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7일 월요일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1928-1999)의 전시회를 다녀와서

캘리그래피를 연상케 하는 뷔페의 서명.

지난 일요일, 20세기의 마지막 구상회화작가로 일컬어진다는 프랑스의 화가 베르나르 뷔페의 전시회를 다녀왔다(나는 광대다_베르나르 뷔페전: 천재의 캔버스 링크). 국내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화가라서 호기심을 갖고서 관람을 시작하였다. 동행한 사람은 여자친구 C(음?)와 아내.

그는 매우 젊은 나이에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가 추구하던 미술이 전후 주류 미술과 성격 잘 맞았던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추상미술이 점점 화단을 점령하고 1960년대 들어서 팝아트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조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분명한 자신의 색채를 유지하면서 작품 세계를 평생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써 가면서 이러한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그는 충분히 누릴만 한 명성은 다 누렸던 사람이고, 그가 그렸던 소박한 그림과 그의 화려한 생활 사이에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cultural one-nigh stand라는 표현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파티, 롤스 로이스, 유명인과의 만남, 술, 그리고 다소 모호한 성적 지향에 이르기까지 그의 실제 생활은 진실한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고뇌하는 예술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 그건 나의 편견일까? 방탕한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한 예술인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의 작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정물, 초상, 우울한 느낌의 자화상, 풍경, 그리고 창작 인생 후반부에 등장하기 시작한 광대와 해골. 그의 그림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강하고 만화(또는 일러스트레이션)와 같은 느낌을 풍긴다 싶었더니 굵은 검정 선으로 대상의 윤곽을 선명하게 그렸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색채는 화려하면서도 차갑고 우울한 느낌을 준다.

출처: https://www.gemeentemuseum.nl/en/exhibitions/bernard-buffet-a-controversial-oeuvre

그는 국내에 그렇게 널리 알려진 화가가 아니라서 웹 공간에는 국문으로 된 자료가 별로 없다. 네덜란드의 어떤 웹사이트에 영어로 올라온 자료가 있어서 더듬더듬 읽어보았다(Bernard Buffet: a controversial oeuvre 링크). 그는 젊어서 크게 이름을 날렸지만 추상화의 시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묘사적으로 그리는 화풍을 고수했기에 진지한 화단에서는 슬슬 배척이 되었던 것 같다.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했고 고국인 프랑스 외 - 모스크바, Deurne(네덜란드), 일본 시즈오카 현 - 에서는 그의 작품만으로 채워진 미술관이 생길 정도였지만 말이다. 

아트샵에서 촬영한 그의 작품.

그는 자화상을 많이 그리기도 했지만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이 그려진 대상은 아마도 그의 아내 아나벨 뷔페(Annabel Buffet)일 것이다. 첫눈에 반하여 1958년 결혼을 하고 40년간 평생 아내만을 바라보며 살던 그는 말년에 파킨슨병에 걸려 그림을 그리기 어려워졌고, 1999년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고 나서 조용히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무수한 캔버스 안에 그녀의 강렬한 아름다움을 영원히 남겼다. 아나벨 부페는 영화 [무서운 아이들Les Enfants Terribles(1951)]에도 출연하였고 저술가이자 가수였으며 당대의 여러 문화예술계 인사와 교류하였다고 한다. 프랑스어 위키피디아에 나온 그녀의 항목을 보면 영화 중 배역은 마네킹(le mannequin)이었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구글 플레이 영화에 올라와 있으니 한번 구입하여 보아야 되겠다(링크). 결혼 전의 이름은 Annabel Schwob인데, 어려서 부모가 모두 자살한 비극을 겪기도 하였다. 영화배우로서 Annabel Buffet의 기록은 IMDb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를 찾으면 그녀가 노래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서 어제는 몇 편을 감상하여 보았다. 큰 눈의 미인 같다가도 낮은 저음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딘가 모르게 중성적인 느낌이 난다. 마치 문주란 씨의 노래를 듣는 것 같다.

Annabel Buffet - Les gommes (1970). gommes는 지우개, 즉 '고무'를 말한다.

말년의 그의 작품은 자화상에 가까운 광대, 가죽을 벗기고 근육을 드러낸듯 한 모습의 몸(시신?), 복장 도착 해골 등 기괴한 것을 그린 것이 많다. 어둡고 선이 굵은 그의 그림은 한층 더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그가 남긴 인터뷰에서 그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광대로 기억되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우스꽝스런 분장 뒤의 실제 표정은 알 길이 없지만 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광대의 슬픔과 이중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는 것일까. 그의 그림에는 사람 두개골이 종종 등장한다.

뷔페는 어려서는 미술계의 신동으로 각광을 받았고 일찍 성공하였지만 양성애자이자 알콜중독자이기도 했다. 화려한 색채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암울함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번 전시회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인터넷판 뉴욕 타임즈에 실린 기사 Buffet: A Life of Success, Rejection and Now a Celebration (2016)을 보면 그가 젊어서 거둔 대중적 인기와 부는 전후 유럽 지식인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것 같다. 첫 문장을 인용해 본다.
Few artists have known the roller coaster of fame and shame that the French painter Bernard Buffet experienced during his life. Buffet, who was once hailed as the artistic successor to Picasso only to be reviled later as vulgar and the epitome of poor taste, was an immensely popular artist before falling into near oblivion. He committed suicide in 1999 at the age of 71. [프랑스 화가 베르나르 뷔페가 일생 동안 경험한 명성과 수치심의 롤러코스터를 아는 예술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뷔페는 피카소의 뒤를 이을 예술가로 칭송받았으나, 나중에는 저속하고 밥맛없는 사람으로 욕을 먹었고, 거의 잊혀지기 전까지도 대단히 대중적인 예술가였다. 그는 1999년 71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pitome of poor taste'는 번역을 하자면 쉽게 말해서 '밥맛의 표상' 정도가 되겠다. '잊혀지기 전까지는 유명했다?' 내가 우리말로 제대로 옮긴 것인지 모르겠다. 누구나 죽기 직전까지는 살아있는 것이고, 잊혀지기 전까지는 유명한 것 아니던가.. 일찌기 그림으로 거둔 명성과 경제적 성공을 방탕한 생활로 소진하면서도 그림 자체는 소박하게 그려내고 있으니(그것도 구상 회화가 저물기 시작한 시점에) 고국에서는 점점 외면을 받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그러한 사생활까지 알려지기는 어려운 상태이니 오히려 그림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것이 지금 재조명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당신은 화가로 태어난 것 같다.
당신은 우리에게 당신의 외로움, 믿음, 사랑, 살아있는 모든 것,
자연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물질적, 도덕적 참담함에 마주했을 때의
비탄을 이야기하기 위해 아주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선택했다.

당신은 우리가 종교에 빠질 때처럼 그림에 빠졌다.
당신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림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 아나벨 뷔페 -

다음에는 데이비드 워나로위츠(David Wojnarowicz)의 생에애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만화책, 아니 그래픽 노블 [7 Miles a Second]를 구해서 읽어보련다.


2019년 6월 20일 업데이트

구글 플레이 무비에서 영화 [무서운 아이들]을 구입하여 감상하였다. 아나벨 뷔테는 56분 쯤에 아주 잠깐 단역으로 나온다. TV 화면을 휴대폰으로 찍어 보았다(가운데 출연자). 영화 시작 때 화면에 나오는 배우 명단에서도 이름을 찾기 어려웠다. 내용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 영화의 원작자(17일 만에 써 내려간 소설 - 동성 애인이 죽은 뒤 아편 중독에 빠졌다가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단숨에 지었다고 함)이자 나레이션으로 참여한 장 콕토의 삶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이어진다.


2019년 6월 27일 업데이트

오늘 새벽에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를 소개한다. 관람객 1000명이 뽑은 베르나르 뷔페展의 베스트 10에 관한 것이다. 1위는 유언장 정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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