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2일 수요일

천박한 표어

표어는 조직의 철학을 압축한 문장이다. 좋은 표어는 짧지만 오래 남는다. 그 조직이 왜 존재하는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몇 마디 말로 설명한다. 그래서 표어를 만드는 일은 쉽지만, 좋은 표어를 만드는 일은 어렵다. 여기서는 새로운 프로젝트와 사업, 서비스의 이름도 넓은 의미의 표어에 포함하기로 한다.

좋은 표어는 처음에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대개 신조어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표어는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다(self-explanatory).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의미가 전달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 표어를 내세우는 조직의 철학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반대로 천박한 표어는 이름보다 설명이 길다. 회의마다, 발표마다, 문서마다 '이 이름은 이런 뜻입니다.'를 반복해야 한다. 정작 설명을 다 듣고도 '그래서 왜 이런 이름을 붙였지?'라는 의문이 남는다면, 그 표어는 이미 목적을 잃은 것이다. 만약 권력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러한 의문이 제기되면, 그 표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하급자'에게 십중팔구 그 잘못이 돌아간다.

또 하나의 기준이 있다. 몇 년이 지나도 이름이 입에 잘 붙지 않는다면, 그것도 좋은 이름은 아니다. 사람들은 억지로 만든 이름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결국 줄여 부르거나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부른다. 이름은 사람이 적응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한다.

이 원칙은 법과 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좋은 법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변명하지 않는다. 만약 담당자가 수년 동안 '법이 있으니 해야 합니다.', '제도가 생겼으니 따라야 합니다.'를 반복해서 설명해야 한다면, 문제는 국민이나 연구자가 아니라 법과 제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법이 있으니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법이 만들어진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좋은 법은 시간이 흐를수록 왜 필요한지 스스로 설명한다. 좋은 정책은 담당자가 바뀌어도 살아남는다. 정책의 생명력은 추진자의 열정보다 해결하려는 문제의 타당성에서 나온다.

표어도 결국 다르지 않다. 이름은 철학을 담는 그릇이다. 그릇이 내용을 압도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철학이 아니라 이름만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표어를 볼 때마다 나는 먼저 묻는다.

이 이름은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가.

좋은 표어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설명을 들으면 의미가 더욱 깊어지며, 이것은 깊어질수록 좋은 일이다. 반대로 표어를 이해시키는 데 끊임없이 에너지를 써야 한다면, 그것은 철학을 담은 이름이 아니라 포장에 가깝다.

좋은 표어는 조직의 철학을 설명한다. 천박한 표어는 표어 자체를 설명하느라 조직의 철학을 설명할 시간을 빼앗는다. 표어가 철학을 대신하는 순간, 조직은 이름을 만들고 철학을 잃는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