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30일 일요일

인왕산 오르기

비록 정해진 기간 동안이지만 종로구에 살면서 주말이면 주변의 볼거리를 찾아 다니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평일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퇴근을 하면서 광화문 광장을 건널 때에는 가을을 맞아 매일같이 벌어지는 문화 행사를 볼 수 있고, 저녁을 먹은 뒤 아내와 함께 서촌 골목길 구석구석과 경복궁 옆 길을 걷기도 한다.

우리 부부가 머물고 있는 곳은 종로구(빨간색 점선) 내수동이다(별표).

금요일 오후에는 반차를 내고 남산(265.2m)을 올랐다. 원래는 돈까스나 먹으러 갈 요량으로 밀레니엄 힐튼 서울 근처로 향했는데, 배가 너무 불러서 운동 삼아 백범광장과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산책을 시작했다가 결국 남산서울타워까지 걸어서 오르게 되었다.




연인용 벤치? 둘이 앉으면 저절로 밀착하게 된다.

버스 또는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을 오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걸어서 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서울 시민으로 살던 시절에는 올 생각을 하지 못했고, 대전 시민으로 30년 가까이 살면서 이제 서울을 재발견하고 있다. 

내수동에 살면서 인왕산(338m)을 오르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전날 남산을 올랐던 즐거움이 가시기 전에 가을빛으로 한껏 물든 인왕산을 가기로 하였다. 어느 코스를 택하든지 3시간 이내에 모든 일정을 끝낼 수 있으며 초행길이라 해서 길을 잃을 염려도 없으니 부담이 없었다. 아내와 나는 간식과 물을 챙겨서 토요일 오전 10시쯤 내수동을 나섰다. 누상동 윤동주 하숙집 터를 조금 지나쳐서 조금만 더 가면 나오는 수성동 계곡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누군가 석굴암 방향으로 가면 산 정상으로 가지 못한다는 친절한 설명을 써 놓았다.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갈림길. 여기서 한참을 고민했다.

인왕산 정상을 목표로 하는 사람도 있고 둘레길이나 자락길을 따라 산책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처럼 인왕산의 서쪽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정상까지 오르려는 사람은 석굴암으로 길을 잘못 접어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석굴암은 정상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나, 정작 여기에서 정상까지 가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굴암으로 가는 길이 매우 아름답고 서울 시내를 조망하기도 좋다고 하니 다음 기회에 방문해 보려고 한다. 이러한 것을 미리 겪었던 사람이 수성동 계곡의 안내도에 주의사항을 적어 놓았던 모양이다.

<인왕산 둘레길> <인왕산 자락길('인왕산로' 차도를 따라 걷는 길)> <진경산수화길> 등 정감 있는 길 이름을 붙이는 것도 좋지만, 각각의 길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개념을 잡지 않으면 길을 잘못 들 가능성이 높다. 잘 정비된 길, 안내도, 표지판 등 종로구에서 탐방객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흔적이 보이지만 첫 방문자에게 혼동을 유발하지 않기 위하여 효율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을 좀 더 고민해야 될 것 같다. 결국은 여기에서 50년 넘게 살았다는 산책 나온 주민에게 물어서 인왕산 정상으로 가장 빨리 가는 길을 알게 되었다.

길을 찾기 위해 애를 쓰면서 문제 해결 방식이 남녀가 근본적으로 다름을 다시금 느꼈다. 길을 몰라서 곤란을 겪을 때, 남자는 지도나 앱 등을 이용해서 혼자 길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여자는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보려고 한다. 이 상황은 남자에게 많은 불편한 감정을 들게 한다. 그래서 때로는 길을 묻는 여자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내가 알아서 해결하려고 애를 쓰는데 왜 지나는 사람에게 길을 묻느냐'고... 물론 여자도 남자에게 답답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보와 연장을 들고 '동굴'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만큼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그것이 염색체에 새겨져 있는 차이인지 혹은 학습을 통한 차이인지는 알기 어렵다. 어쨌든 남녀 사이에는 그러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키우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수성동 계곡에서 인왕산 자락길까지 간 뒤 길을 건넜다. 오로지 석굴암쪽으로 가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서 그와는 다른 편(만수천 약수터)으로 향했다. 이 길을 따라서 가면 한양도성 성곽을 만나게 될 것이고, 거기서부터 능선을 따라 가면 곧장 정상으로 향할 것 같았다.

이 갈림길에서 한양도성 성곽을 만나게 된다.

잠시 쉬면서 북악산(342.5m)를 바라본다. 청와대, 경복고, 경기상고가 보인다.

저 뒤에 보이는 것이 기차바위라는 것인가...





드디어 정상! 아내는 힘들어...

인왕산에서 제일 높은 바위는 아내의 차지!

하산은 성곽을 따라 북쪽 방향으로 내려가서 창의문까지 가는 코스를 택했다.

한양도성 연리지(連理枝) '부부소나무'. 내가 보기에는 영 '19금 소나무'인데... 


산행 코스를 인왕산 안내도 위에 화살표로 표시해 보았다. 아래 그림에서 왼쪽이 남쪽에 해당한다. 만약 사직단->황학정 쪽을 기점으로 삼았더라면 한참 동안 차도를 따라 걷느라 주변 경치를 보는 재미가 적었을 것이다. 그래도 삼거리에 있다는 호랑이 상을 볼 수는 있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성곽을 따라 걷는 경로였다면 또 어떠한 재미가 있었을까? 산 하나의 등산로를 놓고 수많은 변주곡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 1년 동안 사는 것을 선물로 여기고 기회가 되는 대로 자주 돌아다니고 즐겨야 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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