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작한 진공관 싱글 엔디드 앰프에 소스 기기와 스피커를 연결한 뒤 귀를 기울여 보았다. 엄청난 잡음이 들린다. 전원에서 유입되는 험과는 양상이 다소 다르다. 지금까지 만든 앰프가 거의 항상 그랬듯이, 볼륨 포텐셔미터의 각도에 따라서 잡음이 달라진다. 최소나 최대에서는 잡음이 들리지 않지만, 중간 영역에서는 잡음이 너무나 심해서 도저히 들어 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볼륨 폿 없이 파워 앰프처럼 사용하되, 소스 기기와 자작 앰프 사이에 게인은 없이 볼륨 조절만 가능한 버퍼 프리앰플리파이어를 넣으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번에도 하게 되었다.
제작 초기에는 그저 소리가 난다는 사실에만 열광을 하느라 소리의 질에 대해서는 신경을 덜 쓰고 있었다. 주변 소음이 심해서 잡음을 쉽게 감지하지 못한 탓도 있다. 며칠 간을 좌절감에 휩싸여 있었다. 재능도, 해결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여 진공관 앰프 자작에서 이제 손을 떼어야 되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 포기하기에는 그동안 쏟은 정성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검색을 통해 문제를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내가 처음 설계(?)한 회로는 단순하기 그지없다. 쓰이는 부품이 적은 기존의 진공관 싱글 엔디드 앰프의 회로도를 따라서 하면 대충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사실 오실로스코프가 없다면 잡음을 정확하게 진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Grid stop resistor를 사용하여 parasitic disdortion을 제거하는 동영상을 소개한다. 어지럽게 지나다니는 배선을 보면, 내가 만든 앰프가 그렇게 열악하지만은 않다는 위로를 하게 된다.
Grid stopper resistor란 무엇인가? The Valve Wizard('Grid Stopper Resistor and Miller Capacitance') Aijen Amps('Grid Resistors - Why are they used?')를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It helps prevent high frequency parasitic oscillation in the tube itself
- It helps prevent radio frequencies from getting into the input stage, where they can be rectified and lowpass filtered (AM detection) and become audible at the amplifier output
- It can limit grid current when the tube is driven into the positive grid region, which helps in preventing "blocking" distortion
그리드 스토퍼 저항의 위치는 그리드 리크 저항과 그리드 사이에 두어야 한다. 만약 그리드 리크 저항보다 앞에 있으면, 신호를 감쇠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소켓 핀에 직접 납땜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한다. 나도 이러한 원칙에 따라서 6LQ8 SE amp board를 개조하였다. 일단 한쪽 채널만 수정하여 그 효과를 보기로 했다. 사용할 저항의 수치는 딱 이래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전단에 볼륨 폿이 있는 경우 그리드 리크 저항을 보통 생략하지만, 나는 470K를 넣기로 했다. 볼륨 폿의 슬라이더 접촉이 나빠서 플로팅 상태가 되면 진공관은 그리드에 아무런 음전압이 걸리지 않게 되어 과다한 전류가 흐르게 된다. 그리드 스토퍼 저항은 47K로 결정하였다.
효과는 매우 놀라웠다. 비로소 들어 줄만한 수준으로 잡음이 대폭 감소하였다. 지금은 가조립 상태라서 볼륨 조정용 폿과 PCB 사이를 매우 긴 일반 와이어(실드선 아님)으로 연결한 상태이다. 따라서 이를 짧게 다듬으면 남은 잡음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수정한 회로도. R1과 R2가 오늘 추가되었다. R6과 R9도 곧 자리를 잡을 것이다. 갖고 있는 저항을 쓰기 위하여 각각 10K와 6.8K로 선택하였다. |
필요한 부품을 다 주문하여 오늘 받은 물건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스피커 연결용 바나나 플러그를 서로 다른 모양으로 주문하고 말았다. 코로나로 앓고 있는 아내를 세심하게 돌보는 것도 잊은 채 며칠 동안을 이 문제에만 매달린 나 자신의 한심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아내도 나 때문에 코로나에 걸린 것 아니겠는가?
구글에서 자작 진공관 앰프의 문제 해결에 관한 외국쪽 사이트의 글을 찾아보면 대부분 전기 기타용 앰프에 관한 것이 나온다. 전기 기타란 원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왜곡한 소리를 즐기는 악기이다. 몽글몽글하다고 표현하는 부드러운 오버드라이브 톤을 만들기에는 진공관이라는 소자가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전력 소모도 많고, 고전압을 쓰기에 위험하고, 원음의 재생이라는 측면에서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는 소자인 진공관을 사용하는 앰프(이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으나)가 음악 감상용으로 아직도 유리하다고 믿는 것은 고집일지도 모른다. 실은 만드는 재미와 눈으로 빨간 불빛을 바라보는 감성이 더 크게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기타용 앰프를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 볼 것을 고려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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