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비스 회사를 바꾸면서 집전화를 없애기로 하였다. 식구들 전부가 휴대폰을 갖고 사는 요즘, 더 이상 집전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휴대폰은 종종 소리가 나지 않게 하거나 엉뚱한 곳에 두어서 찾기가 어려운 일이 있는데, 집전화의 가장 최근 용도는 바로 이렇게 눈에 뜨이지 않는 휴대폰을 찾기 위해 전화를 걸거나 내가 출장을 나간 경우 아침에 전화를 걸어서 가족들을 깨우기 위함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용도가 적어진 물건에 대해 서비스 요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결심을 하고 서비스 해지를 요청하고 나니 많은 생각이 교차하였다. 비록 이렇게 사라져 가는 물건이지만, 마지막 기록을 남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집전화를 이용하여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고, 이를 휴대폰에서 녹음하였다. 3GP라는 생소한 파일 포맷이라 ffmpeg을 사용하여 MP3로 전환하였다. 앞 부분을 3초 정도 자른 것 말고는 아무런 편집을 하지 않았다. 실제 녹음은 4월 1일에 하였다.
음성 전화를 녹음하는데 큰 정성을 들일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Audacity에서 확인하니 샘플링 레이트 8 kHz로 녹음이 되었다. MP3로 전환한 파일의 상세한 명세는 다음과 같다.
$ play 042-863-####b.mp3
042-863-####b.mp3:
File Size: 628k Bit Rate: 28.4k
Encoding: MPEG audio
Channels: 1 @ 16-bit
Samplerate: 8000Hz
Replaygain: off
Duration: 00:02:56.54
세월이 변하니 어쩔 도리가 없이 은퇴를 해야 하는 기술이 나온다. 브라운관 TV가 그렇고, 구식 컴퓨터가 그렇고, 휴대폰은 2-3년 주기로 새롭게 바꾸어야만 한다. 지금의 휴대폰은 기존의 전화기와 컴퓨터, 카메라, 계산기, 그리고 미처 다 헤아릴 수도 없는 수많은 기능을 합친 기계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손에 들고 얼굴에 밀착하여 음성을 전하는 용도로는 구식 집전화기만 한 것이 없다. 특히 손이 부족하여 머리와 어깨 사이에 송수화기를 끼고 통화를 할 때를 생각해 보라.
소규모 중고 교환기를 하나 구하면 집에서 몇 대의 전화기를 연결하여 서로 통화를 하는 장난을 칠 수 있을 것이다. 전화를 끊던 날, 정말 진지하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는 휴대폰으로 오는 전화를 집전화로 오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집에 설치된 wi-fi 공유기와 IoT를 잘 이용하면 이런 서비스가 가능할 것도 같았다. IT 분야에 종사하는 친구에게 물어볼까 생각했다가 곧 그만 두었다. 몰래 전화를 받고 싶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집에 있는 동안 전화가 오면 중요한 전화라고 둘러대고 방에 들어가서 받을 수도 있고, 휴대폰에 잠금 기능이 있다면 그 전화가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가족에게 들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비밀스러운 전화가 휴대폰이 아니라 집전화로 걸려온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이 받는다면? 사안에 따라서는 가정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상업 서비스를 목표로 개발한다면 이러한 프라이버시도 보호해 줄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런 정도의 서비스는 기존 통신 서비스 업체에서 이미 개발을 해 두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구식 아날로그 전화기가 아니라 고가의 인터넷 전화기를 이용해야만 제공 가능한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개발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전면 디지털 라디오 방송이 실시될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아날로그식 유선 전화 서비스가 언젠가는 종료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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