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7일 일요일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

어제 거의 두 달만에 은행동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의 내부 배치가 그 사이에 바뀌어서 중고 음반은 더 이상 판매를 하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너무 잘 알려진 곡/연주자의 작품이나 컴필레이션 앨범은 되도록 사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고른 것은 낙소스 레이블의 1997년 발매 음반이었다. 코른골트와 골드마르크 둘 다 어제까지 그 이름을 들어본 일이 없는 작곡가였다.

PCL86-43 싱글 앰프를 배경으로 찍은 CD 사진.

KORNGOLD Violin Concerto
GOLDMARK Violin Concerto No. 1
Vera Tsu, Violon, Razumovsky Sinfonia Yu Long

코른골트는 20세기 신낭만주의의 대가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들은 작곡가였다고 한다. 쇤베르크가 고안하여 널리 알려진 12음기법을 거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헐리우드에서 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을 작곡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다시 본격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작곡할 것을 결심한 코른골트가 1945년에 작곡한 것이 바로 이 음반에 실린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한다. 시작 부분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이나 헐리우드 영화 음악을 연상하게 한다. 총 연주시간은 25분 정도로 짧고 경쾌하다.

유튜브에 힐러리 한의 연주 동영상이 있어서 소개해 본다.


기타 자료 링크:

<곽근수의 음악이야기> 중에서
학술논문: 이성률,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영화음악의 음악적 특징과 의미. 서양음악학 41권 p.59-84(2016년)

칼 골드마르크에 대한 조사는 숙제로 남긴다.

독서 기록 - <오늘도 남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외 세 권

며칠 전, 넷플릭스 제작 영화 <덤플링>을 보았다. 미인대회 수상 경력이 있고 지금도 대회 감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엄마에게 뚱뚱한 십대 딸 윌로딘은 늘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긍정적이고 쾌활한 딸에게는 늘 돌리 파튼의 노래를 들려주며 곁에 있어주던 이모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모는 건강상의 문제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딸은 엄마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 십대 미인대회(미스 틴 블루보닛)에 엉뚱하게도 참가 신청을 한다. 그것도 입상 가능성이 있는 소질이 전혀 없는 친구들과 함께. 사실은 대회를 뒤집어 엎으려는 마음이었지만, 이모가 즐겨 찾던 돌리 파튼의 커버 쇼를 하던 클럽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열심히 대회 준비를 한다. 비록 마지막 의상 준비가 늦어져서 대회 중간에 중간에 실격을 했지만 모든 참가자들과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장기자랑을 펼쳤고,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만을 강조하던 미인대회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이 영화에는 시종일관 돌리 파튼의 노래가 나온다. 그녀가 그렇게 좋은 메시지가 담긴 훌륭한 음악을 많이 작곡한 사람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 영화 <덤플링>의 주인공 윌로딘은 미인대회 입상을 위해 살을 빼려고 하지 않았다.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훈남이 호감을 표시했을 때 '왜 나같은 애를 좋아하느냐'고 자신감을 잃던 그녀였지만,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모를 통해서 알게된 돌리 파튼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현재의 모습 그대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예심(?) 자리에서 심사위원들이 충의(loyalty)가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었을때, 윌로딘의 대답은 그야말로 명언이었다. 

힘겨운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체중을 줄이고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지우고 나서 비로소 인정을 받고 성취감을 느꼈다는 결말이 아닌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오늘 소개할 책인 <오늘도 남의 눈치를 보았습니다>와 서로 상통하는 면이 있어서 영화 이야기를 서두에 적어 보았다.


오늘도 남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나를 위한 심리 수업"
  • 미즈시마 히로코 지음 | 박재현 옮김
자신감은 생기는 것이 아니다. 훈련을 통해서 자신을 스스로 생각하는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듦으로써 자신감을 갖게 되거나, 미처 몰랐던 자신의 좋은 점을 발견하는 것으로서 자신감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감의 근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카트 읽는 남자

  • "삐딱한 사회학자, 은밀하게 마트를 누비다"
  • 외른 회프너 지음 | 염정용 옮김
슈퍼마켓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과 태도, 대화, 그리고 카트에 담긴 물건 목록(뒤에서 말할 '신호')을 통해서 살펴본 사회학. 흥미로운 책이기는 하지만 독일에서 구입 가능한 식료품이 우리와는 너무나 달라서 공감을 하기가 어려웠다. 더욱 어려운 것은 옷을 가리키는 이름었다. 유니클로에 가면 모든 옷의 이름이 영문을 한글로 소리나는대로 적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우리 생활에 완전히 침투한 서양식 복식의 이름을 현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지엽적인 문제이다. 이 책의 요지는 2장에 잘 나타나 있다. 개별성이란 사실 날조된 것이며, 사람들을 어떤 그룹으로 나누어서 연구하는 것은 사회학의 중요한 방법론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을 정확히 감지하려면 '신호'를 사람들이 어떻게 다루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이 책은 슈퍼마켓에서 만난 사람들의 신호를 이용하여 그들을 나름대로 평가하고 해석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추락한 이유(Since we fell)

  • 데니스 루헤인 지음 | 박미영 옮김
마틴 스콜세지 감독,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의 원작 소설 <살인자들의 섬>의 저자인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흥미롭게 읽었다. 

초협력사회(Ultrasociety)

  • 피터 터친 | 이경남 옮김
요즘 인기를 끄는 빅 히스토리 관점에서 인간에게 전쟁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전쟁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고, '전쟁을 알자'에 해당한다. 이 책에서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여러 차례 언급되지만 빅 히스토리 분야의 저자로 유난히(?)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유발 하라리에 대해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왜 그런가 했더니 이 책은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와 나온 년도가 같다(2016년 - 영문판 기준).

인류 역사에서 농경사회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사회가 제도화되고 대규모로 조직화된 협력이 가능하졌다는 것이 매우 일반적인 믿음이다. 그러나 터키에서 발견된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이 유적이 만들어진 것은 약 1만년 전으로 신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석기 시대에 이렇게 정교하고도 규모가 큰 석조 건축물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무슨 연장으로?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출처: 위키피디아

출처: http://eden-saga.com/en/archeology-neolithic-turkey-protohistoric-temple-animals-shamanism-gobekli-tepe.html

괴베클리 테페 다음으로 오래된 유적인 수메르와 괴베클리 테페 사이의 시간 간격이 수메르와 현대의 시간 간격보다도 길다(위키피디아).
괴베클리 테페와 같은 인간의 초협력은 고도화된 사회의 부산물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이러한 구조물을 만든 목적은 후세 사람들이 이해할 도리가 없지만,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수십년 동안 모이고 협력하는 이벤트 자체가 이들에게 중요했을 것이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건강성을 '창조적 파괴'라는 단어로 압축하여 표현했다. 역설적으로 전쟁이란 '파괴적 창조'의 원천이 된다. 지금까지는 경쟁의 원리에 방점이 찍혔지만, 이 책의 주장에 의하면 집단 간에 경쟁이 벌어질 경우 그 집단 안에서는 높은 수준의 협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협력은 독재자에 의해서 강제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제10장 <인간 진화의 지그재그> 중에서. 306쪽.
전쟁을 벌이는 동물은 개미와 인간 말고는 없다고 한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비즈니스화하여 이용하려는 세력은 항상 있었고, 역설적으로 전쟁을 겪은 후(전쟁을 통해서?) 인류의 기술은 장족의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요즘과 같은 이성의 시대에 필요악으로서 전쟁을 옹호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다만 과거에 존재했었던 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2019년 1월 21일 월요일

43번 오극관 싱글앰프 - op amp 드라이브 회로와 43 오극관의 트랜스 결합

상품화를 할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에게 선물할 것도 아니므로 부족한 지식에 기반하여 내 마음대로 오디오 앰프 회로를 꾸며도 비난을 받을 일은 전혀 없다. 강호에 널려있는 오디오 고수께서 웹서핑을 하다가 내 블로그를 보고 기본도 없이 말도 안되는 시도를 한다고 혀를 끌끌 찬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내 귀에 듣기 편안하고 이러저러한 실험을 하다가 부상만 입지 않는다면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랴?

싱글 엔디드 진공관 앰프의 전력증폭회로를 구동하기 위한 드라이브단을 OP amp 회로로 꾸미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푸시풀 증폭회로 전단의 위상반전단을 OP amp로 만드는 사례도 보았다.




심지어 그 자체로 훌륭한 14 와트 출력을 내는 오디오 증폭칩인 TDA2030을 사용하여 300B 푸시풀 회로를 드라이브하는 앰프의 회로도 발견하였다. 아래 그림이 바로 그 사례이다. 차라리 TDA2030만으로 스피커를 울려도 되지 않을까?

그림 1. 출처: Electra Print Audio(링크)

내가 OP amp 회로, 더 정확히 말하자면 CMoy 헤드폰 앰프를 사용하여 43 싱글 앰프를 구동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진공관을 이용하여 제대로 초단부를 만들 경험이 아직은 일천하였기에, 그저 갖고 있는 기판을 재활용하는 것이 당면한 목표였다. 저항을 조정하여 게인은 11 정도로 높여 놓았다. OP amp 회로는 양전원(V+, 0, V-)을 공급하는 것이 기본인데, 휴대용 헤드폰 앰프로 쓰이는 CMoy 회로는 건전지에서 나오는 9V를 캐패시터와 저항으로 반분하여 가상 접지를 만들어서 사용한다. 그러면 아무리 게인이 높아도 출력 전압은 +/4.5V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게 된다. 이는 43 오극관 전력증폭회로를 드라이브하기에는 부족하므로 보다 높은  전원 전압을 공급하기로 했다. 즉 24V SMPS(1.5A)를 사용하는 것이다. 직류 24V는 동시에 43번 오극관의 히터를 점화하는 데에도 적당하다(원래 25V가 필요).

다음의 전원부 회로도는 https://www.electroschematics.com/9448/cmoy-headphone-amp/에서 빌려다가 수정한 것이다.

그림 2.

험을 줄이려면 히터 전원을 접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 [그림 2]에서 220옴 정도의 저항을 두 개 사용하는 (B)의 방식이 가장 일반적인데(The Valve Wizard, Heater/filament supplies), 나는 편의상 (A)의 방식을 따랐다. 여기에서 선을 빼내어 B전원과 모든 신호의 그라운드를 묶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C) 지점의 가상 접지이다. OP amp 회로는 이 지점을 기준으로 위아래로 움직인다. 그런데 (A)와 같이 접지를 연결한 상태에서 (C)를 신호 그라운드로 연결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회로 전체의 접지는 현재 -12V 레일에 묶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원도 하지 않는 싸구려 입력트랜스(IPT-14, 10 KOhm:600 Ohm)를 써서 드라이브 회로와 오극관 전력증폭회로를 다음과 같이 분리한 것이다. 아래 [그림 3]에서 OP amp 회로도는 [그림 2]와 출처가 같다. 트랜스의 연결 방향을 바꾸어서 2차쪽에 조금 더 큰 신호가 출력되게 하였으니, +/-12V라는 전원 전압의 한계를 약간 상회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구성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소리가 난다.

그림 3.

그러면 이것이 정말 최선일까? 다시 [그림 2]로 돌아가 보자. 빨강 점선으로 둘러친 상자를 살펴보면 4.7K 저항을 직렬로 연결한 뒤 중앙에서 가상 접지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A) 방식으로 접지를 하지 말고, (C) 방법만 사용해도 되지 않겠는가? 회로 구성으로 본다면 (B)와 결국은 같아지기 때문이다. 저항 값이 20배 정도 높으므로 히터 입장에서의 접지 효과는 어쩌면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는 나중에 한 번 테스트를 해 봐야 되겠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IPT를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IPT에 의한 신호 증폭 효과가 만약 필요가 없다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IPT-14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자. 6석 라디오 회로도 등을 보면 IPT와 OPT가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푸시풀 증폭회로에 쓰이는 것을 알 수 있다(링크). 국내 사이트에 나와있는 상세한 정보(권선비, 임피던스 등)는 다음의 것이 전부이다.

그림 4. IPT-14의 구조.. 출처: IC114

아마도 1.2:1은 권선비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아는 상식, 즉 임피던스는 권선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에 따르면 이 권선비에서는 도저히 10 KOhm:600 Ohm이 나오질 않는다. 외국쪽 사이트를 한참 뒤져서 AUDIO TRANSFORMER, 4.07:1, 10K/600 OHM라는 제품 설명을 찾아냈다(링크). 4.07은 아마도 권선비일 것이다. 이를 제곱하면 16.56이 되고, 10,000/600 = 16.67이 되므로 서로 잘 일치한다. 그렇다면 국내 사이트에서 N = 1.2:1이라고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또 다른 외국 사이트에서는 EI-14 코어를 쓴 이 트랜스의 용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10k to 600 ohm audio transformer microphone impedance step-up step-down, 링크).
A small audio signal transformer for hi-z to lo-z impedance conversion (or vice versa).
Ideal for matching a low impedance communications microphone to a high impedance input.
Many vintage valve transceivers have high impedance microphone inputs and this can sometimes result in insufficient drive when used with a modern low impedance microphone. With this transformer, you can use a low impedance microphone and still have enough level to drive the transmitter properly. The transformer will even fit inside most hand microphones.
Used in the opposite direction, it could be used to connect a classic high impedance microphone to a modern radio with a low impedance input.
(참고: 구미에서 radio 혹은 two-way radio는 보통 무전기를 일컫는다.)

진공관 앰프를 자작하는 많은 매니아들이 나름대로의 목적으로 라인 트랜스 혹은 인터스테이지 트랜스를 이용한다고 들었다. 이런 트랜스는 덩치도 매우 크고 Lundahl 등의 고급 제품은 매우 비싸다. 그런데 내가 사용한 트랜스를 보라. 코어 사이즈는 겨우 14 mm에 불과하다(어제는 코일이 감긴 수를 직접 확인하려고 하나를 분해해서 선을 풀다가 포기하였는데 코어 재질은 색깔을 보아하니 규소강판이 맞는 것 같았음). 트랜스가 작으면 저음부에서 손해가 많다고 하였다.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저걸 진공관 앰프의 드라이브 회로 뒤에 넣는다고? 푸하하...'
'포켓 라디오도 아니고 뭐여...'
'아니, OP amp 회로를 써서 진공관을 드라이브한다고? 그것도 고급도 아닌 LF353으로?'

그림 5. 내가 사용한 IPT-14.
그림 6. 자그마한 IPT이지만 사인파는 별 왜곡 없이 내보냄을 알 수 있다.

방문자들의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지만 이러한 엉뚱한 시도를 시발점으로 꾸준히 개선을 해 나가고자 한다.

2019년 1월 20일 일요일

43번 오극관 싱글 앰프의 최근 문제는 배선 잘못이었나?

43번 오극관 싱글앰프 프로젝트를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그동안 들인 노력이 너무 아까워서 OP amp을 이용한 드라이브 회로를 다시 사용하기로 하였다. 부품들을 다시 배치하고 납땜을 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볼륨 조절 기판의 입력과 출력 단자에 케이블이 서로 뒤바뀌어 꽂혀있는 것이 아닌가? RCA 단자에서 유래한 신호선이 볼륨 조절 기판의 입력이 아닌 출력쪽에 연결된 것이었다. 회로기판에 인쇄된 in/out을 유심히 보지 않으면 충분히 잘못 꽂을 수 있다. OP amp를 이용한 드라이브 회로는 원래 CMoy 헤드폰 앰프로 쓰던 것이라서 입력 단자와 볼륨 조절부가 따로 달려 있다. 그래서 OP amp 회로를 썼을 때에는 문제가 없었던 모양이다.

오른쪽 커넥터가 in, 왼쪽이 out이다. 

물론 처음부터 연결을 잘못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2AU7을 이용한 드라이브 회로 기판을 장착하고 부하 저항을 변형하는 등 이것저것을 매만지는 과정에서 어쩌면 볼륨 조절 기판의 입출력을 서로 반대로 연결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참 허무하기 이를데 없다.

히터용 전원 트랜스는 다른 앰프에 이미 들어가 버렸으니 당장 12AU7을 쓰는 구성으로 되돌리기는 어렵게 되었다. 과거에 잠시 테스트했던 구성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1. 24V DC SMPS를 이용하여 43번 오극관 히터와 OP amp 회로를 전부 구동한다. OP amp는 +/- 12V로 구동되는 셈이다. 출력전압은 당연히 이 범위 내에 갇힌다. 43번 전력증폭회로를 충분히 구동하기에는 스윙 폭이 좁다. 아래에서 보인 IPT는 이런 의미에서 삽입하였다.
  2. OP amp와 43번 오극관 사이에는 IPT-14MM을 넣는다. IPT는 OP amp 회로의 가상 접지와 주 회로의 접지를 분리하는 역할도 한다.

오늘의 회로 구성. 출처는 내 블로그(링크).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두 종류의 SMPS 그라운드를 서로 연결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피커에서 '웅~'하는 잡음이 들린다. IPT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설명을 하기에는 아직 내 실력이 부족하여 좀 더 이론적 배경을 알아본 뒤에 나중에 적도록 하겠다. 위에서 기술한 것은 IPT의 의미는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2019년 1월 17일 목요일

압착 플라이어(Lobster FK3) 구입

압착 플라이어(crimping plier)는 납땜인두나 와이어 스트리퍼처럼 일반 가정에서는 잘 쓰지 않는 공구이다. 전선의 접속을 위한 네 가지 크기의 접속자(closed connector)를 구비해 두고 앰프 공작 시에 전원부를 만들면서 니퍼 혹은 플라이어로 대충 눌러서 쓰려 하였지만 접속 정도가 강하지 못함은 당연하였다. 이 접속자는 조명 설비와 같이 큰 전류가 흐르지 않는 곳에서 매우 널리 쓰인다.

43번 오극관 앰프에 쓰려고 최근에 구입한 전원 트랜스를 6N1+6P1 싱글 앰프에 활용하기로 최종 결정하고, 접속자를 이용하여 이들을 서로 연결하기로 하였다. 제대로 접속을 시키기 위하여 공구가게에서 일제 압착 플라이어를 하나 구입하였다. Lobster(새우표?) FK3라는 제품인데 post-doc 시절 이 공구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중간 부분에 있는 와이어 스트리퍼를 제외하고는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를 몰랐다.

접속자(1.25SQ, 2.0SQ. 3.5SQ 및 5.5SQ)와 압착 플라이어.
와이어 스트리퍼 형제들.

FK3 끝부분에 위치한 압착기 날은 1.25/2.0/5.5mm2비절연 압착단자 또는 PG 터미널/슬리브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나일론 캡이 씌워진 접속자를 압착하려면 한 치수 큰 위치에서 눌러야 한다. 단자와 슬리브는 조금 다르다. 단자는 전기적 접속 상태를 필요에 따라 체결 혹은 해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고, 슬리브는 전선 두 가닥의 끝을 꽉 눌러서 영구적인 접속을 시키는 것이다. 압착기를 장만했으므로 앰프 내부에서 스피커 출력선을 바인딩 포스트에 연결할 때 좀 더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엔드캡(접속자) 설명 및 사용 방법
[참고] 압착기를 이용한 슬리브 접속 방법

이런 물건을 왜 PG 터미널이라 부르는지는 나도 모른다. PG는 합성수지 절연체가 씌워진 것을 의미한다고는 하는데 무엇의 약자인지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압착기를 사용하여 6N1+6P1 싱글 앰프의 전원부를 SMPS에서 트랜스포머로 전부 바꾸었다. 앰프는 훨씬 무거워졌고 대신 아날로그적 품격이 더해졌다.




장인어른을 떠나보내며

장인어른의 장례를 치르느라 경황이 없는 며칠을 보냈다. 건강을 무척 자신하던 분이셨으나 대비할 수 없는 갑작스런 사고에는 누구나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식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아쉽고 죄스러운 마음 뿐이다. 왜 살아계시는 동안에 좀 더 자주 찾아뵙고 전화를 드리지 못했었을까.

물론 병석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신 부친께도 아들로서 잘 해드린 기억은 없다. 살아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가 다 알고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 하여도, 결국은 모든 것이 급작스럽게 일어난다.

장례를 치르면서 오롯이 고인에 대한 추모에 집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책임 소재가 오고가는 말은 지극히 삼갈 것이다. 가족의 일원이 갑작스럽게 떠나간 후, 남은 사람들끼리 갈등이 깊어지는 경우를 가끔 본다. 고인은 이를 결코 원치 않을 것이다.  갑작스런 죽음 뒤에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사실이 주변 사람들에게 풀어야 할 숙제를 안기기도 한다. 누구나 자신의 죽음이 언제 닥칠 것인지를 예상하지 못하므로, 앞으로 충분히 시간을 두고 해결하겠노라고 남겨둔 해묵은 숙제들이 갑자기 드러나면서 문제가 더욱 꼬이기도 한다.

고인은 1·4 후퇴 때 맨몸으로 가족과 함께 흥남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 거제도에서 내리신 후 홀로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에서 의류사업으로 자수성가하신 분이시다. 평생 신의와 정직으로 사신 분으로서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시면서도 가족과 주변분을 돕는 데에는 아낌이 없었다. 워낙 자기 관리에 철저하셨던 분이라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심에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다.

장례를 치른다는 것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매우 고통스런 일이다. 그러나 어려움을 이기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필연적으로 드러나는 갈등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조금 더 '어른'이 되었음을 느꼈다.

장인어른, 평안히 가십시오.

경기도 남양주시 소재 가족묘지에 모셨다.

故 안진명(1938.11.26.-2019.1.12.)


2019년 1월 15일 화요일

독서 기록 - '학력파괴자들'외 세 권


(학교를 배신하고 열정을 찾은) 학력 파괴자들

  • 정선주 지음

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

  • 부제: 인정과 서열의 리트머스, 이상한 나라의 호칭 이야기
  • 이건범, 김하수, 백운희, 권수현, 이정복, 강성곤, 김형배, 박창식 지음

천재들의 대참사

  • 원제: Disrupted: My Misadventure in the Start-Up Bubble
  • 댄 라이언스 지음 | 안진환 옮김
생명공학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창업 교육에서 나를 가장 당혹스럽게 한 것은, 창업을 통해서 이익을 실현하는 것은 물품이나 서비스를 팔아서가 아니라 바로 주식을 팔아서(=기업을 비싼 가치로 인정받아 팔아넘기고 손을 떼는 것. 대주주는 주식 매도를 하는데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라는 말을 들을 때였다. 이런 철학에서라면 아이디어 혹은 시제품을 가진 창업자(공동 창업자 포함), 그리고 벤처투자자를 제외한 사람은 비즈니스계에서 보이지 않는다. 바로 소외된 일반 직원과 소비자를 말한다. 인터넷으로 전부 연결된 요즘 고객이란 자신의 정보를 다른 대기업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넘기는 '호구'가 되고 있다.

저자는 원래 언론계에서 기술 전문 기자로 오래 일해왔지만 구조조정으로 인하여 현재의 나와 비슷한 나이에 한 순간에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힘겨운 재취업 활동을 거쳐 그가 입사한 곳은 보스턴에 위치한 IT 스타트업 기업으로 디지털 마케팅 및 콘텐츠마케팅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기업은 전혀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IPO(기업공개)는 우여곡절 끝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창업자를 비롯한 대주주만 큰 이익을 얻는다. 이 책에서 다루어진 기업이 성공적으로 상장하던 날, CTO는 직원들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모두들 자리로 돌아가 일하세요." 
샴페인은 직원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작은 술병을 직원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기는 했다지만 말이다. 기업공개라는 것은 영화제작자(벤처 투자자)가 그럴싸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배우(창업자)를 골라서 흥행히 될만한 영화를 만들어 개봉하는 것과 유사하다. 

50대의 저널리스트에게 IT 스타트업 기업이란 학력은 높지만 인적 구성이 다양하지 못하고 경험이 부족한 직원들에게 마치 저급 문화와 다를바가 없는 기만적인 창업 및 경영 이념을 주입하여 스스로가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곳이었다. 혁신이라는 미명 하에 의사소통이나 결정 및 조직관리를 하는 방식은 지독히 비합리적이었다. 사탕이 벽을 가득 채운 알록달록한 휴게실이나 체력단련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첨단 기술을 보급하는 곳으로 위장하였으나 결국은 '보일러룸'과 같은 떠들썩한 공간에서 텔레마케터가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소프트웨어를 파는 것이 고작이었다. 

기존의 질서가 깨지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 소개한 첫번재 책(학력파괴자들)에서는 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사이버 대학이나 MOOC(내가 쓴 글 링크)와 같이 제도권 바깥에 있는 교육 시스템을 이용하여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받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기업의 운영도 전통적인 조직 서열과 이에 맞는 예우(예를 들어 상급자일수록 독립된 공간을을 배정받는) 및 의사결정체계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점차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무엇인가 잘못되거나 잃는 것은 없을까? 

관계

  • 부제: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의 삶의 지혜와 통찰
  • The School of Life 지음 | 구미화 옮김
이번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잔잔하게 마음에 와 닿는 책이다. 몇 권을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 한국어판 서문을 보면 '인생학교'의 목표는 남녀관계, 일, 여가생활, 문화적 측면이라는 중요한 분야에서 세상의 감성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의 양을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책에서는 첫번째 분야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 비록 요즘은 애정관계라는 것이 이성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그 범위의 확장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말이다.

현대에 널리 퍼진 것은 낭만주의 애정관이다. 사랑이란 서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짝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감정이 이끌리는대로 나아가야 하며,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있고, 비밀은 전혀 없어야 하며, 감정과 섹스의 대상은 반드시 일치해야 하고, 한 파트너와 일생을 같이해야 하는...

하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한 틀은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다. 대부분 아름답고 흐뭇한 내용이지만 기만적인 내용도 있다. 30쪽에 나열한 낭만주의 '대본'의 내용을 보자.
  • 내면과 외면이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야 하며, 첫눈에 서로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껴야 한다.
  • 부부관계를 시작할 때만 아니라 영원히 대단히 만족스러운 섹스를 해야 한다.
  • 절대 다른 사람에게 끌리면 안된다.
  • 직감적으로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 사랑에 관한 한 교육이 필요 없다. 비행기를 조종하거나 뇌수술을 하려면 교육이 필요하겠지만 사랑을 하는 데는 교육이 필요 없다. 느끼는 대로 따라가다보면 저절로 배우게 될 것이다.
  •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어떤 비밀도 없어야 하며 늘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일 때문에 방해를 받으면 안 된다).
  • 성적·정서적으로 긴장감을 잃지 않고 가정을 꾸려나가야 한다.
  •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우리의 영적 동반자이자 가장 좋은 친구이며, 공동 양육자이고 공동 운전사이며, 회계사이자 가정관리사이며 정신적 지주다.
부부관계가 더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낭만주의적 애정관을 고전주의적 애정관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다음과 같다.
  • 사랑과 섹스는 늘 한 세트가 아니어도 정상이다.
  • 초기에 대놓고 진지하게 돈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사랑에 대한 배신은 아니다.
  • 나는 약점이 있는 사람이고 배우자도 그렇다고 인정하면 서로에 대한 인내와 관용이 커진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엄청난 이익이다.
  • 나는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그들도 나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어떤 특이한 결함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작용하는 방식이 그렇다.
  •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인위적인 노력을 수시로 해야 한다. 직감으로는 자신이 가야 할 정확한 방향을 알 수가 없다.
  • 욕실 수건을 걸어놓아야 하는지, 아니면 바닥에 깔아도 되는지를 놓고 언쟁하느라 두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시시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빨래와 시간 약속에도 특별한 품격이 있다.
170쪽이 채 되지 않는 작은 판형의 책이지만 읽어나가는 동안 우리가 세뇌되었던 낭만주의 애정관에 대한 문제를 차분하게 한 꺼풀씩 벗겨주는 책이다. 흔히 외도는 낭만주의 애정관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로 여겨진다. 물론 이 책이 외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존경할만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유독 이 문제에서는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 하나로 그 사람의 삶 전채를 송두리째 잘못된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137쪽에 나오는 슬픈 혼인서약서를 보자.
"오직 당신에게만 실망할 것을 약속합니다. 거듭된 불륜과 바람둥이 같은 생활을 통해 제 회한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기보다는 오로지 당신에게만 쏟아 부을 것을 약속합니다. 불행해지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아본 끝에 마침내 제 자신을 바치기로 선택한 대상이 바로 당신입니다."
맨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바람직한 사랑을 할 준비는 다음과 같은 때에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 완벽하기를 단념할 때
  • 나를 완벽히 이해해 주리라는 희망을 버릴 때
  • 우리가 제정신이 아님을 깨달을 때
  • 충고를 잘 받아들이고, 또 침착하게 충고할 때
  • 서로 잘 안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서로를 적당히 속이고 배신하면서 삐그덕거리는 결혼생활을 어쨌든 유지하라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은 아니다. 지금까지 턱없에 높은 기대를 서로에 대해 하기에 불행을 초리했던 낭만주의 애정관을 이제 벗어나서 조금 더 솔직하고 현실적인 관점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