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앰프 중에 사연이 없는 것은 없다. 만들게 된 동기, 엉성하게 만든 회로, 부품 구하기, 제작 과정의 고생, 그리고 잡음과의 싸움... 특히 초보자가 만드는 싱글 엔디드 진공관 앰프는 교류 전원에서 유입되는 60 Hz 혹은 120 Hz의 험(hum)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올해 열심히 만든 43 오극관 앰프도 그러하다. 5극관이 아니라 오극관이라고 쓰는 이유가 있다. '3각형', '3국지'라고 쓰는 것이 어색하듯, 나는 순수한 숫자가 아니라 낱말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은 숫자를 한글이 아닌 아라비아 숫자로 쓰는 것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어쩌다가 '2틀'이라는 말도 안되는 표현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정말 한심하다.
이 앰프는 2018년 나무판 위에 가조립한 상태로 처음 소리를 내기 시작하여 올해 제대로 된 섀시를 갖게 되었다. 이 앰프에도 몇 가지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 전원트랜스와 출력트랜스는 누설된 자기장에 의해 잡음이 유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로 직각으로 두어야 하지만 CAD로 상판을 설계할 때 착각을 하는 바람에 전부 같은 방향으로 고정하게 되었다.
- 전원트랜스가 두 개이다. 상판 위에 올라가 있는 트랜스는 원래 6N1+6P1 싱글 엔디드 앰프용으로 주문 제작(2차: 6.3V, 230V)한 것인데, 용량을 착각하여 약간 작게 주문을 하였고 전류를 좀 흘린다 싶으면 '웅~'하고 심한 울림이 난다. 그래서 원래 목적으로는 사용하지 못하고 낮은 B 전압을 사용하는 43 오극관(최대 플레이트 전압은 160V) 싱글 엔디드 앰프에 쓰게 된 것이다. 대신 강압을 위해 트랜스를 하나 더 달았다. 두 트랜스를 220V 전원에 대해 어떤 순서로 배열하는지에 따라 잡음의 정도가 다르다.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전원을 한번 강압한 뒤 이 문제의 트랜스를 연결하는 것이 더 나았다.
- 강압용 트랜스가 만약 1차와 2차 권선을 따로 갖는 단권 트랜스였다면 이것 하나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단권 트랜스인 것을 모르고 구입했다! 이는 110V 가전제품을 국내에서 쓰기 위한 용도로는 상관이 없지만, 단자가 외부로 노출된 진공관 앰프에 그대로 쓰면 대단히 위험하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잘못 선택한 트랜스 두 개를 연결하는 것으로 모두 제 용도를 찾게 되었다.
전원 트랜스의 연결 순서를 최적화하는 작업을 한 이후로 험이 더 크게 들리기 시작하였다. 원인을 찾지 못한 상태로 몇 주가 지났다. 의욕도 많이 상실한 상태였다. 도대체 왜 그럴까? 트랜스의 순서를 바꾼 것 말고도 개조를 한 곳이 있다. 바로 히터 전원 공급 방법이었다. 예전에는 24V 직류 어댑터를 43 오극관에(원래는 25V가 필요함), 그리고 전원 트랜스 2차에서 나오는 6.3V 교류를 6N2P에 연결했었다. 그런데 전원 트랜스 앞에 강압용 트랜스를 삽입하게 되니 이제는 6.3V가 나올 수 없다. 그래서 24V를 스텝다운 모듈에 연결하여 6.3V가 나오게 만든 뒤 6N2P의 히터를 점화하였다. 드라이브단과 출력단의 히터를 전부 직류로 달구게 되었으니 잡음은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였다.
그런데 히터를 접지하였던가? 앰프를 뒤집어 보았다. 회로의 그라운드에 히터 배선은 연결되지 않았다. 전원 트랜스로 6N2P를 점화할 때에는 저항 두 개를 삽입하여 가상 중점을 만들어 그라운드에 연결했었고, 출력관은 접지를 하지 않았었다. 험의 대부분은 출력관보다 앞에 위치한 진공관에서 발생한다고 주워 들었기 때문이다. 히터 접지의 필요성과 요령은 Valve Wizard 웹사이트의 히터 항목에 잘 나온다. 일부를 인용해 본다.
제1법칙은 히터 공급선을 오디오 그라운드에 대하여 DC 연결을 하라는 점이다. 히터를 AC나 DC 무엇으로 점화하든 동일하다. 히터를 플로팅 상태로 두면 전원 트랜스의 누설 전류에 의한 엄청난 험('almighty hum')을 유발할 것이고, 이건 초보자가 흔히 겪는 실수이다.
DC 연결이라는 용어를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다. AC 연결이라면 캐패시터를 통해서 연결하는 것일테고, DC 연결이라면 직결하거나 적당한 저항을 통해 연결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스텝다운 모듈의 입출력 접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가상 중점을 만들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모듈의 입력쪽 접지와 앰프 회로의 접지를 서로 이어 보았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험이 거의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접지에 연결하는 순간의 상황을 동영상으로 기록하여 유튜브에 올렸다. 볼륨 놉은 최대로 둔 상태로 촬영하였다.
납땜을 하여 보수를 마쳤다. |
그냥 두었더라면 아직까지도 잡음에 시달리면서 절망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퇴근 후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달려든 것이 작은 성공을 맛보게 하였다. 나머지 앰프도 같은 이유로 인하여 잡음이 발생하는지 확인해 보자.
이런 완벽한 배선은 초보자의 기를 죽인다. 부럽다! 사진에 찍인 웹사이트 주소로 짐작하건대 아마도 정호윤 님(네이버 카페)의 EL34 싱글 앰프 제작 과정의 기록인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 부산 컴마을 |
위 사진에서 보인 앰프의 배선 수준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 그러나 요즘 유튜브에서 왕성히 활동 중이신 캐나다의 안세영 선생님(Ahn Young, Fluxion Audio Technology)의 동영상 강좌를 보면 용기가 솟는다. 조금은 투박해 보이지만, 이 정도라면 나도 충분히 만능기판 위에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안세영 선생님은 키트, 심지어 PCB도 쓰지 말 것을 권유하신다. 왜? 자작인의 창의성을 말살시키기 때문이다. 비록 단번에 성공할 수는 없을지라도 부품을 하나씩 구매하고 선을 직접 납땜하여 부품을 연결하는 노력을 해 보라는 안 선생님의 메시지는 명료하고 선이 굵다. 비록 진공관 앰프라는 고전적인 오디오 기술이지만 유튜브를 이용하여 적극적인 소통을 하는 모습은 젊은(?) 나에게도 큰 자극이 된다.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을 깨끗한 음질로 들으면서 다시 평온한 시간을 되찾게 되었다. 이제 다른 앰프의 문제를 해결할 차례가 되었다.
스텝다운 모듈의 7 세그먼트 LED가 은은하게 하부 조명 역할을 한다. 원래 그러려고 쓴 것은 아니었다. |
댓글 1개:
저도 안세영씨 유투브 보면서 저정도면 할수 있겠다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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