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31일 토요일

창자(腸) 앤 드럭스(drugs)

올해 8월 3일에 받은 종합건강검진 결과를 상담하기 위해 어제 출근길에 내가 늘 다니던 병원의 가정의학과를 방문하였다. 처방약을 한 꾸러미 받아 들고 나서는데 문득 예전에 보았던 영화 <러브 앤 드럭스(2010)>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스토리 전개에 과연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노출 수위가 과도하게 높은 로맨스 드라마라고 볼 수도 있지만, 영화에서 적나라게 묘사했던 거대 제약회사 영업활동의 치열한 현실을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 내가 받은 처방전에도 그런 영업활동의 영향이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침 B tv의 무료 영화 목록에 이것이 올라와 있어서 저녁 식사 후 아내와 함께 예전에 보았던 추억을 떠올리며 즐겁게 감상하였다. 영화 내내 'Pfizer', 'Zolotof', 'Viagra'와 같은 실제 회사명과 약품명이 등장하는데, 챗GPT에 물어본 바에 의하면 Pfizer가 실제로 이 영화를 후원했다는 공식적인 증거는 없다고 한다. 국내 개봉 당시 대한민국 약사법을 유린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좀 있었다고 한다(관련 기사 링크).

TV 화면 직접 촬영. 아래도 마찬가지.

남녀 주연배우는 각각 1980년, 1982년 생이니 영화가 개봉한 2010년에는 얼마나 풋풋한 젊음을 자랑했겠는가?

그러면 영화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내가 처방 받은 약에 대해서 써 보고자 한다. 고지혈증 치료제는 워낙 오랫동안 먹고 있는 데다가 별다른 부작용 없이 잘 듣기 때문에 특별히 조사하고 공부할 필요성은 잘 느끼지 못한다. 이번 상담에서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또는 과민성 장 증후군, IBS, irritable bowel syndrome)을 약으로 다스릴 수 있는지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과민성장증후군이란 반복적으로 복통과 함께 복부 불편감, 배변 습관의 변화, 복부 팽만감 등 다양한 하부위장관 증상이 나타나는 증후군으로 만성적으로 호전과 악화를 반복한다. [출처: 대한소화기학회지, 2017 과민성장증후군의 임상진료지침 개정안 소개(PDF)]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던가, 무척 심한 장염을 앓고 나서 배변 습관이 아주 불편하게 바뀌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는 필수이고 낮에 외출한 상태에서도 꼭 화장실을 한 번 이상 찾아다녀야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우리집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출근 전 화장실을 찾는 습관이 있었고(어머니 말씀으로는 '어디 가려고만 하면 꼭 그 직전에'), 어쩌면 유전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IBS에는 설사형과 변비형 및 혼합형이 있는데, 나의 경우는 설사형이다. 

어떤 의사는 배변 횟수가 하루 3회부터 일주일 3회까지라면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일상 생활에서 '창자의 존재'를 느끼고 산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가스가 차고, 꾸르륵거리며 무지근한 불편함을 불러 일으키고,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KTX 안에서 황급히 화장실을 찾아 돌아다니고... 주말에 모처럼 시내로 나가서 외식을 한 후 에어컨이 틀어진 서늘한 카페에서 디저트(팥빙수!)를 먹기가 무섭게 갑자기 아랫배에서 불편함을 느껴서 차를 되돌려 집으로 돌아오는 낭패를 겪는 것도 이제는 지겹다.

특히 비행기를 타고 국외 출장이라도 가게 되면 시차에 적응하는 며칠 뒤까지 그 괴로움이 더하다. 이번 9월에 딸이 있는 뉴욕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기왕이면 약의 도움을 받아서 편안한 여행을 하고자 어렵사리 의사에게 말을 꺼낸 것이다.

의사는 혹시 평소에 불안을 많이 느끼느냐고 물었다. 질문 자체가 별로 즐겁지는 못하다. 큰 일을 앞두고 마음이 초조하여 좌불안석이거나, 심장이 빨리 뛰거나 하지는 않으니,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약속 시간에 남달리 일찍 나가는 것이 불안의 증거라고 하면 또 모르겠지만. 식사 후 변의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것이 심하다고 해서 약을 써 봐야 어차피 그때 뿐이니 증세가 걱정될 때만 식사 전에 먹으라면서 다음과 같은 약을 일주일 치 처방해 주었다. 여행 전에 시간이 있으니 미리 먹어 보고 부작용이 없는지 테스트를 해 보라는 지시와 함께. 인터넷에서 각 약의 정보를 찾아 보았다(드러그인포는 로그인이 필요). IBS 증세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약은 menoctyl(+polybutin)이다. 증세가 심하지 않다며 polybutin 한 종류만 먹는 것이 몸에 부담이 덜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아주 심한 증세가 나타날 것이 우려될 때에만 임시적으로만 사용할 목적으로 여러 약을 섞어서 강력한 처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약 정보를 찾아보다가 '인데놀'은 꽤 유명한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박수를 낮추고 혈관을 안정화하여 긴장이나 흥분 상태를 가라 앉히기 때문에 소위 '면접약'으로 널리 쓰인다는 것 아닌가? 우황청심환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의사는 불안을 가라앉히는 약을 IBS에 같이 쓰게 되면 사용에 주의하라는 말을 했는데, 바로 이 약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보인다. 남들 앞에 자주 서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상비약으로 애용할 정도라니 그 효능을 짐작할 만하다. 일단 오늘(토요일) 시험 복용을 해 보았다. 결과는 나중에 쓰기로 한다.

IBS는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가? 약물은 일부 환자에 대해서 증세를 완화하는 것에 불과하니, 먹는 습관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른바 FODMAP(fermentable, oligo-, di-, mono-saccharides and polyols)을 낮게 함유한 음식을 권장한다. 고FODMAP 식이는 소장에서 잘 흡수되지 않고 대장으로 이동하여 삼투압에 의해 수분 배출 및 대장 관강을 확장시키고 장내 박테리아에 의해  발효되어 가스를 만든다고 한다. 따라서 FODMAP 제한 식이는 복통과 복부 팽만감을 호전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설사형과 변비형의 증세를 완화시키는데 모두 유용하다(다른 메커니즘을 통해). 하지만 고FODMAP 식이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뭘 먹으란 말인가?

그림 출처: 과민성 대장증후군, 탈출 비밀번호는 'FODMAP'. 한겨레신문 2024년 4월 30일

이를 포함한 식이에 대한 일반적인 조언은 2017년 대한내과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 과민성 장 증후군 치료의 최신 경향'(PDF)을 참조하기 바란다. 아래 추가한 업데이트의 '일반인을 위한 알기 쉬운 음식설명서'도 유용하다. 다음은 증거바탕의학에 기반할 수는 없지만 식이 전문가의 일반적인 조언으로, 출처는 2015년도 British Medical Journal이다.

  1. 규칙적인 식사와 천천히 삼키기
  2. 식사를 거르지 말고, 먹는 도중에 중단하지 말기
  3. 하루에 8컵 이상의 음료 마시기
  4. 차와 커피는 하루 3잔 이내로
  5. 술과 탄산음료 줄이기
  6.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섭취하기
  7. 저항성 전분의 섭취 줄이기
  8. Fructose, sorbitol, lactulose 등의 섭취를 줄이기
  9. 팽만감 감소를 위하여 쌀, 귀리, 아마씨 섭취하기
  10. 알로에 베라 사용 자제
  11. 매운 음식(capsaicin) 줄이기

우리나라의 소화기 질환 전문가들이 우리 실정에 맞는 IBS의 임상적 특징, 병태 생리, 진단 및 치료 가이드라인을 발간해 오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자료로는 2019년 대한내과학회 추계학술대회 논문인 '과민성 장 증후군의 치료 가이드라인'(PDF)이 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대한소화기기능성질환·운동학회와 대한내과학회 등 관련 학회에 따라 별도로 발표되는 것 같다.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준행 교수('아낌없이 주는 선생')가 운영하는 EndoTODAY에도 '과민성 장증후군과 저포드맵 식사'라는 유익한 글이 올라와 있다. 저/고FODMAP 식이의 사례를 매우 쉽게 설명하였다. 또한 다음 의견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Dietary and psychological intervention이 first-line therapy가 되어야 한다는 take-home message로 강의가 끝났습니다. 약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음식과 stress 관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IBS는 약으로 치료할 병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약물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증세를 잠시 완화하는 효과만 있을 뿐임을 명심하자. 적절한 운동, 바람직한 생활습관과 식이, 그리고 굳건한 평정심 유지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업데이트 - 약 1회 복용 후 어떤 효과가 있었는가?

아침 식사 전 약을 먹은 뒤 점심식사 후까지 약 5~6시간 정도 창자의 존재를 잊을 수 있을 만큼 속이 비교적 편안하였다. 약 복용 직후 2~3 시간 정도에 걸쳐 약간의 졸림 현상이 있었는데, 이는 그란닥신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IBS는 기능성 위장관 질환, 즉 반복적인 소화기 증상을 보이지만 객관적 검사에는 이상이 없는 질환의 일종이다. 2021-22년에 메디게이트뉴스에 실렸던 대한소화기기능성질환·운동학회 릴레이 칼럼에는 총 13회에 걸쳐서 이에 관한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 바 있다. 제13회차인 '포드맵(FODMAP) 음식 그것이 알고싶다'에 전체 글에 대한 링크가 소개되어 있으니 하나씩 클릭하여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

같은 학회에서는 일반인을 위한 알기 쉬운 음식 설명서도 배포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기능성 변비, 기능성소화불량, 위식도역류질환 및 과민성장증후군을 포함하였다. 아무래도 이번 글의 제목을 '위장관 and 음식 and 드럭스'로 바꾸어야 될 것 같다.


2024년 8월 28일 수요일

ChatGPT로 워드 클라우드 만들기

마음이 급하신 분들은 아래에 소개한 이상훈 님의 유튜브 영상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이를 통해서 충분한 정보를 얻었다면, 이 블로그 포스트의 나머지 부분은 건너 뛰어도 무방하다. 

현존 최고 AI ChatGPT-4o에서 한글 깨진 문제 해결 및 워드 클라우드 만들기

갑자기 워드 클라우드를 만들 필요가 생겨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ChatGPT를 이용하여 약간의 '삽질'을 시도하다가, 잘 안 되는 한글 관련 문제는 위에 소개한 동영상으로 어렵지 않게 극복하였다. 그 짧은 경험과 약간의 조사 결과를 덧붙여 이번 글에 공개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ChatGPT 활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영광일 것이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의 정보통신용어사전에 의하면, 워드 클라우드(word cloud)란 문서의 문구와 단어를 분석하여 중요도나 사용 빈도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시각화하는 표현 기법을 뜻한다(링크). 글씨로 이루어진 그림 한 장을 통해 문서 '빅데이터'의 키워드나 중요도를 한눈에 보고 이해할 수 있지만, 단어 간의 관계를 표현하지 못하고 정보가 편향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정보 편향은 사실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바로 어제 오후까지만 해도 워드 클라우드 생성은 프로그래밍을 잘 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었다. 왜 그런가 하면...

  1. 일단 분석할 텍스트를 긁어 모으는 것이 큰 일이고
  2. 이를 대상으로 핵심어를 뽑아서 워드 클라우드를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졌다. 특히 우리말의 경우 교착어로서 인공지능에 의한 자연어 분석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패스트캠퍼스 미디어] - 자연어처리(NLP)가 한국어에서 특히 어려운 4가지 이유

국어 고유의 특성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기도록 하고, 일반인이 아주 쉽게 워드 클라우드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 보았다. 문득 ChatGPT를 쓰면 혹시 특정 웹사이트에 있는 글을 전부 가져다가 알아서 워드 클라우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이를 테스트해 보고 문제점 해결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이런 기법이 이미 동영상 강좌 수준으로 인터넷에 널려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ChatGPT에서 내 블로그의 URL을 지정해 준 뒤 '이 사이트에서 2018-2020년에 포스팅한 글을 전부 모아서 분석한 뒤 워드 클라우드를 만들어 줘'라고 프롬프트를 날렸더니 진짜 뭔가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글을 자동으로 가져다가 대략 어떤 주제의 글이 많았는지 요약을 해서 출력한 다음, 영어로 워드 클라우드를 뚝딱 만들어 내었다. 오, 놀랍군. 그러면 한글로 만들어 달라고 하면? 여기에서 그림 속 한글이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구글을 검색해 보았다. ChatGPT로 워드 클라우드를 만들 때 한글이 깨지는 문제와 관련한 정보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이 아주 쉽게 만들어진 동영상 설명(네이버 블로그에서 찾음)이 있었다. 프레젠테이션 전문 강사 이상훈 님이 제작한 것이었다. 유튜브 동영상은 맨 위에 이미 소개해 두었다.

ChatGPT에서 한글 깨짐 문제 해결 및 워드 클라우드 만들기(2024.6.8.)

3분이 조금 넘는 간결한 동영상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설명하고 있었다. 유튜브 동영상에 고맙다는 코멘트를 달았다. 네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분석에 사용할 샘플 뉴스기사는 공공데이터포털에서 검색하여 엑셀파일을 다운로드 - 실제 상황에서는 가장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 단계일지도 모르며, 정성과 창의력도 필요함
  2. ChatGPT에 한글을 처리할 수 있는 koreanize-matplotlib을 설치(ChatGPT 창에 밀어 넣고 '이 파일을 이용해서 처리해 줘'라고 치면 됨 - 유효기간은 3시간이며... 3년 아님! 그리고 현재 열린 창에서만 유효함)
  3. 제어판을 열고 설치된 글꼴 파일 중 마음에 드는 것을 ChatGPT 창에 밀어 넣기
  4. [고급 기능] 색깔을 입맛대로 바꾸기

한글 문제를 해결해 놓은 뒤 다시 내 블로그의 글을 이용한 워드 클라우드 작성을 해 보았다. 프롬프트는 다음과 같이 입력하였다.

"blog.genoglobe.com 에서 2018-2022년 등록한 글을 대상으로 워드 클라우드를 만들어 줘."

URL 뒤에 한글 조사를 바로 붙이면 인식을 못하므로 국문법에는 어긋나지만 띄어쓰기를 해 주어야 한다. ChatGPT는 먼저 다음과 같은 요약을 출력하였다. 이보다 더 훌륭한 비서가 있을까?

To create a word cloud from the blog posts on blog.genoglobe.com from 2018 to 2022, I've extracted key topics and terms frequently discussed across the blog during those years. These include a mix of technical topics related to bioinformatics, scientific research methodologies, and personal projects related to electronics and programming. The blog also touches on general tech trends, scientific policies, and specific case studies in fields like genomics and sequencing.

Main Themes for Word Cloud:

  1. Bioinformatics and Genomics: Terms like Nanopore sequencing, MinION, Guppy, and FASTQ files frequently appear, reflecting the blog's focus on advanced sequencing technologies and bioinformatics tools.
  2. Programming: Discussions often involve Perl, Python, and scripting for data analysis, as well as specific programming challenges and solutions.
  3. Electronics Projects: Posts frequently mention DIY electronics projects using Raspberry Pi, Arduino, and related components.
  4. Scientific Research and Publication: The blog covers topics like preventing scooping in publications, the Revised Common Rule, and discussions on scientific ethics and best practices.
  5. Technology Reviews and How-Tos: Various posts provide insights and reviews on using different software tools and platforms, especially in a scientific research context.

곧 이어서 영문으로 된 워드 클라우드가 나타났다.


"한글로 워드 클라우드를 만들어 줘"라고 다시 지시하였다.

여기서 '미니온'이라고 표시된 것은 Oxford Nanopore Technologies의 DNA 시퀀싱용 flow cell을 물리는 장비인 MinION(보통 '민아이온'이라고 부름)을 뜻한다. <슈퍼배드> 시리즈 영화에 등장하는 귀여운 생명체 Minion이 아니다!

제법인걸?

나는 GPT-4를 활용하는 ChatGPT Plus(유료 플랜)을 사용한다. 따라서 무료 버전에서도 워드 클라우드를 손쉽게 만들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제와 오늘 아침에 걸친 짧은 경험을 통해 ChatGPT가 정말 여러가지 일을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워드 클라우드를 작성하기 위해 입력물로 사용할 고품질의 데이터를 긁어 모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공공데이터포털에 올라 온 뉴스 자료는 실습용으로는 적당하나, '특정 기간에 발행된 모든 뉴스'와 같은 진짜 빅데이터는 아니기 때문이다. 뉴스 빅데이터를 이용하여 이미 분석된 정보와 관심거리를 알아보고 싶다면,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운영하는 빅카인즈(사용자 매뉴얼 링크)를 둘러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힌트는 텍스트 마이닝(1) 뉴스 빅 데이터 수집하기에서 얻었다.

이번에는 genoglobe.com 하위의 모든 글에 대해서 영문 워드 클라우드를 만들어 보라고 하였다.


이렇게 프롬프트를 날릴 때마다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서버에서는 전력을 소모할 것이고, 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화력발전소가 되었든, 원자력발전소가 되었든 열심히 불을 지피면서 지구 온난화에 조금씩 기여하고 있을 것이다.

(사족) 후술하였듯이 내 개인 도메인인 genoglobe.com의 구조는 약간 복잡하다. 단순히 최상위 도메인(genoglobe.com)에 위치한 문서를 분석하라고 ChatGPT에 명령을 내리면 blog.genoglobe.com(이 블로그)과 생명정보 콘텐츠에 특화된 genoglobe.com/kribb을 전부 다 뒤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의 대표 웹사이트에 해당하는 genoglobe.com으로 접속하면 개인 소개와 더불어 취미에 특화된 또 다른 위키 사이트가 나온다. 여기에 있는 글만 가져다 분석하도록 이번에는 다음과 같이 명령을 해 보았다.

"genoglobe.com 의 글을 이용하여 워드 클라우드를 만들어 줘. 단, genoglobe.com/kribb 하위의 것과 blog.genoglobe.com 의 것은 제외해 줘."

ChatGPT는 내가 내린 명령을 100% 이해하였다.


워드 클라우드 작성 연습을 통해 평소에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만천하에 전부 드러내고 말았다.


2024년 8월 26일 월요일

연령별 최대 심박수 계산 공식의 허와 실

지금까지 총 11회차의 런데이 30분 달리기 훈련을 마쳤다. 어제는 무리하지 않기 위하여 계속 심박수를 확인하면서 170 bpm을 넘기지 않으려고 페이스를 조절하였다. 그렇게 한 덕분에 비교적 무난하게 어제의 훈련을 마칠 수 있었다.



다음은 Mi Fitness 앱에서 확인한 나의 심박수 측정 기록이다. 2분 30초 동안의 달리기를 6회 되풀이하는 동안 심박수가 정확하게 6개의 봉우리를 그리고 있다. 달리기를 마친 후 정리운동 삼아서 아내와 함께 달렸던 코스를 한 바퀴 더 걷는다. 그래서 약 30분 뒤에는 계속 중강도 혹은 그 미만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운동 중 심박수는 최고 173 bpm으로 측정되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연령별 최대 심박수(MHR, maximum heart rate) 계산 방법은 220에서 나이를 뺀 것이다. 1970년에 고안된 이 Fox-Haskel formula는 매우 단순하여 암기하기에도 편하다. 

MHR = 220 - age

챗GPT에 물어보니 이 공식은 두 명의 과학자가 다양한 운동 테스트와 관찰을 바탕으로 제안한 것으로서 학술 논문 등을 통해 정식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나 역시 레드미 워치3을 구입하고 나서는 심박수를 점검하면서 달리기 훈련을 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절대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 공식이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어서 검색을 좀 해 보았다. 2012-13년에 걸쳐 주간동아에 연재되었던 김원곤 교수의 '망달당달'(망가지느냐 달라지느냐 당신에게 달려있다) 컬럼에 이와 관련한 글이 있었다.

운동 강도 숫자로 표시 '심박수'에 이의 있습니다(주간동아 2013년 1월 28일)

이 컬럼에 의하면, '최대심박수 = (220 - 나이)'라는 이 아름다운 공식은 깊은 논의를 거쳐 자료를 모은 뒤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도출된 것도 아니었고, 이 공식이 널리 퍼지는 데에는 심장박동 모니터를 만드는 기업의 영향도 컸다고 한다. 

많은 학자가 이 공식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여 여러 대안이 등장하였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대규모 샘플 조사를 통해 내놓은 '208 - (0.7 x 나이)'라는 공식이다. 어느 공식을 따르든, 계산을 통해서 개인의 최대 심박수를 정확히 '예측'하는 방법은 없다.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운동부하검사를 받는 것. 기계를 주렁주렁 달고 트레드밀에서 직접 뛰면서 심장기능 상태를 평가하는 것인데, 운동선수가 아닌 일반인이 이런 복잡한 검사를 수시로 받기는 곤란하지 않은가.

어쨌든 Fox-Haskel 공식에 의하면 내 나이의 최대 심박수는 두 가지 공식에 따르면 165 bpm 또는 169.5 bpm이다. 최대 심박수에 따라서 운동 강도에 따른 목표 심박수를 정하고, 이에 맞추어서 운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삼성서울병원 골관절센터 스포츠의학센터의 운동 강도 정하기 웹문서(링크)에서는 55세의 경우 다음과 같은 최대 심박수 수치인 170 bpm을 근거로 다음과 같은 목표 심박수를 제시하였다.

  • 저강도(최대 심박수의 64% 미만): <109
  • 중강도(최대 심박수의 64-76%): 109-129
  • 고강도(최대 심박수의 76% 초과): >129

10여 년 전에 '망달당달' 컬럼을 기고했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김원곤 명예교수는 '식스팩' 만들기를 50대의 목표로 정하여 이를 실천하였고, 은퇴와 더불어 홀로 4개국을 돌아다니면서 어학연수를 마쳤다고 한다. 다음에 소개한 최근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정말 모든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기를 팍팍 죽이는 것 같다.

"허송세월은 거부합니다… 70세 노인? 나는 파워 시니어"(조선일보 2024년 8월 18일)

'김원곤 교수는 나보다 모든 면에서 여유가 많았을 거야'라고 부러워할 것이 아니다. 현재의 나는 그보다 훨씬 젊지 않은가? 핑계는 달콤하며, 남이 아니라 나의 희열을 위해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배움에 도전한다는 그의 말을 기억해 둘 만하다.

2024년 8월 25일 일요일

내 블로그의 사진이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 쓰인 이야기 - MBC '손석희의 질문들' 제4회

나는 지메일을 매일 꼼꼼하게 열어 보지는 않는다. 어차피 개인 메일 계정으로만 쓰기에 업무상 중요한 일이 지메일로 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마터면 방송일 하루 전 새벽에 MBC에서 보낸 이메일 메시지를 놓칠 뻔하였다. <손석희의 질문들> 프로그램의 PD가 보낸 그 메시지는 내 블로그에 올린 진공관 앰프 사진을 방송에서 자료로 사용하고 싶으니 허가를 구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지메일뿐만 아니라 블로그의 포스팅 두 개에도 같은 사람이 사진 활용이 가능한지 묻는 댓글을 달아 놓았었다. 광고성 댓글이 너무 많이 달려서 자동 알림 기능을 아예 꺼 놓았기에 그런 문의 댓글이 왔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6J6이라는 진공관을 4알 사용한 미니 푸시풀 앰프를 찍은 이 사진의 출처는 2018년 3월에 작성한 블로그 포스트이다(링크). 내 블로그에 올린 숱한 진공관 앰프 사진 중 이것은 내가 직접 제작한 것이 아니라 개인 제작자의 작품이다. 나의 오디오 DIY에 관한 전체 글 목록에는 꽤 많은 진공관 앰프 관련 사진 자료가 있는데, 하필 이 사진이 눈에 뜨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촬영 장소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본관동 북쪽윙 3층에 위치한 예전 사무실이다. 참고로 쌍삼극관인 6J6은 원래 오디오용 관이 아니다.

출처를 명시해 주면 사용해도 좋으니 방송은 언제 되느냐고 답장을 보냈다. 바로 오늘(8월 24일 토요일 - 참고로 이 글은 토요일에 방송을 본 뒤 늦은 시간에 쓰기 시작하였으나 실제 마무리를 거쳐 포스팅된 날짜는 일요일) 밤 8시 40분이라면서 텔롭에 출처를 표시해 준다는 답장이 재차 도착하였다. 텔롭이 뭐지? 검색을 해 보니 텔롭(telop, television opaque projector)이란 TV 방송에서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영상 속에 글자나 그림을 직접 넣어 보내는 장치 또는 그 글자나 그림을 뜻한다고 한다. 따라서 방송 끝부분에 삽입되는 텔롭이라면 영화로 치면 엔딩 크레딧 정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요즘 단행본 원고를 하나 쓰면서 편집자와 함께 바이라인(byline, 신문이나 잡지에서 작성자의 이름을 나타내는 라인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헤드라인과 텍스트 사이에 위치함)에 올릴 저자 목록에 관한 논의를 하는 중인데, 이것 하고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도대체 어떤 초대 손님과 함께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손석희의 질문들> 제 4회에서 내 진공관 앰프 사진 - 지금은 개조 후에 처남에게 선물로 주었지만 - 을 배경으로 깔게 된 것일까? 호기심을 잔뜩 안고서 TV 앞에 앉았다.

오늘 방송의 주제는 영상물이 넘쳐 나는 시대에 '읽고 쓰는 것'의 의미를 논하는 것이었다. '숏폼', 즉 짧은 동영상에 모두가 몰두하는 이 시대에 차분하게 앉아서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많은 인내력을 요구한다. 

첫 번째 초대 손님은 작사가 김이나 씨였다. 역시 글을 다루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사용하는 낱말의 폭이 풍성함을 느꼈다. 젊어서는 전완근이 발달한 사람이 멋져 보이지만 나이가 들면 전두엽이 발달한 사람이 낫다는 재치 있는 말과 함께. 참고로 전두엽은 기억력, 사고력, 추리, 계획, 운동, 감정, 문제해결 등 고등정신작용을 관장하며 다른 연합영역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조정하고 행동을 조절한다고 한다(출처: 서울아산병원).

대중음악의 가사를 쓴다는 것은 창작자로서 자기 자신을 아주 잘 드러내는 일은 아니다. 비록 저작권협회에 수백 곡이 등록되어 적지 않은 고정 수입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가장 돋보이는 일이다. 만약 가사를 쓰는 일을 아주 심각한 '예술'로 여기고, 그 하나 만을 주업으로 삼아서 전력 질주하듯이 일을 했더라면 이렇게 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김이나 씨는 현재 27대 별밤지기로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자기에게는 정말 소중한 일이라고 하였다. 두 진행자는 책('텍스트')은 마치 라디오와 같다고 하였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문자로 전달된 정보를 머릿속에서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런 쪽으로 대화가 흘러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진공관을 이용한 옛날 라디오(수신기)와 TV로 흘러 갔다. 드디어 세트장 위 커다란 배경 화면에 내 블로그의 사진이 나타났다. 엄밀히 말해서 이 사진은 진공관 라디오가 아니라 진공관 앰프를 찍은 것이지만. 전원을 넣으면 진공관에 불이 들어오면서 소리가 날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멘트와 함께. 기록을 위해 휴대폰으로 방송 화면을 찍었다. 전체 방송을 보려면 웨이브에서 구매권을 구입하여야 한다.



두 번째 초대 손님은 소설가 황석영 씨였다. 방북 후 망명을 거쳐 귀국한 뒤 옥고를 치르는 등 15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문단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현업에 복귀하였고, 지금도 새 책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을 만큼 고령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어린이 민담집을 엮어서 내는 등 새로운 시도를 끊임 없이 하고 있으며, 컴퓨터와 챗GPT와 최신 기술을 다룸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황석영 씨는 '챗GPT를 써 보니 마치 박사 열 명을 데리고 일하는 것 같더라'고도 하였다.

독서 인구나 출판 시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었다는 것으로 화제가 이어졌다. 요즘 독서 인구에서 20~30대의 비율이 70% 정도로 늘어나고 있고, 유명 연예인이 읽었다고 방송에서 소개한 소설의 판매량이 급증한다는 것은 일단 긍정적인 신호라고 볼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전 소설을 읽는다'는 유명인의 행위 자체를 따라 하면서 소셜 미디어 등에 내보이기 위해서 젊은 층이 서점을 찾는 것일 수도 있다. 황석영 씨는 이렇게 해서라도 시작해 나가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하였다. 맞는 말이다. 저변이 늘어나기 시작한다면 그 중에는 진정성을 갖고 책을 대하는 사람이 조금은 늘어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지난 2015년에 출판된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선>도 잠깐 화제에 올랐다. 당시 경향신문에 실렸던 기사를 소개한다. 나도 갑자기 소설책을 찾아 읽고 싶어졌다.

황석영 "정치인들 한국 소설 읽어야"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 황석영 씨는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도둑놈이 집을 침입하기 위해 사용했던 사다리를 두고 간 것이라고. 남기고 간 사다리가 도둑이 물러간 이후 피해자 가정의 살림에 도움이 되었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결과를 이유로 도둑의 침입·폭행·약탈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방송이 끝나갈 무렵 화면으로 흘러가는 '텔롭'을 지켜 보았다. 자료 출처를 소개하는 글귀가 옆으로 흘러 지나가는 가운데 '정해영의 블로그'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안타깝게도 휴대폰 조작을 잘못하여 그 순간을 촬영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필요하다면 나중에 웨이브에서 유료로 구매하여 다시 보면 된다. 

마지막 회인 다음 주에는 영화배우 윤여정 씨가 출연한다고 하였다.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또는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이 주제라고 하였던 것 같다. 겨우 5회를 끝으로 프로그램이 종료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초기에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려고 했었으나 역시 시청률 앞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번 4회에서 손석희 씨는 다시 근본으로 돌아간 질문 - 읽고 쓰는 문제 -을 던진다고 했으니 말이다.

증거물 확보! 김상옥 박사님, 고마워요~

김이나 씨는 나이가 들어도 재미 있는 사람, 후배들이 찾아와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어느 방청객이 질문과 함께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후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칭찬하고 떠 받들어 주는 것을 믿지 말라는. 정말 정곡을 찌르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권력이 자기로 집중되고, 듣기 좋은 말만 들리기 마련이다. 권력 서열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윗사람에게 비판보다는 칭찬에 가까운 말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어쩔 수 없는 현상을 진실에 기반한 것으로 오해하고 '옳거니, 역시 내가 인생을 잘 살고 있었어!'라고 여기면서 이를 덥석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 우물을 파고 싶지만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젊은이의 질문에 대해 김이나 씨는 미래를 위해 현재 모든 것을 다 쏟지는 말라고 했던 것 같다. 가사를 쓰는 것을 예로 들자면, 특정 가수와 계약을 맺어서 기한 내에 완성을 해야 하는데 진도가 잘 나가지 않을 경우 이를 잠시 멈추고 다른 가사를 써 보는 것이다. 나도 가끔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

내가 인터넷에 남긴 사진 자료가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 아니겠는가? 텍스트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고 책을 읽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다시 갖게 된 것도 이번 방송의 바람직한 영향일 것이다. 주말마다 인근 도서관을 열심히 찾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왜 그러지 못하는 것인지... 다시 도서관에 간다면, 외국서적 번역본이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말로 쓰인 소설책을 읽고 싶다. 헛갈리지 않도록 등장인물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 가면서 말이다. 눈 앞을 어지럽히는 짧은 동영상과 손가락 넘김으로 표출되는 인내심 부족을 모두 떨쳐내고, 텍스트로부터 비롯된 상상력을 머릿속에 채우면서 정신적 쾌감을 느껴 보고 싶다.

2024년 8월 24일 토요일

런데이 훈련 3주차를 마치고

런데이 앱을 통한 '30분 달리기 도전'은 1주에 3회를 달리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나는 무조건 이틀에 한 번 달리는 것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10회차의 달리기를 마쳤지만 훈련 일정으로는 4주차에 해당한다.


훈련 3주차 쯤 되면 자연스럽게 1 km 정도는 쉬지 않고 달리게 될 줄 알았다. 며칠 전에 시도를 해 보았으나 보기 좋게 포기하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말이 되지 않는 시도였다. 오늘, 즉 10회차 달리기 코스는 5분 걷기 - (2분 30초 달리기 - 2분 걷기) x 4회 - 2분 30초 달리기 - 5분 걷기로 구성되어 있다. 초보자 수준의 달리기 페이스인 7분/km로 생각해 보자. 1 km를 7분에 달려야 하지 않는가? 겨우 2분 30초 달리기를 반복하는 수준에 무슨 7분 지속 달리기란 말인가...

내가 달리는 코스는 약 2.5 km의 동네 한 바퀴를 적절히 변형한 것이다(아래 지도 참조). 오늘 기준으로 런데이 훈련 코스를 따라서 이 코스를 그대로 돌면 출발점을 지나쳐야 한다. 그래서 현재는 A-B를 순환함과 동시에 D 지점에서 왼쪽(서쪽) 동네로 들어가 골목길 안을 적당히 돌다 돌아오는 코스를 활용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이 '동네 한 바퀴' 경로를 쉬지 않고 한 차례 달리는 것이다. 8분/km(시속 7.5km)의 초보 러너 페이스라면 20분에 끝낼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러나 이론 상으로만 그렇지 언덕을 고려하면 그게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아래 그림에서 B를 거쳐 C로 향하는 오르막이 바로 난제이다.

 이 코스에서 E-A 구간은 평지에 가깝지만, 나머지는 C를 정점으로 하는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글 어스에서 조사한 해발 고도는 A-36미터, B-53미터, C-64미터, D-49미터, E-41미터. 중앙의 화살표는 달리는 방향을 나타낸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런데이 앱의 기록 분석으로 들어가 보면 고도 정보가 잘 나온다.

이 지도의 코스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B 지점 조금 전에 2분 30초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면 C에 채 다다르지도 못한 상태로 힘이 빠져서 걸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의 한심한 상황이다. B-C를 뛰면서 넘어가지 못한다면, 앞으로 뛰는 시간을 2분 30초에서 점점 늘려갈 때 곤란한 상황이 될 것이다. 오늘의 10회차 달리기 훈련을 반복하면서 C를 지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다음 훈련으로 넘어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심박수 데이터를 보니 그렇게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달리면서 측정한 최대 심박수는 내 나이의 최대 심박수보다 꽤 높다. 심박수가 위험한 수준으로 높아지지 않게 하면서 C를 지나가려면 속도를 늦추는 방법 말고는 없다. 또는 평지로 이루어진 다른 코스를 알아보아야 한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건강을 해쳐서는 안 될 것이므로, 무리를 하지는 않도록 노력해야 되겠다.

최근 구입한 샤오미 레드미 워치 3로 측정한 심박수 데이터. 내 나이의 최대 심박수에 비해서 너무 높은 수치가 나온다. 무리하지 말아야 되겠다. 나의 안정시 심박수는 62 bmp이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로 과연 내 심폐기능이 나아졌는지 궁금하여 테스트를 해 보았다. 운동을 마치고 11층까지 성큼성큼 걸어 올라와 보았다. 예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오르게 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릎과 발목 등 관절에는 아직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아 심박수에만 유의하여 페이스를 적당히 유지한다면 내 50대 중반의 신체에 큰 부담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2024년 8월 23일 금요일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사업 유전체(전사체 포함) 데이터 생산을 위한 용역, 첫 삽을 뜨다

식지 않는 더위와 출장으로 범벅이 된 한 주였다. 오늘도 잠시 뒤 전주로 출장을 떠나야 한다. 쓰고 싶은 글이 많은데 전화를 받을 겨를도 없이 바쁘게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을 위한 유전체와 전사체 데이터 생산 및 기초분석 용역에 대한 사전규격이 어제 나라장터에 등록번호 1483488로 공개되었다(링크). 정말 많은 사람이 노력하여 여기까지 진행이 되었다. 사업의 기획부터 시범사업, 수 많은 논의와 내부검토, 회의, 이해 당사자 간의 의견 조정, 그리고 결정적으로 산더미 같은 문서 작업... 공개된 것은 규격서 하나이지만, 한 쪽 한 쪽마다 정말 많은 사람의 피와 땀이 배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불어 파쇄기에서 사라진 숱한 인쇄물에게도 조의를 표한다.

사전규격공개란 무엇인가? 나라장터의 자주하는 질문에 의하면 입찰참여 기회균등과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하여 조달요청서가 접수되면 이를 공개하여 입찰참가 희망업체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하여 사전규격공개를 실시한다고 하였다. 기간은 통상 접수일로부터 7일(긴급은 3일)이며, 그 사이에 건의된 의견은 수요기관이 반영 여부를 검토한 뒤 최종 공고규격을 확정한다고 한다.

앞으로 5년에 걸쳐서 77만 명이 넘는 참여자로부터 시료와 건강 관련 정보를 입수하고, 그 중에서 약 30만명에 해당하는 참여자의 유전체 해독(WGS, whole-genome sequencing)을 책임질 국가적 사업에 과연 어떤 업체가 참여하게 될 것인가? 국내 유전체 해독 서비스 업체의 생산 규모를 감안하면 몇 개의 업체가 연합체(컨소시엄)를 구성하여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나라에서는 첫 글자만 대면 다 아는 유전체 분석기기 생산기업이 직접 정부와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이 의료기관이나 대학 또는 연구소로부터 시료를 받아서 시퀀싱을 한 뒤 결과(raw data 또는 필요하다면 분석까지 포함하는 경우가 많음)를 제공하는 산업이 워낙 잘 발달해 있는 관계로, 이런 유전체 분석 전문 기업이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종류의 산업을 '연구산업'이라고 하며, 정부에서도 이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몇 년 전에 연구산업진흥법을 제정하였다. 산업진흥법이므로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경제에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다.

사전규격이 이제 공개되었으니, 해당 업체 사이에서는 본격적으로 연합체를 구성하기 위한 부산한 움직임을 시작할 것이다. 아니, 이미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지난 4월 사업단이 공식 출범한 이후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 사업을 소개하는 기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아직 공식 웹사이트가 구축되지 않아서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구글에서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을 검색하여 나타나는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의 웹사이트(링크)는 이미 종료된 시범사업에 관한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이 사업에 관여하고 있지만 사업단의 공식 '입'은 아니므로 이미 결정이 되었거나 알려져도 무방한 사실에 관하여 소식 공유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글을 쓰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사전규격 관련 용역사업의 수요기관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이다. 즉, 한국생명공학원에서는 유전체 및 오믹스 데이터 생산 및 분석이라는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사업 내 정책지정과제를 수행하게 되었고, 이를 위하여 유전체 및 전사체 데이터를 생산하고 기초 분석을 수행할 업체를 선정하고자 조달청을 통한 입찰을 거치게 된 것이다. 보다 상세하게 말하자면 사업 내 '유전체정보센터' 역할을 수행하는 KRIBB의 국가생명연구자원센터(KOBIC, Korea Bioinformation Center)가 바로 이 용역을 통해 대규모 유전체 정보 생산을 진행한다.

지난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유전체 데이터의 고도분석과 관련한 위탁연구과제 파트너 네 곳을 선정하기 위해 과제 발표 평가를 진행하였다. 원래 위탁과제는 주관연구기관이 알아서 책임자를 선정하여 협약을 거쳐 짐행하면 된다. 그러나 최고의 연구 수행 역량을 갖춘 팀을 선정하기 위해 공개모집을 거친 뒤 선정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꼬박 이틀에 걸쳐서 대면 발표 평가를 진행하였으니 경쟁률은 꽤 높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준비 작업의 난이도와 분량은 얼마나 높았겠는가? 전문가 논의를 거쳐 RFP를 만들고, 내외부 평가 위원을 섭외하여 일정을 맞추고, 서류를 접수하여 정리하고, 회의장을 예약하는 등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료를 인쇄하여 배포하고 수거 후 파쇄하는 등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하는 수고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전부 마련된 자리에 가서 발표를 들으며 몇 마디 거들고 서류를 쓰는 일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아이고, 이제 전주로 출발! 


2024년 8월 19일 월요일

나도 ChatGPT의 노예가 되기로 했다

여기서 '노예'라 함은 월 일정 금액을 내고 ChatGPT Plus, 즉 유료 플랜을 이용함에 동의한 자를 의미한다.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월 20달러로서 무료 플랜에 비하여 더 정교한 답변과 높은 성능을 제공한다. 무료 플랜에서는 질문을 몇 개 던지면 하루에 쓸 수 있는 최대 용량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몇 시간 뒤에 다시 이용하라는 성가신 안내를 토해내고는 하였다.

원래 AI 기술을 노예처럼 부려서 인간은 더 고귀한 일을 하겠다는 것이 AI 시대의 장미빛 미래상이 아니었던가? 오히려 AI 기술의 구동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의 고귀한 노동으로 번 돈을 AI 기술에게 '구독제'라는 이름으로 가져다 바치게 되었다. 통신 요금을 비롯하여 도대체 몇 개의 구독제 늪에 빠졌는지 나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고요하게 살고 싶었던 나의 가치 체계를 뒤흔드는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는 셈이다. 

ChatGPT에 질문하면... 구글 검색 10배의 전기 사용(조선일보 4월 24일)

구글 블로그에 글을 쓰고, 구글 포토에 사진을 자동 백업하며, 유튜브에 보잘것없는 동영상을 올리는 일 모두 필요 이상으로 전력을 낭비하여 탄소 배출을 증대시켜 지구를 더욱 덥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올 여름은 앞으로 인류가 만날 여름보다 가장 시원한지도 모른다... 

다음은 8월 16일 경향신문에 실렸던 '시대착오적인 전력정책 - 11차 전력계획'의 일부이다.

영국, 독일,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현재 전력소비량이 2000년 전력 소비량보다 적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문제에 둔감한 미국도 20여 년 전보다 10% 정도 전력 소비가 늘었을 뿐이다. 전력소비가 줄었지만, 그들이 4차 산업혁명이 뒤처졌다거나 ‘촛불 켜고 산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만큼 에너지 효율을 높인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전력 소비는 2.1배나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에 ChatGPT에 질문을 하나 던지는 것은 구글에서 한 건의 검색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전기를 사용한다고 하니, 편의성 뒤에서 유발되는 부정적인 효과에 신경이 쓰임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의 편의를 위해 ChatGPT를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마리 퀴리가 노벨상을 언제 받았을까? 다음은 구글의 검색 결과이다. 사실 예전에는 검색어를 포함하는 웹사이트 중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에 의해 상위에 랭크된 것들이 순서대로만 표출되었을 뿐, 검색어를 나름대로 해석하여 요약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즉, 나는 구글 검색창에 단지 '마리 퀴리 노벨상'이라고 쳤을 뿐이며, 마리 퀴리가 노벨상을 받은 연도가 궁금하여 이런 검색어를 넣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은 구글의 해석일 뿐이다. 사실 검색자의 의도를 잘 반영하였다.


만약 검색창에 '마리 퀴리는 언제 노벨상을 받았나'라고 넣으면 다음의 웹페이지가 가장 위에 나오며, 문맥 중에서 검색어와 일치하는 단어에는 강조 표시가 들어간다.



반면 ChatGPT는 보다 친절한 설명을 제공한다. 질문도 보다 구체적으로 던질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이 직접 자료를 조사한 뒤 자신의 생각을 더해서 만들어내는 글과 유사한 결과물을 제공해 주고 있으니, 업무를 위해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월 20달러를 지불하면서 내 손가락과 뇌의 수고스러운 활동을 약간(또는 상당히?) 덜어낼 가치는 충분히 있다. 그러나 그 뒤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탄소 배출 또는 전력 소모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ChatGPT를 애용하게 되면 정보를 종합하여 판단을 내리는 지적 능력도 슬슬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모든 궁금증에 관한 해답을 '세 줄 요약'보다는 약간 더 확장된 형태로 얻을 수는 있겠지만, 방대한 원전(原典)을 읽고 핵심 사항을 스스로 추려내는 능력은 줄어들 것이 너무나 자명하다. 목 뒤에 케이블을 찔러 넣어서 지식을 습득하는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과 무엇이 다른가? 이러다가 감정의 영역까지 기계의 힘을 빌려서 하게 되는 사회가 된다면 - 이미 그 문턱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 아마 인류의 존속도 위태로워 질 것이다.

과연 이러한 문명의 이기를 통해 얻게 되는 자유 시간에 우리는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될까? 나도 잘 모르겠다. 철학적인 고민이 상당히 필요하다고 본다. 


2024년 8월 28일 업데이트

조회수가 78만회에 가까운 ChatGPT 사용 요령 동영상이 있어서 소개해 본다.



2024년 8월 16일 금요일

런데이 2주차 훈련을 마치고

런데이의 30분 달리기 코스는 한 주에 세 번의 달리기를 하도록 설정이 되어 있다. 나는 이를 그대로 지키지 않고 하루 걸러서 달리기 훈련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총 네 번을 뛰는 주도 생기게 되는데, 몸이 견딜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총 여섯 번의 달리기를 마쳤다. 가장 최근의 훈련에서는 2분 달리고 2분 걷기를 반복하였다. 근육통은 1주차 때에 잠깐 있었고, 무릎 관절의 이상 증세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달리기 페이스는 6분 15초 정도로서 절대 무리를 하지 않는 수준이다. 

속도-페이스 환산표. 


운동을 시작한 후로 잠을 아주 잘 자게 되었다. 혈압도 정상 범위로 내려왔다. 운동을 시작한 뒤 간혹 상식 이하의 낮은 혈압이 측정될 때가 있어서 이것이 운동의 영향인지, 또는 가정용 혈압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상식 이하의 혈압은 달리기를 하기 전에는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었다. 최근 방바닥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날 때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을 두 번 정도 받았었다. 기립성 저혈압인가? 겨우 2주 동안 달리기를 했다고 해서 고혈압 근처였던 나의 상태가 이렇게 갑자기 바뀔 수는 없다. 몇 주가 더 지날 때까지 운동을 더 한 뒤에 면밀하게 판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낮 시간에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기는 한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던 시절에도 그 정도는 경험을 했었다. 그러나 아무런 운동을 하지 않는 위험성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달리는 동안 스마트폰을 허리에 두르는 밴드를 하나 주문하였다. 조만간 러닝용 워치도 주문하게 되지 않을까?

2024년 8월 12일 월요일

여든? 아니, 팔십입니다

일요일 오전, 아내와 함께 근처 백화점에 갔다. 스와치 그룹에 속하는 어느 시계 매장에서 진열된 물건을 구경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시계 옆에 놓인 성능 지표와 관련한 짤막한 용어(아마도 POWERMATIC 80이었을 것임)를 놓고 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

(나, 아내에게 한 말) "이건 오토매틱 시계의 무브먼트가 다 감기면 여든 시간은 간다는 거야."

(점원, 내가 잘못 알고 있다는 듯 급하게) "아니, 80 시간입니다."

(나, 아내) ???

아마도 점원은 '여든 시간'을 '여덟 시간'으로 잘못 알아듣고 이를 빨리 정정해 주려고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겨우 여덟 시간밖에 못 가는 초저성능 오토매틱 무브먼트가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시계 옆에 80이라는 숫자가 크게 찍혀 있는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아무리 발음이 시원치 않다 해도 '여ㄷ...'이라고 말하는 것을 여덟로 알아듣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요즘 1루(하루), 2틀, 4흘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표현이 종종 보인다. 2틀은 애교로 봐 줄 수 있지만 4흘은 '사흘' 즉 삼일의 뜻을 완전히 잘못 알고 쓰는 것이다.  '제 나이는 오십 넷입니다' 라는 어색한 숫자 표현도 너무 흔하다. 후자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군대에서 쓰던 숫자 세는 방식이 일반에 널리 퍼져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국외 출장 준비를 하느라 항공권을 예약하기 위해 여행사 직원과 전화통화를 하는데 '8월 십날'이라고 날짜를 부르는 것을 듣고 문화적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잘 몰랐어서' - 이것은 어법상 아예 맞지 않는다. 정말 듣기 괴롭다.

'~해서'를 '~해 가지고'(실제 발음은 '해 가지구' 또는 '해 가주구'에 가까움)라고 쓰는 것도 듣기에 편하지 않다.

'~했었어 가지고' - 이것은 정말 듣기에 더욱 괴롭다.

복수 표현이 지나치게 많아진 것도 문제이다. 우리말은 단수와 복수를 그다지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더운 여름날, 백화점에 갔더니 사람이 많아서 붐볐다고 가정하자. 그저 '사람 참 많네'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네' '생각들이 많아서...' 등 많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들'을 남용하는 것도 어색하다.

말 뿐인 존대법도 그렇다. '몇 분이세요?' '손님분' 등등.

'어제 복날이었어 가지고... 우리 식당에 손님분들이 너무 많았어 가지고 정말 바빴어. 한꺼번에 몰린 손님분들한테 어떻게 자리를 안내하고 주문을 받아야 될지 잘 모르겠어서 정말 힘들었지. 홀 담당 알바생이 일주일 전에 두 명이나 바꼈어 가지고 우왕좌왕하느라 더 힘들었어.'

이쯤 되면 듣는 나는 폭발할 지경이 된다.

점점 꼰대가 되어 감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꼰대였을 것이다. 최소한 올바른 말과 글을 쓰지 못하는 현 세대를 지적함에 있어서는. 그러나 정작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 앞에서는 지적하지 못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에게만 불평을 늘어놓을 뿐이다. 

특히 나는 TV 프로그램(소재, 포맷 또는 진행 방식, 마치 사전에 만들어진 대본이 없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촬영 방식, 사용하는 언어 등)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라서 아내가 TV를 보고 있으면 옆에서 너무 잔소리를 많이 해 댄다. 따라서 꼰대가 맞다.




2024년 8월 11일 일요일

여름날의 금산사는 배롱나무 꽃과 함께

이번 주말에는 전라북도 김제시에 위치한 금산사를 둘러 보았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금산사 미륵전의 모습 - 마치 3층 건물처럼 보이는 우아하고도 장엄하며 압도적인 - 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물 중에서 여러 층으로 된 것은 극히 드물다. 지난 5월에 방문했었던 부여 무량사의 극락전(블로그 글 링크)과 좋은 대조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였다. 무량사 극락전은 겉에서 보아서는 2층, 내부는 통층이다.

호남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전주를 지나 금산사IC로 나와서 십 여 분을 달리면 모악산 도립공원이라는 곳이 나온다. 금산사는 바로 여기에 위치하고 있다. 모악산은 과거에 금광이 있었기에 일제강점기때 활발한 채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금 광산이 있던 산에 오르다', 전북도민일보).

IC를 나와서 금산사를 찾아가는 도중에 정말 멋진 가로수길을 발견하였다. 과거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근처를 지날 때 똑똑히 보았던, 너무나 멋진 가로수길을 실제로 통과하게 되다니!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마치 마인데르트 호베마의 유명한 가로수길 그림인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1689)을 연상케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카카오맵 로드뷰로 찾아 본 결과 '봉남로'의 한 구간인 것 같다. 그런데 이 길이 과연 내가 호남고속도로를 달리며 본 길이 맞을까? 김제시의 유명한 가로수길에는 메타세콰이어가 심어져 있다고 하는데, 구글에서 찾아보니 이 길은 해학로이고 서해안고속도로와 가깝다. 아래 로드뷰 사진의 가로수는 분명 메타세콰이어는 아닌 것 같다. 내가 고속도로에서 본 가로수길은 어디였을까? 혹시 선운사를 다녀오다가 서해안고속도로에서 이 길을 보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봉남로에서 원평로를 거쳐 금산사로로 접어들어 조금 지나니 몇 개의 식당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길 반대편에 원평면옥이라는 냉면집이 보여서 차를 세우고 이 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가격도 적당하고 맛도 좋았다. 다음에 여름이 지나서 들르게 되면 한우우거지탕을 먹어 보리라.


금산사 가는 길에 원평면옥에서 냉면을 먹었다. 지역민들이 즐겨 찾는 맛집인 것 같다.

모악산 도립공원 주차장은 무료이지만 절 경내까지 들어가면 유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하여 호젓한 길을 따라서 조금 더 차를 몰았다. 갑자기 커다란 문이 나타나는데 근처에 차를 댈 수는 없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금산사로 들어가는 관문 격인 개화문(견훤문이라고도 부름)이었다.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이곳 금산사에 유폐당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절 내부에 위치한 제1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바로 곁에 위치한 계곡에 놀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절을 향해 올라가는데 아무런 편액이 없는 작은 전각이 보인다. 보통 절에서 가장 작은 집에 해당하는 산신각보다도 훨씬 작았다. 여기에는 과연 누가 모셔져 있는 것일까?


가득히 놓인 제물을 보아하니 정말 영험한 석상인 것 같다.

안에는 기이하게 생긴 얼굴 모습의 석상이 모셔져 있었다. 검색을 해 보니 영험한 미륵할머니 또는 돌할머니라 부른다고 하였다. 후대에 다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머리 부분을 시멘트로 붙인 것 같다. 석굴암 본존불상처럼 완벽한 조형미를 갖춘 것도 있지만, 이 미륵할머니처럼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석상은 정성스럽게 치성을 올리는 사람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압도적인 기둥 크기를 자랑하는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문(또는 인왕문)이 위치해 있다. 금강문을 둔 절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금산사 일주문.

보제루 아래 한 쪽을 막아서 만든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더위를 잠시 식혔다. 경내에는 배롱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금산사에는 많은 문화유산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미륵전(국보 제62호)이 아닐까 한다. 겉에서 보기에는 3층처럼 보이지만, 실제 들어가 보면 통으로 되어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서 미륵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내부에 들어가면 중앙에는 높이가 12미터 가까이 되는 미륵본존불이 좌우에 위치한 보살상과 함께 세워져 있다.

미처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으나 내부를 굳건하게 받치고 있는 네 개의 기둥을 한참이나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각 층마다 붙은 편액의 글씨가 다르다. 1층부터 차례로 대자보전-용화지회-미륵전. 편액에 얽힌 이야기는 여기를 참조하라.

미륵전을 한참 둘러본 뒤 밖으로 나와 나무 그늘의 벤치에서 고마운 바람을 맞았다. 대적광전과 미륵전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두 스님의 독경 소리는 완벽하게 조성이 일치하였다. 가사가 다른 유니즌(unison)이라고나 할까? 

금산사의 본전(本殿)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다.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는 사찰에서는 이런 전통을 따른다고 한다.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불이 말씀하신 불법을 형상화한 것, 즉 법신불이다. 따라서 금산사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이 없다. 비로자나물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음을 강조한 요한복음의 시작 부분을 연상하게 한다. 

금산사 대적광전은 보물 제476호였으나 1986년 화재로 전소되어 보물 지정이 해제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은 1990년에 복원한 것이다.

대적광전 뒤에 나란히 위치한 조사전과 나한전 옆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보물 제26호인 방등계단이 나온다. 여기에는 너른 두 단의 기단 위에 오층석탑(보물 제25호)과 종 모양의 탑이 있다. 그 곁에는 적멸보궁이 위치한다.



여기에서 바라보는 미륵전의 모습은 배롱나무 꽃과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

땀에 절어서 번들번들한 내 모습. 기록적으로 더운 여름날에도 남편을 따라 잘 돌아다니는 아내가 고맙다.




아래의 두 석물도 전부 보물로 지정된 것이다.

석등.

육각 다층석탑.

돌아오는 길에는 전주에 들러 전북대학교 오스스퀘어에서 치즈 케익과 차를 마셨다. 김제를 떠나기 전에 벽골제를 마지막으로 들렀다 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오스스퀘어 2층에서. 밖에 보이는 것은 또 배롱나무 꽃이 아닌가?

입추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예년과 비교하기 어려운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더위가 어서 누그러져서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를 맞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집에서 일하기 위한 컴퓨터 활용 환경 정비하기

집에서는 데스크톱 컴퓨터의 활용 비율이 과거에 비하여 현저하게 떨어졌다. 두 대의 낡은 데스크톱, 즉 Dell Inspiron 3668(2017년 구입)과 리눅스 데스크탑을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서 거실의 컴퓨터용 책상 주변을 깔끔하게 치운 뒤, 모니터를 노트북 컴퓨터(ThinkPad E14 Gen3)에 연결하였다.


사진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모니터는 2007년 제조일자가 찍힌 LG Flatron L226WTP-PF(22인치)이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고장난 것을 주워다가 고쳐서 지금껏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색상도 예전 같지 않다.

이 낡은 모니터를 얼마나 더 쓸 수 있을까? 만약 고장이 난다면 저렴한 24인치급 모니터로 바꾸어야 되겠다. 크로스오버의 '24B5 IPS 75 방탄'이라는 제품이 16:10 비율이라서 저렴한 가격에 작업용으로 쓰기에 좋다고 한다.

사진에는 남기지 않았지만 책상 밑에서 늘 발을 성가시게 하던 몇 개의 박스도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 버렸다. 자주 꺼내 쓰는 물건이거나 늘 눈에 뜨이는 노출된 위치에 두어야 하는 물건은 특성에 따라서 정리해 두는 것이 옳다. 그러나 사용 빈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물건이라면 상자에 모두 몰아서 넣고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치워 두는 것이 낫다. 

정리의 기본은 '잘 버리기'라고 생각한다. 매몰비용(sunk cost 또는 retrospective cost)이란 이미 지출해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위키피디아를 찾아 보니 매몰비용 때문에 이미 실패한 또는 실패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에 시간, 노력, 돈을 투자하는 것을 '매몰비용의 오류'라고 한다(링크). 매몰비용의 오류 때문에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계속 보유하게 되면서 정리정돈이 어려워진다.

버리는 것은 낭비이므로, 소유한 물건을 되도록 정리하지(=버리지/처분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한 생활 태도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버리지 못하는 것도 욕심이라고 한다.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르잖아?"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에 우연히 활용 가치를 찾는 편익보다, 그 물건이 장기간 자리를 차지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이 더 클 수도 있다. 정리정돈에 대한 유튜브 강연 하나를 들어 보니 6개월 동안 쓰지 않은 물건은 버릴 대상으로 고려해 보라고 하였다. 필름 사진기? 망원경? 자전거와 그 부속? 온갖 악기와 자작 진공관 앰프? 다양한 취미 생활을 거치면서 구입한 물건들을 다 어떻게 할 것인가? 추억과 관련한 물건은 장기 보관 대상으로 여겨서 별도로 관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서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에 쓴 그림 일기는?

별도의 창고나 광을 두고 살기 어려운 아파트 위주의 거주 방식으로는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작은 방 하나를 '광'으로 지정하고 장기 보관할 추억의 물건이나 기념품의 총량을 제한한다면, 6개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을 매몰차게 버리는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서랍 정리 중에 발견한 일렉트릭 기타용 가죽 멜빵. 이렇게 반가울 수가!

대대적인 집 수리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2024년 여름, 일단은 불필요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을 정리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소유물 총량제의 개념을 마음에 두고 행동에 옮기면 매우 유용할 것이다.

2024년 8월 10일 토요일

런데이 1주차 훈련을 마치고

런데이(RunDay)는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매우 유용한 앱이다. 인터벌 트레이닝, 즉 뛰고 걷는 것을 반복하면서 훈련 강도를 높여 나가면서 8주 동안 이를 따라서 하다 보면 30분 간 쉬지 않고 뛰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제 겨우 1주차, 즉 이틀에 한 번 씩 총 세 차례의 달리기를 마친 수준에 불과한 상태이니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고 고백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3주 정도 끈기 있게 진행한 상태라면 모를까... 

도장 세 개를 받았다.

달리기를 시작한 동기는 매우 단순하다. 지난 토요일, 정기 건강 검진을 받으면서 정말 이제는 건강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지방이 아주 많아서 생존을 위협할 정도가 된 것은 아니다. 사실 평소에 조금 적게 먹는 것 덕분에 이런 한계 수준의 건강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문진표를 작성하면서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기록하는 것도 이제는 부끄럽다.

지난 1주 동안 땀이 날 정도의 운동을 하였습니까? - 아니오.

지난 1주 동안 숨이 찰 정도의 운동을 하였습니까? - 아니오.

나이가 들면서 혈압이 조금씩 오르는 것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박수도 정상인보다는 빠른 것 같다. 혹시 유산소 운동을 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달리기는 몸과 마음에 활력을 줄 뿐만 아니라 인지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한 동기이다! 5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제약이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 이 나이에 함부로 뛰면 곤란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오랫동안 했었다. 무리하지 않게 달리는 것보다 등산이 무릎에 더 해로울 것이다.

그래서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파견 근무 생활을 할 때, 운동을 위해 경복궁 둘레 약 2.7 km를 걷고 뛰기를 반복하면서 딱 한 번 돌아 본 일이 있다(산책을 하면서 걸어 본 일은 많지만...). 그때 앱의 도움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걷고 뛰는 시간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심 후에 몇 개의 글을 찾아서 읽어 보니 '런데이' 앱이 인기가 좋은 것 같았다. 다음은 아마도 20대로 여겨지는 어느 대학원생의 성공기를 읽어 보자. 여기서 (누구나) = (50대 중반)에 해당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런데이 30분 달리기 도전 8주 프로그램 완주 후기

"누구나 30분 동안 달릴 수 있게 하는 것,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 일단 시도하면 죽이 되는 밥이 되든 몇 시간, 며칠, 몇 달이 걸리든 해 낼 수 있다는 것."

지난 월요일, 저녁을 먹고 두 시간 이상 지난 뒤 오랜만에 땀을 잘 배출하는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런데이의 트레이닝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예를 들어 5분의 준비 걷기, 1분 달리기, 2분 걷기, 또 1분 달리기... 이렇게 뛰고 걷는 사이클를 반복하다가 마지막으로 5분의 마무리 걷기로 끝난다. 총 운동 시간은 30분~40분 정도이다. 다음 회차에는 1분 달리기가 1분 30초로 늘어난다. 이렇게 뛰는 시간을 늘이고 걷는 시간을 줄여 가면서 8주째가 되면 쉬지 않고 30분을 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아마도 4 km 이상은 달리게 될 것이다.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총 거리 5 km 정도 또는 30분을 쉬지 않고 뛰는 목표를 언젠가 달성하게 될 것으로 본다. 사실 30분에 5 km를 딱 맞추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목표일 수 있다. 

런데이에는 트레이닝 기능 뿐만이 아니라 커뮤니티 참여 등 흥미와 목표의식을 함양하는 많은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아직 그 기능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한다. 다음은 오늘의 운동 기록이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전민동 주민이라면 다 알 만한 코스이다. 인도를 따라 걷거나 뛰는데 약간 좁다는 점을 빼면 나쁘지 않다. 적당히 언덕도 포함하고 있어서 훈련하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달리기를 마친 뒤에는 아내를 불러서 같은 코스를 걷는다. 아내도 같이 런데이를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수준은 되지 않는다. 갑천변도 훌륭한 달리기 코스이지만 집에서 900미터 이상을 이동해야 접근 가능하다.

허벅지에 느껴지던 근육통은 2회차 운동을 마친 뒤 없어졌다. 아직까지 무릎에서는 별다른 이상 징후가 없다. 뛸 때에는 발의 가운데 부분부터 디디려고 의식을 한다. 

한번 해 보자. 다치지는 말고...

 

2024년 8월 4일 일요일

2024년 뜨거운 여름의 경주 여행

"이런 날씨에 경주를 간다고?"

뜨거운 여름에 경주를 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날씨에 경주 IC를 진입하자마자 차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는 무엇이며, 대릉원 지구의 노상 주차장을 꽉 채운 자동차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밤 늦게 동궁과 월지(예전에 '안압지'라 부르던 곳), 그리고 월정교의 야경을 즐기기 위해 밀려드는 사람들은? 도심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압도적인 규모와 함께 부드러운 곡선미를 한껏 품고 있는 왕릉군은 그 위를 뒤덮은 초록 풀과 함께 기가 막히게 어우려져 고유한 마티에르를 이루며 한 여름에 더욱 가치를 발한다. 왕릉 앞의 혼유석에는 여름 더위에 지친 무덤 주인이 땅 속에서 스며 나와 '어휴, 꽤 덥군'하면서 나와 앉아서 손부채질을 하면서 왁자지껄 근처를 지나는 관광객을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을 것만 같다.

2024년 7월의 끝자락 2박 3일은 경주 여행으로 마무리하였다.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사진과 더불어 여행기를 남기고자 한다. 경주는 문화유적지를 찾아 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우리 부부의 단골 여행지이다. 거의 20년 전부터 매년 1회 이상 경주를 다녀왔던 것 같다. 수도권에서 파견 근무를 했던 3년 반 동안은 제외하고.

2019년 월정교가 복원되면서 인근의 야경이 좋은 볼거리가 되었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가게로 들어찬 '황리단길'도 인기를 끌면서 경주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그래서 대릉원 입구의 좁은 차도 또한 사람이 몰릴 때에는 매우 혼잡하다. 대릉원은 내부 천마총을 제외하고 무료로 개방이 되었다. 쪽샘 유적발굴관은  현재 운영을 하지 않아서 아쉽다. 월정교를 비롯한 신라왕경 핵심유적의 복원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현재의 모습 그대로 보존할 것인가, 또는 정확한 고증은 어차피 불가능하니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최소한의 건물이라도 복원해 놓는 것인 옳은가? 참 어려운 문제다.

첫 날은 대릉원과 경주국립박물관을 둘러 보았다. 전시실에서 땀 냄새가 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이 되어 동궁과 월지의 야간 조명이 멋있다고 하여 늦은 시간에 다시 차를 몰고 나가 보았으나 차량이 너무 많이 밀려서 포기하고 월정교를 둘러 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고속도로를 따라 경주로 진입하다.

대릉원에서.


'신라'라는 이름은 이런 뜻을 지니고 있다.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 - 덕을 쌓는 일이 날마다 새로워 사방 천지를 아우른다.

무엇이 이렇게 부끄러우신지?

기와(수막새)에 새겨진 신라인의 국보급 미소. 정식 명칭은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보물 제2010호). 현재 쓰이는 LG의 로고 디자인에 영감을 제공했다고 한다.

월정교. 남에서 북쪽으로 건너 온 뒤에 교촌마을 쪽에서 촬영.


둘째 날 오전은 불국사로 향했다. 폭염이 계속되고 있어서 나무 그늘을 벗어나기 싫은 날이었다. 불이문쪽으로 오르는 언덕길은 그늘이 울창해서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아쉽지만 너무 더운 관계로 석굴암은 건너 뛰었다.

점심은 다음 목적지인 감은사터를 둘러본 뒤 근처 바닷가에서 해결하기로 하였다. 몇 년 전에 문무대왕릉이 위치한 봉길해수욕장까지 왔다가 양남 주상절리가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미처 들르지는 못하였다. 이번에는 주상절리의 모습이 궁금하여 그 근처에 가서 구경도 하고 점심도 먹기로 하였다.

해안을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이내 양남 주상절리에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내비게이션은 차를 서쪽으로 돌려서 터널을 뚫고 가게 하였다.봉길해수욕장 바로 남쪽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월성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한다. 여러 가지 입지를 고려하여 이 곳에 발전소를 지었을 것이다.

주상절리가 위치한 곳의 바로 북쪽에는 읍천항이라는 작은 항구가 있었다. 차를 해안가에 대고 내리니 바닷가로부터 시원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장님이 직접 운영한다는 읍천횟집에서 물회를 먹었다. 공깃밥을 곁들여 주는 물회는 처음이었는데, 반찬과 탕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 경주를 오게 되면 꼭 들르게 될 것 같다. 양남 주상절리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감은사터 서탑. 

읍천횟집.

'바랗 COFFEE'라는 카페에서. 바람이 시원하여 에어컨을 가동할 필요가 없다. 휴가를 가도 전자결재를 위해 노트북을 늘 갖고 다녀야 한다.


이것이 사진으로만 보았던 양남 주상절리.

'ㅇㅊㅎ' = 읍천항.

남쪽에서 바라본 월성 원자력발전소. 왼편은 동해.  홍보관은 공사 중이라 문을 닫았다. 원자로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저 원자로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고 싶다'였다. 물론 그럴 기회는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돌아오는 길에 발전소 정문쪽으로 접근해 보았으나 거기에서는 원자로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슨 가족'의 무대가 되는 스프링필드의 원자력발전소가 생각이 났다. 몽고메리 번즈 사장은 아직도 건재하신가?

돌아오는 길에는 괘릉, 즉 원성왕릉에 들렀다. 경주 여행 때 한 번도 빼놓지 않는 곳. 언제나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네 마리의 돌사자는 표정이 전부 다르다. 나는 이를 드러내며 익살스럽게 웃는 동북쪽 돌사자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여기 놓은 석물들은 1300년 전부터 여기에 있었고, 또 내가 죽은 뒤에도 계속 남아 있을 것이 아닌가? 아, 부럽다...

오늘따라 유난히 처연하게 보이는 영지석불.


마지막 날에도 날씨는 대단히 더웠다. 숙소가 위치한 보문단지 가까이 위치한 종오정이라는 곳을 처음으로 가 보았다. 전통 정원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연꽃은 이미 다 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피어나는 꽃이 남아 있었다. 다음 코스는 분황사 - 첨성대 - 계림 - 경주 향교. 단골집인 경주원조콩국에서 시원한 콩국수로 점심을 하고 경주를 떠났다.


종오정 입구에서 찍은 사진.

2024년 여름, 부여 궁남지의 연꽃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여기에서 달랜다.


분황사의 돌사자. 원래 그렇게 만든 것인지, 천 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풍화를 견뎌내느라 그렇게 된 것인지. 돌사자의 모습은 흡사 단순하게 디자인된 것처럼 보인다. 현대 작품이라 해도 믿을 것 같다.

첨성대 경내에는 그늘이 별로 없다. 남동쪽에 위치한 모과나무 아래 벤치를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승자.

계림으로 들어가면 더위를 잊을 수 있다.

계림에서 바라본 첨성대. 향교쪽으로 나가는 길에 내물왕릉을 만났다.


경주 향교의 대성전.

경주 향교는 물론 삼국시대에 건립된 것은 아니겠지만 마모된 계단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2천년 초반에 아이들을 데리고 경주에 처음 여행을 왔던 기억이 새롭다. 사실 그때는 휴식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 학회 참석을 위해 급하게 일정을 잡아서 왔었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여름, 딸아이를 업고 불국사의 불이문쪽 언덕을 오르던 기억이 난다. 이번 여행에서는 평소에 가지 않았던 곳을 발견하게 된 것이 훌륭한 성과라고 하겠다. 더위가 물러나면 다시 또 오고 싶다.

여행의 교훈: '셀카'를 믿지 말자. 주름이나 잡티를 없애 주므로, 내가 생각보다 젊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앞으로 할 일: 작년부터 쓰기 시작한 노랫말 '경주'를 마무리하고 멜로디를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