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6일 금요일

NCBI에서 대량의 미생물 유전체 정보 다운로드하는 요령 - 업데이트

몇 번에 걸쳐서 유전체 정보의 일괄 다운로드(전체 혹은 선별된 것) 방법을 블로그에 작성한 적이 있다. 항상 일정한 위치에 업데이트된 상태로 존재하는 assembly summary 파일을 받아서 선택한 유전체의 FTP 주소 base를 얻어낸 다음 이를 wget이나 curl로 내려받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좀 더 편리한 방법은 없을까? 검색을 해 보니 ncbi-genome-downlaod라는 파이썬 패키지가 보인다. 이를 오늘의 블로그 포스트 뒷부분에 소개하기로 하고 우선은 NCBI Genome Download (FAQ)를 오랜만에 읽어보았다.

2번 항목(대용량 데이터 셋의 다운로드에 가장 좋은 프로토콜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니 rsync를 최우선적으로 권고한다고 하였다.  그 다음은 HTTPS이고, FTP는 가장 나중이다. 솔직히 말해서 wget과 curl의 차이도 잘 모르는 부끄러운 연구자라서 이 정보는 매우 새롭게 느껴졌다. [curl 대 wget] 어느 프로그램이 더 좋을까?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RefSeq의 complete bacterial genome을 다운로드하는 방법은 15번 항목에서 설명하였다. 오늘 날짜의 bacteria assembly summary file(링크) 무려 31 메가바이트가 넘으며 라인 수만해도 104,704이다! FAQ 페이지에서는 12번째 컬럼에서 최신 어셈블리 여부("latest")를 확인할 수 있다 하였는데, 실제 파일을 열어보면 모든 자료가 latest이다.

ncbi-genome-download(NCBI Genome Downloading Scripts)는 PyPIGitHub에 전부 존재한다. 이 스크립트의 아이디어는 Mick Watson의 Kraken downloader script에서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몇 가지 사용례를 살펴보자.
$ ncbi-genome-download bacteria
$ ncbi-genome-download bacteria,viral
$ ncbi-genome-download bacteria --parallel 4
$ ncbi-genome-download --section genbank fungi
대단히 단순명료하다. 이렇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스크립트가 도처에 널려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남이 만들어 놓은 도구를 갖다 쓰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나도 뭔가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하는데 늘 부족하기만 하다. 

2018년 1월 23일 화요일

Adaptive mutations in bacteria

제목을 써 놓고 보니 덜컥 겁이 난다. 내가 과연 이 어려운 제목에 합당한 블로그 포스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까? 나 자신이 과연 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나 있을까? 결국은 '진화'라는 주제로 접근해 가야 하는데, 모든 자연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잘못 이해되고 있는 진화라는 개념의 지지자로서 내가 과연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돌연변이란 DNA의 염기(서열)이 여러가지 요인에 의하여 원본(즉 부모)과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후손으로 전파 가능하여야 하고, 이것이 반드시 표현형으로 나타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돌연변이는 세포 혹은 개체 수준에서 일어나지만, 진화는 집단에 대하여 적용되는 개념이다. 돌연변이는 진화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지만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 선택(positive or negative)을 거쳐서 집단 안에서의 특정 유전자형을 지닌 개체의 빈도가 변화했을때 비로소 진화가 일어났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를 설명하는 최초의 이론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用不用說, Lamarckism, Lamarckian inheritance, theory of use and disuse)이다.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현재 라마르크주의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의 후성유전학 연구에 의하면 어미의 경험이 자손으로 전해지는 흥미로운 결과가 종종 발표되는 것 같다.

진화를 공부하고 싶다면

아래의 링크는 앞으로 계속 업데이트할 생각이다. 이 글에서는 주로 박테리아의 돌연변이와 진화에 한정하여 논할 것이다.

적응진화(adaptive mutation)이란 무엇인가?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으로 일어나고, 이 중에서 환경에 의해 선택되는 것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현대 진화학의 핵심 기념일 것이다('Mutation precedes selection'). 그런데 유독 박테리아는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 가져다 놓아도 살아남는 돌연변이체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미생물처럼 단순한 생명체는 환경에 맞는 돌연변이를 스스로 만든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를 부정한 유명한 실험이 바로 1943년에 발표된 루리아와 델브뤽의 fluctuation test이다(위키피디아). 이 실험의 결론은 선택압(이 경우에는 phage T1의 감염)이 존재하기 이전에 이미 내성 돌연변이체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 내성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으로 생긴 것으로서 미생물 세포가 설계하거나 선택한 것은 전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생물의 adaptive mutation, 즉 세포가 분열을 하지 못할 극한 상황에서도 이에 맞추어어진 돌연변이가 생겨난다는 가설을 입증하는(것처럼 보이는) 결과가 이따금 발표되었고, 1988년 John Cairns가 이 문제를 학계로 가지고 올라오면서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되었다(The origin of mutants. Nature 1988). Cairns는 세포가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용한 돌연변이를 골라낸다고 주장하였다. 항암제에 내성을 지니는 변이 암세포가 생겨나는 것도 adaptive mutation 현상 중의 하나로 보고 있다.

Adaptive mutation을 현대적인 용어로 정의한다면 (1) 선택 과정에 놓여서 분열을 하지 못하는 미생물 집단으로부터 새로운 돌연변이 개체가 계속 만들어져서 성장하는 현상 또는 (2) nonlethal selection 조건 하에서 선택압을 낮출 수 있는 변이 개체가 생거나는 과정(선별되지 못하는 돌연변이 개체가 생기는지의 여부는 관계없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좀 더 완곡하게 표현한다면 stationary-phase mutagenesis라고도 부른다. Fluctuation test에서는 가해진 선택압이 정상 세포에게는 치명적인 것이라서 이들을 전부 죽여버리므로, 선택압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변이체가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것 자체가 차단되었다. 따라서 nonlethal selection이라는 조건이 중요한 것이다.

Adaptive mutation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완벽하게 증명한 사례는 아직 없는 것 같다(내가 문헌 조사를 철저하게 하지 못해서 빚어진 오해일지도 모른다). 대신 세포분열이 불가능한 조건에서 돌연변이체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는 몇 가지 메커니즘이 밝혀졌다. 이것조차 미생물이 진화를 통해서 선택한 생존 전략이라면 결국 adaptive mutation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냐고 부르짖을 수도 있겠다. Patricia L. Foster는 2000년도 논문을 통해서 대장균 FC40 스트레인에서 발견되는 메카니즘을 다음의 세가지로 정리하였다(Cold Spring Harb Symp Quant Biol 65:21 PubMed; Bioessay 22:1067 PubMed).

Recombination-induced DNA replication

The placement of genes on a conjugal plasmid

A transient mutator state

이 연구 내용은 추후에 Roth가 더욱 상세하게 리뷰하였다(Origin of mutations under selection: the adaptive mutation controversy. Ann Rev Microbiol 2006 PubMed). 상세한 내용은 문헌을 참고하면 된다.

대장균 FC40은 염색체의 lac operon에 결실이 있는 반면 이를 F episome에 갖고 있는데, lacZ +1 mutation이 있어서 lactose minimal 배지에서는 자라지 못한다(Lac- phenotype). Nonselective condition에서는 1 per 109 cells per generation 정도의 빈도로 Lac+ revertant cell이 발생한다. 그런데 Lactose minimal medium에서는 1 per 109 cells per hour로 수일 동안 지속해서 발생한다. 물론 이 revertant는 이미 만들어진 Lac+ cell이 자체 분열을 통해서 늘어난 효과는 보정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림 출처: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929355/

신개념 - Retromutagenesis

선택압이 주어져서 정상 세포는 분열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DNA의 한쪽 가닥에 발생한 돌연변이가 안정적으로 후대로 전파되려면 어떻게 해서든 최소한의 cell growth가 일어나야 한다. Retromutagenesis는 이를 설명하는 멋진 메커니즘이다(유일한 제안은 아니다). NTG 처리(adenosine -> hypoxanthine) 혹은 산화(guanosine -> 8-oxoguanosine)로 인하여 손상된 유전자로부터 변이 단백질이 만들어져서 변이 유전자가 daughter chromosome으로 복제될 정도의 최소한의 growth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1994년 Bridges가 처음 보고하였으며(Starvation-associated mutation in Escherichia coli: a spontaneous lesion hyporthesis for "directed" mutation. Mutat Res 1994, PubMed), Morreall 등이 보다 정교한 실험을 실시하였다(Evidence for retromutagenesis as a mechanism for adaptive mutation in Escherichia coli. PLoS Genetis 2005, PubMed). Retromutagenesis에서는 변이 단백질의 발현이 선행되어야 하며, transcribed strand에 일어나는 돌연변이가 결과적으로 더 많이 남게 됨이 당연하다.

Transcription bubble에서 노출되는 가닥은 non-transcribed strand이다. 여기에 존재하는 C가 탈아미노화를 거쳐서(ds DNA에 비하여 140배 높다) T로 돌연변이가 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Transcription-induced mutations: increase in C to T mutations in the nontranscribed strand during transcription in Escherichia coli. Proc Natl Acad Sci USA 1996, PubMed), tretromutagenesis와는 다른 논지의 이야기이다.

Moreall 등의 실험을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이들은 LacZ(Am) 돌연변이 세포주를 이용하였다. Amber mutation은 coding (non-transcribed) strand(NTS)에서는 TAG, transcribed strand(TS)에서는 ATG이다. 아질산(nitrous acid, HNO2)은 A에 작용하여 hypoxanthine을 만드는데, 이는 C와 결합을 한다. 따라서 한 라운드의 DNA 복제를 거치면 A:T -> G:C의 transition mutation이 일어난다. 따라서 NTS와 TS의 어느 가닥이 아질산에 의해 수식되는가에 따라서 초래되는 돌연변이가 달라진다. 이것은 DNA sequencing으로 금방 알 수 있다.  즉 NTS에 변이가 일어나면 TGG가 생기는 반면 TS에 변이가 일어나면 CAG가 생긴다. 저자들은 이 LacZ(Am) 돌연변이 대장균을 포도당이 첨가된 LB에서 포화상태까지 키운 다음 세척하여 starvation 상태로 만든 뒤 아질산을 첨가하였다. 그 다음 일부는 락토스 최소 배지에 직접 도말하고, 또 일부는 LB에서 잠시 키운 뒤 락토스 최소 배지에 도말하였다. 각 평판 배지에서 약 48시간 가량 키운 후 생성되는 Lac+ revertant의 lacZ 유전자를 시퀀싱하여 원래 있었던 amber 돌연변이가 CAG와 TGG 중 어느 것으로 더 많이 변했는지를 측정하였다.

왜 첫번째 단계에서 LB에 포도당을 첨가하였을까? 저자들은 사전 단계에서는 보통의 LB 배지를 사용하였다. 아질산을 처리하였을 때 Lac+ revertant의 발생 비율은 20배 상승하였다. 이 중에서 30개의 Lac+ revertant 콜로니를 채취하여 염기서열을 해독하였더니 전부 NTS에서만 변이가 발생한 것이었다. 원래 만들고자 했던 실험 조건은 양 가닥에 균등하게 변이가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Davis의 연구결과(Transcriptional bias: a non-Lamarckian mechanism for substrate-induced mutations. Proc Natl Acad Sci USA 1989, PubMed)로 설명이 가능하다. Transcription bubble에서 single strand 형태로 노출된 NTS는 DNA에 손상을 주는 물질에 좀 더 민감하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rich medium에서 키웠었으니 lac operon이 발현되지 않았어야 하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따라서 강한 catabolite repression이 유지되도록 일부러 포도당을 넣어주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였더나 NTS에서 revertant가 더 많이 발생하는 편향이 사라졌다.

확정된 실험 계획에 따라 아질산을 가해서 돌연변이를 유발한 뒤 rich medium에 잠시 배양했다가 lactose selective medium으로 옮겨서 생성된 Lac+ revertant에서는 CAG와 TGG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lacZ 유전자가 발현될 기회가 없었으므로 양 가닥에 발생한 손상이 배양을 거치면서 모두 공평하게 염기의 변이로 정착된 것이다. 그런데 돌연변이 유발 직후 lactose selective medium으로 옮긴 경우에는 어떠했는가? CAG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시 말하자면 TS에 더 많은 변이가 발생한 것이다. 이를 그림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http://journals.plos.org/plosgenetics/article?id=10.1371/journal.pgen.1005477
아직 이 논문을 discussion 끝부분까지 철저하게 읽은 것은 아니라서 transcription-associated mutagenesis(transcriptional mutagenesis와는 구별해야 함)와는 어떻게 다른지, 실험 결과의 다른 해석이 가능하지는 않은지 등은 이 포스팅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하였다. 결론으로는 환경이 돌연변이를 맞춤 생산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2015년 이 논문의 발표 당시 Science Daily에 이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었다.

Adaptive mutation mechanism may explain some forms of antibiotic resistance.
Retromutagenesis: Mutation occur in RNA first (2015년 8월 25일 링크)

그런데 이 기사에서는 돌연변이가 RNA에서 먼저 일어난다고 해석을 붙였다. DNA에 일어난 lesion(아질산에 의해 adenosine이 hypoxanthine으로 변한 것)을 주형으로 하여 전사가 일어날 때 RNA에 U 대신 C가 들어간 현상을 돌연변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Discussion 둘째줄을 인용해 보자.
Retromutagenesis requires that RNA polymerases bypass lesions in DNA and incorporate mutations analogous to those caused DNA polymerase bypass.
Hypoxanthine은 원래 C와 염기쌍을 이루는 것으로 배우지 않았던가(링크)? RNA polymerase가 template의 hypoxanthine에 대응하여 C를 넣는 것을 왜 bypass라고 표현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 PLoS Genetics 논문은 2018년 1월 23일 현재 4회 인용되었다. 생각만큼 널리 관심을 끄는 주제는 아닌가 싶다.

맺음말


기회가 된다면 이 포스팅은 앞으로도 계속 수정 및 업데이트를 거치게 될 것 같다. 다음에 소개할 논문은 Generation of mutation hotspots in ageig bacterial colonies(Sci Rep 2016, PubMed)이다.

업데이트 이력: 2018년 1월 24일, 1월 25일.

감각은 간사하다

왜냐하면 새롭고 참신한 것에 쉽게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부터 믿고 아껴오던 것을 쉽게 내치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봐야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서 다시 평상시와 다름없는 만족도 수준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것이 인간의 신경 회로가 돌아가는 원리이다.

진공관 앰프에 잘 어울리는 풀레인지 스피커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동안 수준 이하의 스피커 시스템 제작 또는 개조에 몰두를 했었다. 그러다가 JBL의 2-way speaker FE-M2125(JBL이라는 상표에 너무 가치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를 얻게 되면서 이 스피커가 들려주는 산뜻한 고음에 귀가 반응하기 시작하였다. 사무실에서 듣는 주력 스피커를 바꿔치기해야 되겠다는 간사한 생각이 드디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보나마나 며칠이 지나면 이러한 산뜻한 소리에 대한 감동도 점차 줄어들 것이 분명하겠지만.

집에서 CD 전집 - BEST RUSSIA CLASSICS GOLD (100장; 예전 블로그 링크) - 을 들고 출근하여 열심히 리핑을 하고 있다. 광학드라이브가 과열될까봐 조금씩 쉬어가면서 CD를 넣는 중이다. 이 전집의 가격은 요즘 더욱 떨어져서 예스24에서 39,000원에 팔린다.

오른쪽 스피커는 이제 퇴출인가?
JBL 스피커 시스템은 책상 위에 직접 올려놓기에는 약간 버거운 크기라서 배치 방법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말하는 것이 중요한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런데 요즘 심리학과 관련한 책을 조금씩 읽으면서 이런 질문을 갖게 된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이것이 아니다. 내 마음은 다음과 같은 배배꼬인 질문을 던진다.

너는 무엇을 원한다고 믿고 싶으냐?

생명체는 유전자의 전달 기계라는 입장이 있다. 어쩌면 인간의 경우 다른 동물보다 지나치게 발달한 '뇌'의 전달 기계인지도 모른다. 마음(욕구, 느낌, 기억, 의지 등등)이 동작하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결국은 모든 학문이 도달하게 될 종착역인지도 모른다. 음악에 대한 욕구, 남자 특유의 기계에 관한 욕구 등등을 어떻게 충족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까? 여기서 합리적이라 함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는 경제학적 원리만에 충실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사회에서는 이를 너무 강조하고 있다.

2018년 1월 22일 월요일

JBL FE-M2125 스피커를 얻다

근처의 사무실에 근무하시던 박사님께서 폐기하려던 2-way 스피커 1조를 얻게 되었다. 원래 댁에서 있던 것을 있던 것을 사무실로 갖고 나와서 몇 년 정도 쓰시던 것이었다. 모델명은 JBL의 FE-M2125이다. 브랜드는 JBL, 제조국은 중국, 수입자는 LG전자... 복잡하다! 공칭 임피던스는 6 ohm, 출력 음압 레벨은 87 dB/W/(1m)이며 우퍼는 6.5인치 급으로 보인다. 우퍼의 엣지도 매우 건강한 상태이다.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스피커(이전 블로그 글 링크1, 링크2)와 비교하면 능률이 낮아서 같은 앰프 세팅에서는 더 작은 소리가 난다.



주말에 잠시 나와서 한껏 음량을 높여서 소리를 들어보았다. 한쪽 채널에서 지지직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고음이 나다 안나다 하는 것이었다. 트위터 유닛이 망가졌나? 만약 트위터의 코일이 끊어졌다면(대단히 흔한 고장), 같은 것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이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은 스피커 내부를 확인해 보기로 하였다. 우퍼를 고정한 4개의 볼트를 육각 렌치로 풀고 플라스틱 커버와 스피커 유닛을 들어냈다. 기대한 바와 같이 크로스오버 회로가 보인다. PC 스피커 수준에서는 보통 전해 캐패시터 하나를 트위터에 직렬로 연결하는 간이 크로스오버 회로를 쓰고는 한다.


내부를 열어보니 트위터가 고장난 것이 아니라 단지 평단자 하나가 빠진 것이었다. 이를 제대로 끼우고 다시 조립을 한 뒤 소리를 들어보았다. 이제 정상적인 소리가 난다. 아래 사진은 사무실에서 테스트용으로 사용한 LM1875 앰프이다.


진공관 스피커와 매칭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보유한 몇 가지 반도체 앰프와 연결해 가면서 즐기기에 매우 적당한 장난감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오늘의 작은 성공을 가지고 오디오 DIY에 대한 어설픈 자신감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2018년 1월 21일 일요일

오래된 재단용 가위 녹 제거하기

아내가 이번달부터 지역 평생학습센터에서 주관하는 홈패션 강좌를 듣기 시작하였다. 재봉틀은 센터에 있는 것을 이용하면 되지만 노루발(재봉틀 부품), 재단용 가위, 곡자 등 몇 가지 도구와 부자재가 필요하다. 그중에서 제법 비싼 물건은 재단용 가위이다. 좋은 재단용 가위는 잘만 관리하면 대를 물려서 쓸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처가에 있던 가위 두 개를 얻어가지고 왔다. 길이 30 cm과 26 cm짜리 두 개로서 70년대 중반쯤 구입하신 것이라고 들었는데 너무 녹이 많이 슬고 뻑뻑하여 도저히 그대로는 쓸 수가 없었다. 장모님께서는 매우 좋은 물건이니 버리지 말고 잘 쓰라고 하셨다. '잠자리표'라는 상표가 붙은 재단용 가위를 웹에서 찾아보니 1954년에 창업한 우리나라 회사인 HEGA Corporation에서 만든 것이었다. 본사는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에 있다. 이전 회사명은 동양기업(잠자리표 행순작 재단가위)이라고 한다.

대전 중앙시장 한복거리 근처에 가면 칼이나 가위를 가는 가게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지퍼 등 부자재를 사러 주말을 이용하여 외출을 하였다. 그런데 가위 가는 장인은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는 분이었다. 원단 상가에 가위를 맡겨 놓고 갈아달라고 부탁해도 되지만 며칠 동안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리고 심하게 녹이 슨 것도 해결이 될까? 동일한 사람인지 알 수는 없지만 가끔 동네 아파트 상가 입구에 작은 트럭을 세워두고 칼이나 가위를 갈아주는 사람을 본 적은 있지만 언제 오는지를 알 수가 없다.

재단 가위는 미용 가위만큼 비싸지는 않다. 잠자리표 가위는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3~4만원 정도이다. 중국제는 더 싸다. 당장 월요일 수업을 위해 18.000 원짜리 저가 가위를 하나 살까, 아니면 이 녹슨 가위를 닦아볼까? 원단 가게에서도 잠자리표 가위라면 잘 손질하여 계속 쓰라고 한다. 결국 녹슨 가위를 닦아보기로 했다. 아니, 갈아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녹슨 금속은 베이킹소다를 물에 풀처럼 개어서 바른 뒤  20분쯤 두었다가 문질러 닦아내면 된다는 인터넷 상의 정보를 보고 어렵지 않게 녹이 제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녹도 녹 나름이다. 아무리 베이킹소다를 칫솔로 문질러도 녹은 없어지질 않았다. 다이소에서 판다는 녹 제거제로도 소용이 없을 수준의 두터운 녹이 슨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포와 줄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손가락 끝이 다 부르틀 정도로 사포질을 시작하였다. 장갑을 끼고 사포질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힘써 사포질을 거의 끝내고 나니 손에 잡기 쉽게 직육면체 모양으로 생긴 연마용 스폰지가 집에 있었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손가락 피부는 이미 엉망이 되었지만 어쩌겠는가. 녹 제거가 끝난 뒤에는 WD-40을 바른 뒤 마른 걸레로 닦아내었다.


사포질 전의 녹이 심하게 슨 상태의 사진을 찍어놓지 않아서 비교가 되지는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손잡이 부분을 좀 더 벗겨낸 뒤 검정색 스프레이 래커를 칠하고 싶었다. 그러나 얇게 여러번 칠을 하고 잘 말리는 것도 성가신 일이라 그냥 두었다.

녹은 이렇게 힘들여 제거하였으나 날을 가는 일을 빼먹을 수는 없다. 칼갈이 아저씨를 동네에서 만나는 행운을 기대하든지, 아니면 보다 적극적으로 유성 5일장을 찾아가든지.

2018년 1월 12일 금요일

새로운 유전체 분석 서비스, GoSeqIt Tools

이틀 전, 낯선 곳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New web-platform for WGS-based bacterial characterisation

생명과학 연구를 위한 각종 키트나 서비스에 대한 광고성 메일을 종종 받지만, 내가 평소에 하는 업무와 관련하여 이렇게 매우 구체적인 안내 메일이 온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웹 주소(http://www.goseqit.com/)를 보면 전형적인 회사이다. 클릭을 하여 보았다. 덴마크 공과대학교(DTU)의 Center for Genomic Epidemiology(CGE)에서 매우 최근에 창업한 기업이었다. CGE에서는 20 가지 이상의 분석 도구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좀 더 사용자 친화적 및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하여 기업화를 한 것으로 보인다.

GoSeqIt에서 현재 서비스하는 분석 도구는 전부 peer-review journal을 통하여 발표된 것으로 다음과 같다.

  1. Species identification
  2. Multilocus sequence typing (MLST)
  3. Identification of acquired antibiotic resistance genes and point mutations in chromosomal genes causing antimicrobial resistance
  4. Identification of virulence factors for Escherichia coli, Staphylococcus aureus, Enterococcus, and Listeria
  5. Identification of plasmids for Enterbacteriaceae and gram-positive bacteria
  6. Plasmid multilocus sequence typing, pMLST, for plasmids of the type IncN, IncHI1, IncHI2, IncF, and IncA/C
  7. Identification of serotype for E. coli
  8. Identification of FimH type for E. coli
GoSeqIt에서 사용하는 데이터베이스는 CGE의 것보다 더 빨리 업데이트가 된다고 한다. 또한 아마존 클라우드 안에서 돌아가므로 매우 빠르고 안정적이라고 자랑을 하였다. 유튜브에서는 등록 및 사용 방법에 대한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새로 등록한 사용자에게는 100개의 무료 CoSeqIt "coin"을 지급한다고 하였다. 등록을 하니 application을 돌릴 때마다 비용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등록 후 첫 화면에서  "내 지갑"을 가 보았다.


코인의 최소 구입 단위는 200(125 달러)이다. 파일은 웹 브라우저 내에 drop을 하여 제출한다. 새로운 파이프라인의 가격은 1~4 코인 수준이고, ContigAnalyzer는 무료이다. 9개 도구 중에서 원하는 것을 골라서 파이프라인을 만들고, 새 프로젝트를 설정한 다음, 파일을 업로드하여 분석을 진행하면 되는 구조이다. 샘플 파일에 비례하여 비용이 올라가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코인 지불은 파이프라인 생성 단계에서 하기 때문이다. 업로드 가능한 샘플 파일은 high-throughput sequencing raw data는 안되고 오직 contig/genome level의 파일인 것으로 파악된다. 

ContigAnalyzer tool 하나만으로 구성된 파이프라인을 만든 다음 어제 NCBI에 등록하느라 사용했던 박테리아 genome assembly 두 개를 올려보았다. 리포트는 웹 브라우저에서 볼 수도 있고 PDF 파일로 다운받을 수도 있다.

유료라는 것이 아쉽지만 매우 신선한 발상의 서비스가 아닌가? 여러개의 샘플 파일을 올린 경우 하나로 통합된 리포트가 나온다면 더 좋을 것이다. 앞으로 관심을 갖고 활용해 보련다.


 

2018년 1월 7일 일요일

독서 기록 - 전문가의 독재(The Tyranny of Experts) 및 대량살상 수학무기(Weapons of Math Destruction)

내가 즐겨 읽는 책은 바로 이런 부류의 것들이다. 요즘은 여기에 더하여 소설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전문가의 독재(The Tyranny of Experts)

  • 윌리엄 이스털리(링크) 지음
  • 김홍식 옮김
'빈 서판(書板; 라틴어 tabula rasa, 영어로는 blank slate)'이라는 개념이 있다. 종이와 펜이 귀하던 시절,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서판에 글씨를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을 것이다. 빈 서판 이론은 인간의 본성은 타고난 것이 적다는 철학적 이론이다. 즉 깨끗이 닦인 빈 서판에 글씨를 쓰듯이 교육을 통해서 인간에게는 그 어떤 생각이든 가르칠 수(주입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경제발전으로 가난한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것도 빈 서판에 글씨를 써 내려가듯이(역사적·지리적 맥락을 무시하고) 가능하다는 것도 이 이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본다. 즉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적 접근 - 전문가들이 문제점을 진단하고 빈곤 해결을 위한 방안을 수립하여 정부는 이를 강력하게 추진 - 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인자한 독재자(우리에게는 박정희라는 사례가 있다)'가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이다. 그러나 저자 이스털리는 이것은 일종의 환상이며, 가난한 나라에 부족한 것은 기술이나 정책이 아니라 개인의 권리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부유한 서방 세계에서 20세기 초반 가난한 나라에 대한 원조가 시작된 것은 보편적인 인권 개념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동아시아에서 존재했었던 '인자한 독재자'에 의한 경제적 발전은 허구이다. 국가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난한 자들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것이 경제적 번영을 일구어 나가는 근본적인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빈곤이 전문적인 능력의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테크노트라트적 환상은 새로운 권력과 정당성을 자연스럽게 국가에게 안긴다. 그러나 기술적 문제는 빈곤의 여러 <증상> 중 하나이지, 빈곤의 <원인>이 아니며, 빈곤의 원인은 정치적, 권리적 권리의 부재라는 것이 이 책의 일관적인 주장이다.

15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유럽보다 우월한 삶을 영위했던 중국은 왜 그 후에 몰락하였나? 똑같은 식민지였으면서도 왜 북미와 남미는 이렇게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었나? 현재의 경제적 번영은 개방과 국외 무역을 중시하고 엘리트의 독식 구조를 타파하며 개인의 권리를 위해 오랜 기간 투쟁해온 공동체·나라들의 손에 돌아갔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 책은 특히 탐욕스런 자본주의의 정신의 지주로 일컬어지는 애덤 스미스의 인용문은 실제로 가장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p.375~).
개인들은 최대한 많은 가치를 생산하려고 부단히도 자기 일에 주력한다. 자신의 이득만을 보고 하는 일이지만, 다른 많은 일에서도 그렇듯 개인은 이런 식으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인도되어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에 기여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아다고 해서 꼭 사회에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공익에 기여하기를 바랄 때보다, 오히려 그런 생각 없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바로 그 행위가 공익에 더 효과적으로 기여할 때가 많다.
이 인용구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스미스가 <탐욕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독점의 폐해를 분명히 지적하였다. 스미스가 주장한 자유 시장은 기존의 상인을 더 부자가 되게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독점권과 특권을 박탈하여 그들의 부를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가 주양한 자유 무역은 빈곤층을 위한 저렴한 식량의 수입을 촉진하여 그러한 거대 지주들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p.377).

이 책의 2장에서 소개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군나르 뮈르달에 대한 공부가 숙제로 남았다. 아울러서 진정한 '자유'와 '권리'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만큼 자유주의의 의미가 왜곡되어 쓰이는 곳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대량살상 수학무기(Weapons of Math Destruction)

수학이라는 멋진 도구를 현실 세계에 반영한다는 것은 '더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도구가 자본에 종속되어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약탈자로 둔갑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공공 데이터(요즘 유행하는 빅데이터)를 이용하여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지 못하면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당장 뒤쳐질것이라는 불안감을 이용한 마케팅이 횡행하고 있다.

방대한 분량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지혜로운 판단을 내리려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행동이다. 이 과정에서 수학과 인공지능이라는 기법이 필수적으로 쓰인다.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를 이용하여 어떤 수학적 모델(모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서두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혔다.
우리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누가 모형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개발자가 모형을 통해 성취하려는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개인은 저마다 다 다르다. 인간의 뇌는 이를 적당히 구분짓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아마 이것은 맹수에 쫓기고 야만인의 위협을 받던 오래 전에 진화적으로 만들어진 능력일 것이다. 내가 생활자금이 부족해서 금융권으로 대출 심사를 받으려고 하는데, '당신은 이러이러해서 부적격자이므로 대출이 불가합니다'가 아니라 '당신은 우리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이러이러한 세부 그룹에 속하는 사람이고, 그 그룹은 대출금을 상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니, 대출이 불가합니다'라는 판정을 받는다면?

이 책은 수학이라는 도구 자체를 불신하는 것은 아니다(제목만 보면 오해를 하기 쉽다). 요리사의 손에 들린 칼과 강도의 손에 들린 칼이 그 의미가 다르듯이, 도구를 쥔 자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를 중요시해야 한다. 피터 드러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If you can't measure, you can't manage. (측정하지 못하면 관리하지 못한다 - 즉 개선할 수 없다)
이것에 대한 반론(forbes에 실린 글 - 나중에 읽어보자)도 물론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측정과 줄 세우기의 노예가 되었다! 교육 예산이 부족하니 무능한 교사를 퇴출하기 위해서, 연구 예산이 부족하니 불량한 과제를 자르기 위하여, 기업의 경영상태가 부실하니 저성과자를 내보내기 위하여, 신입사원 50명을 뽑는데 2,000명이 원서를 냈으니 이중에서 적합한 자를 사전 선별하기 위하여...

생존권이 달린 문제를 놓고 누군가는 이들을 줄을 세워 잘라야 한다. 하지만 뒷말이 없는 공정한 기준을 만드는 것 자체가 힘들고, 선정 과정에 들여야 할 노력도 엄청나다. 이를 위해서 나름대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수학적 모델을 도입하는 것으로 면죄부를 주려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학적 모델이 이용하는 변수들은 불완전하고, 변수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인권 침해의 여지가 다분하고, 알고리즘도 완벽하지 않으며, 영업 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는커녕 피드백도 허용하지 않는다.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비과학적 골상학에 디지털이라는 기술을 입힌 것에 불과하다. 이 책에서는 이와 관련한 많은 사례를 소개하였다.

이 책의 223쪽에 나온 사례를 소개해 보겠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는 팀별 생산성의 차이가 나는 이류를 알기 위해 직원들에게 socio-metric batch를 6주간 착용하여 그들의 동선과 어조 및 제스쳐를 16 밀리초 간격으로 측정하였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동료간의 대화가 많은 팀이 고객의 요구에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반응했다고 한다. 만약 근무태도에 대한 일반적인 수학 모형을 만든다면 동료와 대화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인 사람은 단순히 노닥거리면서 시간을 낭비한 사람으로 낙인을 찍게 될 것이다.

빅데이터를 이용하면 헬스케어 또는 웰니스 분야에서 엄청난 사업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한다. 그러나 이것도 프라이버시 침해와 강제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어렵사리 직업을 구한 뒤 정식으로 입사하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는 것을 요즘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조금만 다른 방법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것은 또 다른 차별적 요인일 수도 있는 것이다.

337쪽의 결론 부분을 이용하는 것으로 독서 기록을 마치고자 한다.
데이터 처리 과정은 과거를 코드화할 뿐, 미래를 창조하지 않는다. 미래를 창조하려면 도덕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런 능력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
(339쪽) 2008년 금융시장이 붕괴한 이후에 금융공학자 이매뉴얼 더만과 폴 윌모트는 실제로 모형 개발자를 위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작성했다.

  • 나는 내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며, 세상이 내 방정식을 따르지 않음을 명심하겠습니다.
  • 나는 가치를 추산하기 위해 모형을 대담하게 사용할지언정, 수학에 지나치게 감동받지는 않겠습니다.
  • 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는 우아함때문에 현실을 결코 희생시키지 않겠습니다.
  • 나는 내 모형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정확성에 대한 거짓된 위안을 갖도록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에 나는 모형에 이용된 가정과 간과된 점들을 분명히 밝히겠습니다.
  • 나는 내 일이 사회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그런 영향의 상당 부분이 나의 이해 수준을 능가하는 것임을 명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