좋은 곳이다. 약간의 입장료를 내더라도 불국사박물관을 들러 보기를 권한다. 특히 요즘과 같이 더운 여름에는 불국사 경내를 둘러보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땀을 식히기에 아주 좋다.




대종천 다리 밑에서 더위를 식히다

불국사에서 이틀째 오전을 보낸 뒤 읍천항으로 향했다. 읍천항은 감포 바닷가(봉길해수욕장)으로 나가서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월성원자력본부를 지나면 나오는 작은 포구다. 돌아오는 길에는 T맵이 아니라 차량용 내비게이션을 이용했더니 토함산로(길이 4.3km의 토함산터널 통과)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가 갑자기 경감로로 빠져나가라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채 다리 밑 그늘을 지나는데 개울가에 자동차 여러 대가 서 있고 사람들이 더위를 식히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는 축암교(토함산로) 아래를 동쪽으로 흘러서 감포읍에서 바다로 나가는 대종천에 해당한다. 서쪽으로 보이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건물까지는 대략 1.1km 떨어진 곳이다. 



이곳의 GPS 좌표는  N 35.793, E 129.403

그대로 지나쳤다가 차를 되돌려서 물가로 내려가 보기로 하였다. 물이 맑고 얕아서 아이들이 놀기에 적당해 보였다. 아마 경주 시민들만 알고 있는 로컬 놀이터인 것 같았다. 고기를 구워 먹는 나이 지긋한 부부도 있었고, 바로 옆 텐트에서는 할아버지와 손주까지 가족 3대가 와서 물놀이를 하고 놀다가 짐을 챙겨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건너편에서는 어느 할머니가 도시락 그릇을 냇물에 부셔 내더니 아예 바지를 걷고 물에 들어와서 머리를 감는다! 엄격하게 관리하는 유원지가 아니므로 모두가 푸근한 마음으로 그러려니하고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다음에도 더운 날 감포읍에서 경주 시내로 돌아올 때는 이 곳을 찾아 더위를 식히고 가고 싶다. 여기를 거쳐서 보문관광단지로 돌아오려면 추령을 지나 상당히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속도를 내기도 어려운데 뒤에서 바싹 붙어서 따라오는 비매너 승용차 때문에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저녁이 되어 보문관광단지 안에 자리한 숙소를 찾으니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유소년 축구단의 버스가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이들을 유명한 축구 스타로 키우고 싶은 부모도 있을 것이고, 그저 운동을 잘하고 스포츠를 통한 협동심과 리더십 함양을 위해 축구팀에 아이를 넣은 부모도 있을 것이다. 지도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모여서 선수들의 기용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느 방 안에서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뭔가를 지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1층 복도에 내 놓은 빨래 건조대에 가득 널린 유니폼을 보면서 경기를 대비하는 사람들의 희망과 고단함을 느낄 수 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스포츠의 재미나 의미를 전혀 가르쳐 주지 못했다. 이는 정말 아쉽다.

보문호의 박정희 동상

저녁을 먹은 뒤 여행의 피곤함과 식곤증으로 잠시 잠에 빠졌다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여행지라고 해서 이틀에 한번 꼴로 실천하는 달리기를 게을리 할 수는 없는 노릇. 이번에는 보문호의 산책로을 뛰어 보기로 하였다. 걷기 좋게 길이 잘 단장되어 있고, 호수에는 각종 조형물이 조명을 받으며 빛나고 있었다. 둘레길은 총 8km라고 하니 다음 기회에는 한 바퀴를 달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삼삼오오 이야기를 하며 거니는 여행객 사이로 총 5km의 거리를 뛰었다. 호수의 북쪽 끝에 해당하는 곳에 이르니 '대한민국 관광역사 이곳에서 시작되다'라는 글씨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 이름하여 관광역사공원.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그간 보문관광단지에서 여러 차례 숙박을 했지만 호숫가에 내려와 본 일은 한번도 없었다. 공원 내부를 잠시 돌아보는 중에 뜬금없이 박정희 전대통령을 표현한 조형물이 유난히 많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여기는 내가 설계하고 만든 곳이니 고마워 해야 돼!'를 부르짖는 듯한.

여기에서는 별다른 이상한 느낌을 받지 않았다.

영웅 만들기? 박정희가 앞서 나아가고, 그 뒤로 보문관광단자의 역사가 쓰였음을 보여주고 싶은 의도가 적나라하게 나타난 조형물 및 전시 자료.

이런 자료는 어디 실내 기념관에다 전시할 일이다.


이 동상이 나중에 미술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 걱정이 된다.

경주 보문관광단지가 박정희 시대에 첫 삽을 떴다는 것은 대충 알고는 있었다. 특히 이 지역은 여느 관광지와는 달리 정부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것이 과연 옳은 방식이었는지는 두고두고 논할 일이다. 어쨌든 내가 가족과 함께 이곳을 자주 찾아 즐길 수 있는 기반은 이때 마련된 셈이니까 말이다. 대통령이 1971년 여름 직접 친필로 '경주발전계획 작성 지침'을 써서 내리고, 건설부에서는 이 지침을 받들어 두 달 만에 계획을 완성했다나? 

박정희 전대통령 친필로 쓴 경주발전계획 지침-40년전 '경주발전계획' 아버지 뒤이은 딸이 개발 마무리 해줄까(영남일보 2013년 1월 23일)

지금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는 기사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대다수 지역민들의 정서인가... 이 기사에 의하면, 박정희가 쓴 친필 지침은 창고에 장기간 보관만 되어 있다가 박근혜 취임 직전 재발견(?)되어 기사화되었다. 그리고 현재 관광역사공원에서 전직 대통령의 동상과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기사를 검색해 보니 50억원을 들여 지은 이 공원이 2024년 문을 열면서 내부 곳곳에 세원진 박정희 동상 때문에 적잔이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개장 전까지는 이런 구체적인 설치물에 대해서 제대로 공개가 되지 않았었다고 한다. 내 생각도 이런 비판과 별로 다르지 않다.  

"내 나라의 미래는 가 그려 나간다." 

아마 박정희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었을까? 아마 스스로를 '유일한 대한민국 디자이너'로 생각했을 것이다. 박정희의 친필 휘호로 잘 알려진 '내 一生 祖國과 民族을 爲하여'가 떠오른다. 이 문장에선 여러 '나'가 모여서 '우리'가 된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즉시 구체화하여 계획으로 세워지고, 이를 무서운 속도로 추진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경부속도로도 생겨나고, 보문관광단지도 만들어졌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뒷이야기① 三無 상태, 치열한 전투  - 월간 국토해양저널 2001년 3월호에 실렸던 글

그렇다면 그 '그림'을 순식간에 그려낸 사람은 진정한 천재급 지도자였단 말인가? 평전에 의하면, 그의 리더십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박정희도 처음엔 카리스마 없었다… 철저한 기획, 단계적으로 이룬 리더십 조선일보 2023년 6월 15일).

어쨌든 그 시절에는 그렇게 세상이 움직였다. 어려운 시대에는 이러한 방식이 유일하고 가장 효율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 움직임을 찬성하지 않거나, 밀려난 사람은 많은 괴로움을 당하고 잊혀져 갔을 것이다. 

지금 나는 박정희가 뿌린 씨앗이 성장하여 여문 과실을 따 먹고 있는가?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뿌린 씨앗이 정말 정당하였는지, 그 과정 중에서 어떤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하였는지는 얼마든지 비판해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그런 비판을 수용할 정도로 자유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독재를 가미한 정부 주도형 모델이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이라는 어려운 처지를 헤치고 국가의 기틀을 세우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러나 동상 건립과 같은 방법을 이용하여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지도자의 추억을 소환하는 곳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특히 최근의 보수 정권일 때 이런 움직임이 더욱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역사를 바로 알고 '자유로운' 나라를 바로 세우자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은 다른 정치적인 목적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올바른 재평가는 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박정희에 대한 숭모는 숭미(崇美)와 더불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정신이라고 믿는다. 

관광지 경주에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돌아왔다.


감은사지 서탑을 바라보며.

월성원자력홍보관에서 찍은 원자로의 모습. 월성원자력발전소는 우리나라 유일의 중수로형 원전(3기)을 사용한다. 모든 사용후 핵연료는 각 원자력발전소의 임시 저장 시설에 보관되는데, 월성원자력발전소의 경우 포화율이 가장 높아서 92%에 이르며, 2031년이면 꽉 찬다. 대책이 필요하다. 안전기준을 만족하여 계속운전에 착수한다 하여도 사용후 핵연료를 둘 곳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나라는 재처리도 하지 못한다. 사족으로서 용어의 문제-원자력발전이냐, 핵발전이냐?(박정희도 '핵발전'이라 불렀다)

감은사지 동탑의 시원한 그늘에서 촬영.

2025년 8월 15일 금요일

읽는데 반년이 넘게 걸린 마이클 샌델의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작년 12월, 온 국민은 TV를 통해 어이없는 비상계엄선포를 접하고 충격에 빠졌다.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여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고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계엄 포고문을 들었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무엇이고 반국가 세력은 또 무엇인가? 국회에 의해 계엄령은 즉시 해제되었지만, 이 사태가 가져온 파급효과는 너무나 컸다. 전직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이 되었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망가진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아직도 우리는 많은 비용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 계엄은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놓고 왜 이렇게 다른 입장인 것인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던 나는 곧바로 서점에 가서 마이클 샌델의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원제: Democracy's Discontent, 2022년 판)을 구입하였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절반 정도를 읽고 말았던 것을 최근에 다시 마음을 굳게 먹고 처음부터 다시 읽어 나갔다. 도서관에서 빌린 것이 아니라 내가 돈을 주고 산 것이라서 연필을 잡고 편하게 줄을 그어 나가면서. 이렇게 하여 끝을 맺은 것이 7월 25일이었다.



탄핵으로 물러난 대통령을 뽑은 것은 우리 국민이었고, 트럼프를 두 번이나 대통령에 만든 것 역시 미국의 국민이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현상은 민주주의의 퇴보에 해당한다. 국민들의 마음 속에 어떤 불평과 불안이 있었기에 그 빈 곳을 공략한 정치 지도자가 대통령이 된 것일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렇게 치밀한 전략이나 계획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미국의 정치경제사도 항상 옳은 길만을 추구해 온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개인의 이익 추구와 생산 체계의 효율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와 시민의 자치 참여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민주주의는 서로를 견제하면서 발전해 왔다.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이지만, 제퍼슨주의자들은 대규모 공장제도는 시민적 윤리를 해칠 것이며, 자작농이 더욱 유리하다고 주장하였다. 20세기에 들어 나타는 큰 흐름인 반독점운동은 경제 권력의 집중화를 막고자 하였다. 챗GPT를 이용하여 마이클 샌델의 관점에서 2차대전 종전까지의 미국 정치경제사를 인물 중심으로 아주 간략하게 요약해 보았다.

시기 핵심 인물/사건 주요 특징 샌델 관점의 의미
18세기 말~19세기 초 토머스 제퍼슨 (3대 대통령, 1801~1809) - 소규모 자작농 중심의 농본주의(agrarianism)- 분산된 토지 소유, 시민 덕성·자치 중시- 중앙정부 권한 축소, 주(州) 중심 시민적 공화주의의 정점.경제가 정치적 자치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발상
18세기 말~초기 공화국 시대 알렉산더 해밀턴 (초대 재무장관) - 강력한 중앙정부, 산업·금융 육성- 국립은행 설립, 제조업 진흥- 영국식 금융·상업 모델 수용 자치보다는 국가 경쟁력과 경제 효율을 중시, 시장 중심 사고 확대
19세기 초중반 앤드루 잭슨 (7대 대통령, 1829~1837) - 금융 엘리트 견제(제2합중국은행 폐지)- 대중정치 확대(백인 남성 참정권 확장)- 서부 개척 장려 금융 권력 견제 등 일부 공화주의적 요소 유지, 그러나 구조 개혁은 제한적
19세기 말~20세기 초 로크너 대 뉴욕 판결 (1905) - 노동시간 제한법을 위헌 판결 (‘자유계약’ 절대화)- 정부의 경제 규제 최소화- 노동자 보호 입법 제약 시장 자유주의의 제도적 확립.경제와 자치를 분리하는 흐름 완성
20세기 초~1910년대 세오도어 루즈벨트 (26대 대통령, 1901~1909) - ‘트러스트 파괴자’, 반독점 강화- 식품·의약품 규제, 국립공원 제도- 공공선 회복 시도 시장 자유주의 속에서 공화주의적 공공선을 재도입하려는 개혁
1933~1945 프랭클린 D. 루즈벨트(FDR) (32대 대통령) - 뉴딜 정책, 대공황 극복- 사회보장제도, 노동자 권리 보장- 금융 규제, 대규모 공공사업 복지국가 모델 확립.경제가 시민 자치와 사회적 연대에 기여하도록 재설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은 쇠퇴하고 경제 성장 및 분배 정의의 정치경제학으로 대체됐다...(중략)...이렇게 해서 경제가 자치라는 목적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발상은 정치 논쟁에서 사라졌다.(320쪽)

지금 우리를 지배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는 국가가 아닌 세계 차원의 규모이며 금융이 주도하고 있다. 자본의 이동성이 너무나 높아지니,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법인세율이 감소하였고, 이에 따라 노동자와 소비자의 세금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나친 금융화는 산업 구조를 왜곡한다. 상품을 생산하여 부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자산의 미래 가치를 추정하여 '막대한' 부를 얻게 만든 것이다. 금융은 필수적인 장치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는 생산적이 않다. 즉, 실물경제에서 부당한 이득을 지대(地代, rent)로 빼돌리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좌파 정당은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고, 우파 정당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능력주의 시대에는 양상이 뒤바뀌었다. 지금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중도 정당의 좌파에 투표하고,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이 우파 정당에 투표한다.(374쪽)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는 어떤 사람은 부유하게 만들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만들었지만, 능력주의는 승자와 패자를 확연하게 갈라놓았다. 그리고 소득 불평등뿐만 아니라 바로 이러한 분열이 사람들 사이에 굴욕감을 안겨줬고, 트럼프를 비롯한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들은 이 굴욕감을 자기의 정치적 목적에 악용했으며 또 효과를 봤다.(378쪽) 

미국인들은 경제적인 불만을 해소시켜 줄 것으로 믿는 지도자(미국을 위대하게 만듦으로써? 관세를 이용하여?)를 선택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대통령을 군주로 여기는 마음(여기에서 건국 대통령이라는 개념이 나온다)을 부추긴 다음 안보문제, 즉 북한이나 중국의 위협을 적당히 버무리면 늘 어떤 당이나 인물을 지지해야 된다는 '정답' 자동적으로 나오게 되고, 그 비율은 특정 지역과 연령층에서는 거의 상수로 고착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층-심지어 청소년-사이에 이런 생각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대단히 걱정스럽다. 

민주주의는 눈에 띄지 않게 퇴보할 수 있다. 시민 모두가 깨어있지 않으면 퇴보하는 것은 잠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