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6일 월요일

전기기타는 전기를 먹여야 한다

지난 1월 7일, 아내와 함께 종묘를 산책한 뒤 낙원상가 3층을 둘러 보았다. 특별히 살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화려한 모습의 악기를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게을리 했던 악기 연습을 다시 해 보겠다고 마음을 먹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별난 모습의 에피폰 기타.

머리가 없는 일명 headless 기타의 대명사인 Steinberger의 "Spirit"


이펙터가 이렇게 예쁠 수도 있구나! 마치 미술 재료상의 진열장 같다.

벌써 2년 전에 수리를 한 뒤 거의 손을 대지 않았던 나의 삼익 세미할로바디 기타(1999년 구입)에 다시 관심을 두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당시에 쓴 글 - '삼익 일렉트릭 기타의 수리가 끝나다'). 역시 낙원상가 방문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회성 이벤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주말에 대전 집에 다녀오면서 기타와 멀티 이펙터(Korg AX3G), 그리고 다이렉트 박스를 가지고 왔다. 오디오 믹서가 있으니 PC(주로 유튜브), AX3G 등 여러 입력을 다루기에 매우 편리한 환경은 이미 갖추어 놓았다. USB audio interface도 보유한 터라 PC를 통한 연습 수준의 재생과 녹음도 가끔 해 보고 있다. 아, MIDI controller keyboard를 마지막으로 연결한 것이 몇 주 전이더라...

먼지가 가득한 기타에 케이블을 연결해 보았다. 이런? 프론트 픽업에서 전혀 소리가 나지 않았다. 픽업 셀렉터의 문제인가, 혹은 픽업 내부에서 단선이 일어났나? 혹시 픽업을 교체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2년 전 수리를 할 때 셀렉터는 교체를 한 상태라서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고, 심한 충격을 주지 않았다면 픽업 내부에서 선이 끊어질 가능성 또한 거의 없다. 셀렉터를 분해해서 F-홀 바깥으로 꺼내어 보니 배선이 끊어진 곳은 없었다.

너무 오래 작동을 하지 않아서 픽업 셀렉터의 접점에 더러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셀렉터 조작을 수십번 반복하니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레버를 전환한 상태에서 잘 움직여 보면 소리가 더욱 커지기도 한다. 옳거니, 접점의 문제가 맞겠군... 작은 세공용 줄을 사용하여 접점을 몇 번 문질렀더니 완벽한 수준으로 소리가 나게 되었다. 내친 김에 기타용 케이블의 플러그도 문질러서 광택이 나게 하였다.

돌이켜보니 앰프에는 거의 연결을 하지 않고 기타를 쳤던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세미할로바디라서 앰프를 연결하지 않아도 소리가 비교적 크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로 두었으니 전기부품의 작동 상태를 알 수가 있나... 그렇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고, 전기기타는 전기를 먹어야 한다. '멀티이펙터+믹서+헤드폰+가끔 PC로 녹음하기'의 조합이라면, 나의 기타를 더 이상 외로운 상태로 놔 두지는 않게 될 것이다. 

모델명 없는 나의 기타(1999년 구입). 삼익에서 그렉 베넷 모델을 출시하면서 만든 프로토타입으로 알고 있다. Royale RL3와 유사하나 바인딩과 금속 부품의 도금이 다르다.


일렉트릭 기타 구입처 정보

악기를 구입하기에 절대적으로 좋은 위치(즉, 서울)에 있는 동안 기타를 하나 더 사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 내기가 어렵다. 숙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낙원상가도 좋고, 중고 거래도 좋다. 악기 정보 및 중고거래 사이트로 잘 알려진 뮬(https://www.mule.co.kr/)에 며칠 들락거려 본 결과 몇몇 판매자들이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국산 OEM 제조 기타를 팔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내 혹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노 브랜드' 제품 중 쓸만한 것, 또는 OEM 기타 중 약간 흠이 있는 것을 주로 판매한다. 특히 '악기플러스'는 좋은 제품을 실 사용에 문제가 없이 세팅하여 싸게 파는 것으로 유명한 것 같다. 아래의 링크는 각 판매자가 최근 6개월 동안 올린 매물(일렉트릭 기타로 한정)의 정보이다. 이미 팔린 물건까지 보려면 상세검색 메뉴에서 판매여부를 '전체'로 놓으면 된다.

  • 판매자 닉네임: 악기플러스(링크)
  • 판매자 닉네임: 현주7733(링크)

두 판매자 전부 인천 지역에서 활동한다는 것도 특이하다. 우리나라의 주요 기타 제조 및 수출업체가 인천에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DBZ(창립자인 Dean Barrett Zelinsky이름을 딴 기타 회사로 현재는 Diamond Guitars로 바뀌었다고 함, 위키피디아 및 공식 웹사이트 - 특색이 있는 디자인의 기타를 볼 수 있음)라는 브랜드의 기타를 많이 취급하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DBZ 기타의 헤드스톡에 붙어있는 새가 먹이를 낚아채는 모양의 금속제 DBZ로고 플레이트는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판매할 정도이니 꽤 알려진 브랜드였던 것 같다. 사실 삼사일 전까지는 DBZ 또는 Diamond는 전혀 모르던 브랜드였다. 독특한 모양의 set-in neck를 갖춘 기타, 혹은 아예 플라잉 V 스타일의 기타에 관심이 간다. 플라잉 V 기타를 갖게 된다면, 아마 뾰족한 끝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까져 나갈 것이 뻔하다.

이미 삼익 기타와 스콰이어 텔레캐스터(대전 사무실에서 장시간 쉬는 중)을 갖고 있으면서 또 무슨 기타란 말인가. 세워 놓을 공간도 부족한데.. 웹질이나 하면서 눈요기할 거리를 새로 찾았다는 것에나 만족하기로 하고, 연주 및 녹음 연습이나 하자고!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