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7일 일요일

독서 기록 - <오늘도 남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외 세 권

며칠 전, 넷플릭스 제작 영화 <덤플링>을 보았다. 미인대회 수상 경력이 있고 지금도 대회 감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엄마에게 뚱뚱한 십대 딸 윌로딘은 늘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긍정적이고 쾌활한 딸에게는 늘 돌리 파튼의 노래를 들려주며 곁에 있어주던 이모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모는 건강상의 문제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딸은 엄마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 십대 미인대회(미스 틴 블루보닛)에 엉뚱하게도 참가 신청을 한다. 그것도 입상 가능성이 있는 소질이 전혀 없는 친구들과 함께. 사실은 대회를 뒤집어 엎으려는 마음이었지만, 이모가 즐겨 찾던 돌리 파튼의 커버 쇼를 하던 클럽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열심히 대회 준비를 한다. 비록 마지막 의상 준비가 늦어져서 대회 중간에 중간에 실격을 했지만 모든 참가자들과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장기자랑을 펼쳤고,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만을 강조하던 미인대회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이 영화에는 시종일관 돌리 파튼의 노래가 나온다. 그녀가 그렇게 좋은 메시지가 담긴 훌륭한 음악을 많이 작곡한 사람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 영화 <덤플링>의 주인공 윌로딘은 미인대회 입상을 위해 살을 빼려고 하지 않았다.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훈남이 호감을 표시했을 때 '왜 나같은 애를 좋아하느냐'고 자신감을 잃던 그녀였지만,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모를 통해서 알게된 돌리 파튼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현재의 모습 그대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예심(?) 자리에서 심사위원들이 충의(loyalty)가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었을때, 윌로딘의 대답은 그야말로 명언이었다. 

힘겨운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체중을 줄이고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지우고 나서 비로소 인정을 받고 성취감을 느꼈다는 결말이 아닌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오늘 소개할 책인 <오늘도 남의 눈치를 보았습니다>와 서로 상통하는 면이 있어서 영화 이야기를 서두에 적어 보았다.


오늘도 남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나를 위한 심리 수업"
  • 미즈시마 히로코 지음 | 박재현 옮김
자신감은 생기는 것이 아니다. 훈련을 통해서 자신을 스스로 생각하는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듦으로써 자신감을 갖게 되거나, 미처 몰랐던 자신의 좋은 점을 발견하는 것으로서 자신감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감의 근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카트 읽는 남자

  • "삐딱한 사회학자, 은밀하게 마트를 누비다"
  • 외른 회프너 지음 | 염정용 옮김
슈퍼마켓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과 태도, 대화, 그리고 카트에 담긴 물건 목록(뒤에서 말할 '신호')을 통해서 살펴본 사회학. 흥미로운 책이기는 하지만 독일에서 구입 가능한 식료품이 우리와는 너무나 달라서 공감을 하기가 어려웠다. 더욱 어려운 것은 옷을 가리키는 이름었다. 유니클로에 가면 모든 옷의 이름이 영문을 한글로 소리나는대로 적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우리 생활에 완전히 침투한 서양식 복식의 이름을 현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지엽적인 문제이다. 이 책의 요지는 2장에 잘 나타나 있다. 개별성이란 사실 날조된 것이며, 사람들을 어떤 그룹으로 나누어서 연구하는 것은 사회학의 중요한 방법론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을 정확히 감지하려면 '신호'를 사람들이 어떻게 다루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이 책은 슈퍼마켓에서 만난 사람들의 신호를 이용하여 그들을 나름대로 평가하고 해석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추락한 이유(Since we fell)

  • 데니스 루헤인 지음 | 박미영 옮김
마틴 스콜세지 감독,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의 원작 소설 <살인자들의 섬>의 저자인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흥미롭게 읽었다. 

초협력사회(Ultrasociety)

  • 피터 터친 | 이경남 옮김
요즘 인기를 끄는 빅 히스토리 관점에서 인간에게 전쟁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전쟁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고, '전쟁을 알자'에 해당한다. 이 책에서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여러 차례 언급되지만 빅 히스토리 분야의 저자로 유난히(?)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유발 하라리에 대해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왜 그런가 했더니 이 책은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와 나온 년도가 같다(2016년 - 영문판 기준).

인류 역사에서 농경사회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사회가 제도화되고 대규모로 조직화된 협력이 가능하졌다는 것이 매우 일반적인 믿음이다. 그러나 터키에서 발견된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이 유적이 만들어진 것은 약 1만년 전으로 신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석기 시대에 이렇게 정교하고도 규모가 큰 석조 건축물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무슨 연장으로?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출처: 위키피디아

출처: http://eden-saga.com/en/archeology-neolithic-turkey-protohistoric-temple-animals-shamanism-gobekli-tepe.html

괴베클리 테페 다음으로 오래된 유적인 수메르와 괴베클리 테페 사이의 시간 간격이 수메르와 현대의 시간 간격보다도 길다(위키피디아).
괴베클리 테페와 같은 인간의 초협력은 고도화된 사회의 부산물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이러한 구조물을 만든 목적은 후세 사람들이 이해할 도리가 없지만,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수십년 동안 모이고 협력하는 이벤트 자체가 이들에게 중요했을 것이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건강성을 '창조적 파괴'라는 단어로 압축하여 표현했다. 역설적으로 전쟁이란 '파괴적 창조'의 원천이 된다. 지금까지는 경쟁의 원리에 방점이 찍혔지만, 이 책의 주장에 의하면 집단 간에 경쟁이 벌어질 경우 그 집단 안에서는 높은 수준의 협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협력은 독재자에 의해서 강제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제10장 <인간 진화의 지그재그> 중에서. 306쪽.
전쟁을 벌이는 동물은 개미와 인간 말고는 없다고 한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비즈니스화하여 이용하려는 세력은 항상 있었고, 역설적으로 전쟁을 겪은 후(전쟁을 통해서?) 인류의 기술은 장족의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요즘과 같은 이성의 시대에 필요악으로서 전쟁을 옹호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다만 과거에 존재했었던 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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