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1일 일요일

처음 가 본 단양(2021.4.10.)

충북 단양과 제천은 대전에서 직선거리로 그렇게 먼 곳은 아니지만 전 국토를 격자 모양으로 관통하는 고속도로망이 최근과 같이 뚫리기 전까지는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도로 여건도 이미 충분히 좋아진 지금, 경주는 이따금 가면서도 충북의 끝자락을 가려는 시도를 왜 지금까지 못했었을까.


단양군은 충청북도 동북쪽 끝에 위치하였다.
충남과 충북은 거의 같은 위도에서 동서로 위치해 있는데 왜 충청서도·충청동도가 아닐까? 인터넷을 찾아보면 이런 의문은 나만 가진 것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도를 좌도와 우도로 나누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충청남도는 충청좌도였을까? 그렇지 않다. 현재처럼 북쪽을 기준으로 지도를 배치한 것이 아니라, 임금님이 보는 관점에서 좌우를 결정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의 충청남도는 과거에는 충청우도였던 것이다. 따라서 경상좌수영은 부산에, 경상우수영은 부산에 위치하였다. 한 번 머릿속에 박힌 고정관념(위를 기준으로 시계방향으로 90도씩 돌아가며 북-동-남-서)은 이렇게 깨기가 어렵다.

북대전 나들목을 나와서 호남고속도로 - (회덕분기점) - 경부고속도로 - (남이분기점) -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북으로 올라가다가 대소분기점에서 평택제천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의 이름은 천등산 휴게소이다. 옛 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의 가사는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님아~' 아니던가? 박달재가 바로 이곳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나중에 다음 지도에서 확인해 보니 천등산 정상과 천등산 휴게소(둘 다 충주시 산척면)의 직선거리는 6.9 km 정도로 꽤 떨어져 있고, 박달재(제천시)는 천등산을 가운데 두고 정 반대편에 있다. 그러니 이곳에서 박달재를 연상하는 테마공원을 만들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대신 이곳에는 고구려 테마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잠시 흥미롭게 둘러 보았다. 예전에 중원 고구려비라고도 불렸던 충주 고구려비를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 휴게소에는 복제한 고구려비가 있을 뿐이다.

첫 목적지는 도담삼봉. '삼봉'이 정도전의 호라는 것을 여태 몰랐느냐는 아내의 핀잔에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것 이상은 잘 모른다'고 얼버무려야만 했다. 난 사극에서 그렇게 많이 다루어진 역사 뒷이야기를 거의 알지 못한다. 그다지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참 묘하게 생긴 자연의 걸작이다. 가장 높은 봉을 기준으로 물 위로 드러난 부분의 약 1/5까지 물에 잠겼던 흔적이 있다. 과거에는 물이 여기까지 차 올랐던 것일까? 아니면 삼봉이 천천히 솟아 올랐나? 신비롭기만 하다. 지질학자는 이에 대해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선에 있던 삼봉이 큰 홍수에 여기까지 떠내려 왔다는 전설이 있지만 이것이 사실일 리는 없다. 그것 때문에 정선에서 단양에 세금을 징수하고, 소년 정도전이 재치 있게 이를 받아쳐서 다시는 세금을 받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석문으로 오르는 정자에서.

계단을 오르면 '석문'이라는 곳을 갈 수 있다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발길을 향했다. 길지는 않지만 제법 가팔랐다. 여기에도 기묘한 자연의 작품이 있었다. 만약 유람선을 타고 강 쪽에서 접근했다면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석문을 다녀 오니 적잖이 허기가 져서 관광단지에 조성된 식당가에서 메밀국수로 점심을 먹고 두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청풍호를 가 보려다가 기왕이면 인공으로 조성된 호수보다는 사찰이 낫겠다 싶어서 구인사를 가 보기로 했다. 단양IC를 통해 진입한 뒤 도로 표지판에서 '구인사'라 적힌 것을 보고 이름난 절이라고 즉흥적으로 생각을 한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전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썩 잘 한 선택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천태종의 총본산인 구인사는 규모로 압도하는 절이지 역사가 오래거나 고풍스런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구인사까지 가는 길에서 만난 남한강변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개발의 흔적이 많이 보이는 북한강변보다는 더욱 한적하고 여유가 있었다.

천태종과 구인사에 대해서는 평소에 아는 바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산골짜기에 조성된 엄청난 규모의 사찰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구인사임은 바로 여행날 알게 되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구인사 입구까지 오는 버스가 있을 정도이니 이곳을 찾는 신도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얼마나 가파르고 높은지 1/4도 오르지 못하고 내려왔다. 운전하면서 졸 수는 없으니 체력을 아껴야 했다. 이 안내도 바로 곁에는 구인사 전용 버스 터미널이 있다.



천태종의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하나 그 명맥이 끊어졌던 것을 원각대조사 상월 스님이 1960년대에 개창하였다고 한다. 내가 그 교리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고, 사실상 새로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천태종 신도는 구인사 소속으로 되어 있다고 하니 면적이나 규모 모든 면에서 국내의 모든 종파를 통틀어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성장을 했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을 것이다. 

믿음이란 것이 신도들의 규모를 키워야 더욱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성질의 것은 아닐 것이다. 입구 주차장 앞에 마련된 거대한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사찰의 성장 과정을 너무 강조하고, 일부 소장품에서 다소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주차장에서 요금을 받고 체온을 체크하는 직원이 퉁명스러웠다는 것도 좋은 기억은 아니다.

기회가 되면 진안에 있다는 광명사를 한 번 찾고 싶다. 주지 송운 스님은 중학교 때 친구였다.

구인사를 내려와서 입구에 있는 농산품 판매점을 들러 철 지난 더덕을 한 봉지 샀다. 조금이라도 양이 많은 것을 사려고 껍질을 까지 않은 것을 달라고 했더니 비닐봉투에 담아서 쌓아 놓은 것 중에 굳이 아래에 있는 것을 꺼내어 팔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싹이 많이 나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을.. 흠이 있는 것을 군소리 하지 않는 손님에게 먼저 팔아 버리려는 가게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

온달은 분명히 고구려의 장수인데 단양에 온달 관광지가 조성되어 있다니? 온달이 신라에 의해 빼앗긴 남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여기까지 와서 싸웠다고 한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와 드라마 세트장을 적당히 버무린 곳이다. 온달 산성이라 불리는 성도 있고 여기에서 온달이 전사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삼국사기의 기록에 나오는 아단성(阿旦城)이 바로 이곳에 축조된 성과 동일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많이 지쳐 있어서 온달관광지와 산성은 들르지 못했다.

고속도로로 나가기 위해 다시 단양군내를 지나면서 성신양회 사업장을 지나게 되었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의 봉우리가 보이질 않고 마치 칼로 자른 듯 평평해 보인다. 만약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어떤 모양이었을까? 궁금하면 카카오맵에서 스카이뷰를 찾아보면 된다. 

도로에서 올려다보면서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리 산을 계단형으로 깎아 나가고 있다. 어쩌면 나선형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공장 설비는 마침 스팀펑크류의 영화에 나오는 모습 같았다. 운전 중이라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석회석신소재연구소'는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는 무척 신기한 곳으로 인상이 남는다.

돌아오는 길에는 방송인 이영자에 의해 TV에 소개되어 유명한 금왕 휴게소의 찹쌀 꽈배기를 먹었다. 돌아오고 나니 좀 더 큰 포장으로 구입해서 먹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봄은 빨리 지나고, 인생은 짧다. 건강이 허락하고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많이 돌아다니자는 것이 아내와의 약속이다.






댓글 2개:

Unknown :

저 곳을 지날때마다 드는 생각은.. "아 저기 올라가서 청주나 한 잔 했으면~~~" 저 누각에 올라갈 수 있다고는 들었는데 일단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되는건지 모르겠네요 ㅎㅎ

jeong0449 :

그곳에서 운항하는 유람선은 도담삼봉에 세워주진 않고요^^ 겨울에 강이 꽁꽁 얼었을 때 걸어서 들어간 사람들의 사진을 본 일은 있습니다. 그런데 누각으로 오르는 길이 너무 가파르고 위험해서 아마 오르는 것을 말릴 것 같아요. 누각 자체는 비교적 최근에 새로 지어진 것이라 역사적 가치는 없지만, 그래도 자연 경관과 기가 막히게 어울리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