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훈 대표이사의 초청으로 세종특별자치시에 터를 잡은 마크로젠 세종캠퍼스의 준공식에 참석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초면인 서정선 회장, 그리고 지역의 중요 인사인 최민호 세종시장과 김진동 세종상공회의소장 등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박현석 이화여대 교수와는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것 같았다. 준공식에서 읽을 축사를 준비하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였다. 대전광역시 또한 1990년대 한국 바이오벤처기업의 태동기에 요람과 같은 역할로 크게 기여를 하였다. 예를 들어 바이오 분야의 1호 벤처기업으로 잘 알려진 바이오니아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당시 명칭은 KIST 유전공학센터 -> '생명공학연구소'였을 것이다) 출신인 박한오 대표가 1992년에 한국생공이란 이름으로 대전에서 창업을 한 것이 성장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주된 품목은 합성 올리고였다. 아마 당시에는 염기 하나를 합성하는데 3,000~4,0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20-mer 정도의 프라이머를 몇 쌍씩 합성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다. 한국생공으로부터 카트리지에 고정된 형태로 합성된 올리고를 받아서 암모니아수를 넣어서 이를 분리하고, 커다한 urea-PAGE를 걸어서 handheld UV lamp로 확인된 밴드를 오려서 이를 분쇄한 다음 50 ml conical tube에 담아 마그네틱 바(bar)로 밤새도록 돌려서 설계된 크기의 올리고를 우려내고...
KAIST에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리눅스 서버의 이름인 bioneer가 한국생공의 명칭 변경(1996)에 영감을 제공하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글을 2021년에 쓴 일이 있다(링크).
대전광역시는 바이오벤처기업의 메카와도 같은 곳이었다. 정부출연연구소와 대학 및 기업 연구소가 몰려 있는 입지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30년이 넘는 연혁을 거치면서 대전을 발판으로 많은 바이오기업이 명멸하였다. 마크로젠은 올해로 창립 27년을 맞는다고 한다. 1990년대에 창업을 했던 수많은 바이오벤처기업이 떠오른다. 어떤 회사는 코스닥 상장을 거쳐 크게 성장하였고, 어떤 회사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기도 했으며, 또 어떤 회사는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마크로젠 창업 직후, 다들 엇비슷해 보였던 바이오벤처기업의 30년 뒤 운명이 이렇게 달라질 줄은 누가 알 수 있었을까? 기업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적으로 가르는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준공식 후 점심식사 자리에서 서정선 회장은 이런 말을 하였다. 재벌이 되려면 세 가지 마음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열심'과 '의심' 그리고 '변심'이란다.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이 한 말이라고 하였다. 앞의 두 마음은 쉽게 수긍이 가지만 '변심'은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급변하는 시장 현실 앞에서 생존하려면 끊임없이 이에 맞추어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때로는 한결같은 자세 또는 지조를 지키는 것은 소멸을 부채질할 수도 있다는 것. '변심'을 '변신'으로 해석하면 마음이 좀 편해질 지도 모른다.
계속 변화하는 시장(소비자의 변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에 맞추어 나가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대상이 만약 권력이라면? 역사의 전환점에서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생존인가, 신념인가? 만약 내가 그 순간에 서 있었다면 나도 아무런 주저함 없이 신념을 지킬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포춘지에서는 해마다 세계 500대 기업을 선정하여 발표하는데, 이에 의하면 기업의 평균 수명은 30년이라고 한다. 30년이란 기간은 사람의 한 세대와 대략 비슷하다. 한 세대가 지나면 산업계 지도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여기에 잘 맞추어 성공적으로 '변신'한 기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일 게다.
나도 DBC 입주기업인 (주)제노텍에서 2000년부터 2002년 말까지 일을 했었다. 그 무렵에 전민동으로 이사를 와서 아직까지도 살고 있다. DBC의 추억 한 자락을 공유하고 있는 옛 동료가 헬로디디에 2005년 기고한 글을 소개하고자 않다. DBC를 의인화하여 쓴 이 글에서는 떠나가는 입주 기업(그대)에게 자기를 잊지 말아 달라는 아쉬움을 담고 있다.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 된다.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는가. 밴드에서 기타와 베이스를 치다 보면 드러머의 세계가 궁금하다.
최근 연구소에서 구입해 준 드럼 세트(사진 촬영: 권태호 박사) |
커리어 측면에서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교수와 기업가의 길 또한 호기심의 대상이다. 기업은 국가 경제를 떠받드는 중요한 축이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고용을 창출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창업을 결심한 사람, 그 결심을 실행으로 옮긴 사람, 창업 후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이를 꾸준히 유지하고 성장시켜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사람... 본인의 노력과 하늘의 도우심이 없으면 과연 가능할까? 이들의 노고를 정말 높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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