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6일 수요일

All of Us 간단히 들여다보기 - 참여자가 아닌 연구자 측면에서

2018년부터 시작된 미국 NIH의 All of Us Program은 All of 'United States (of America)'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장난스럽게 생각해 본 일이 있다.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참여자를 한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전체 의학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적게 대표된 인종을 All of Us에서는 많이 포함하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신수용 카카오헬스케어 연구소장의 블로그에서 All of Us 현재 상황이라는 글을 보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본다.

작년 8월에 315,000명에 대한 데이터 공개 현황을 소개한 논문이 Patterns라는 저널에 실렸다. Patterns라.... 매우 생소한 저널이다. Cell Press에서 출판하는 오픈 액세스 저널로서 'We're all about sharing data science solutions to problems that cross domain boundaries'라고 하였다. 논문의 제목과 링크는 다음과 같다.

The All of Us Research Program: Data quality, utility, and diversity

Highlights

  • The All of Us Research Program has released data for over 315,000 participants(참여자의 49%는 비백인)
  • Demonstration projects support the utility and validity of the All of Us dataset
  • The cloud-based Researcher Workbench provides secure, low-cost compute power.

In brief

The initial release of the All of Us Research Program data reflect diverse participants with broad information, reproduces known associations, and provides rich opportunities for research. The dataset and tools form a strong foundation for cohort growth and future research, advancing the program mission to improve human health and advance precision medicine.

이 논문의 article type은 descriptor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것은 data science maturity (level)라는 것을 정의해 놓았다. 이 논문은 level 4에 해당한다. 그러나 웹사이트 안에서는 DSML의 5개 레벨에 대한 설명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실제로 투고를 위해서 로그인을 한 경우에는 저자가 DSML을 적절히 결정하여 입력하도록 되어 있을 것이다.



Data science maturity의 의미를 구글에서 찾아보다가 가트너가 주창한 analytics ascendancy model 및 data maturity model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링크). 이 개념이 Patterns라는 저널의 data science maturity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림 출처:  COMPUTD - 4 levels of data maturity.


All of Us Research Program 은 참여자를 위한 웹사이트와 연구자를 위한 리서치 허브, 그리고 프로그램 공식 소개 웹사이트로 잘 구분되어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곧 출범할 예정인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사업('국통바빅' 또는 '국바빅'이라고 줄여서 부름; 정식 명칭과 영문 명칭도 조만간 결정해야 함)에서도 그런 준비가 되고 있는지 살펴 볼 일이다.

이 논문에서 보고한 과학적 분석 결과는 우울증 및 제2형 당뇨병의 인종적 약물 사용 패턴 차이, 흡연과 알려진 암 연관성 검증, 그리고 알려진 인종 효과에 따른 심혈관 위험 점수 계산의 세 가지이다. 그러나 Research Projects Directory에 등록된 진행 중인 연구는 오늘 기준으로 무려 9,589개나 된다. 

국통바빅이 추구하는 것은 이렇게 9,589개나 되는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양질의 바이오 빅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다. 9,589개의 데이터 활용 연구 자체를 위한 연구비 지원을 하는 것은 분명히 아닌 것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물론 어떤 형태로든 데이터 활용 연구 지원 사업이 조성될 가능성은 있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은 당연한데, 나도 더 이상은 알지 못한다.

데이터 접근은 다음의 3개 tier로 나뉘어 서로 다른 레벨로 이루어진다(Data Access Tier). Registered/controlled tier의 접근을 위해서는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제출해야 한다.

  • Public tier(login 불필요): 식별자를 제거한 군집 형태의 데이터셋. Data SnapshotData Browser를 통해 누구든 접근 가능하다.
  • Registered tier(login 필요): 개인 수준의 데이터를 포함하고 있으며, Research Workbench를 통해 승인된 사람만 접근 가능하다. Electronic health record(EHR), 웨어러블, 조사, 신체 계측 자료 등이 포함된다.
  • Controlled tier(login + 추가적인 승인 필요): whole genome sequencing과 genotyping array 잘 등이 포함된다. 
접근 자격을 얻는 상세한 방법까지는 조사하지 않았다. How to Register 웹사이트를 방문해 보면 먼저 연구자의 소속기관 차원에서 Data Use and Registration Agreement(DURA)를 받아야 한다. 워크벤치의 계정을 개설하는 것은 그 다음이고, 필수 트레이닝을 이수한 다음 Data User Code of Conduct(DUCC, PDF 파일)를 받아야 한다. DUCC는 매우 중요한 문서이므로 꼼꼼이 줄을 쳐 가면서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종이에 인쇄를 해 놓았다. Data Access Framework도 중요한 정보이다. 단, 이 문서는 2021년 8월에 최종판(v1.1)이 나왔다.

Registered/controlled tier 전부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IRB)의 승인을 거쳐야 할까? Controlled tier는 당연히 그럴 것 같다. FAQ 항목 중에 이에 대한 내용이 있다(아직 상세하게 읽어보지는 않음). 그런데 Data Access Framework에 의하면 10쪽에 이런 내용이 있다.

The research that occurs within the Workbench is not restricted to IRB review or approval. Users may be bound by institutional policies governing research, which may include local IRB review.

우리나라의 국통바빅 시범사업에서는 폐쇄 전산망 내의 분석 시스템에서만 해당 자료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국통바빅 본사업도 아마 그런 형태인 것 같다. (민간)클라우드를 쓰면 안 되나? All of Us에서는 이미 안전하고 능률적이었음이 입증된 플랫폼인데?

국통바빅 본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참여자에게 받아야 하는 동의서(동의서를 '구득'한다는 어려운 표현을 사용함)를 면밀하게 준비하느라 많은 정성을 쏟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동의서는 인체유래물(이렇게 표현해야 유전체 및 오믹스 정보가 포함된다)을 이용한 연구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고, 나머지 절반은 IRB 심의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

반면 All of Us의 DUCC는 매우 단순명료하다. 참여자의 정보를 누설하거나, 재식별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는 정도이다. 식별자를 분리하여 보관하고,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컴퓨터에서만 작업해야 하며... 이런 것들을 일일이 규정으로 만들어서 승인을 받지는 않는 것 같다. 심지어 외국인 연구자는 접근하지 못한다는 제한 같은 것은 없다.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면 조금 더 까다로울지도 모르겠지만, 상당히 '열린 정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해 보자고 강하게 주장하면 아마 뚜껑이 열릴 분이 많을 것이다. Data Access Framework 2쪽에 다음과 같이 가슴 속을 후련하게 해 주는 선언이 있는 것을 참고하도록 하자.

  • No restrictions are placed on the use of All of Us resources to develop commercial products and tests to meet public health needs. All of Us claims no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on such commercial products developed from research use of All of Us data.
  • All of Us resources should be accessible to users around the world regardless of country of origin, although the access process may be modified to allow appropriate user authentication.

합리적이고 간결하면서도 개방적인 정책 위에 과학과 정밀의학, 맞춤의료가 꽃을 피울 수 있음은 자명하다. 우리나라의 국통바빅 본사업도 그렇게 되었으면 정말 좋을 것이다.

NCBI의 Genome & Assembly는 5월을 끝으로 사라지며, Datasets 서비스로 재편된다

자료 정리를 위해 예전에 NCBI에 등록했던 미생물 유전체 정보를 둘러보았다. 언제 등록을 했는지 기억도 하기 어려운 자료들이 점점 많아진다. 내 손으로 등록했던 것 중에 최초(Hahella chejuensis KCTC 2396; GenBank accession CP000155.1 또는 assembly accession GCA_000012985.1; 등록일은 2005년 10월 18일), 그리고 특별히 사연이 많았던 것 외에는 언제 등록을 했는지 기억하기 어려운 것도 점점 많아진다. Submission 단계에서 정보를 채워 넣다가 중단한 것도 여럿 존재한다.

Bacterial genome sequence 하나로 논문 하나를 쓰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Announcement라는 형태의 출판물도 있지만 그것은 예외로 하고... 사실 나도 이런 형태의 출판물을 많이 만들어 왔었다.

논문화까지 성사되지 못한 유전체 정보라서 가치가 없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왕창 긁어 모아서 새로운 발견을 하는데 유용하게 쓰기도 하니까 말이다.

NCBI Assembly 웹페이지에서 이 서비스가 조만간 종료된다는 공지문을 발견하였다.



Learn more를 클릭하면 다음과 같은 NCBI Insights의 공지문으로 연결된다.

NCBI Datasets: Easily Access and Download Sequence Data and Metadata - Effective May 2024, NCBI Datasets will replace legacy Genome and Assembly web resources

왜 이렇게 개편하였는가? 유전체, organism, 유전자 정보를 통합하여 제공하고, 대용량 데이터셋을 가져가기 용이하게 하며, 데이터와 메타데이터를 한꺼번에 취급하고, 유전체 데이터셋에 대한 단일한 진입구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하나의 생물종에 대해서 reference 유전체 서열 말고는 참조할 것이 별로 없던 시절에는 NCBI의 Assembly 웹페이지를 열람하거나, 심지어 GenBank 파일의 헤더 영역을 직접 열어서 누가 언제 이 정보를 만들어서 올렸는지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미생물 단일 종에 대해서 많게는 천 개가 넘는 균주의 유전체가 등록되기도 하고(특히 병원체의 경우), 심지어 동일한 균주라 해도 이를 보유하고 있는 개별 연구자가 별도로 유전체 해독을 하여 등록하기도 한다. NCBI의 정책 변경은 점점 많아지는 데이터를 관리하고 제공하기 위한 오랜 고민과 노력의 필연적인 결과일 것이다.

NCBI Datasets을 처음 사용한 것은 아마 SARS-CoV-2의 유전체 자료를 한꺼번에 가져올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하였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당연히 명령행 환경에서 Entrez Direct(EDirect)를 이용하여 batch process로 자료를 가져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생명체의 유전체 정보는 이처럼 NCBI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중국 등지에서 더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보유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려오지만 정보의 개방성 측면에서는 NCBI를 따를 수가 없다. 한국(KOBIC)은 무엇으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할지 고민스럽다. 이 광대한 정보의 호수(바다?)에 돌 몇 개를 던져서 수면이 단 1 cm라도 올라가는 일이 생길 수 있을지? 아니, 단 1 mm라도...

2024년 3월 5일 화요일

2년 만에 켠 Xubuntu 데스크톱

대전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한달이 훨씬 더 지나서야 인터넷 이전 설치를 완료하였다. 가족들 모두 얼마 되지 않는 데이터 요금제를 쓰면서 휴대폰으로만 인터넷 접속을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2022년 여름 이후로 켜지 않았던 Xubuntu 데스크톱에 전원을 넣고 업데이트를 하였다. Intel Core i5(7세대)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Dell Inspiron 3668(2017년 구입)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느리기로 말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데스크톱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이전 설치 직전에 PC 초기화를 해 보았으나 별로 가벼워지지는 않은 것 같다. 앞으로 집에서는 데스크탑의 활용 빈도가 점점 떨어질 것 같다. 대부분의 작업은 노트북 컴퓨터로 해결할 가능성이 크다.

덩달아서 볼루미오도 다시 Wi-Fi 환경을 만나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Xubuntu의 Xfce 환경을 오랜만에 만났다. 패키지 업데이트도 완료하였다. 아직은 Ubuntu 22.04 LTS 상태이다. 개인 사용자에 한해 총 5대의 컴퓨터에 대하여 LTS 보안 업데이트를 10년까지 무료로 제공하는 Ubuntu Pro라는 것도 요즘 새롭게 알게 되었다.



Xubuntu가 설치된 이 데스크톱 컴퓨터는 Intel Xeon E5520(2.27GHz)를 기반으로 돌아간다. 메인보드는 Supermicro X8SAX. Inspiron 3668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전원장치 등 주변장치만 잘 버텨 준다면 앞으로 계속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따금 집에서 리눅스 환경이 필요하다면 이 컴퓨터로 충분할 것이다. 여기에 Waveform FREE를 설치해서 다시 음악 작업을? 어휴, PulseAudio와 JACK과 더불어 씨름했던 몇년 전의 일을 떠올리면 다시 그런 도전에 직면하고 싶지는 않다. 

중고로 구입한 사운드 블라스터 Live!가 어디로 갔더라...

[6LQ8-6П6С SE amplifier 제작] 잡음과의 싸움 2편 - 그리드를 함부로 띄우면 일어나는 일

6LQ8 SE amplifier board를 개조하여 만든 드라이브 스테이지와 6V6 사이의 미묘한 궁합 문제가 잡음의 발생 원인이라 생각하고, 드라이브 스테이지 보드를 를 걷어낸 다음 예전에 43 pentode SE amplifier용으로 만들어서 잠시 쓰다가 정크 박스에 치워 둔 6N2P 보드를 연결해 보았다. 임시로 쓰기 위해 페놀 기판에 대충 만든 것이라서 제대로 된 앰프의 일부분으로 넣어서 오랫동안 사용하기에는 별로 적당하지 않다. 지난 주말의 실험에서 진공관은 12DT8을 끼우고 히터에는 직류 12V를 연결하였다.

캐패시터가 출력용 단자에 연결되는 것으로 끝난다. 출처: 내 블로그.

전원과 소스를 연결하자마자 '부르르...'하는 엄청난 잡음이 발생하였다. 버리려고 오랫동안 팽개쳐 두었더니 보드에 고장이 난 것일까? 운이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도로 기판을 거두어 들였다. 어차피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전치증폭단에 해당하는 보드를 주문하여 기다리는 중이니 그것으로 대체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구입 관련 글 링크).

주문해 놓은 보드의 상세 사진을 보면서 회로도를 재구성해 보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였다. 출력부 진공관을 위한 그리드 리크 저항(100K)이 보드 내에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이 순간에 무릎을 탁! 쳐야만 한다.

맨 오른쪽의 사진은 좌우를 반전하여 PCB 패턴에 그대로 겹쳐지도록 하였다. 

'부르르...'하는 잡음은 바로 출력관의 그리드가 플로팅 상태여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동안 몇 개의 진공관 앰프를 만들면서 그리드 리크 저항과 관련한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던가? 입력단에 포텐셔미터가 있는 경우 그리드 리크 저항을 생략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연결을 하지 않은 상태로 무심코 전원을 넣었다가 엄청난 잡음이 남은 물론 진공관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일을 얼마나 많이 경험했었던가? 위에서 보인 자작 보드는 내부에 출력관용 그리드 리크 저항을 넣지 않고 보드 외부에서 연결했었다. 당시로서는 너무나 자연스런 선택이었다.

빔관 6V6의 전형적인 오디오 신호용 전력증폭회로. 그리드 리크 저항은 빨간 타원으로 표시하였다. 최대 500K까지 허용한다. 그림 출처: Radiomuseum.

엊그제의 실험에서 자작 프리앰프 보드를 연결하였을 때 발생한 잡음은 결국 기본에 철저하지 못한 나의 실수였다. 

잡음 문제만 무난하게 해결이 된다면, 6V6GT(호환관으로는 6П6С 및 6P6P가 있음) 앰프는 나의 음악 감상용 동반자로서 가장 최적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출력이 적당하고, 직접 만들었다는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최종적으로는 기성품 프리앰프 보드를 택하게 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말이다. 6V6은 손수 정성스럽게 감은 5K:8 R-코어 출력트랜스포머를 사용하기에도 가장 적당한 출력관이다. 복합관인 6LQ8의 삼극관부만을 이용하여 드라이브용으로 쓰기에는 매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올해에는 이런 실험을 해 보려고 한다

6V6으로 출력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면, 25L6이라는 빔관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히터 공급 전압이 좀 유별나고(43 오극관과 같은 25V) 현대관으로서 만들어지도 않지만 출력도 높고 가격도 적당하다. 또한 직접 감은 R-코어 출력 트랜스포머의 1차 권선 중앙탭을 ultra-linear 결선으로 활용해 보는 실험도 가능하다. 권선의 43% 위치가 아니고 50%라고 해서 얼마나 치명적인 음질 저하가 있겠는가? 다음은 제이앨범 한병혁 님의 25L6 진공관 소개 동영상이다.


 

여력이 있다면 재활용품 일색인 앰프 케이스도 좀 바꾸어 보고 싶다.

2024년 3월 4일 월요일

[6LQ8-6П6С SE amplifier 제작] 잡음과의 싸움

현재는 구 소련제 진공관을 쓰지 않고 있으니 글의 제목에 포함된 '6П6C'라는 표현도 바꾸어야 할지 모르겠다.

중국산 6V6 호환 진공관으로 출력관을 교체한 뒤(관련 글 링크) 모든 것이 만족할 수준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주위가 조용한 상태에서 스피커에 귀를 가까이 대고 들어보면 '꾸르륵 꾸르륵'하는 규칙적인 잡음이 들린다. 볼륨 포텐셔미터의 각도와는 무관하며, 출력관의 그리드를 접지에 연결하면 잡음이 사라진다. 최소한 출력관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의미이다.

구 소련제 6П6С 관을 사용하여 처음 소리를 들었을 때에도 이런 상태였을까? 서울 시내 한복판의 시끄러운 곳에서 사용을 했었으니 이렇게 매우 작은 수준의 소리를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광교 신도시에서 근무하던 당시 만들었던 6LQ8 푸시풀 앰프도 제작 직후에는 잘 몰랐지만 대전으로 가져와서 조용한 밤에 틀어보니 비로소 잡음을 느낄 수 있지 않았던가.

이토록 간단한 진공관 싱글 앰프에서 나는 잡음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니! 정말 자괴감이 든다. 초단에 사용한 6LQ8(삼극관 부분만 이용)과의 미묘한 궁합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디오 용도로 흔히 사용하는 쌍삼극관을 사용하면 좀 달라지는 점이 있을까? 평소에 흥미를 갖고 있었던 preamplifier board를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주문해 보았다.

출처: 알리익스프레스 - 앰프 회로 기판 튜브, 파워 앰프, 푸스 보드,  6N1, 6N2, 프리앰프회로기판. ECC81 = 12AT7, ECC82 = 12AU7, ECC83 = 12AX7, ECC85 = 6N1. 


6N2P(12AX7과 유사)와 12DT8(12AT7)을 몇 개 갖고 있으니 히터 전원 배선에만 주의하면 이번에 구입한 프리앰플리파이어 보드에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이렇게 실험과 노력을 반복하고도 잡음을 잡지 못한다면 그 때에는 내가 과연 이 취미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냉정하게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내 생애 최초의 진공관 앰프(12DT8-14GW8 SE amplifier; 14GW8 = PCL86)를 구입한 이후로 정확히 10년이 흘렀다. 진공관의 수명이 다 될 것을 미리 걱정하여 여분의 관을 사들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실제 몇 알이나 소모하였는가? 초기 불량에 해당하는 PCL86 단 하나를 바꾸었을 뿐이다. 그 이후로 몇 대의 진공관 앰프를 만들어 보았지만 썩 마음에 드는 것은 별로 없었다. 출력과 음질 모든 면에서 그나마 만족스러웠던 것은 전원부를 제외하고는 원 제작자의 회로를 싹 걷어낸 뒤 내가 직접 회로를 꾸민(물론 인터넷에서 회로를 참조함) PCL86 SE 앰프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괜한 일에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2024년 2월 29일 목요일

광화문 시절은 저물어 가고

서울 파견 근무를 위해 거주했던 오피스텔의 임대차 계약이 내일로 끝난다.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기 위해 하루 휴가를 내고 서울로 올라왔다. 1월 하순부터 매주 주말마다 짐을 조금씩 자동차에 실어서 날랐다. 대학을 졸업하는 딸아이의 방을 정리하고 짐을 다시 대전 집으로 내려보내는 일까지 하느라 몇 주 동안 주말에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 새로 시작한 낯선 업무에 적응하느라 마음의 여유도 아직 찾지 못하였다. 매달 12개 이상의 글을 블로그에 쓰자는 목표를 꾸준히 초과 달성해 오다가 드디어 이번 달에는 9개에 머물게 되었다.

잠시 센터포인트 광화문의 커피숍에 앉아서 1년 반 동안의 추억이 담겨있는 이마빌딩을 바라본다.


새롭게 시작한 일터는 온갖 이해 당사자들의 욕망이 교차하는 곳 같다. '너희가 과학기술 예산을 다 빨아 먹어서 우리가 차지할 몫이 줄어든다'는 푸념이 늘 들린다. 우리에겐 명백한 '갑'이 있고, 또 그들에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민원인들이 있다. 이들 사이에서 균형 잡힌 자세를 취하기가 참 어렵다. 어쩌면 나는 지금 리더십 수업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 비용을 내가 속한 조직이 내게 할 수는 없다. 

밤잠을 줄여가며 더 오랜 시간 근무를 해야 하나? 

내 몸을 이루는 DNA에는 원래 새겨져 있지 않던 근성을 새로 만들어서 발현시켜야 하나?

질문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질 것이고, 그 답을 찾기도 전에 이룬 성과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다시 이어질 것이다.




밤공기가 제법 쌀쌀하다. 내일부터는 다시 영하의 날씨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래도 봄은 결국 올 것이다.


2024년 2월 25일 일요일

기타 가방의 지퍼를 직접 수리한 이야기

2008년 구입한 스콰이어 텔레캐스터에 딸려온 'UNO' 기타 가방(UNO는 2013년 폐업한 국내 기타 제조사로서 레스폴 카피 제품으로 유명했었음)의 지퍼 슬라이더가 전부 부서져서 여닫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를 직접 수리하기 위해 GODO라는 지퍼수리키트 4종 세트(Metal MF5, Nylon CF56, Plastic PF5, Conceal CSCF56)를 구입하였다. 정확한 지퍼의 규격을 모르지만 4개 중에 어느 하나는 맞을 것이라는 안이한 마음으로 주문을 하여 물건을 받아놓고 보니, 맞는 크기가 없어서 도저히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퍼의 규격은 체결된 상태의 폭(teeth width)을 mm 단위로 측정하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내가 구입한 수리키트는 전부 6 mm 규격에 맞는 것이지만, UNO 기타 가방의 지퍼는 족히 10 mm가 넘는 폭이었기 때문이다. GODO 지퍼수리키트의 전체 상품 목록은 마이플래닛에 있다.

이번에 구입한 수리키트는 손잡이를 앞뒤에 전부 달 수 있는 것이다. 중앙에 보인 망가진 UNO 기타 가방의 지퍼 슬라이더와 호환이 될 만한 것은 없다.


맞는 규격의 지퍼수리키트를 정확히 확인하기도 어렵고, 인터넷을 뒤지면 저가 기타 가방의 가격이 지퍼수리키트(4종 세트)와 비슷한 정도로 싸기까지 하다.

기타 가방 앞부분의 물품 수납용 주머니를 여닫는 동일규격 지퍼 슬라이더를 빼내서 재사용하면 될 것도 같아서 커터를 들고 가방을 헤집다가 가방 자체가 더 망가지고 말았다. UNO 가방은 과감히 버리자! 대신 슬라이더가 망가진 다른 기타 가방의 지퍼를 수선해 보기로 하였다. 기존의 슬라이더를 분리해서 눈대중으로 크기를 비교하니 나일론 CF56에 해당하는 것 같아서 교체를 해 보았다. 교체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왼쪽의 슬라이더를 GODO CF56으로 교체해 보았으나 약간 작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새로 교체한 지퍼 슬라이더는 작동은 하되 그 움직임이 상당히 뻑뻑하였다. 버니어 캘리퍼스로 측정해 보면 지퍼의 폭은 7 mm 가까이 나온다. 나머지 4개 기타 가방의 지퍼 폭을 측정해 보았으나 6 mm에서 7 mm 이상 등 가지가지였다. 도대체 나일론 지퍼(=코일 지퍼)에는 규격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직접 측정한 지퍼의 폭은 위에서부터 7.1 mm, 6.15 mm, 7.25 mm, 그리고 10 mm. 두 번째 것은 베이스 용이고 가장 큰 규격의 지퍼를 사용한 맨 아래 것은 플라잉-V 스타일의 기타를 넣기 위하여 스쿨뮤직에서 구입한 헤비쉐입용 긱백.


망가진 금속제 슬라이더의 내부 폭을 버니어 캘리퍼스로 측정해 보았다. 7.2 mm가 나왔다. GODO의 CF56은 6.85 mm. 작동은 하지만 원활하게 여닫기지는 않아서 상당히 힘을 주어야 한다. 남은 3개의 수리용 부품은 어떻게 해서는 활용 방안을 찾아 보기로 하고, 앞으로 망가진 지퍼 슬라이더를 수선하려면 제대로 크기를 측정하여 맞는 제품을 고르도록 하자.

그림 출처: myplanet.


어쩌다가 지퍼 규격까지 공부를 하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