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인근의 요즘 날씨는 장난이 아니다. 오후에 잠깐 비가 쏟아지다가 그치고 이내 뜨거운 햇볕이 쪼이면서 숨이 막힐 지경으로 습도가 높아진다. 6월 중순이 이러니 한창 더운 칠팔월에는 어떻게 견뎌 나가야 할 것인가? 정말 기후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외출을 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근처 상점에서 모자를 하나 샀다. 'Terps'라는 빨간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스포츠 팀의 이름 같은데 전혀 들어본 일이 없었다. 검색을 해 보니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컬리지파크(UMD)의 공식 스포츠 팀 명칭인 메릴랜드 테라핀스(Maryland Terrapins)의 줄임말이라고 한다(공식 홈페이지). 메릴랜드주를 상징하는 거북이의 이름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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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출장길의 유일한 기념품. |
| UMD의 상징, Testudo(사진 출처 링크). Testudo는 라틴어로 거북이를 뜻한다. |
UMD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FBI의 주요 연구 파트너 역할을 하며, 특히 FBI에 가장 많은 졸업생이 진출하고 있다고 한다. UMD의 범죄학 및 형사사법학과(Department of Criminology and Criminal Justice, CCJS)는 미국 내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니 정말 흥미롭다. 즉흥적인 쇼핑이 뜻하지 않게 상식을 넓혀 주었다.
INSDC 연례 회의는 6월 11일 오전에 모든 공식 일정이 끝났다. 귀국 항공편은 내일이라서 잠깐 시간을 내서 링컨 기념관 근처를 가 보기로 했다. 이른바 '내셔널 몰' 일대를 제대로 보려면 두어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레드 라인을 타고 오가는 시간(왕복 약 두 시간)을 포함하여 딱 네 시간만 투자하자고 생각하고 호텔을 나섰다. Rockville의 Twinbrook 역에서 Farragut North 역까지 간 뒤 또 남서쪽으로 약 1.4 마일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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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글래스고 패러것(David Glasgow Farragut). 미국 해군 역사상 최초의 4성 제독. |
링컨을 만나러 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 더웠다. 새로 사서 신고 온 신발이 불편하여 발바닥에서는 슬슬 물집이 잡히기 시작하였다. 독립 250주년 행사를 위해 시설물을 설치하고 리허설을 하느라 매우 정신이 없고 어수선하였다.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니 그 유명한 워싱턴 기념탑이 보인다. 저쪽으로도 박물관이 있을텐데!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제2차 세계대전 기념비를 지났다. 분수에서 발을 적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링컨 기념관 앞의 Reflecting Pool은 그 크기가 무려 619m x 51m나 된다. 저 멀리 링컨 기념관이 보인다. 불볕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다가갔으나...
행사 준비 관계로 올라가는 계단이 차단된 상태였다. 출입증을 목에 걸고 있는 관계자와 같은 사람들만 듬성듬성 보일 뿐이었다. 거대한 링컨 조각상을 가까이서 바라보면서 뭔가 영감을 얻고 싶었지만 그 기회조차 차단되어서 너무나 아쉬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관촉사나 대조사의 보살상을 찾아가는 순례자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눈앞까지 가서도 만날 수 없었으니 그 아쉬움이 더욱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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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링턴 메모리얼 브릿지 쪽에서 찍은 사진. |
아쉽지만 기념관 남동쪽에 가까이 위치한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으로 향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고 새겨진 글씨가 인상적이었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우리 국가는 한 번도 알지 못했던 나라와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답한 아들딸들을 기린다.
휴전 이후 한반도 남쪽에서 우리가 자유와 번영을 누리게 된 데에는 이러한 미군의 희생이 크게 기여하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도 가까운 이웃나라가 아니라, 생전 알지도 못하던 이역만리 먼 나라의 젊은이들이었다. 이 전쟁에서 미군 약 3만 6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참고로 2차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미군은 무려 40만명에 달한다.
참전 희생자의 가족에게는 큰 슬픔이지만, 미국 정부로서는 참전을 결정하게 된 다른 전략적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고 동아시아 질서를 유지하려는 현실적 계산이 작용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의 비문은 그러한 국가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그 결정의 결과로 목숨을 잃은 젊은 병사들의 희생을 기억하려는 문장으로 읽힌다.
한국전쟁 사망자 수를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자.
군인에 비해 민간인의 희생이 훨씬 크다. 또한 북한군의 사망자 수는 미군과 기타 유엔군은 물론, 한국군의 희생을 크게 웃돈다. 먼저 침략을 감행하였으니 이러한 결과를 당연한 대가로 보아야 할까? 전쟁을 일으킨 책임과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개별 병사의 죽음은 반드시 같은 차원에서 논할 수만은 없다.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미국은 자유를 지키고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참전했다고 설명한다. 중국 역시 압록강까지 진출한 유엔군에 대응하고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다고 주장하였다. 각국 정부가 내세운 명분의 타당성은 별도로 평가할 문제이겠지만, 전장에서 죽어 간 병사들 대부분은 그러한 국가적 결정에 따라 동원된 평범한 젊은이들이었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순전히 그들이 자유의지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모든 논의의 출발점에는 북한의 남침이라는 사실이 존재한다. 그러나 전쟁의 책임을 논하는 일과 전쟁의 희생자를 바라보는 일은 반드시 같은 문제는 아니다.
이렇게 미국 메릴랜드주 락빌에 위치한 호텔방에서 이런저런 성찰을 하면서 국외 출장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출장 결정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많은 결심을 하게 되었으며, 어느 정도의 성과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 건너편 건물 유리창에 비친 EVEN Hotel Rockville의 불빛. 왼쪽 아래에 삽입한 사진은 호텔 공식 페이스북(링크)에서 가져온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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