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6일 목요일

필수의료, 공공의료 - 용어의 모호함과 현장의 절박함 사이에서

신동욱 성균관의대 교수가 의협신문에 쓴 글 두 편을 읽어보았다.

"필자가 보기에는 '필수의료'라는 용어는 듣기에 그럴 듯해 보이지만, 정의도 불분명하고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지 않은 용어이다. 전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하고, 대응하는 영어 표현도 없는 '공공의료'라는 말처럼."

법령을 통해서 어떤 용어가 만들어지면 엄청난 힘을 갖게 된다. 2000년도에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이 처음 제정되었을 때 공공보건의료란 '공공보건의료기관(국가·지방자치단체 또는 기타 대통령이 정하는 공공단체가 설립·운영하는 보건의료기관)이 국민의 건강을 보호·증진하기 위하여 행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하였다. 제정 당시의 법을 그대로 따른다면, 예를 들어 민간의료기관이었던 성바오로병원(2019년 3월 폐원)에서 수행하는 의료행위는 공공보건의료가 아니다. 2012년에 바뀐 법률에 의하면 행위의 주체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으로 확대가 되기는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공(보건)의료의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는 법률이 있을 정도이지만, 정작 영어권에서는 공공의료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가장 근접하게 대응하면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는 publicly funded health care, 즉 '공공재정으로 생산하는 의료' 정도가 되므로, 건강보험에서 제공하는 의료가 바로 공공의료가 되는 것이다. 일본에는 공공의료라는 용어 자체가 없다고 한다(이규식, 「건강보험 40년의 성과와 과제」 보건행정학회지 27(2):103, 2017 - 그야말로 뼈를 때리는 논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의료기관이 요양기관으로 강제 지정되어 있다. 건강보험에 해당하는 진료를 하지 않는 곳은 없다는 뜻이 된다. 건강보험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 즉 요양급여는 의료적으로 최선의 것이 아니라 비용 대비 최적의 것을 해야 한다. 그런데 비용 대비 최적의 행위가 의료적으로는 항상 최선의 것이 아닌 경우가 많으며, 저수가 시스템에서 의료기관은 경영을 위해 복잡한 셈법을 따져야 하고, 그 모호한 틈새에서 온갖 문제가 벌어진다. 한 편의 블로그 포스팅으로 담기에는 그 문제가 너무 복잡하고 거대하기에, 정혜승 변호사가 2019년 청년의사에 연속 기고한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1. 의료기관과 요양기관, 의료행위와 요양급여는 무엇이 다른가
  2. 임의비급여 진료행위가 위법하게 된 경위
  3. 임의비급여 진료행위 '위법화'의 문제점

나는 이 글을 전부 인쇄해 놓고 수시로 들여다본다. 2021년 메디게이트뉴스에 실린 "건강보험 제도 개선, 의학적으로 필요한 '임의 비급여' 진료비 청구 합법화부터 시작하자"도 이 문제를 짧은 글에 잘 설명해 놓았다.

용어 정의의 측면에서 '필수의료'의 문제는 더욱 까다롭다. 허대석 교수는 의료를 필수와 선택으로 구분하고 필수의료 영역은 보장성 강화의 대상으로, 선택의료는 시장경제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원문은 찾기가 어렵고, 김영재·이원표 「의료기술의 보험등재」 대한의사협회지 57(11):927, 2014에서 인용; 비슷한 내용 링크1링크2, 전부 2010년 가을 공개된 글임).

보건복지부에는 이미 필수의료지원관이라는 자리가 있다(2023년 12월 30일, 소위 '문재인 케어'의 실무부서였던 의료보장심의관으로부터 변경).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 이후 보건복지부에서 「필수의료 지원대책 -중증·응급, 분만, 소아진료 중심으로-」(2023.01.31.)을 내놓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정작 공개된 자료에는 무엇이 필수의료라는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보도자료와 같이 배포된 「필수의료 지원대책」 파일을 들추어 보면.(링크)..

아, 제발 정부에서 내놓는 문서에 '골든타임'과 같은 말 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러한 의미라면 golden hour가 맞다고 한다(관련 글 링크). 그냥 우리말로 하면 안되나?

위 자료를 보면 이번 대책이 적용되는 분야를 한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굳이 '필수의료'라는 용어를 쓸 필요도 없었다고 본다. 강윤희 전 식약처 임상심사위원에 2022년 8월 메디칼타임즈에 기고한 글 "필수의료 시스템 구축, 지방부터 출발해야"를 보면 보건복지부에서 필수의료라는 단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고 한다.

  1. 생명에 직접적인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의료분야
  2. 지역적 특성 또는 시장수요의 부족으로 제대로 제공되기 어려운 분야
  3. 미래 전문인력인 전공의 충원율이 평균에 미달하는 과목 등

이래서는 너무 광범위하다. 사실상 현 한국 의료계의 거의 모든 문제를 다 담고 있는 분야 아닌가? 이쯤되면 '기-승-전-지불구조개선'으로 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 기고자는 '필자가 생각하기에 필수의료란 해당 의료가 부존재할 때 수시간 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분야로 판단된다'고 하였는데, 내가 보기에도 이게 맞다. 아니, 그렇다면 기존의 응급의료와 별로 다를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필수의료'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재원이 부족하니 여기까지만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뭔가를 해 주겠다"라면서 선을 긋는 것과 흡사하다('그러니 누가 이 울타리 안에 들어올래?'). 특히 특정 전문과를 필수의료 대상으로 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작년부터 구성된 필수의료협의체에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비뇨의학과의 6개 과가 들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관련 규정에 나오는 임상의학 전문과정 27개 중에 6개를 골랐으니 잘 고른 것일까? 서로 여기에 들어가려고 싸우지 않겠는가? 필수의료 화두에 불을 지피게 된 간호사 사망사건의 해당과는 신경외과라고 한다. 그런데 필수의료 6개 전문과에 현재 신경외과는 없다...

현재는 정부가 개념 정의조차 불분명한 '필수의료'라는 화두를 던지니, 이해관계자들이 각자의 이해를 반영하려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 같아서 매우 우려된다.

오늘의 글 첫머리에서 소개한 신동욱 교수의 의견이다. 심·뇌혈관 전문병원장의 절박한 인터뷰기사로 끝을 맺고자 한다.

[의협신문 2022.08.29.] 의사들은 기승전 '수가'?... "가슴 무너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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