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1일 월요일

ITC의 최종 판결에서 균주는 영업비밀이 아니라는 견해에 대하여

뉴스에 의하면 ITC의 최종 판결문에서 균주는 영업비밀이 아니라고 명시했다고 한다. 아직 공개된 판결문을 보지 못하였으니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이르다. 많은 사람들은 '균주는 자연 어디서든 채취 가능하고 따라서 주인이 있을 수 없으며, 때문에 도용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따옴표 안의 글은 의학신문 기자수첩 코너에 오늘 올라온 김영주 기자의 글(링크)에서 인용한 것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경제적 활용에 대해 독점적 권한을 주는 것은 요즘의 정서로는 타당하지 못하다. 다만 그 생명체에 대하여 고도한 수준의 기술을 가하여 새로운 용도를 창출했다면 그 용도에 대하여 특허권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가 송이(버섯)(학명 Tricholoma matsutake)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견하였고 음식에 넣어 먹으니 대단히 맛이 좋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하여 다른 사람이 송이를 채취하거나 먹는 것을 금지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특별한 용도, 즉 요리법에 대해서는 실용신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송이는 자연계에 원래 있던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깊은 산에서 송이를 찾는 것은 매우 수고스러운 일이다. 상당한 수준의 경험이 필요하고, 험한 산을 다니다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내가 채취한 송이를 소중히 지키려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송이를 발견하여 이를 남들보다 더 쉽게 찾아내고 또한 상하지 않게 잘 채취하는 나름대로의 비법을 알아내었기에 이를 함부로 남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송이를 잘 가공하여 비싼 식재료로 인기리에 파는 것이 알려지면서, 몇몇 사람들이 송이를 구하러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였고, 조금씩 장터에 물건이 나오게 되었다. 송이의 값이 좀 내려가는 것이 아쉬웠지만, 이것을 막을 수도, 막을 이유도 없다.

만약 내가 수고스럽게 산에서 채취하여 잘 다듬은 다음 창고에 보관하던 송이를 누군가 훔쳐갔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절도죄가 성립한다. 송이를 훔쳐간 도둑이 이렇게 말한다.

송이는 산에 가면 얼마든지 있다. 아니, 이젠 가게에 가서 살 수도 있다. 온 세상의 송이가 다 네 것이냐? 나는 네 창고의 송이를 훔쳤지만, 그 송이는 어차피 너의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나는 너에게 잘못한 일이 없다.

이것이 정당한 주장인가? 내가 송이를 세계에서 처음 발견한 사람이지만 나는 온 세상에 자생하는 송이가 나 내것이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내 소유의 산에서 힘들여 채취하여 팔기 위해 정성스럽게 다듬어서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송이는 내 소유물이므로, 이를 훔쳐간 행위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비난을 하고 법에 의해 처벌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피해자인 나의 입장에서 바라본 사건의 본질은 이것이다. 다만 공소시효가 지났다면 형법에 호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내가 산에서 최초로 송이를 가져오게 된 경위 자체에 대하여 흠집을 내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과학적 증거를 들어서 옆마을 김서방이 내 송이를 훔쳐간 것이 틀림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몇 년의 다툼을 거치는 동안 나도 공격을 많이 받았다. 우리 집에서 일했던 일꾼이 김서방네 집으로 옮겨가서는 그동안 우리 집에서 시들어 빠진 송이를 최상급품이라고 속여서 팔았다고 제보를 한 것이다. 김서방이 이제와서 돌연히 제보를 한 경위도 석연치 않다.

나는 단지 송이 도둑을 잡기 위하여 싸움을 걸었던 것인데, 그것이 길어지면서 점점 본질이 흐려지기 시작하였다.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시작한 일이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것 같다. 나에게 돈을 빌려주었던 사람들도 불안해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진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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