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무엇인가를 자르고 뚫는 일이 가장 하기 싫다. 특히 전동 공구를 쓸 때에는 시끄럽고 사고가 나기 쉬우며, 수공구로 톱질이나 줄질을 하다가도 손을 다칠 수 있다. 알루미늄 판에 애써 구멍 위치를 표시하고 타공을 마쳤는데 정작 여기에 고정할 보드의 볼트 구멍 위치가 맞지 않을 때의 그 절망감은 느껴 본 사람만이 안다.
반면 단단하고 창백한 실납이 인두의 열기에 녹으면서 광택과 함께 부드럽게 흐를 때에는 일종의 희열을 느낀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 또한 시각적 즐거움을 더한다. 흡연자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어쩌면 DIY 작업 중 건강에 가장 해로울 수도 있는 납땜 작업이 나는 가장 즐겁다. 물론 열을 너무 많이 가해서 배선 피복이 녹거나, 만능기판의 동그란 패드가 떨어져 나갈 때 그 난처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간혹 달아오른 인두에 손을 데기도 한다.
드릴 스탠드를 구한 이후로 구멍 뚫기 작업은 한결 수월해졌다. 드릴을 수직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작업대에 스탠드를 고정해 두고 작업물까지 물린 바이스까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아직은 작업물 + 드릴 방아쇠 + 드릴을 내리누르는 손잡이까지 한꺼번에 붙잡아야 해서 거의 서커스 수준의 요령이 필요하다.
드릴 작동 및 속도 조절을 발로 할 수 있다면? 조광기를 이용한 드릴 속도 조절기를 만들었던 일이 있다. 이는 R-core 출력트랜스포머(진공관앰프용)의 권선기로 쓰기 위함이었다. 다음은 그 증거 사진(원본 글 링크; 2022년도에 작성)이다. 사진 배경을 보니 광화문 인근 오피스텔에서 파견 근무를 하던 시절 찍은 것이다. 그 좁은 방구석에서도 열심히 납땜을 하고 구멍을 뚫었었다.
혹시 여기에 악기용 익스프레션 페달을 연결하면 발로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가능할까? 조광기는 상용 220V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므로, 저전압에서 작동하는 포텐셔미터에 불과한 익스프레션 페달을 그대로 연결할 수는 없다.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추가 회로를 만들어야 한다.
차라리 드릴 프레스 손잡이에 끈을 달아서 발에 건 뒤 아래로 당기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간단한 것이 최고 아닌가?
밤 8시가 지난 시각, 아랫집에 미안한 마음을 느끼면서 라즈베리 파이 케이스에 다섯 개의 구멍을 뚫고 줄질을 하였다. RCA 단자를 쇠톱으로 자르는 일은 매우 쉬웠다. 플라스틱이니까.
| 헤드폰 앰프 만들기. 배선을 완료한 뒤 포맥스 판을 잘라서 위를 덮으면 끝난다. 작업대가 너무 지저분하여 AI로 배경을 약간 정리하였다. |
개조한 라즈베리 파이 케이스는 헤드폰 앰프(MAX4410 칩 사용; 데이터시트)의 케이스로 변모하였다. 케이스의 바닥쪽 판은 라즈베리 파이 3B와 함께 Fluid Ardule 안에 영구 장착되었다. 하나의 케이스가 두 개의 작품으로 나뉘어 새 삶을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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