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1일 일요일

여름날의 금산사는 배롱나무 꽃과 함께

이번 주말에는 전라북도 김제시에 위치한 금산사를 둘러 보았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금산사 미륵전의 모습 - 마치 3층 건물처럼 보이는 우아하고도 장엄하며 압도적인 - 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물 중에서 여러 층으로 된 것은 극히 드물다. 지난 5월에 방문했었던 부여 무량사의 극락전(블로그 글 링크)과 좋은 대조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였다. 무량사 극락전은 겉에서 보아서는 2층, 내부는 통층이다.

호남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전주를 지나 금산사IC로 나와서 십 여 분을 달리면 모악산 도립공원이라는 곳이 나온다. 금산사는 바로 여기에 위치하고 있다. 모악산은 과거에 금광이 있었기에 일제강점기때 활발한 채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금 광산이 있던 산에 오르다', 전북도민일보).

IC를 나와서 금산사를 찾아가는 도중에 정말 멋진 가로수길을 발견하였다. 과거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근처를 지날 때 똑똑히 보았던, 너무나 멋진 가로수길을 실제로 통과하게 되다니!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마치 마인데르트 호베마의 유명한 가로수길 그림인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1689)을 연상케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카카오맵 로드뷰로 찾아 본 결과 '봉남로'의 한 구간인 것 같다. 그런데 이 길이 과연 내가 호남고속도로를 달리며 본 길이 맞을까? 김제시의 유명한 가로수길에는 메타세콰이어가 심어져 있다고 하는데, 구글에서 찾아보니 이 길은 해학로이고 서해안고속도로와 가깝다. 아래 로드뷰 사진의 가로수는 분명 메타세콰이어는 아닌 것 같다. 내가 고속도로에서 본 가로수길은 어디였을까? 혹시 선운사를 다녀오다가 서해안고속도로에서 이 길을 보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봉남로에서 원평로를 거쳐 금산사로로 접어들어 조금 지나니 몇 개의 식당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길 반대편에 원평면옥이라는 냉면집이 보여서 차를 세우고 이 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가격도 적당하고 맛도 좋았다. 다음에 여름이 지나서 들르게 되면 한우우거지탕을 먹어 보리라.


금산사 가는 길에 원평면옥에서 냉면을 먹었다. 지역민들이 즐겨 찾는 맛집인 것 같다.

모악산 도립공원 주차장은 무료이지만 절 경내까지 들어가면 유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하여 호젓한 길을 따라서 조금 더 차를 몰았다. 갑자기 커다란 문이 나타나는데 근처에 차를 댈 수는 없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금산사로 들어가는 관문 격인 개화문(견훤문이라고도 부름)이었다.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이곳 금산사에 유폐당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절 내부에 위치한 제1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바로 곁에 위치한 계곡에 놀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절을 향해 올라가는데 아무런 편액이 없는 작은 전각이 보인다. 보통 절에서 가장 작은 집에 해당하는 산신각보다도 훨씬 작았다. 여기에는 과연 누가 모셔져 있는 것일까?


가득히 놓인 제물을 보아하니 정말 영험한 석상인 것 같다.

안에는 기이하게 생긴 얼굴 모습의 석상이 모셔져 있었다. 검색을 해 보니 영험한 미륵할머니 또는 돌할머니라 부른다고 하였다. 후대에 다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머리 부분을 시멘트로 붙인 것 같다. 석굴암 본존불상처럼 완벽한 조형미를 갖춘 것도 있지만, 이 미륵할머니처럼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석상은 정성스럽게 치성을 올리는 사람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압도적인 기둥 크기를 자랑하는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문(또는 인왕문)이 위치해 있다. 금강문을 둔 절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금산사 일주문.

보제루 아래 한 쪽을 막아서 만든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더위를 잠시 식혔다. 경내에는 배롱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금산사에는 많은 문화유산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미륵전(국보 제62호)이 아닐까 한다. 겉에서 보기에는 3층처럼 보이지만, 실제 들어가 보면 통으로 되어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서 미륵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내부에 들어가면 중앙에는 높이가 12미터 가까이 되는 미륵본존불이 좌우에 위치한 보살상과 함께 세워져 있다.

미처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으나 내부를 굳건하게 받치고 있는 네 개의 기둥을 한참이나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각 층마다 붙은 편액의 글씨가 다르다. 1층부터 차례로 대자보전-용화지회-미륵전. 편액에 얽힌 이야기는 여기를 참조하라.

미륵전을 한참 둘러본 뒤 밖으로 나와 나무 그늘의 벤치에서 고마운 바람을 맞았다. 대적광전과 미륵전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두 스님의 독경 소리는 완벽하게 조성이 일치하였다. 가사가 다른 유니즌(unison)이라고나 할까? 

금산사의 본전(本殿)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다.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는 사찰에서는 이런 전통을 따른다고 한다.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불이 말씀하신 불법을 형상화한 것, 즉 법신불이다. 따라서 금산사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이 없다. 비로자나물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음을 강조한 요한복음의 시작 부분을 연상하게 한다. 

금산사 대적광전은 보물 제476호였으나 1986년 화재로 전소되어 보물 지정이 해제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은 1990년에 복원한 것이다.

대적광전 뒤에 나란히 위치한 조사전과 나한전 옆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보물 제26호인 방등계단이 나온다. 여기에는 너른 두 단의 기단 위에 오층석탑(보물 제25호)과 종 모양의 탑이 있다. 그 곁에는 적멸보궁이 위치한다.



여기에서 바라보는 미륵전의 모습은 배롱나무 꽃과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

땀에 절어서 번들번들한 내 모습. 기록적으로 더운 여름날에도 남편을 따라 잘 돌아다니는 아내가 고맙다.




아래의 두 석물도 전부 보물로 지정된 것이다.

석등.

육각 다층석탑.

돌아오는 길에는 전주에 들러 전북대학교 오스스퀘어에서 치즈 케익과 차를 마셨다. 김제를 떠나기 전에 벽골제를 마지막으로 들렀다 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오스스퀘어 2층에서. 밖에 보이는 것은 또 배롱나무 꽃이 아닌가?

입추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예년과 비교하기 어려운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더위가 어서 누그러져서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를 맞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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