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2일 토요일

제주도 출장 기념품은 모나미 153 네오 만년필 '네온'

제주도를 떠나던 날, 공항 면세점에 들러 보았다. 나를 위한 여행 기념품으로 무엇을 살까? 선글라스, 화장품, 시계 등 면세점에서 흔히 구입하는 물건이 아닌 독특한 것을 고르고 싶었다.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은 국산 문구 브랜드인 모나미였다. 고급 필기구 브랜드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 면세점에 입점해 있다는 것이 매우 신선하였다. 

모나미 153 네오 만년필로서 색깔이 다른 캡이 추가로 들어있는 제품을 할인가에 팔고 있기에 구입해 보았다. 검색을 해 보니 '네온'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데, 면세점에서 파는 값보다 훨씬 싸게 파는 곳이 있었다. 역시 면세점이란...

2018년에 출시된 네오 만년필은 대략 라미 사파리와 비슷한 수준의 제품으로 알고 있다. 처음 나올 때는 독일 슈미트사의 F닙 한 가지였는데, 언제부터인가 EF닙을 쓴 것도 나오기 시작하였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정가로 덥석 사기에는 네오나 사파리 전부 약간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손가락 끝으로 쥐는 부분에 각이 져 있는 것이 아주 적절하다. 라미 사파리는 '여기를 이렇게 손가락으로 잡아야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과도하게 파여 있어서 매장에서 잠깐 그 만년필을 잡아 본 나의 경험으로는 조금 불편하였다. 완전히 둥글게 원통형으로 되어 있는 만년필도 나쁘지는 않은데, 직경이 가늘 경우에는 자꾸 헛돌아서 불편하다. 3·OYSTERS HUNTERS 만년필이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취향에 따라 캡을 바꾸어 끼울 수 있도록 두 개가 들어 있다. 병잉크를 어디에 두었더라? 

블로그에 아주 드물게 만년필과 관련된 글을 쓰고는 하였었다. 요즘은 손글씨를 잘 쓰지 않아서 그동안 쓰던 만년필은 대부분 예전에 근무하던 사무실의 서랍장 속에서 긴 휴지기를 보내는 중이다. 약 1년 반의 외부 파견 근무를 한 데다가 보직을 맡으면서 예전 사무실을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사무실로 오게 되니 활용 빈도가 떨어지는 물품을 전부 챙겨오기가 곤란하였다. 요즘은 사무실에서 음악을 들을 여유도 거의 없어서 앰프와 스피커는 아예 분리해 놓았다. 가끔 온라인 회의용으로 쓰는 헤드셋만 놔 둔 채로.

모나미 153 네오 '네온'보다 더 나은 만년필을 몇 개나 더 갖고 있으면서 괜한 지출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워터맨의 Phileas 및 Expert II, 파커의 IM Premium Vacumatic Pink, 쉐퍼 VFM, 3·Oysters Hunters, 그리고 펠리칸 트위스트에 이르기까지. 망가져서 버린 것까지 헤아리면 적지 않은 만년필을 경험한 셈이다. 하지만 나의 만년필 경험은 20년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중고생 시절에는 만년필을 쓰지 않았었다. 

EF닙. 상당히 가늘게 나온다. 사실 나에게 더 편한 것은 F닙이다.

만년필은 여러 개를 갖추고 있으면서 '오늘은 이걸 써 볼까'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출근을 준비하면서 넥타이나 시계를 고르듯이 할 수가 없다. 매일 쓰지 않으면 잉크가 말라서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 수준으로 필기를 한다면 다른 색깔의 잉크를 채운 만년필을 하나 더 갖고 다니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만년필 하나를 택해서 몇 달을 쓰다가 잘 세척해서 보관해 두고, 또 다음 것을 꺼내서 잉크를 채워 쓰는 것이 올바른 사용 방법이다. 

카트리지를 끼우고 글씨를 써 보았다. 내가 지금까지 접한 만년필과 비교해 본다면 필기감이 썩 좋은 편에 속하지는 않는다. EF닙이라서 그럴까? 내 필기 스타일에 맞게 자연스럽게 '닳아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글씨체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변한다. 글씨 자체가 커지는 것은 노안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과연 얼마나 만년필을 쓰게 될까? 필기구를 정해 놓고 쓰려면, 가방 속에 항상 필통을 넣어서 다니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학창시절 이후 한참을 잊고 살았던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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