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을 넘게 지갑 속에 넣어서 사용한 주민등록증의 사진이 점점 벗겨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전기기타의 상판에 올리는 플레임 메이플 탑의 무늬처럼... 급기야 휴대폰으로 모바일 뱅킹 등의 가입을 위해 이를 촬영해도 인식이 불가한 상황이 점점 잦아졌다. 새로 발급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사진을 찍기 위한 사진관을 찾아 보았다. 주민등록증 신규 발급을 위해서는 3.5 x 4.5 cm의 사진(여권 사진 규격) 1매를 들고 아무 주민센터나 방문해도 된다고 한다. 정부24 웹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재발급 신청을 해도 되지만, 2006년 11월 1일 이후에 발급한 주민등록등만 가능하다는 글을 보았다. 내 주민등록증은 이보다 더 이전에 발급된 것이다. 2000년 2월이었던가? 참고로 반명함판은 3 x 4 cm, 예전에 널리 쓰이던 증명사진은 2.5 x 3 cm이다.
지도를 검색해 보았으나 근무지 근처에 마땅한 사진관이 보이지 않았다. 수년 전에 다른 신분증 발급을 위해 사진을 찍었던 기억을 되살려 보면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았다. 어차피 고해상도 이미지는 필요하지 않으니, 휴대폰으로 찍어서 인화하면 되지 않을까?
놀랍게도 이런 용도의 앱이 있었다. 사진을 찍은 뒤 약간의 수정을 하여 온라인 전송 후 결제를 하면 택배로 필요한 규격과 수량의 인화물이 배달된다. 이미지 파일이 필요하면 비용을 조금 더 내면 된다. 내가 사용한 앱은 셀프증명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회의실에서 앱을 작동시켜 '셋, 둘, 하나!'라는 자동재생음을 들으면서 셀카를 찍는 것은 무척 멋적은 일이었다. 쓸 만한 사진을 건지기 위해서 몇 번이나 촬영을 했는지 모르겠다. 스마트폰의 후면 카메라로 공들여 찍은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보정 작업은 비교적 간편하게 할 수 있었다.
주문을 보낸 뒤 다음날 우편함에 꽂힌 사진을 받았다. 6매의 사진은 모두 절단이 되어 있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사직동 주민센터를 찾았다. 신청서에 재발급 사유를 뭐라고 적었더라? '용모(사진) 변경'이라고 쓴 것 같다. 나이가 들었으니 용모가 변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물론 성형수술 등의 이유로 용모가 바뀐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기존의 것을 지금 반납하면 수수료가 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 신청서를 내면서 같이 제출한 예전 주민등록증에 미처 이별을 고할 시간도 없었다. 20년이 훨씬 넘게 써 온, 내 젊은 시절의 모습을 담고 있던 주민등록증이 이렇게 구멍이 뚫리면서 드디어 세상과 이별한다고 생각하니 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잠깐만요! 반납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제출했던 사진은 스캔한 뒤 주민등록증 재발급 확인서에 다시 붙여서 돌려받았다. 약 3주 뒤에 다시 사직동 주민센터에 들러서 새 주민등록증을 받을 때까지 이것을 신분증 대신으로 사용하면 된다고 한다.
약 20년 주기로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하게 된다면, 다음번 발급 받을 때의 나이는? 상상하기 싫어진다. 어쩌면 그때는 모든 신분증을 모바일 기기에 넣어서 다니는 시대로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 열 손가락 지문과 사진을 찍어 국가에 제출하고 성인의 자격을 받았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영국과 같이 주민등록제가 없는 사회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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