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5일 화요일

독서 기록 - '학력파괴자들'외 세 권


(학교를 배신하고 열정을 찾은) 학력 파괴자들

  • 정선주 지음

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

  • 부제: 인정과 서열의 리트머스, 이상한 나라의 호칭 이야기
  • 이건범, 김하수, 백운희, 권수현, 이정복, 강성곤, 김형배, 박창식 지음

천재들의 대참사

  • 원제: Disrupted: My Misadventure in the Start-Up Bubble
  • 댄 라이언스 지음 | 안진환 옮김
생명공학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창업 교육에서 나를 가장 당혹스럽게 한 것은, 창업을 통해서 이익을 실현하는 것은 물품이나 서비스를 팔아서가 아니라 바로 주식을 팔아서(=기업을 비싼 가치로 인정받아 팔아넘기고 손을 떼는 것. 대주주는 주식 매도를 하는데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라는 말을 들을 때였다. 이런 철학에서라면 아이디어 혹은 시제품을 가진 창업자(공동 창업자 포함), 그리고 벤처투자자를 제외한 사람은 비즈니스계에서 보이지 않는다. 바로 소외된 일반 직원과 소비자를 말한다. 인터넷으로 전부 연결된 요즘 고객이란 자신의 정보를 다른 대기업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넘기는 '호구'가 되고 있다.

저자는 원래 언론계에서 기술 전문 기자로 오래 일해왔지만 구조조정으로 인하여 현재의 나와 비슷한 나이에 한 순간에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힘겨운 재취업 활동을 거쳐 그가 입사한 곳은 보스턴에 위치한 IT 스타트업 기업으로 디지털 마케팅 및 콘텐츠마케팅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기업은 전혀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IPO(기업공개)는 우여곡절 끝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창업자를 비롯한 대주주만 큰 이익을 얻는다. 이 책에서 다루어진 기업이 성공적으로 상장하던 날, CTO는 직원들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모두들 자리로 돌아가 일하세요." 
샴페인은 직원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작은 술병을 직원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기는 했다지만 말이다. 기업공개라는 것은 영화제작자(벤처 투자자)가 그럴싸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배우(창업자)를 골라서 흥행히 될만한 영화를 만들어 개봉하는 것과 유사하다. 

50대의 저널리스트에게 IT 스타트업 기업이란 학력은 높지만 인적 구성이 다양하지 못하고 경험이 부족한 직원들에게 마치 저급 문화와 다를바가 없는 기만적인 창업 및 경영 이념을 주입하여 스스로가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곳이었다. 혁신이라는 미명 하에 의사소통이나 결정 및 조직관리를 하는 방식은 지독히 비합리적이었다. 사탕이 벽을 가득 채운 알록달록한 휴게실이나 체력단련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첨단 기술을 보급하는 곳으로 위장하였으나 결국은 '보일러룸'과 같은 떠들썩한 공간에서 텔레마케터가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소프트웨어를 파는 것이 고작이었다. 

기존의 질서가 깨지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 소개한 첫번재 책(학력파괴자들)에서는 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사이버 대학이나 MOOC(내가 쓴 글 링크)와 같이 제도권 바깥에 있는 교육 시스템을 이용하여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받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기업의 운영도 전통적인 조직 서열과 이에 맞는 예우(예를 들어 상급자일수록 독립된 공간을을 배정받는) 및 의사결정체계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점차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무엇인가 잘못되거나 잃는 것은 없을까? 

관계

  • 부제: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의 삶의 지혜와 통찰
  • The School of Life 지음 | 구미화 옮김
이번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잔잔하게 마음에 와 닿는 책이다. 몇 권을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 한국어판 서문을 보면 '인생학교'의 목표는 남녀관계, 일, 여가생활, 문화적 측면이라는 중요한 분야에서 세상의 감성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의 양을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책에서는 첫번째 분야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 비록 요즘은 애정관계라는 것이 이성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그 범위의 확장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말이다.

현대에 널리 퍼진 것은 낭만주의 애정관이다. 사랑이란 서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짝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감정이 이끌리는대로 나아가야 하며,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있고, 비밀은 전혀 없어야 하며, 감정과 섹스의 대상은 반드시 일치해야 하고, 한 파트너와 일생을 같이해야 하는...

하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한 틀은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다. 대부분 아름답고 흐뭇한 내용이지만 기만적인 내용도 있다. 30쪽에 나열한 낭만주의 '대본'의 내용을 보자.
  • 내면과 외면이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야 하며, 첫눈에 서로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껴야 한다.
  • 부부관계를 시작할 때만 아니라 영원히 대단히 만족스러운 섹스를 해야 한다.
  • 절대 다른 사람에게 끌리면 안된다.
  • 직감적으로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 사랑에 관한 한 교육이 필요 없다. 비행기를 조종하거나 뇌수술을 하려면 교육이 필요하겠지만 사랑을 하는 데는 교육이 필요 없다. 느끼는 대로 따라가다보면 저절로 배우게 될 것이다.
  •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어떤 비밀도 없어야 하며 늘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일 때문에 방해를 받으면 안 된다).
  • 성적·정서적으로 긴장감을 잃지 않고 가정을 꾸려나가야 한다.
  •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우리의 영적 동반자이자 가장 좋은 친구이며, 공동 양육자이고 공동 운전사이며, 회계사이자 가정관리사이며 정신적 지주다.
부부관계가 더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낭만주의적 애정관을 고전주의적 애정관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다음과 같다.
  • 사랑과 섹스는 늘 한 세트가 아니어도 정상이다.
  • 초기에 대놓고 진지하게 돈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사랑에 대한 배신은 아니다.
  • 나는 약점이 있는 사람이고 배우자도 그렇다고 인정하면 서로에 대한 인내와 관용이 커진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엄청난 이익이다.
  • 나는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그들도 나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어떤 특이한 결함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작용하는 방식이 그렇다.
  •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인위적인 노력을 수시로 해야 한다. 직감으로는 자신이 가야 할 정확한 방향을 알 수가 없다.
  • 욕실 수건을 걸어놓아야 하는지, 아니면 바닥에 깔아도 되는지를 놓고 언쟁하느라 두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시시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빨래와 시간 약속에도 특별한 품격이 있다.
170쪽이 채 되지 않는 작은 판형의 책이지만 읽어나가는 동안 우리가 세뇌되었던 낭만주의 애정관에 대한 문제를 차분하게 한 꺼풀씩 벗겨주는 책이다. 흔히 외도는 낭만주의 애정관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로 여겨진다. 물론 이 책이 외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존경할만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유독 이 문제에서는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 하나로 그 사람의 삶 전채를 송두리째 잘못된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137쪽에 나오는 슬픈 혼인서약서를 보자.
"오직 당신에게만 실망할 것을 약속합니다. 거듭된 불륜과 바람둥이 같은 생활을 통해 제 회한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기보다는 오로지 당신에게만 쏟아 부을 것을 약속합니다. 불행해지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아본 끝에 마침내 제 자신을 바치기로 선택한 대상이 바로 당신입니다."
맨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바람직한 사랑을 할 준비는 다음과 같은 때에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 완벽하기를 단념할 때
  • 나를 완벽히 이해해 주리라는 희망을 버릴 때
  • 우리가 제정신이 아님을 깨달을 때
  • 충고를 잘 받아들이고, 또 침착하게 충고할 때
  • 서로 잘 안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서로를 적당히 속이고 배신하면서 삐그덕거리는 결혼생활을 어쨌든 유지하라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은 아니다. 지금까지 턱없에 높은 기대를 서로에 대해 하기에 불행을 초리했던 낭만주의 애정관을 이제 벗어나서 조금 더 솔직하고 현실적인 관점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