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고 쌓아두는 사람을 '적독(積讀)가'라고 한다. 영어로는 book hoarder.
나는 본래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아니었고, 더욱이 파견 근무를 위해 주거지를 한시적으로 옮긴 상태에서는 책을 사거나 마땅히 둘 공간도 없다. 당근마켓을 통해서 근처 오피스텔에서 일반 교양서와 IT/통계학 관련 책을 한 상자 입수한 일은 있지만.
북촌의 한 카페 '고이'를 거의 2년 만에 들렀다. 길가의 작은 2층 주택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곳이다. 2층에서는 모임 장소로도 인기가 있는 것 같았다. 북쪽으로 난 좁고 긴 창문에 아기자기한 화분과 책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아내는 소설 「파친코」 제2권을, 나는 저널리스트이자 방송인인 셀레스트 헤들리(Celeste Headlee, YES24의 작가 소개 링크)의 「말센스」를 택해서 읽기 시작하였다. 작가는 대화법과 관련한 TED 강연을 통해 전 세계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고 한다. 이 책은 두껍지 않아서 커피를 마시는 동안 충분히 다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이 말솜씨가 아니라 말'센스'에 대한 글임을 거듭 강조하였다. 정치인이나 웅변가에게는 말솜씨가 필요하겠지만, 말센스는 공감을 자아내면서 대화를 주고받는 센스를 의미한다.
몇 개의 구절을 인용해 본다.
- 스마트폰과 SNS 때문에 서로 과시적이고 일방적인 소통만을 하다 보니 직접 대면을 해서는 어떻게 말하고 들어 주어야 하는지 잊어버린 것이다.
- 인지 능력이 뛰어날수록 편견의 사각지대가 더 넓다.
-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섹스를 하거나 초콜릿을 먹을 때와 유사한 쾌감을 유발하는 것이다.
- 반복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반복은 청자가 아닌 화자의 기억을 돕는 효과적인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화를 망치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고 나누는 대화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 방법이다. 글을 통한 기록과 전달은 물론 중요하지만, 상당한 비중의 비언어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대화가 글을 통해서 완벽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우리가 전부 목 뒤에 네트워크 케이블을 꽂고 살아가는 형태로 변화하지 않는 한, 직접적인 대화의 중요성은 인류가 존속하는 동안에는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강조하듯이 올바르게 대화하는 법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화는 주도권을 빼앗거나 화자가 청자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대화가 어떻게 전개되느냐를 통해서 권력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스터즈 터클(Studs Terkel, 본명은 Louis Terkel, 1912~2008)이라는 미국인을 소개하였다. 터클은 작가, 역사가 및 방송인으로 퓰리처상을 받기도 하였고, 일반 미국인에 대한 인터뷰(즉 구술 역사)로 장기 라디오 쇼(1952~1997, 무려 45년 동안이나!)를 진행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나는 녹음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스터즈 터클 라디오 아카이브 또는 그의 저서 「나의 100년」(원제: Touch and Go: A Memoir)를 구해서 읽어 보아야 되겠다. 아아, '쩌리들의 위대한 역사를 듣고 읽고 쓰다'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붙인 부제란 말인가?
음악이든 음성이든 소스를 막론하고 집에서 프로듀싱-믹싱-마스터링을 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나는 특히 라디오라는 매체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내가 지금 몰두하는 것은 소리를 매만지는 기술적 측면, 즉 '소리를 어떻게 담을까'에 치우쳐 있지만,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 나갈 것인가'는 '어떤 소리를 담을까'라는 본질의 문제로 회귀하게 만든다.
녹음 기록의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스승과 꼬마 소리꾼의 판소리 연습 과정을 하드디스크레코더에 담은 기록물 「추종자」이다. 리움미술관 1층에서 아내와 같이 헤드폰을 쓰고 독특하게 만들어진 철제 소파에 앉아서 한참 소리에 빠져 있었다.
ALESIS의 하드디스크레코더 HD24(단종). 이런 것을 보고 듣는 순간이 너무나 즐겁다. 진공관 앰프의 자작에만 너무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는 뜻도 될 것이다. |
올바른 대화법 - 대화와 관련한 두 유명인의 소개 - 대화의 녹음 - 최근 몰두하는 취미의 순으로 글이 흘러갔다. 연습 삼아서 내가 만든 동영상을 유튜브에 몇 개 올려 보면서 느낀 것은 결국 이것도 셀카를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회수 또는 '좋아요' 수를 상호작용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아, 취미와 관해서는 너무 진지해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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