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6일 일요일

원미면옥, 식장산, 그리고 가오동

2024 파리 올림픽의 펜싱 금메달리스트인 오상욱 선수가 즐겨 찾는다고 방송에 소개되어 유명해진 대전의 냉면 맛집 원미면옥을 가 보았다. 본점에 해당하는 곳은 대전동신과학고등학교 입구(비룡동)에 있고, 방송에 소개되었던 곳은 판암동에 있다. 이곳은 대전광역시 소속 운동선수들의 숙소인 판암 선수촌에서 걸어서 30초도 걸리지 않을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카카오맵에서 거리를 측정하면 60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1953년부터 대전역 앞 원동에서 냉면집을 시작하여 2003년에 비룡동으로 옮긴 원미면옥은 원래 대전에서는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오상욱 선수 덕분에 판암점이 최근 더욱 유명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판암점이 언제 문을 열었는지는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면류 요리를 좋아한다. 나는 칼국수·짜장면·라면·막국수 등 면 종류는 특별히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며, 아내는 냉면 종류를 더욱 즐긴다. 아내는 함경도 출신인 부모님 영향을 받아서 회냉면(함흥냉면)을 좋아하지만, 대전에서는 이를 맛있게 하는 곳을 찾기 어렵다. 수라면옥이 대흥동에 있던 시절에는 서울 중구 오장동에서 먹던 함흥냉면의 맛과 흡사하다고 느꼈으나, 둔산으로 옮긴 뒤부터는 잘 찾지 않게 되었다.

대전은 원래 평양냉면집이 많은 편이다. 이에 대해서 매우 최근인 지난 8월에 대전일보에 실린 기사가 있어 소개한다.

[줌인] 대전 시민 입맛 사로잡은 北 실향민들의  '시원한 손맛'

자리에 앉으니 따뜻한 육수가 아니라 면수를 주전자에 담아서 준다. 원미면옥은 닭고기 육수로 만든 냉면을 만든다. 삶은 계란 반쪽이 아니라 손이 많이 가는 계란지단을 부쳐 썰어서 풍성하게 얹어 내는 것이 특이하였다. 메뉴판에는 보이지 않는 닭날개를 주문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마 술안주로 먹는 듯.

특별히 전용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는 않아서 주변 골목을 이용하였다.

뒤에 보인 사진이 없는 곳은 원미면옥이 아니라고 한다.

아내는 물냉면을, 나는 비빔냉면을 시켰다. 

맛을 묘사하는 글을 쓰는 실력은 부족하니 간단히 표현하자면 다시 와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맑은 쇠고기 육수를 써서 '밍밍하게' 만든(매니아만이 이해한다는 깊고도 어려운 맛) 평양냉면과는 많이 다르다. 나는 오늘 먹은 것과 같은 스타일의 평양식 냉면이 더 좋다.

아내는 몇 년 전에 대전의 지인과 중앙시장 안에 있던 '원미냉면'을 간 일이 있다고 한다. 이곳과 오늘 글에서 다룬 '원미면옥'의 관계는 알 수 없다. 비룡동이나 판암동에 있는 원미면옥은 알지 못하던 지난 5월 중앙시장을 가 보았으나 그 식당은 찾을 길이 없고 바로 곁에 있다던 흥미냉면에 들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중앙시장의 원미냉면이 관한 글이 눈에 뜨인다. 예를 들어 대전 중앙시장 맛집 - 원미냉면 짜장면(2018년)을 보면 나란히 붙어있는 두 가게를 찍은 사진의 기록이 남아 있다. 면 종류 식사 중에서 골라 먹고 싶다면 흥미면옥을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24년 5월 하순 흥미냉면집에서.

만족스런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식장산 전망대로 향했다. 아마도 이번이 세 번째 방문? 해발 596미터인 식장산은 대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늘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입구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무려 4 km나 된다는 것에 매번 놀란다. 식장루는 안전을 위해 폐쇄중이라서 옆의 헬기장에 올라가서 대전 시내를 내려다 보았다.

'보수 중이니(또는 보수 예정이니) 안전을 위해 접근을 금합니다'가 아니고 보강이 필요하니 이용을 금지한단다. 지자체도 예산 사정이 어려운 모양이다. 


옆에서는 한 가족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빠!) 요즘 누가 사진을 가로로 찍어!'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세로 사진 또는 영상이 대세이니...

정상에는 군사시설 표지판이 있었다.  대전 전역에서도 식장산의 방송 송출용 안테나가 뚜렷하게 보인다. 이것을 지키기 위한 군사시설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듣는 KBS 청주 FM 방송도 식장산 중계소에서 송출되는 것으로 안다.  대전에 살면서도 클래식FM을 듣기 위해 KBS 청주 FM을 들어야 하는 현실이란. 발코니에 설치한 FM 수신용 안테나에 관한 글은 FM 수신용 안테나의 보수 및 재설치를 참조하라. 안테나 설치 및 수신 상태는 이 글을 썼던 2021년 여름 이후 변하지 않았다.

군사시설이니 사진을 찍지 말하는 경고문과 함께 Richmond Site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Richmond Site

USANEC-CP Humphreys

41st Signal Battalion

1st Signal Brigade

안내판 옆의 경고문을 보면 시설 촬영은 물론 위치를 노출하지 말라는데... 2016년에 작성된 어떤 글에서는 안내판의 숫자가 조금 다르다. 한국군이 아니라 주한미군에서 운용하는 시설인 모양이다. 놀랍게도 이 시설의 과거를 상세히 소개한 글이 있었다. 글쓴이는 1960년대 초반에 대전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늘 식장산 정상에 있던 미군 통신부대에 대해 궁금해 하였는데, 실제 이 시설에 근무했던 Richard E. Obrey씨의 앨범을 소개하였다. 이 크지 않은 군사시설에도 오랜 역사가 깃들어 있었다. 과거에는 Richmond Relay(중계소?)라고도 불렸던 것 같다. 

그때 그시절 - 대전 식장산 미 통신부대(Richmond Relay) - 2012

8th Army Radio Relay Stations in South Korea라는 글에서는 Richard Obrey를 비롯하여 한국에서 근무했던 미군의 풍성한 기록이 나온다. 이런 자료가 남아 있다는 것이 놀랍다.

우리나라 곳곳에 미군이 주둔한 흔적이 있고 일부는 아직 진행형이다. 딸아이가 어렸을 적에 계족산을 갔다가 유성구 장동 지역을 둘러보면서 미군과 같이 공존했던 과거 흔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한 일도 있었다. 주한미군은 1992년 이곳에서 철수하면 현재는 육군 탄약지원사령부 제1탄약창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다음에는 식장산에 위치한 세천공원을 찾아보려 한다. 대청호 드라이브코스를 따라서 차를 몰고 집으로 되돌아 오려다가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검색에 걸린 곳은 가오동(加午洞)의 스타벅스였다. 가오동은 아주 오래전에 산내 운전면허시험장을 가거나 금산쪽을 오갈때나 지나던 아주 한적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변해 있었다. 

은어송 네거리에 위치한 스타벅스 대전가오점에서. 같은 건물 1층에 위치한 '뽀뽀뽀 분식'에도 사람이 많았다. 그냥 갈 수가 없어서 몇 가지 간식거리를 구입하였다.


가오동의 명칭 유래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동네 지형 모습이 가오리와 닮아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가오동 주민에게는 좀 미안한 노릇이지만 자꾸 코믹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가오', '가오리' 전부 그러하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 영화 <베테랑>의 대사  

여기서의 '가오'는 원래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인데, 보통 센 척하다, 허세를 부리다 정도의 의미를 갖는 '가오잡다'라는 동사로 쓴다. 

가오리는 아마 한국 땅에서는 가장 억울한 어류일지도 모른다. 전국민이 다 아는 어떤 유머와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겠다.

냉면 먹으러 집을 나섰다가 대전광역시 동구의 인문학 나들이를 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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