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을 들어갈 때 자동차에 탑승한 사람 전부 체온을 재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런 덕분에 입구에 커다랗게 써 있는 안내문을 상세히 읽을 수가 있었다. 주차요금 정산은 휴대폰으로 앱을 다운받아서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휴대폰이 오래되어 배터리도 금방 소모되고, 아주 싼 요금제라서 데이터를 맘대로 쓰지 못하는 나에게 이것은 보통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L 백화점 안에서는 무료 와이파이가 있지만 층간 이동시에 종종 끊어지는 일을 경험하였기에, 70메가바이트가 넘는 앱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몹시 짜증스러웠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로그인을 해야 하는데, 기존의 L 포인트 아이디가 뭔지 기억이 날 리가 없다. 휴대폰 로그인을 선택하여 생년월일을 넣고, 인증번호를 받고... 정말 한참을 걸려서 겨우 로그인에 성공하였다.
그런데 이 시스템은 주차요금을 결제하는 기능은 없어 보였다. 앱을 깔면서 '주차요금 정산을 위한 결제수단까지 등록하려면 얼마나 골치가 아플까'하는 걱정을 한 것이 사실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보안 관리도 매우 엄중하게 해야 된다. 앱에서 부족한 주차요금을 내는 기능이 없다면, 결국 출차 시 기계 앞에서 신용카드를 들고 씨름을 해야 된다. 팔 짧은 사람에게는 이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말할 필요도 없다. 혹시 지하 주차장 각 층마다 사전 정산기가 있지 않을까 찾아보았다. 하지만 앱으로 주차관리를 하겠다는 것은 사전 정산기를 설치하지 않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다행스럽게도 앱과 함께 지급된 발급된 두 시간짜리 주차권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아직까지 이 백화점에서 출차할 때 부족한 주차요금을 어떻게 내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하였다.
억지로 깔아야 했던 앱에는 주차관리 말고도 쇼핑과 관련한 많은 메뉴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앱을 평소에 고맙게 쓸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백화점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만약 이렇게 앱을 이용하여 주차 관리를 하는 것이 대세라면, 백화점마다 수십 MB나 되는 용량의 앱을 하나씩 다 깔아야 된다는 뜻이 된다.
그 다음의 경험은 어제 다른 지역의 L 마트였다(공교롭게도 같은 회사의 쇼핑 센터). 마트 입구에 사람이 유난히 많이 모인 곳이 있었다. 무슨 이벤트인가? 아니, 이건 또 뭔가, 비대면 중고거래 '파라박스'라니? 살다 보니 별 것을 다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할 때 바구니를 들고 들어오지 않아서 매장 안에 비치된 바구니를 적당히 집었는데 모양이 좀 다르다. '바로배송'이라는 글귀가 찍혀 있었다. 이건 또 뭐지? 눈이 두번째로 커질 지경이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면 직원들이 물건을 바로배송 바구니에 담고, 이를 어떤 장치에 넣으니 자동으로 레일을 타고 어디론가 가는 것이었다. 종합병원에서 서류를 나르던 자동 이송 시스템을 보는 것 같았다. 아, 바로배송 바구니에 물건을 담아서 계산대로 가면 이상한 사람 취급 받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차피 고른 물건이 몇 개 되지 않아서 바로배송 바구니는 원래 위치에 가져다 놓고 물건은 손에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자율 계산대에는 비교적 익숙해진 터라 많은 사람이 없는 기계 앞에 가서 섰는데, 바닥에 줄이 그어져 있고 분위기도 좀 달랐다. 자세히 보니 '스마트카트' 전용 계산대라는 것이다. 스마트카트? 카트에 물건을 담으면 저절로 합산이 되고, 계산대에서 결제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인가? RFID 인식이 되는 카트라면 그럴 수도 있겠군... 이 자리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구식 계산대에 가니 사람이 적어서 오히려 더 빨리 계산을 할 수 있었다.
스마트카트는 도대체 얼마나 스마트하길래 이렇게 사람을 혼동스럽게 하는가? 검색을 해 보니 그렇게 스마트해 보이지 않는다. 그처 터치 화면이 달린 바코드 리더에 불과하다. 같은 물건을 실수로 두 번 찍을 수도 있다. 나도 셀프 계산대에서 같은 실수를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꽤 흔한 실수이다! 마음이 바뀌어서 카트에 담았던 물건을 도로 내어 놓으려면? 카트에 담을 떄 마음대로 들어오지 못했듯이, 나갈 때도 신고를 해야 된단다. 담을 때는 리더기를 스치면 그만이지만, 나갈 때에는 화면에 뜨는 품목에 대해 취소 터치를 하고 또 리더기를 스쳐야 한다. 원, 이런... 고의로 리더기에 찍지 않고 물건을 카트에 담는지 감시하기 위한 직원의 날카로운 눈초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사람이 올린 체험기를 보니 스마트카트에 결제 기능이 있다고 한다. 그럼 다행이지만, 매장을 나갈 때 카트를 바꾸어서 주차장까지 가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복잡하고 기능이 많은(=비싼) 카트를 주차장에 가서 팽개쳐 놓도록 할 점장은 없으니 말이다.
L 백화점과 마트에서 겪은 일을 종합해 보면 스마트한 최신 기술이 고객을 편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는다. 그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캐셔는 물론 고단한 직업이다.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하고, 가끔씩은 성격이 고약한 고객도 응대해야 한다. 하지만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것과, 물건을 태그하지 않고 몰래 훔쳐서 나가는 도둑이 없는지 고객 뒤에서 혹은 사무실애서 뚫어져라 모니터를 감시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덜 고단할까? 난 전자가 더 나은 노동이라 생각한다.
스마트한 세상을 살게 되면 단순하고 지루한 일에서 해방이 되어 남는 시간에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이것은 스마트한 기계를 '고용'한 자본가의 이야기이다. 더 많은 사람은 직장을 잃을 위험에 처한다. 말 그대로 풍성한 '빈곤'이 되는 것이다. 고객을 응대하는 '생물학적 인간'은 전혀 없이 휑한, 그러나 수발 드는 '스마트하신' 기계로 가득 채워진 쇼핑 센터를 보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그 기계를 쓰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이것이 또 차별적인 요소가 된다.
음식점에서 주문과 동시에 결제를 미리 하고, 손님이 직접 음식을 가져다 먹고 마지막에는 빈 그릇까지 직접 치우는데 우리는 너무나 잘 길들여져 있다. 이젠 쇼핑센터에서도 직접 계산을 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스마트한 기계를 '섬기기' 위하여 별도의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는 전부 고객의 몫이다. 서비스 제공자가 당연히 해 주던 일을 이제는 고객이 알아서 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들의 비용 절감을 위해서? 항상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고객님께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가격을 올립니다|예전에 당연히 해 드리던 서비스를 폐지합니다|대면 서비스를 하던 직원을 없애고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니 알아서 사용법을 익혀서 기계에 맞추세요 - 어머, 할 줄 모르세요? 세상이 이토록 발전하고 있는데 많이 뒤떨어 지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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