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쓴 글('국민건강보험 공부하기 - 어려운 몇 가지 핵심 용어')에 이어서 오늘은 요양급여 대상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하여 써 보고자 한다.
잠깐,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어제 쓴 글의 제목이 올바른지 고민해 보기로 한다. '-'(하이픈/대시, 또는 순화된 우리말로는 붙임표)는 영문과 국어에서 용법이 조금 다르다. 다음 표는 IT 글쓰기와 번역 노트의 -(붙임표, 하이픈)에서 가져왔다. 컴퓨터 자판으로 입력을 할 때에는 보통 마이너스 키로 하이픈을 대신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르다. 가로 막대 모양으로 생긴 구두점은 통틀어서 줄표(위키피디아)라고 한다.
하이픈/대시와 붙임표 비교. 출처: IT 글쓰기와 번역 노트 중 -(붙임표, 하이픈). |
어제 쓴 글의 제목에서 뒷부분의 '어려운 몇 가지 핵심 용어'는 일종의 부제목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쓰는 것이 맞다.
국민건강보험 공부하기
- 어려운 몇 가지 핵심 용어 -
하이픈이 하나 더 들어가서 부제목의 앞과 끝을 닫아야 한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국문 논문을 찾아보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제목이 무척 많다. 요즘 영문 논문에서는 ':'(콜론)을 쓰는 경우가 무척 많은데, 국문 논문에서도 이를 조금씩 흉내내는 경향이 있다.
엇, 그런데 위키피디아의 줄표 설명을 보면 부제의 앞뒤에 쓰는 줄표 중 뒤의 것은 생략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내가 쓰는 방식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가서...
요양급여 대상을 목록으로 정하고, 나머지 모든 것은 비급여로 취급하는 것은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에 해당한다. 이와는 반대로 급여가 아닌 것, 즉 비급여 대상을 목록으로 정하고 나머지는 전부 급여로 취급하는 것은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역사를 통해서 요양급여 목록 방식이 조금씩 바뀌어 왔는데, 최초 제도 도입 당시에는 어땠는지 조사하지는 못하였다. 의약분업이 실시된 것이 아마도 2000년도였던가? 이때에는 행위·치료재료·약제 전부 네거티브 목록 방식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하면 급여 대상이 많아지므로 국민 입장에서는 많은 혜택을 받게 되지만, 건강보험 재정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2006년에 의약품은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를 선별등재제도라고 불렀다. 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은 급여제외목록방식이라고 부른다.
2018년 의약뉴스 기사(링크)에서 의약품 선별등재제도의 의미와 도입 배경을 잘 설명해 놓았다.
우리나라에서 행위 및 치료재료는 여전히 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인가? 원론적으로는 그러하지만,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섞어서 운용하는 매우 독특한 방식이다. 주요 국가는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단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을 보자.
제41조(요양급여) ① 가입자와 피부양자의 질병, 부상, 출산 등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요양급여를 실시한다.
1. 진찰ㆍ검사
2. 약제(藥劑)ㆍ치료재료의 지급
3. 처치ㆍ수술 및 그 밖의 치료
4. 예방ㆍ재활
5. 입원
6. 간호
7. 이송(移送)
② 제1항에 따른 요양급여(이하 “요양급여”라 한다)의 범위(이하 “요양급여대상”이라 한다)는 다음 각 호와 같다. <신설 2016. 2. 3.>
1. 제1항 각 호의 요양급여(제1항제2호의 약제는 제외한다): 제4항에 따라 보건복지부장관이 비급여대상으로 정한 것을 제외한 일체의 것
2. 제1항제2호의 약제: 제41조의3에 따라 요양급여대상으로 보건복지부장관이 결정하여 고시한 것
③ 요양급여의 방법ㆍ절차ㆍ범위ㆍ상한 등의 기준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 <개정 2016. 2. 3.>
④ 보건복지부장관은 제3항에 따라 요양급여의 기준을 정할 때 업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에 대한 치료 등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은 요양급여대상에서 제외되는 사항(이하 “비급여대상”이라 한다)으로 정할 수 있다. <개정 2016. 2. 3>
제41조제1항에서 요양급여 대상을 원칙적으로 선언하고, 제2항1호에서는 비급여대상으로 정한 것을 제외한 일체를 요양급여 대상으로 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약제는 제외함이 분명히 나타난다. 그리고 비급여 대상은 같은 조 제4항에서 규정하였고, 구체적인 목록은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 <별표 2>에 실려 있다(같은 규칙 제9조제1항을 거친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에 해당한다. 그런데 제41조제3항에서 요양급여 기준을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의미한다.
처음에 국민건강보험법 제41조를 접하였을 때, 왜 약제만 다른 운명을 걷게 되었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위에서 언급한 의약뉴스 기사를 찾아 본 다음에 비로소 그 의의를 이해하게 되었다. 새로운 약이 식약처 허가를 받으면 일단 비급여로 판매할 수 있고, 보험 등재를 원한다면 절차를 거쳐서 임상적·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아 급여 대상에 오르면 된다.
의료 행위도 이와 마찬가지로 전면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으로 전환하면 되는 것 아니었을까? 비급여 대상(일상 생활이나 업무에 지장이 없는 것 등)을 정하여 여기에 속하지 않으면 일체의 것이 급여 대상이라 해 놓고서 급여 대상은 별도로 정한다니 말이다. 당시에는 그런 방식으로 법령 개정을 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현행법 위주로 검색을 하여 공부하는 초보자 입장으로서는 그러한 배경을 도무지 알기가 어렵다. 법은 스스로 분명하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제정 혹은 개정 취지는 조문 내에서 드러나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법은 시(詩)가 아니다. 지은이를 불러놓고 '이것은 무슨 뜻으로 지은 글인가요?'하고 묻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 자체로서 충분히 취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법령 체계가 이러하니 새로 개발된 의료기술은 급여도, 비급여도 아니라는 이상한 상태가 된다. 그 어느 목록에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 기술과 정말 다른지 확인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요청하여 확인을 거쳐야 한다. 기존 기술이라면,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비용을 받으면 된다. 물론 급여일 수도 있고 비급여일 수도 있다.
기존기술 확인 결과 새로운 의료기술로 판정되면? 그러면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의료현장에서 쓸 수 없다는 것이 그동안의 통념이었다. 사실 신의료기술평가는 새로운 의료기술이 보험급여 자격이 있는지를 점검하는 초입의 과정이다.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건강보험 급여가 아니라고 해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당연히 비급여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비급여 목록을 별도로 관리하므로 여기에도 들어 있지 않은 상태가 된다. 이렇게 까다롭게 관리하는 이유는 복지부 보도자료에 의하면 입증되지 않은 의료기술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이 논리대로라면, 해 보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맞다. '하던 대로만 해!'
최근 들어서 이는 법령의 해석 문제로서 신의료기술평가를 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2023년 6월 7일 뉴데일리경제] 시장 진입 가로막는 '신의료기술평가'...바이오 육성책 역행
- [2023년 6월 7일 히트뷰스] 지금의 '혁신 통합 트랙', 모두가 원했던 그림일까(이 기사는 신의료기술평가 자체에 관한 비판은 아님)
- [2023년 6월 6일 매일경제] 혁신 의술·첨단 의료기기 규제수단 전락한 '신의료기술평가'
- [2023년 6월 8일 경향신문] 신의료기술평가의 대못을 뽑아주세요
- [2023년 6월 8일 이데일리] 의도는 좋지만...환자 치료 기회 박탈하는 '신의료기술평가'
- [2023년 6월 9일 메드월드 뉴스] '신의료기술평가제' 규제 도구로 의료 활성화 발목
- [2023년 6월 13일 메디칼업저버] 디지털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평가 "행정절차로 시장 진입만 늦어져"(이 기사는 신의료기술평가 자체에 관한 비판은 아님)
지금까지는 주로 의사 단체나 의료기기업계의 민원 차원에서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이번에는 법조인들이 적극 나서고 있다는 것이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 문제에 대한 법조인들의 논의는 실은 더 복잡하지만, 나는 일반인 수준에서 오늘의 글을 작성해 보았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흥미롭게 지켜 보아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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