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아내와 함께 근처 백화점에 갔다. 스와치 그룹에 속하는 어느 시계 매장에서 진열된 물건을 구경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시계 옆에 놓인 성능 지표와 관련한 짤막한 용어(아마도 POWERMATIC 80이었을 것임)를 놓고 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
(나, 아내에게 한 말) "이건 오토매틱 시계의 무브먼트가 다 감기면 여든 시간은 간다는 거야."
(점원, 내가 잘못 알고 있다는 듯 급하게) "아니, 80 시간입니다."
(나, 아내) ???
아마도 점원은 '여든 시간'을 '여덟 시간'으로 잘못 알아듣고 이를 빨리 정정해 주려고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겨우 여덟 시간밖에 못 가는 초저성능 오토매틱 무브먼트가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시계 옆에 80이라는 숫자가 크게 찍혀 있는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아무리 발음이 시원치 않다 해도 '여ㄷ...'이라고 말하는 것을 여덟로 알아듣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요즘 1루(하루), 2틀, 4흘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표현이 종종 보인다. 2틀은 애교로 봐 줄 수 있지만 4흘은 '사흘' 즉 삼일의 뜻을 완전히 잘못 알고 쓰는 것이다. '제 나이는 오십 넷입니다' 라는 어색한 숫자 표현도 너무 흔하다. 후자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군대에서 쓰던 숫자 세는 방식이 일반에 널리 퍼져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국외 출장 준비를 하느라 항공권을 예약하기 위해 여행사 직원과 전화통화를 하는데 '8월 십날'이라고 날짜를 부르는 것을 듣고 문화적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잘 몰랐어서' - 이것은 어법상 아예 맞지 않는다. 정말 듣기 괴롭다.
'~해서'를 '~해 가지고'(실제 발음은 '해 가지구' 또는 '해 가주구'에 가까움)라고 쓰는 것도 듣기에 편하지 않다.
'~했었어 가지고' - 이것은 정말 듣기에 더욱 괴롭다.
복수 표현이 지나치게 많아진 것도 문제이다. 우리말은 단수와 복수를 그다지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더운 여름날, 백화점에 갔더니 사람이 많아서 붐볐다고 가정하자. 그저 '사람 참 많네'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네' '생각들이 많아서...' 등 많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들'을 남용하는 것도 어색하다.
말 뿐인 존대법도 그렇다. '몇 분이세요?' '손님분' 등등.
'어제 복날이었어 가지고... 우리 식당에 손님분들이 너무 많았어 가지고 정말 바빴어. 한꺼번에 몰린 손님분들한테 어떻게 자리를 안내하고 주문을 받아야 될지 잘 모르겠어서 정말 힘들었지. 홀 담당 알바생이 일주일 전에 두 명이나 바꼈어 가지고 우왕좌왕하느라 더 힘들었어.'
이쯤 되면 듣는 나는 폭발할 지경이 된다.
점점 꼰대가 되어 감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꼰대였을 것이다. 최소한 올바른 말과 글을 쓰지 못하는 현 세대를 지적함에 있어서는. 그러나 정작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 앞에서는 지적하지 못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에게만 불평을 늘어놓을 뿐이다.
특히 나는 TV 프로그램(소재, 포맷 또는 진행 방식, 마치 사전에 만들어진 대본이 없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촬영 방식, 사용하는 언어 등)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라서 아내가 TV를 보고 있으면 옆에서 너무 잔소리를 많이 해 댄다. 따라서 꼰대가 맞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