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31일 수요일

신의료기술평가(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nHTA)는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용어인가?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오늘 쓴 글은 얼마든지 틀렸을 수도 있음을 미리 고백해 둔다.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는 옛말이 있다. 의료법에 '의료행위'가 정의되어 있지 않아도 대한민국의 보건의료시스템은 그런대로 돌아가는 중이다. 심지어 대한민국 헌법에도 표현 및 맞춤법 등 234건이나 되는 오류가 있다고 한다(링크). 헌법도 이러할진대 내가 나서서 특정 분야 법령에서 사용한 용어의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아도 나라의 시스템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자의 특성 상 사소한 것을 붙들고 늘어지고 싶은 충동을 막을 길이 없어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태초에 의료기술평가(health technology assessment, HTA)라는 말이 있었다. 이 용어는 1960-70년대 미 의회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평가('assessment', 보다 정확하게 옮기자면 사정査定이 맞겠지만)의 대상인 medical technology 또는 health(care) technology라는 용어는 누가 처음 사용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가천대 이선희 교수가 2018년 보건행정학회지에 발표한 논문 "신의료기술평가제도 운영의 개선현황과 발전방향"의 서론을 인용하여 HTA의 역사를 알아보도록 하자.

근거중심의 의사결정을 위해 급여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 중 HTA가 수행되는데 이는 1960년대 말 미국의회에서 공식 사용된 것이다. 당시에는 'HTA를 기술의 적용과 사용으로 인한 단기 및 장기 사회적 결과를 평가하는 포괄적 형태의 정책연구'라 하였다. HTA의 주요 목적은 보건의료기술 관련 정책결정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위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바꾼다면 '의료기술평가의 주요 목적은 국민건강보험 급여 여부 결정에 필요한 정보(안전성 및 유효성)를 제공하는 것이다'가 될 것이다(하지만 의료법에서는 나타낸 신의료기술평가의 목적은 더 고상하고 아름답다). 신의료기술평가는 영어로 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또는 줄여서 nHTA라고 쓰기도 한다. 하지만 HTA가 아닌 nHTA라는 용어는 국외에서 널리 쓰이던 것이 국내에 도입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구글 검색 결과 때문이다. 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또는 nHTA)라는 영문 용어를 쓰는 웹사이트 혹은 문서는 전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PubMed에서 "health technology assessment"를 검색어로 넣으면 81,901건의 문헌이 나온다. 그런데 "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로 검색하면 나오는 것은 겨우 26건에 지나지 않는다. 얼핏 살펴보니 대부분 '새로운 HTA'라는 의미로 쓰였고, 우리나라에서 발표한 논문에서만 '새로운 의료기술(new health technology)에 대한 평가'라는 의미로 쓰인 것 같았다. 차라리 nHTA가 아니라 K-HTA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뻔하였다.

WHO나 EU의 관련 문서를 보아도 HTA는 있지만 nHTA라는 용어는 보이지 않는다. 약어든 풀어서 쓴 낱말이든 전부 통틀어서 그러하다. EU에서 발간한 Regulation (EU) 2021/2282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 on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and amending directive 2011/24/EU라는 문서에서 HTA의 정의를 찾아 보았다.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HTA) is a scientific evidence-based process that allows competent authorities to determine the relative effectiveness of new or existing health technologies. HTA focuses specifically on the added value of a health technology in comparison with other new or existing health technologies.

그렇다. 반드시 최근에 개발된 기술만이 의료기술평가의 대상이 되라는 법은 없다. 의학 교과서에 나오는 오래 된 의료기술이라고 해서 전부 HTA 절차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기존 의료기술도 얼마든지 HTA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HTA의 개념도 변한다. Announcing the New Definition of Health Technology Assessment라는 논문(보다 정확하게는 Letters to Editor임)에서는 의료기술평가 관련 여러 국제단체가 모여서 논의한 끝에 다음과 같이 HTA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렸음을 밝혔다. 내가 보기에는 의료기술의 수명 주기 어느 단계에서도 HTA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HTA is a multidisciplinary process that uses explicit methods to determine the value of a health technology at different points in its lifecycle. The purpose is to inform decision making in order to promote an equitable, efficient, and high-quality health system.

참고로 이 논문에서는 health technology의 정의도 수록하였다.

A health technology is an intervention developed to prevent, diagnose, or treat medical conditions; promote health; provide rehabilitation; or organize healthcare delivery. The intervention can be a test, device, medicine, vaccine, procedure, program, or system.

알아보는 김에 위키피디아에서 health technology를 찾아 보았다. 여기에 수록한 정의는 WHO에서 내린 것이라고 한다.

Health technology is the application of organized knowledge and skills in the form of devices, medicines, vaccines, procedures, and systems developed to solve a health problem and improve quality of life. This includes pharmaceuticals, devices, procedures, and organization systems used in the healthcare industry, as well as computer-supported information systems.

과거에는 medical technology라는 용어를 썼었다고 한다. 이것을 그대로 번역하면 '의료기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써 놓으면 의사가 시행하는 기술로만 제한되므로, health(care) technology라는 용어가 요즘 더 널리 쓰이게 되었다. 시류에 따라 영어권에서는 용어 자체가 바뀌었으나 우리말은 그대로 남아 있다. Health technology를 그대로 번역한 건강기술이라는 표현은 거의 쓰지 않는다. 현 시점에서 (health technology) = (의료기술)은 약간 어색한 등식이다.

그러면 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는 다음 중 어느 것에 해당할까?

  1. 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 new + {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
  2. 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 { new health technology } + assessment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문서의 맥락에서 본다면 (2)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이 거의 확실하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신의료기술평가에 관여하는 기관에서 발간하는 모든 안내서가 그렇게 기술하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링크)에서는 아예 제목에 '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먼저 생겨난 HTA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2)의 의미로 활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위에서 연달아 사용한 4개의 단어 중 technology assessment는 보편적으로 쓰이는 어구로서 서로 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도 (2)와 같이 {...technology}와 assessment를 끊어서 사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음을 보여준다.

새로 개발된 의료기술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보편적 진료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신의료기술평가 제도이다. 여기에는 '체계적 문헌고찰'이라는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근본 목적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국민건강보험 급여대상이 될 수준의 의료기술을 걸러내기 위함이다. 결과적으로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의료기술은 비급여로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겠으나, 의료법 제53조(신의료기술의 평가)제1조에서 '국민건강을 보호하고...'라는 신의료기술평가의 목적과 그런대로 잘 부합한다. 그런데 통제 위주의 현 정책 때문에 바로 뒤에 이어 나오는 '의료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하여'라는 목적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신의료기술평가의 법적 근거.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웹사이트의 「의료법」. 빨간색 밑줄친 부분 바로 다음에 나오는 '대통령령' 링크를 클릭하면 "조문에서 위임한 사항을 규정한 하위법령이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왜?


물론 안전성과 유효성을 갖춘 것만으로 요양급여 대상이 되지는 않으며, 경제성 평가(대체 가능성과 비용효과성), 급여 적정성 등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국외 문서에서 nHTA는 거의 전적으로 (1)의 의미로 쓰이는 것 같았다. 'HTA의 새로운 방법' 정도의 의미로 보인다. 외국에서도 우리나라의 nHTA와 동일한 목적의 평가를 수행한다. HTA의 목표는 주로 정책과 관련된 의사 결정 과정에 도움을 줄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의사 결정 중에서 보험 급여 여부를 따지는 것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나 100%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를 부르는 이름은 여전히 HTA이지, nHTA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HTA란 개념을 들여와서 새로 개발된 의료기술을 평가하는 것으로 사용하면서 의료기술평가(nHTA)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이런 맥락을 모르고 이 단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그래? 그러면 신의료기술은 뭔데?"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러한 의문은 신의료기술이라는 개념이 먼저 생기고 나서 이를 평가하는 것이 신의료기술평가라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들기 때문이다. 국어의 구조 역시 이러한 의문을 갖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만든다. 신의료기술평가라는 단어 자체도 모호함을 내포하고 있다. 신의료기술을 평가하겠다는 것인지(즉 평가 대상), 신의료기술을 가려내기 위해 평가를 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시 말해서 '신의료기술'은 (1) 평가의 대상인가, 또는 (2) 평가 결과 중의 하나인가? 의료법 제53조에서는 (1)의 의미로 쓰였고, 이를 근거로 만들어진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 제2조에서는 (1)과 (2)의 의미가 혼재한다. 그러나 많은 안내자료(특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안내하는 자료)에서는 (2)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국내 연구진 발표 논문에서도 (2)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번 해 보겠다. 신의료기술이란, 신의료기술평가를 통해서 신의료기술로 판정된 신의료기술이다. 단지 우리나라에서만...

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1960-70년대에 국외에서 '의료기술평가', 그리고 이보다 앞서 '기술평가'라는 개념이 먼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개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다소 독특하게 신의료기술평가라는 신조어로 바뀌면서 보건의료시스템(특히 건강보험 요양급여)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한 제도의 명칭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나처럼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은 '신의료기술'의 정의를 찾아 헤매는 답 없는 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신의료기술평가(nHTA)는 HTA의 매우 특별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new' HTA라고 볼 수도 있다. 왜 특별할까?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의료기관에서 이를 사용하고 환자에게 돈을 받지 못하므로. 이를 임의로 사용하면 최악의 경우 처벌을 받는, 규제의 회색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 평가제도의 원래 의도는 건강보험 요양급여가 될 만한 수준의 안전성·유효성을 갖춘 'new health technology'를 가려내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이 새로운 의료기술이 등장하여 임상현장에 들어오는 데에는 걸림돌이 된다.

2002년 8월 보건복지부에서 「신의료기술등의 결정 및 조정기준 개정」을 발표한 일이 있다(링크). 여기에서 사용한 신의료기술이라는 용어는 아직 보험급여하고 있지 않은 새로운 의료기술(미결정 행위 등)를 의미한다. 의료법에 근거하여 현재 NECA가 주관하는 신의료기술평가 제도에서 일컫는 신의료기술과는 의미가 다르다. 이에 대하여 임철희 변호사는 대한내과학회지 제97권 제2호에 발표한 논문 "신의료기술평가 전의 신의료기술은 비급여대상진료이다"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2007년 도입된 의료법의 "신의료기술"이라는 용어는 2002년 1월 1일 도입되었다가 지금은 사라진 국민건강보험법령상의 "신의료기술"이란 용어와 전혀 관계없었음을 지적해 둔다.

기술 관련 용어는 전부 영어권에서 먼저 그 개념이 정립되고 이를 제대로 국문으로 번역해야 정당성을 갖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라면 국외의 보편적인 사용례를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이 글은 앞으로 좀 더 조사를 통해서 살을 찌워 나갈 예정이다. 계속 분량이 증가하고 있다!


 


2023년 5월 30일 화요일

6LQ8 SE amplifier의 개선 - 상판 바꾸기

6LQ8의 복합관(triode + pentode) 기능을 전부 이용하여 단 하나의 관으로 스피커를 구동하게 만든 소출력 싱글 엔디드 앰플리파이어를 하나 갖고 있다. 2021년에 만든 것으로 기억한다.



작동 상태에는 별다른 불만을 갖고 있지 않으나. 전반적으로 앰프가 너무 높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품의 배치를 최적화하면 백색 플라스틱 상자 안에 PCB와 출력 트랜스포머를 넣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아 보였다. 이렇게 하면 중간층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판을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

앰프를 해체하고 조금씩 작업을 시작하였다. 히터 전원 공급용 정류회로를 수정하여 지나치게 넓게 자리를 잡고 있는 부품의 위치를 옮긴 뒤 만능기판을 일부 잘라내어 옆으로 세워서 고정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크릴판에 작은 구멍을 4개 뚫은 뒤 서포트를 달아서 PCB를 고정하면 된다. 좌우의 남는 공간을 적절하게 채우는 것이 숙제로 남았다.

이 작업이 끝나면, 다음 과제는 Sanken SI-1525HD hybrid IC를 이용한 앰프의 케이스를 전체적으로 보수하는 일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2023년 5월 27일 토요일

나의 궁둥이를 30년 넘게 괴롭혔던 것은 무엇일까

정확한 해답은 다음 주 화요일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 것이다. 전부 절제해 버렸으니 더 이상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 모낭에 세균이 감염이 되어 노란 고름이 잡히면 모낭염(folliculitis)이라고 하는데, 모낭염이 심해지고 커져서 결절(비정상적으로 커진 덩어리)이 생긴 것을 종기라고 한다. 출처
  • 표피낭종은 모낭의 입구가 피부에 막히거나, 표피 부위가 다양한 원인에 의해 피부 안쪽으로 들어간 후 증식하면서 낭종의 벽을 형성하여 발병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낭종의 내부는 벽에서 만들어진 케라틴이라는 물질로 채워지게 됩니다. 출처

표피낭종(epidermal cyst 또는 epidermoid cyst)을 피지낭종(sebaceous cyst)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출처). 아마도 주머니 모양의 것에 피지가 들어차는 일이 흔하기 때문일 것이다. 표피낭종은 집에서 고약한 치즈 냄새가 나는 기름 같은 것을 아무리 손으로 짜 내어도 내부의 주머니가 없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외과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올바른 치료 방법이라고 한다. 엉덩이의 피지낭종을 제거한 사례(링크)를 하나 소개한다. 집도한 의사 선생님께서는 '월척'이라 표현하였다.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으니 용기가 없으면 클릭하지 말 것. 사실 유튜브에는 이보다 더 심한 수술 사례도 얼마든지 나온다. 피부 속에 들어 차 있는 그 무엇인가를 짜서 꺼내는 영상을 보면서 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나의 오른쪽 궁둥이에도 같이 데리고 살기에는 불편한 '덩어리'가 하나 있었다.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제 외과의원에 가서 제거를 하는 간단한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끔씩 빨갛게 부풀어 오르면서 아프고, 짜려고 노력을 해도 나오는 것은 없고, 고약을 발라 두어도 쉽게 낫지가 않는 상태로 수십 년을 그냥 두고 참아 왔다. 특히 불편한 점은 딱딱한 바닥이나 의자에 앉으려고 하면 이 덩어리가 바닥과 궁둥뼈(좌골, ischium) 사이에 눌리면서 '억' 소리가 나게 아플 때가 많았다. 이는 특별히 부풀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러하였다.

도저히 이런 상태로 살기는 너무나 불편하여 근처의 외과를 찾아서 수술로 제거하기로 하였다. 흔한 표피낭종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초음파 검사로는 특별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초음파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만지면 딱딱하고 아픈 것은 무엇인가? 다른 가능성에 관한 설명을 들었으나 병명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제거하기로 하고 수술대 위에 누웠다. 마취 주사가 생각보다 꽤 따가웠지만 수술 하는 동안은 아픔을 느낄 수 없었다.

수술을 마치고 제거한 조직을 보여 주었다. 주머니 모양의 것은 없었고, 딱딱한 조직을 잘게 잘라 놓은 것만이 거즈 위에 남아 있었다.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수술은 어제 낮에 받았고, 연휴가 끼어 있어서 4일 후에 다시 병원에 오라고 하였다. 이틀 정도는 물이 닿지 않게 주의를 하라고 하였으나, 다음 내원하기 전까지 집에서 드레싱을 바꾸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꿰맨 상처는 거즈 드레싱이 더 낫다고 한다. 그리고 봉합한 뒤 삼사일이 지나 피가 나지 않는다면 흐르는 물에 비누로 씻고 말린 뒤 소독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때부터는 물이 닿으면 큰일 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값비싼 습윤 드레싱은 찰과상과 같이 삼출물이 많이 배어 나오는 상처를 흉터 없이 낫게 하는데 적합하다. 어차피 눈에 보이는 곳도 아니라서 흉터가 남아도 상관은 없다. 

피지 분비가 남들보다 많은 체질이라서 그런지 몸 곳곳을 뒤지면 칼을 대서 제거하고 싶은 덩어리가 만져지는 곳이 있다. 수십 년 동안 아무런 증세를 보이지 않으면서 나와 평화로운 공존을 하는 것도 있고, 건드리면 성을 내는 것도 있다. 이런 것들을 전부 칼을 대서 없애기도 힘든 노릇이다. 왜냐하면 돈과 시간이 드니까! 살갗에 작게 거치적거리는 것이 있다고 하여 함부로 짜거나 손톱으로 잡아 뜯지 말아야 되겠다. 잘못하면 덧나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되는 일이 생긴다.

요즘은 주변에 피부과가 많이 있지만 이런 질환을 수술로 제거해 주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제대로 치료를 받고 싶다면 외과를 찾을 것.


2023년 6월 8일 업데이트

어제 병원을 찾아 실밥을 뽑았다. 조직검사의 결과는 지루성 각화증이라고 한다. 엉덩이에 지루성 각화증이라니? 의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다. 

2023년 5월 25일 목요일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혁신이라는 낱말

혁신(革新)은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아주 새롭게 함'을 뜻하는 낱말이다. 영단어로는 innovation인데, 가끔 breakthrough(돌파구)를 혁신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FDA에서 운영하는 Breakthrough Devices Program(혁신적 의료기기 프로그램)이 그러하다. 어떤 뉴스에서는 이를 획기적 의료기기 프로그램으로 번역해 놓기도 했다. Emerging technology(신흥 기술)도 이러한 부류의 기술에 넣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근본적으로 생물학자이고, 세부적으로는 분자생물학을 전공하였다. 직장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미생물 유전체학으로 자리를 잡은 상태이다. 예기치 않게 보건의료 관련 법·제도를 공부하게 되면서 혁신적인 의료기술이 어떻게 의료시장에 자리를 잡고 그 비용을 어떤 방식으로 지불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선 혁신의료기기에 관해서 살펴보자. 우리가 어떤 용어에 대해 떠올리는 의미와, 법령에서 정의한 것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 」 제1조제3호에서 혁신의료기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혁신의료기기"란 「의료기기법」 제2조제1항에 따른 의료기기 중 정보통신기술, 생명공학기술, 로봇기술 등 기술집약도가 높고 혁신 속도가 빠른 분야의 첨단 기술의 적용이나 사용방법의 개선 등을 통하여 기존의 의료기기나 치료법에 비하여 안전성·유효성을 현저히 개선하였거나 개선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료기기로서 제21조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으로부터 지정을 받은 의료기기를 뜻한다.

법을 근거로 식약처장으로부터 지정을 받은 의료기기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법에 따라 혁신의료기기와 그렇지 않은 것은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 따라서 혁신성을 갖춘 의료기기 전반을 지칭하려면 다른 용어를 써야만 한다. 뒤에서 설명할 신의료기술도 마찬가지이다. 법령에서 어떤 의미를 제한하여 사용하는 신의료기술과, 새롭게 개발된 의료기술을 뜻하는 신의료기술을 구별하기가 어렵다. 좋은 의미의 단어를 법령에서 다 갖다 써버려서 난처한 상황을 만들 것이 아니라, 미국의 510(K), PMA(premarket approval)와 같이 약호를 잘 만들어서 새로 만든 용어의 뒤에 붙인다면 법령에서 정의한 의미를 정확히 사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정된 혁신의료기기에 관한 사항은 고시가 아니라 공고 형태로 일반에 공개된다(2023년 5월 19일자 공고). 소프트웨어의 형태를 띤 것이 압도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혁신의료기술은 무엇인가? 혁신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의료기술(의사의 행위에 중점을 둔 표현)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신의료기술평가 제도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의료기술을 의료기관에서 사용하고 환자에게 돈을 받으려면(이에 더하여 광고를 하려면) 몇 가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새로 도입된(수입 또는 국내 개발) 의료기기에 대한 식약처 허가를 받고 이것의 활용 행위를 적법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의료기술은 먼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기존 요양급여목록에 등재된 행위와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판정한다. 기존 것과 같으면 의료기관에서 기존 수가대로 쓰면 되고, 기존 것과 다르면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에서 신의료기술평가라는 것을 받아서 신청 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한다. 판단 근거는 신청자가 제출한 자료가 아니라, NECA에서 전세계의 논문을 탐색하여 만들어낸다. 충분한 논문이 쌓일 수준의 기술이라면 신의료기술이 아니라 이미 '헌' 의료기술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국민건강보험은 효과가 입증되고 안전한 의료를 전국민 대상으로 베풀고 그 비용을 부담하는 취지의 제도이므로, 단지 가능성만을 가지고서 보험 대상으로 삼아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안전성은 확보되었지만 잠재성이 있는 의료기술을 의료현장에서 먼저 정해진 기간 동안 비급여 또는 선별급여로 사용하면서 근거 축적의 기회를 주고, 사용 기간이 끝나면 신의료기술평가를 받게 하는 중간적(혹은 예외적) 제도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혁신의료기술이다. 근거법령은 「의료법」과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이 중심이 된다. 혁신의료기술을 신청하려면 안전성은 이미 확보되어 있어야 하고, 잠재성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여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했을 때 혁신성과 잠재성은 서로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다. 여기에서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게 된다.  

혁신의료기기 지정을 받으면 병원을 대상으로 판매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 환자에게 쓰이고 비용을 받으려면 혁신의료기술평가 트랙으로 들어가야 한다. 의료기기 지정에서 말하는 혁신과, 신의료기술평가의 별도 트랙에서 말하는 혁신의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다! 더욱 헷갈리는 것은, 바로 위에서 설명한 혁신의료기술은 혁신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의료기술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는 점이다.

작년부터 혁신의료기기 통합 심사·평가 제도라는 것이 생겨나서 혁신의료기기 지정과 이의 활용을 위한 혁신의료기술 평가 과정을 빠르게 도와주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혁신이라는 낱말이 정확하지 않게, 그리고 조금씩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어서 혼란을 초래한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이미 혁신의 사전적인 의미에 대해서 논하였다. 혁신은 가능성의 단계를 넘는 일이어야 한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이미 우리 주변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데, 1950년대에 연구실로부터 그 개념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그 누구도 이를 혁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 뒤 세상을 뒤집어 놓을 잠재성을 가진 기술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몇 명 있었을 것 같다.

무릎을 탁! 치면서 읽었던 지난 3월의 히트뉴스 기사("언어의 향연? '혁신적 의료기기'는 최선이었나")의 일부를 약간 풀어서 인용해 본다. 부제는 '무수한 혁신들, 그래서 혁신이 평범해졌다'이다.

혁신적 의료기기(3월 2일에 정부가 발표한 바이오헬스 신산업 규제혁신 방안에 등장한 용어) 지원 목적은 융복합 기술 발전으로 개발되는 의료기기를 통한 의료 질 개선과 의료비 절감이다. 이같은 면에서 기존 혁신 의료기기와 혁신 의료기술을 아우르고, 나아가 확장하는 혁신적 의료기기라는 용어는 재정적 한계라는 점과 부딪혀 시장진출 대기실만 넓히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2023년 5월 21일 일요일

[6LQ8-6П6С SE amplifier 제작] 회로 수정, 그리고 잡음 잡기

진공관 앰프 자작과 관련하여 늘 많은 도움을 받는 제이앨범 밴드 매니저의 조언에 따라서 다소 엉뚱한 값의 저항을 붙여 놓았던 것을 고쳐 놓았다. 이것이 마지막 버전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언제 또 바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DC 265V는 그런 값이 나오도록 특별히 설계한 것이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50VA급 220V:220V 절연트랜스포머(아세아전원 AT1OD50-2202S, 제품 링크, 구입 관련 글 링크)에 네이버 카페 '미니진공관 앰프 제작'의 콘골트(손제호) 님이 제공한 리플필터(회로도 및 정보 링크)를 연결했을 때 나오는 전압 그대로의 상태이다. 오늘 수정한 회로에 의하여 결과적으로 6V6GT의 표준적인 동작(캐소드-플레이트 간 250V)에 잘 맞는 상태가 되었다.


출력관 스크린 그리드 스토퍼 저항(5W 시멘트 저항)을 6K8에서 470R로 바꾸었고(1~2K면 적당하다고 한다), NFB 적용 포인트와 그라운드 사이의 저항(R5: 200R)의 양단을 단락시켜서 나중에 네거티브 피드백을 걸 때 잘라버리기로 했다.

수정 전 후의 중요한 전압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앞이 수정 전, 뒤가 수정 후이다. '~'로 표시한 것은 좌우 채널의 값이 다름을 의미한다.

  • 초단(6LQ8 삼극관부) 캐소드-플레이트: 93~96V ➝ 큰 변화 없음
  • 초단(6LQ8 삼극관부) 바이어스: -2.3V ➝ -2~-2.1V
  • 출력관(6П6С) 캐소드-플레이트: ~250V ➝ 큰 변화 없음
  • 출력관(6П6С) 캐소드-스크린 그리드: ~231V ➝ ~250V
  • 출력관(6П6С) 바이어스: -11~-12V ➝ -12.5~-13.1V

소리전자의 돌쇠 앰프 회로도에 표시된 전압과 비교해 보면 내가 만든 앰프의 6П6С(6P6S, 6V6GT와 동등)는 정상적인 범위에서 동작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6LQ8은? 잘 모르겠다. 제이앨범에서 설계한 6LQ8 SE amp 초단 회로와 비교하면 플레이트 전압은 더 높고, 바이어스도 더 깊게 걸린 상태이다. 그렇다 해도 maximum rating과 비교하면 훨씬 낮은 수준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늘 수정 작업에서 거둔 의외의 성과는 잡음을 거의 제로 수준으로 낮추게 되었다는 점이다. 상판 삼아서 씌운 알루미늄 타공판에 손을 댔더니 '징~'하는 잡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타공판을 접지와 연결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륨 폿의 본체는 신호선의 그라운드선에 납땜을 해 놓았으므로, 전면 삼각형 금속판도 접지가 된 상태이다. 테스트 삼아서 타공판과 삼각형 금속판을 악어클립 케이블로 연결해 보았다.


최종적으로는 이렇게 마무리하였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잡음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알루미늄 타공판이 주변에서 날아드는 전자기파를 효과적으로 차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전자기파가 위에서만 날아드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효과가 좋았을까? 그것은 초단관의 배치를 바꾸어서 그런 것 같다.

처음에는 초단관 PCB를 바닥에 고정하였었다. 그러나 나무 상자가 꽤 깊어서 작업을 하기가 불편하여 전면 나무판의 위쪽 가까이에 90도 돌려 붙이는 것으로 고정 방법을 바꾸었다. 따라서 타공판과 6LQ8이 매우 가깝게, 그것도 나란한 방향으로 위치하게 되어 차폐 효과가 극대화된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려 보았다. 외부에서 방사되는 노이즈는 거의 대부분 초단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혹 진공관에 금속 원통 모양의 실드를 씌우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마이크로포닉 노이즈가 심한 진공관에 씌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늘 발견한 잡음 제거 방법을 응용할 방법이 생긴 것 같다. 즉 가공하기 쉬운 알루미늄 타공판을 접어서 초단관 또는 PCB 전체에 씌울 상자형의 커버를 만들어서 접지와 연결을 하면 될 것 아닌가? 이런 실드는 트랜스포머에만 씌우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금속으로 견고한 섀시를 만든다 해도 거기에 구멍을 뚫고 소켓을 고정하여 진공관을 노출한다면 주변에서 방사되는 전기적 노이즈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진공관 앰프는 이렇게 사용해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6LQ8과 같이 Gm(상호 컨덕턴스)가 높은 非 오디오용 관은 이렇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

빨갛게 빛나는 진공관을 눈으로 즐기는 것이 감성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잡음이 없는 음악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므로 이를 실드판 속에 숨기는 것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진공관 앰프 자작은 참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만약 이번 앰프 자작을 위해 상판을 CAD로 가공했더라면? 전체 제작비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겠지만, 나는 여전히 잡음과 씨름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케이스에 비용을 적게 들이는 쪽으로 즉흥적인 결정을 내림으로써 오히려 여러가지 자유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고, 예기치 않게 좋은 결실을 맺게 되었다.

지금까지 만든 그 어떤 진공관 앰프보다 소리가 좋고 풍성하게 느껴진다. 기분 탓이겠지...

남은 숙제는 6LQ8을 사용한 전압증폭회로가 제대로 만들어진 것인지 동작 해석을 하는 것이다. 다음의 웹사이트가 도움이 될 것이다. 늘 고마운 마음으로 방문하는 곳이다.

최종적으로는 신호원과 오실로스코프를 이용하여 평가를 하는 것이 옳은데, 그러려면 또 장비가 필요하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초저가형 오실로스코프를 하나 구입해야 할까?

망가진 출력관은 책상 위 장식품이 되었다. 상자 겉면에 쓰인 키릴문자 РАДИО는 RADIO라는 뜻이다. 정식 명칭인 라디오수신기(radio receiver)는 러시아어로 радиоприёмник라고 쓴다.




2023년 5월 18일 목요일

[6LQ8-6П6С SE amplifier 제작] 완성을 향하여...

6LQ8 SE amplifier board를 개조하여 만든 드라이버 스테이지 PCB의 양 채널에 대한 패턴 수정을 모두 마쳤다. 변경 내역은 어제 쓴 글(링크)에 설명하였다. 내일 망가친 출력관을 대체할 새 6П6С가 오면 즉시 꽂아서 사용할 수 있도록 나머지 배선도 마무리하였다.




가장 최근의 부품 주문(IC114)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신호용 실드선을 고르는 일이었다. 카나레 또는 벨덴과 같이 유명한 고급 선재를 소개받기도 하였지만 기기 내부에서 쓸 신호선은 튼튼하고 두꺼워야 할 필요가 없다. 한참의 조사 끝에 남양전선의 UL 2547 2C 실드 와이어(AWG 28, 링크)을 구입하였다. 다시는 저가 RCA 인터케이블을 잘라서 쓰는 일은 없으리라!

UL(Underwriter's Laboratory)는 미국 최초의 안전 규격 개발 기관이자 인증 회사라고 한다. UL style 2547의 정의는 Multi-conductor cable using non-integral jacket이다. 내부에 들어가는 코어선의 수와 AWG에는 차이가 있다. 물건을 받고 보니 코어선이 꽤 가늘어서 작업성이 좋지는 않았다. 앞으로는 AWG 26으로 된 UL 2547 실드 와이어를 사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참, AWG는 원래 단선에 대한 규격 아니던가? AWG 28은 단선 도체부의 직경 0.0126인치(0.321 mm)에 해당한다. 연선의 규격은 단면적을 mm2로 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한참을 사용했던 10색 절연전선이 다 떨어져서 이번에 약간을 더 구입했는데, 하나는 12가닥의 구리선이 PCV 외피에 싸인 0.3 mm2 규격이고 좀 더 두꺼운 것은 20가닥의 구리선이 들어있는 0.5 mm2 규격이다. 허용 전류는 각각 2.72 A 및 4.82 A 정도가 된다. 경험이 더 쌓이면 전선을 보기만 해도 대략적인 규격과 허용 전류를 짐작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요즘은 다이소에서도 파는 와이어 스트리퍼. 이것 외에도 압착 스트리퍼 Lobster FK3을 하나 더 갖고 있다.


앰프 제작에 몰두하는 동안 전기기타 연습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미안하다, 기타야!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주문한 진공관이 드디어 세관을 통과하다

알리익스프레스를 통한 마지막 물건 주문은 기록을 팢아보니 정확히 1년 전(2022년 5월 6일)이었다. 5월 10일에 평택항(PTK)으로 추정되는 중간 경유지에 들어온 진공관이 드디어 세관을 통과하여 국내 배송 단계에 접어들었다. 국내에 들어온 상태이기 때문에 알리익스프레스의 13자리 트래킹 번호를 인터넷우체국 국내우편(등기/소포) 배송조회에 넣으면 기본정보가 보인다.

품목 설명: 완전히 새로운 소련 튜브, 6N6C, 6P6P, 6V6, VT-107, 6V6GT, 6N2, 6H, 2n, 6N1


물품이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고 있어서 배송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불평하기 쉽지만, 따지고 보면 주문 후 아직 12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내일이나 모레 배송이 완료될 것이다. 국외에서 직접 구입한 물건이 표준 배송으로 2주 만에 도착하였다면 그렇게 느린 것도 아니다.



내일 저녁이 되면 자작 진공관 앰프의 좌우 채널로부터 나오는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5월 17일 수요일

[6LQ8-6П6С SE amplifier 제작] 나는 잡음 제조기 또는 발진기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제작한 진공관 싱글 엔디드 앰프에 소스 기기와 스피커를 연결한 뒤 귀를 기울여 보았다. 엄청난 잡음이 들린다. 전원에서 유입되는 험과는 양상이 다소 다르다. 지금까지 만든 앰프가 거의 항상 그랬듯이, 볼륨 포텐셔미터의 각도에 따라서 잡음이 달라진다. 최소나 최대에서는 잡음이 들리지 않지만, 중간 영역에서는 잡음이 너무나 심해서 도저히 들어 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볼륨 폿 없이 파워 앰프처럼 사용하되, 소스 기기와 자작 앰프 사이에 게인은 없이 볼륨 조절만 가능한 버퍼 프리앰플리파이어를 넣으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번에도 하게 되었다.

제작 초기에는 그저 소리가 난다는 사실에만 열광을 하느라 소리의 질에 대해서는 신경을 덜 쓰고 있었다. 주변 소음이 심해서 잡음을 쉽게 감지하지 못한 탓도 있다. 며칠 간을 좌절감에 휩싸여 있었다. 재능도, 해결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여 진공관 앰프 자작에서 이제 손을 떼어야 되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 포기하기에는 그동안 쏟은 정성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검색을 통해 문제를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내가 처음 설계(?)한 회로는 단순하기 그지없다. 쓰이는 부품이 적은 기존의 진공관 싱글 엔디드 앰프의 회로도를 따라서 하면 대충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사실 오실로스코프가 없다면 잡음을 정확하게 진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Grid stop resistor를 사용하여 parasitic disdortion을 제거하는 동영상을 소개한다. 어지럽게 지나다니는 배선을 보면, 내가 만든 앰프가 그렇게 열악하지만은 않다는 위로를 하게 된다.



Grid stopper resistor란 무엇인가? The Valve Wizard('Grid Stopper Resistor and Miller Capacitance') Aijen Amps('Grid Resistors - Why are they used?')를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It helps prevent high frequency parasitic oscillation in the tube itself
  • It helps prevent radio frequencies from getting into the input stage, where they can be rectified and lowpass filtered (AM detection) and become audible at the amplifier output
  • It can limit grid current when the tube is driven into the positive grid region, which helps in preventing "blocking" distortion

그리드 스토퍼 저항의 위치는 그리드 리크 저항과 그리드 사이에 두어야 한다. 만약 그리드 리크 저항보다 앞에 있으면, 신호를 감쇠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소켓 핀에 직접 납땜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한다. 나도 이러한 원칙에 따라서 6LQ8 SE amp board를 개조하였다. 일단 한쪽 채널만 수정하여 그 효과를 보기로 했다. 사용할 저항의 수치는 딱 이래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전단에 볼륨 폿이 있는 경우 그리드 리크 저항을 보통 생략하지만, 나는 470K를 넣기로 했다. 볼륨 폿의 슬라이더 접촉이 나빠서 플로팅 상태가 되면 진공관은 그리드에 아무런 음전압이 걸리지 않게 되어 과다한 전류가 흐르게 된다. 그리드 스토퍼 저항은 47K로 결정하였다. 



효과는 매우 놀라웠다. 비로소 들어 줄만한 수준으로 잡음이 대폭 감소하였다. 지금은 가조립 상태라서 볼륨 조정용 폿과 PCB 사이를 매우 긴 일반 와이어(실드선 아님)으로 연결한 상태이다. 따라서 이를 짧게 다듬으면 남은 잡음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수정한 회로도. R1과 R2가 오늘 추가되었다. R6과 R9도 곧 자리를 잡을 것이다. 갖고 있는 저항을 쓰기 위하여 각각 10K와 6.8K로 선택하였다.

필요한 부품을 다 주문하여 오늘 받은 물건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스피커 연결용 바나나 플러그를 서로 다른 모양으로 주문하고 말았다. 코로나로 앓고 있는 아내를 세심하게 돌보는 것도 잊은 채 며칠 동안을 이 문제에만 매달린 나 자신의 한심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아내도 나 때문에 코로나에 걸린 것 아니겠는가?

구글에서 자작 진공관 앰프의 문제 해결에 관한 외국쪽 사이트의 글을 찾아보면 대부분 전기 기타용 앰프에 관한 것이 나온다. 전기 기타란 원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왜곡한 소리를 즐기는 악기이다. 몽글몽글하다고 표현하는 부드러운 오버드라이브 톤을 만들기에는 진공관이라는 소자가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전력 소모도 많고, 고전압을 쓰기에 위험하고, 원음의 재생이라는 측면에서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는 소자인 진공관을 사용하는 앰프(이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으나)가 음악 감상용으로 아직도 유리하다고 믿는 것은 고집일지도 모른다. 실은 만드는 재미와 눈으로 빨간 불빛을 바라보는 감성이 더 크게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기타용 앰프를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 볼 것을 고려해 보자.

2023년 5월 15일 월요일

코로나 후유증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약간의 몽롱함. 이는 어쩌면 아직 먹고 있는 약 때문일 수도 있다. 동네 병원에서는 남자 환자의 경우 약을 4일치 처방해 준다고 하는데, 나는 지난 주말에 증세가 다시시작되는 것 같아서 3일치를 더 받아서 아직 먹는 중이다.

그리고 잔기침. 대화를 하는데 아무래도 불편하다. 계속 회의 일정이 잡혀 있으니 이를 어쩐다?

코로나를 앓는 동안 조립한 진공관 앰프는 귀 기울여서 소리를 들어 본 결과 '잡음 생성기'를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좌절감'이 밀려온다. 전원에서 유발되는 일상적인 험(hum)과는 약간 양상이 다르다. 그라운드 처리의 문제인가? 과연 개선이 가능할 것인지 나도 자신할 수가 없다. 

2023년 5월 13일 토요일

[6LQ8-6П6С SE amplifier 제작] 끝이 보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에 걸렸다는 것은 개인 위생에 주의하고 잠시 몸을 쉬라는 의미일 것이다. 출근도 하지 못하는 이 소중한 휴식 시간 동안 나는 매일같이 택배로 들이닥치는 부품을 맞이하고 부지런히 납땜질, 톱질, 드릴질을 하였다. 고열이나 전신 증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이 정도의 일을 하는 데에는 부담이 없었다. 그 사이마다 짬을 내어 Bergey's Manual of Systematics of Archaea and Bacteria에 투고한 챕터의 리비전 작업을 하였고, 더욱 미안한 일은 아내에게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을 옮기고 말았다는 것이다. 파견 근무를 하면서 방 하나짜리 오피스텔에 같이 살고 있으니 제대로 격리를 할 수가 없다. 아내가 회복되는 동안 내가 다시 감염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터이니 앞으로 며칠 동안은 내가 집안일을 도와야 한다.

Bergeys' Manual에 2018-2019년 무렵에 투고했던 챕터 원고는 무슨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몇 년이나 제대로 리뷰가 되지 않고 있다가 올해 들어서 갑자기 속도가 붙었다. 그 사이에 새로운 genome이 계속 등록되었으니 이를 반영하느라 분석을 거의 완전히 새로 실시하였다. 그렇게 보낸 revision이 벌써 두 번째이니 그 정성에 감복해서라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제대로 게재 승인이 나면 이에 관한 스토리를 써야 되겠다. ComplexHeatmap 패키지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느라 새로운 기능을 꽤 많이 익혔었는데,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잘 정리해 두어야 될 것 같다(2023년 2월에 쓴 글 링크).

닥스훈트가 그려진 나무 상자에 진공관 회로를 꾸며 넣기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오늘 드디어 완성에 가까운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음의 사진은 5월 10일부터 작업한 것을 찍은 것이다.



가구 DIY용 삼각 평철에 음량조절용 가변저항과 네온램프를 달기로 했다. 닥스훈트가 네온램프의 냄새를맡는 것처럼 보인다. 전원 스위치를 고정한 구멍은 매우 거칠게 가공이 되었다.

재활용 전선을 많이 사용했더니 색상이 다양하지 않다. 나중에 보수를 하려면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사전에 몇 번이고 그림으로 그려 보고, 배선을 하면서도 계속 확인하였다.

오늘 작업은 여기까지.


RCA 단자와 가변저항을 연결하는 최종 마무리 작업은 망가진 출력관을 대체하기 위해 새로 주문한 진공관이 배송된 뒤에 하기 위하여 남겨 두었다. 진공관의 배송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YNT는 옌타이(중국 산둥성 동북부의 항구도시), PTK는 평택항이라는 설이 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국내에는 들어왔지만 아직 세관을 통과하지는 못한 상태라고 이해하자.

Parcel status:Delivering
nation:Mainland China -> South Korea

2023-05-10 12:00:00    -PTK-Linehaul Arrival:Arrived PTK
2023-05-09 20:00:00    -YNT-Linehaul Departure
2023-05-09 17:00:00    Leaving from departure country/region
2023-05-09 13:38:55    Export clearance success
2023-05-09 07:53:29    Arrived at departure transport hub
2023-05-06 21:39:11    Outbound in sorting center
2023-05-06 21:12:36    Inbound in sorting center
2023-05-06 20:42:36    Accepted by carr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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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작업에서는 한쪽 채널에서 소리가 잘 나는 것까지 확인하였다. 가조립을 한번 했었기 때문에 실수는 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어떤 싱글 앰프를 만들더라도 첫 연결에 소리를 잘 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번 제작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부품은 IC114에서 구입하였다. 20 mm 유리관 퓨즈는 1 암페어 규격의 것이 가장 적당한데, IC114에서는 유독 이 제품을 200개 단위로만 팔고 있어서 0.5 A와 1.5 A를 같이 소량으로 구입하여 보았다. 0.5 A 퓨즈는 어제 테스트한 결과 전원을 넣기가 무섭게 끊어져 버렸다. 혹시 배선에 실수를 하여 단락이 일어난 것은 아닌지 몇 차례나 확인을 하였다.

진공관 히터는 서로 직렬로 연결하여 12 V 5 A 어댑터로 작동하였다. 어댑터가 너무 커서 플라스틱 케이스를 전부 벗겨내야만 했다. 어댑터는 별도의 3구 AC 파워 케이블을 꽂아서 쓰는 형태이다. 파워 케이블이 차지하는 공간도 상당하므로, 어댑터쪽 소켓의 접접에 굵은 전선을 직접 납땜한 뒤 열수축 튜브로 마감하였다.

예전에 43 오극관 싱글 앰프를 만들 때에는 히터 점화용 어댑터에서 유도되는 잡음이 상당하여 앰프 내에서 위치를 잡느라 무척 애를 먹었었다. 이번에 사용한 어댑터는 용량도 꽤 크고 잡음을 차폐하기 위한 방책도 마련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게도 꽤 나간다.

이 어댑터의 출력쪽 마이너스극과 220  V 접지는 내부적으로 서로 연결된 상태이다. 히터 전원의 마이너스극과 앰프의 마이너스는 연결이 반드시 되어야만 하는데, 이것이 전원부의 안전 접지에 연결될 경우 혹시 잡음이 유도되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이번 작품은 Corona Amplifier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앞으로 일주일 안에 어떻게든 완성이 될 것이고, 공구와 남은 부품도 슬슬 정리를 해야 되겠다. 대전에서 납땜인두를 들고 서울에 왔을 때에는 과연 이번 파견 근무 기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던 것을 생각하면, 의미 있는 작품을 하나는 남기게 되었다.


2023년 5월 14일 업데이트

최종적인 앰프의 외관은 다음과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임시로 배선했던 네온 램프를 제대로 납땜하여 연결하였다. 네온 램프는 LED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2023년 5월 10일 수요일

나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보통 코로나19(coronavirus disease 19, COVID-19)라고 부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질환의 명칭이고, 이를 일으키는 병원체는 SARS-CoV-2이다. SARS는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을, CoV는 coronavirus를 의미한다. 예전에는 '신종'이라는 접두사를 붙였으나 WHO에서 2020년에 공식 명칭을 COVID-19로 확정하였다.

나는 바이러스 전문가는 아니지만, 박테리아 게놈을 다루던 경험으로 SARS-CoV-2를 검출하기 위한 PCR 프라이머 설계에 관련한 논문을 작년 Genes Genomics에 게재한 일이 있다(PubMed 링크). 약 23만 건이 넘는 바이러스 게놈을 모아서 전처리한 뒤 conserved region을 검출하고, 이로부터 PCR 프라이머를 설계하여 실험으로 입증한 사례이다.

Identification of conserved regions from 230,163 SARS-CoV-2 genomes and their use in diagnostic PCR primer design 

논문에 찍힌 날짜를 보니 꼭 1년 전 5월 3일에 게재 승인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WHO에서는 지난 5월 5일, 3년 4개월 만에 코로나19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PHEIC, 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을 해제를 선언하였다. 바로 어제(5월 9일) 내가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링크)은 '코로나19 팬데믹 굴레에서 벗어나 곧 예전의 일상을 찾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는 글로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기고문이 공개되기 하루 전(5월 8일)에 나는 이런 선물을 받고 말았다. 허허허...



목요일부터 목이 약간 칼칼하면서 감기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열도 별로 나지 않고 사지가 쑤시거나 오한이 들지도 않아서 COVID-19는 아닐 것으로 생각을 하였다. 타이레놀과 쌍화탕으로 며칠 버텨 보았으니 보통의 감기와 다르게 이틀 이상 증세가 지속되는 것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서 토요일에 개인용 신속항원검사를 해 보았으나 음성이었다. 그러다가 일요일이 되니 목이 몹시 아프기 시작하였다. 약국에서 인후통 전용의 빨아먹는 소염진통제를 받아서 4시간 간격으로 먹어 보았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이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밤에는 잠을 거의 자지 못하였다.

월요일 아침, 그러니까 이틀 전에는 목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진단키트를 써서 검사를 해 보니 선명한 두 줄이 나왔다. 이런... 나도 드디어 코로나에 걸렸구나! 아침 8시에 문을 여는 동네 병원으로 향했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꺼지기 전에 건너가려고 뛰어 갈 수 있는 정도였으니 다른 증세는 별로 없었던 셈이다.

의료기관용 전문가 키트로 검사를 다시 하여 확진 판정을 받았다. 주사를 한 대 맞고 나흘치 약을 받아서 집에 돌아왔다. 자가격리기간은 확진일로부터 세어서 7일째 밤 12시이다. 따라서 다음 주 월요일 0시까지는 집에 머물고 있어야 한다. 확진 이틀째(어제)는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고 흉부에 약간의 묵직함(통증?)이 느껴졌다. '아, 이러다가 숨 쉬기가 어려워지면 병원에 입원해야 하고, 정말로 위중해지면 ECMO를 쓰게 되는구나...'하는 약간의 염려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오후부터 상태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어떤 경로로 코로나19에 걸렸는지는 알기 어렵다. 최근 약 두 달 동안 대중교통을 이전보다 많이 용하였고,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된 후로는 감염에 노출될 기회가 더 많았을 것이다. 

확진 사흘째인 오늘은 목소리가 많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 기침은 앓는 기간 내내 거의 나오지 않았다. 다만, 간혹 기침을 하면 기관지 안에 끈적한 가래가 많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상태이다. 가래 배출을 위해 물이나 음료를 많이 마시고 있다. 바로 곁에서 지내는 아내도 몸의 상태가 최적은 아니지만, 오늘까지도 자가진단키트로는 음성이 나오는 것을 보니 아직은 내게서 옮지는 않은 것 같다. 부디 이런 것까지 나누는 부부가 되고 싶지는 않다!

증상 발현일로부터 삼일째에 가장 심하고, 5일이 되면 좋아진다고 한다. 개인마다 편차가 있겠으나 대충 들어맞는 것 같다. 아마도 어제가 가장 증세가 심한 날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종합적으로 판단하건대 지금까지 앓았던 몸살감기와 비교하여 가장 심하게 아픈 정도에 해당하지도 않았고, 매우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초창기와 다르게 SARS-CoV-2 역시 인류와 더불어 살면서 많이 순화되어 인체를 덜 괴롭히는 쪽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운이 좋게도 코로나19를 걸리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결국은 타지 않아도 될 막차를 타고 말았다. 증세가 생각보다 심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최근 자가격리를 7일에서 5일로 단축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다가, 심지어 격리의무 해제까지 논하는 이 시점에 말이다. 

코로나 확진자 7일 격리 의무, 이르면 이달부터 전면 해제된다

확진자가 되면 일터에 나가지 못하게 되므로 아무리 아파도 이를 숨기고 진단검사를 받지 않으려는 안타까운 사연도 아직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만약 격리의무가 해제되어 권고로 그치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은 억지로 아픈 몸을 이끌고 일자리로 나오게 될 것이고, 주변 사람들은 다시 감염 위험에 노출될 것이 자명하다. 억지로라도 쉬면서 이차감염을 막을 수 있었지만, 격리의무가 해제되면 그것조차 못 하게 되기 때문이다. 요 며칠 동안 우리나라의 확진자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한다는 우려스러운 기사도 보인다(링크).  

확진자 및 가까이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씌워서 억지로 일을 하게 할 것이 아니라. 콜록거리는 사람에게는 과감하게 며칠 쉴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덜 들이는 길이 될 것이다.

2023년 5월 7일 일요일

[6LQ8-6П6С SE amplifier 제작] 전원장치 문제의 임시 해결

정류+리플 필터 보드(네이버 카페의 글 링크; 로그인 필요)의 MOSFET(2N60C)와 저항을 전부 떼어낸 뒤 시멘트 저항을 몇 개 붙여서 다단 RC Pi filter를 만들어서 소리를 들어 보았다.

만약 잡음 수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길다란 10 와트 시멘트 저항 위치에 초크코일(소리전자 '돌쇠' 기준으로 5 H/120 mA급으로 66 코어는 되어야...)을 삽입하여 표준적인 전원회로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실용적으로 큰 문제가 없을 수준으로 험이 줄어들었다. 보드 제공자인 손제호 님에게 직접 쪽지를 보내 물어보니 2N60C가 망가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대전 집에 IRF740이 몇 개 있는데 maximum rating이 2N60C보다 약간 낮은 것을 제외하면 이것으로 대체하여 사용해도 좋을 것 같다. 아직 만들지 않은 보드가 하나 더 있으니 부품을 추가로 구입하여 제대로 만들어 두면 될 것이다.

히터 전원 공급을 위한 DC 12 V 어댑터의 목을 뎅겅 끊어서 자작 앰프의 내부에 넣자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 목을 자르지 말고 커넥터 처리를 할까? 또는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보드형 SMPS을 따로 사서 앰프 내부에 넣을까? 12 V 릴레이를 써서 히터 전원 공급용 어댑터를 연결해야 주 전원이 들어오게 만들어 볼까?



마지막 아이디어는 꽤 오래전부터 생각해 오던 방법이다. 단, 앰프에 파워 케이블을 연결하고 여기에 12 V 어댑터 단자를 덧붙이는 것은 꽤 성가신 일일 수도 있어서 아직 주저하고 있다. 어댑터 연결을 위한 파워 소켓을 앰프 케이스에 붙인다면?

2023년 5월 4일 목요일

[6LQ8-6П6С SE amplifier 제작] 출력관 하나가 완전히 망가지다

8핀 원형 릴레이용 소켓을 구입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테스트 목적의 회로 구성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소켓 재질의 내열성에도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밑그림을 그려 놓고 나무 상자에 부품을 넣어 배선을 해 나갔다. 소켓을 고정하지 않은 상태로 조립 테스트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깨달았다.



전원을 넣었다. 히터가 빨갛게 달구어지고, MOSFET 리플 필터를 통해 직류 전원이 점차 공급되면서 스피커에서 무척 심한 험이 들린다. 출력관 그리드에 드라이버를 대 보니 '붕-' 하는 소리가 난다. 전력증폭회로가 작동은 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험은 어떻게든 나중에 해결이 된다 치고, 볼륨 노브를 올려 보았다. 스피커에서 소리는 난다. 그러나 음량은 생각보다 작았고, NFB가 걸리지 않아서인지 매우 거북한 소리였다. 이것도 어떻게든 해결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내 문제가 발생하였다. 한 쪽 출력관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소위 적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급히 전원을 내렸다. 몇 번이고 다시 전원을 투입했지만 마찬가지 결과였다. 거듭 확인을 해 보았으나 배선 실수는 없었다. 출력관을 뽑아서 서로 위치를 바꾸어 꽂아 보았다. 적열 현상은 하나의 진공관에서만 일어나고 있었다. 진공관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이 없었다.

엊그제 어설프게 가조립 후 가동했다가 실패로 돌아갔던 일을 돌이켜 보았다. 한 쪽 출력관의 플레이트와 스크린 그리드 배선을 서로 바꾸어 납땜을 한 상태로 전원을 넣었더니, 캐소드 캐패시터가 터져버렸다. 아마 오배선으로 인하여 가청주파수 바깥 범위의 발진이 일어나서 캐패시터가 터졌고, 그러는 도중에 진공관 내부에 단락(short)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기 시작하였다. 히터 전원만 인가한 상태로는 적열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진공관을 뽑아서 멀티미터로 점검을 해 보았다. 오, 이런... 문제가 생긴 6П6С(=6V6GT) 진공관의 스크린 그리드와 컨트롤 그리드 사이 저항이 0이다. 이러니 B 전압이 걸리면 엄청난 전류가 진공관 내부로 흐르면서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이런 일을 취미로 할 자질이 과연 있는 것인가? 차라리 소리전자나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완제품 6V6 싱글 앰프 보드만 구입해서 나머지 부분을 조립하였더라면 직접 무엇인가를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재미는 덜하겠지만 소리를 듣기까지의 과정이 훨씬 수월하고 편했을 것이다.

부품과 전선이 어지럽게 널린 나무상자를 방구석 저쪽에 밀어 놓고 생각에 잠겼다. 망가진 부품을 새로 주문하고, 험을 해결하여 작년부터 계획해 온 새로운 싱글 앰프 제작을 완료할 것인가? 직접 힘들여 감은 출력 트랜스포머가 아깝지 않은가? 혹은 더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기 전에 과감하게 그만 둘 것인가? 매몰 비용을 늘리지 않기 위해 현명한 '중단' 결심을 하는 게 나을까?

그러나 다음과 같은 글과 곁들인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납땜질을 멈추고 싶지 않다...

6V6 싱글 앰프 회로도

2023년 5월 3일 수요일

[6LQ8-6П6С SE amplifier 제작] 어설픈 가조립, 전원 투입, 그리고 '뻥!'

앰프 상판 설계 및 가공을 마치기 전에 내가 구상한 회로가 올바로 작동하는지 임시로 배선을 하여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내가 구상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올바르지는 않다. 왜냐하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지식에 이미 잘 알려진 회로를 얼기설기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무 상자에 대충 부품을 배치하고 납땜을 시작하였다. 출력관(6П6С)의 소켓을 바닥판에 확실히 고정하지 못한 상태로 작업을 하려는 생각은. 멀티미터 프로브를 제대로 갖다 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입력과 스피커를 연결한 뒤 전원을 넣어 보았다.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누전 차단기가 내려가거나 불꽃이 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배선을 점검하였다. 출력트랜스포머와 출력관의 플레이트를 연결하는 것을 빼먹은 상태였다. 그러면 그렇지...

연결을 완료한 뒤 다시 전원을 투입하였다. 스피커에서 '웅~' 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설프게 만든 진공관 앰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험과 비교하자면 꽤 큰 소리였다. 그런데 음량조절용 포텐셔미터를 아무리 돌려도 입력단에 꽂은 라디오 방송 소리는 나지 않았다. 침묵 아닌 침묵이 잠시 흐르다가...

뻥! 까지는 아니고 퍽, 또는 피식!

출력관 하나에 연결된 캐소드 캐패시터가 터져 나갔. 이게 무슨 변고인가? 극성을 반대로 연결하였나? 그건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잘못 배선을 했다 하여도 캐소드 캐패시터의 내압(50V)을 초과하는 전압이 걸릴 수도 없다.

회로를 다시 확인해 보았다. 문제가 일어난 출력관의 소켓을 납땜 과정에서 플레이트와 스크린 그리드에 연결된 선이 서로 뒤바꾸어 연결한 것을 확인하였다. 이것이 원인이었을까? 구글에서 캐소드 캐패시터가 터질 수 있는 원인을 찾아 보았다. 극성을 뒤바꾼 문제가 아니라면, 발진(oscillation)의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플레이트와 스크린 그리드의 오배선이 문제였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연결한 출력관에서는 음악 소리가 들렸어야 한다. 뭔가 총체적인 문제가 있음에 틀림이 없다.

6LQ8 드라이브단 PCB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았다. 6LQ8 복합관에서 삼극관 부분만 이용하는 대단히 단순한 회로로서 확인 결과 오배선은 없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잘못이 있었다면 이 드라이브단 PCB 외부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출력관을 소켓과 함께 제대로 고정해 놓고 가조립을 하지 않았더니 전압 측정 등 점검이 매우 불편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기로 하자. 이 소켓은 상판이 만들어진 다음 정식 조립을 할 때 쓰기로 하고, 동일한 규격의 릴레이 소켓(octal base, 위키피디아)을 주문하였다. 새로 주문한  소켓은 바닥면에 쉽게 고정이 가능하고, 볼트로 조이는 단자가 포함되어 있어서 진공관 앰프의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 유용하다. 다만 출력관에서 발생하는 열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출처: 나비엠알오

진공관 앰프 프로토타이핑의 사례. 사진에 보인 소켓은 8핀 원형 릴레이용 소켓이 틀림없을 것이다. 출처: Cascade Tubes "On Prototyping".


차라리 완성된 6V6 싱글 앰프 보드를 구입했더라면 이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렇게 해서는 자작의 보람을 누린다고 할 수가 없다. 약간의 응용력이 필요한 이토록 단순한 싱글 엔디드 앰프를 만들면서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이 취미를 지속하기에는 내 능력이 부족함을 증명하는 것일게다. 이 난관을 돌파하지 못한다면 납땜 취미를 그만 두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다시 가조립을 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