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에서 오늘 공개한 따끈따끈한 KBCH 브리핑을 공유하고자 한다. 작성자는 KAIST 생명과학과 송지준 교수이다.
거울상 박테리아 기술보고서에 대한 리뷰(2024-20)
챗GPT 4o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프롬프트는 다음과 같다. "박테리아가 거울을 바라보면서 여기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놀라는 그림을 하나 그려 줘." 왜 놀랐을까? 생각보다 예뻐서? |
거울을 향해 악수를 청하기 위해 오른손을 내밀었다고 가정하자. 거울 속의 내 손을 현실로 가져와서 아무리 내 오른손과 포갠다 해도 맞지 않는다. 거울 속에 비친 오른손은 실제로 왼손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분자 수준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을 chirality라고 한다. 많은 생체분자(탄수화물, 아미노산, 뉴클레오티드 등)가 이러한 방향성을 지닌다. 생명체는 그중에서 한 가지 방향성의 물질을 이용하고, 또 그러한 분자를 기반으로 증식을 하도록 진화해 왔다. 왜 두 가지 옵션 중에서 하필이면 '그' 방향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만약 이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실험적으로도 증명이 가능하다면 노벨상을 탈 수 있으리라. 순수한 화학 반응의 결과에서 chiral product가 생길 경우, 서로 거울상인 것이 1:1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효소가 이 반응을 매개하면 어느 하나의 형태만 생겨난다. 이는 아주 오래전에 생화학 및 유기화학 과목을 공부하면서 배웠던 기초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요즘 들어서 급격하게 발달한 합성생물학 기술을 이용하면, 현존하는 박테리아와 완벽하게 거울상인 것(mirror life)을 가까운 시일 내에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런 박테리아가 생태계에 방출된다면, 기존의 면역 체계로는 이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므로 절대로 퇴치할 수 없는 병원균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생태계를 뒤흔들 가능성도 있다.
물론 지금의 기술은 거울상 핵산이나 단백질을 겨우 만드는 수준이라고 한다. 만약 놀라 자빠질 수준의 합성생물학 기술이 나와서 현존하는 대장균과 완벽히 거울상인 것을 만들어냈다고 치자. 하지만 대장균은 종속영양생물이다. 다른 생명체가 만들어 놓은 유기물이 있어야 이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고 스스로를 복제하는데 재료가 되는 building block을 만든다. 하지만 다른 생명체가 만든 chiral 유기물(즉 substrate)은 거울상 대장균의 효소 시스템이 인식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지구상에서 매우 보편적인 단당류인 포도당은 D-form이다. 거울상 대장균은 L-form 포도당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 왼손 장갑이 오른손에 맞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최소한 나의 화학 지식으로는 그러하다.
따라서 거울상 박테리아가 최소한 지엽적으로라도 생태계에 문제를 일으키려면, 광합성 또는 화학합성 세균과 같이 독립영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물, 이산화탄소 및 기타 무기물 분자와 같이 chirality가 없는 물질('achiral')만으로 독립영양 생활을 할 수 있는 인공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수준은 되어야 이제 이에 대한 생물학적 위협을 논할 수 있다.
이는 이미 대학교 수준의 생물학 교과서 연습문제에 나올 만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나도 어느 책에서 이러한 문제를 본 것 같다. 따라서 거울상 '인공' 생명체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아직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뻔한 결론이 날 수준의 걱정을 두고서 기술 보고서까지 나올리는 없다. 내가 뭔가 놓친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오늘 소개한 리포트는 다음의 글 두 편에 기초를 두고 있다.
- Confronting risks of mirror life - Science 386(6728):1351, 2024년 12월 24일
- Technical Report on Mirror Bacteria: Feasibility and Risks - 2024년 12월(3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내용이니 읽으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시길...)
여기에서 두 번째 자료의 14-15쪽을 보면, 대장균이 이용하여 자랄 수 있는 achiral 탄소원 및 질소원을 보여주고 있다. 생각보다 꽤 그 종류가 많다. 흠, 그렇군... 이런 물질이 풍부한 자연환경이라면, 오늘 당장 거울상 대장균을 만들어 뿌리게 되면 폭발적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하수구 속이 될 수도 있고, 나의 뱃속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세균이 만들어내는 독소가 인체에 해를 끼칠까? 만약 그 독소가 chiral한 것이라면, 아마 인체에서 적당한 타겟을 찾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예측이다. 특별한 독소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해도 인체에 유입된 외래 미생물이 통제 불가능하게 증식하기 시작하였다면 이는 이미 재앙이다.
인류 발전의 원동력은 {자연에 맞서서 생존하기 위한 투쟁} + {호기심 충족}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물이 당장 시장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호기심만큼 강력한 유인책은 없다. 호기심 충족의 부산물이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때로는 인류의 존재를 위협할 수 있는 무서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슬픈 현실이지만 이를 논의의 장으로 끄집어 내고 적절히 통제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디선가 나쁜 의도로 이를 계속 개발하게 될 것임이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다.
거울
- 이상(李箱), 1933년 -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握手)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중학생 시절, 이상의 시 <거울>에 멜로디를 붙여서 노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참으로 오랜만에 기억해 냈다. 이번 기회에 완성을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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