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7일 수요일

인체유래물 연구 동의서는 바뀌어야 한다

생명윤리법 제2조 제11호 및 제12호에서 정의한 인체유래물연구를 수행하려는 연구자는 인체유래물 제공자(연구참여자)로부터 인체유래물등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를 인체유래물 연구 동의서(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별지 제34호 서식)라 하며, 구글에서 검색하면 원문을 쉽게 입수할 수 있다. 인체유래물은행에서 받는 동의서는 다른 서식(인체유래물등의 기증 동의서, 별지 제41호 서식)을 써야 한다. 다음은 제34호 서식 뒷부분에 나오는 동의 내용으로, 연구자와 연구참여자가 기재해야 하는 빈 표를 보이고 있다.



이 동의서는 실물 샘플(혈액, 소변, 조직...)을 제공할 때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제공된 인체유래물로부터 유전체 해독을 한다면 작성하기가 조금 불편해진다. 사실 현행법은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다. 인체유래물을 보관하려면 전용 시설이 필요하니(최소한 냉장고), 보존 기간이라는 것을 설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나 그로부터 생산된 유전체 정보는 연구자가 보관하는데 별로 부담이 없다. 구글이나 네이버의 데이터 센터 수준으로 엄청난 용량의 자료를 수집하지 않는 이상.

이 동의서는 현실적으로 연구참여자가 제공하는 인체유래물, 그리고 그로부터 연구 과정을 통해 생성되는 결과물인 유전체·전사체 정보 등에 대한 활용 조건까지 전부 담고 있다. 나는 이것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동의내용 표의 네 번째 칸을 보라. '보존 기간 내 2차적 사용을 위한 제공 여부'에 연구참여자가 구체적인 조건 3가지 중의 하나를 고르게 되어 있다. 만약 여기에서 1이나 3에 동의를 했다면, 보존 기간 내 갖고 있던 인체유래물은 물론이고 연구 결과물(유전체·전사체 정보)을 아직 목적이 정해지지 않은 2차적 사용을 위해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개인정보와 다를 바가 없는 유전체 정보의 비식별화 문제는 별도로 하고서 말이다.

활용 목적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제공자가 이에 대해 동의해야만 쓸 수 있다는 원칙은 매우 아름답고 순수하다. 그러나 2차적 활용 목적을 연구자가 처음부터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인체유래물은행이 수집하는 실물 샘플이라면, 기증자가 사용 목적을 특정해서는 그 은행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수집 당시에는 이 샘플이 앞으로 어떤 용도로 분양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체유래물은행이 받는 인체유래물등의 기증 동의서(제41호 서식)에는 기증 행위가 그 활용 목적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동의함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제34호 서식은 최신 연구기법을 반영하여 바뀌어야 함이 옳다. '귀하가 제공한 인체유래물로부터 유전체 정보가 해독될 것입니다(혹은 아닙니다)'라는 내용이 있어야 하고, 2차적 사용에 관한 동의는 인체유래물 실물과 이로부터 생성된 결과물에 대한 것으로 나뉘어 있어야 한다. 물론 생명윤리법 제37조 1항에서는 인체유래물 기증자로부터 다음 각 호(1~5)의 사항이 포함된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였고, 4호에서 '인체유래물과 그로부터 얻은 유전정보(이하 "인체유래물등"이라 한다)의 제공에 관한 사항'이라고 명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34호 서식은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듯하다.

제34호 서식으로는 인체유래물 기증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기 어려우니, 별도의 연구참여 동의서 양식을 만들어서 연구의 목적, 연구 방법, 제공자가 겪을 수 있는 위험성(불편함) 및 혜택, 결과물 처리 및 유전체정보은행(데이터베이스든 데이터팜이든 무엇이라고 불러도 좋음)에 등록하는 과정까지를 상세히 기술하여 별도로 동의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미국의 최종판 커먼룰에서도 동의서에 whole genome sequencing이 진행될 것인지 혹은 아닌지에 대한 사항을 밝히게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어렵지 않게 자료를 찾아 볼 수 있다. 가령 Ochsner Journal 20:62(2020)에 실린 Revised common rule changes to the consent process and consent form의 표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동의서에 새로 넣어야 할 내용을 정리해 놓았다.

출처: PubMed Centrel (PMC7122264)


그러면 chip-based analysis나 whole exome sequencing은 어떻게 하나? 이에 대한 설명까지 동의서에 담아야 하나?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질병관리청에서 주관하는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사업 참여자 동의서와 인체유래물 기증 등의 동의서 두 부를 작성해야 한다(링크). 연구자가 인체유래물은행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제41호 서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는 연구자의 입장인 것이고... 제34호 서식 6번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귀하의 인체유래물들을 이용한 연구결과에 따른 새로운 약품이나 진단도구 등 상품개발 및 특허출원 등에 대해서는 귀하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며, 귀하가 제공한 인체유래물등을 이용한 연구는 학회와 학술지에 연구자의 이름으로 발표되고 귀하의 개인정보는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딘가 불편한 '동의'가 아니겠는가? 이 서식이 서둘러 국내에서 만들어질 때, 연구참여자 집단에 해당하는 시민사회로부터는 충분한 의견 수렴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이에 대하여 학술적으로 접근해 보려면 생명윤리정책연구 제9권 제3호에 실린 인체유래물 거버넌스: 바이오뱅크 제도화 과정에서 나타난 제공자의 권리포기 문제와 같은 논문을 찾아서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가 연구비가 들어간 유전체 정보는 공공재인가? 등등 생각할 거리가 매우 많다. 실물로서 주어진 인체유래물, 이로부터 생성된 연구결과물... 여기에 제공자의 인격권과 연구자의 권리(논문이라면 지적재산권) 등이 더해지면 이 문제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흠.. 요즘 글을 너무 많이 쓰는구나!


2022년 9월 8일 업데이트

생명윤리법 제38조제1항에서는 서면동의를 받은 경우 기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인체유래물등을 인체유래물은행이나 다른 연구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하였고, 제2항에서는 그러한 경우 익명화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단, 기증자가 개인식별정보를 포함하는 것에 동의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하였다.

동법 제2조 19호에서 익명화란 개인식별정보를 영구적으로 삭제하거나, 개인식별정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당 기관의 고유식별기호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데이터 내부에 변형을 가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전체 정보의 경우, 이런 식으로 진정한 익명화가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어느 정도 수준으로 획득한 유전체 정보라면, 개인식별정보가 아예 없더라도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개인을 식별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제3자 제공 시 생명윤리법에서 처리하는 방식의 익명화가 의미를 가지려면 그 대상은 실물 자원일 때나 가능하다. 개인식별정보 포함/불포함으로 동의를 끝낼 것이 아니라, 제공 대상물이 유전체 정보라면 최신 생명정보 기법을 사용한 비식별화를 할 것인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제34호 서식을 유일한 동의서로 사용할 것이라면, 맨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이 바꾸어야 할 것이다.

2차적 사용을 위한 제공 시 비식별 조치 여부

  1. 개인식별정보 [ 포함/불포함 ]
  2. 유전체 정보 제공 시 비식별화 [ 실시 / 미실시 ]
이 항목에서 동의를 받을 때에는 설명을 매우 잘 해야 한다. 비식별화는 가명화와 익명화 등을 아우르는 가장 상위 카테고리에 해당하니, 이렇게 제목을 잡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2022년 8월 25일에 작성한 개인정보의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에 약간의 설명을 달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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