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9일 화요일

규제에 끼인 디지털 헬스 산업

어제 저녁무렵에 파이낸셜뉴스에 실린 기사를 소개한다.

규제에 끼인 디지털헬스..."산업 차원 육성 다룰 별도 법 필요"(2022.11.28.)

디지털헬스케어는 최근에 등장한 개념이라서 아직 통계청의 산업분류체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현행 한국표준산업분류는 통계청 고시(링크)로 공개되는데, 현재 통용되는 것은 2017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스마트헬스케어라는 용어까지 포함한다면, 현재 국회에는 3건의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태이다(블로그 글 링크). 전부 올해에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되었고, 주무부처도 각각 다르게 명시해 놓았다. 그만큼 산업계의 요구가 무르익어 가는 현실을 반영하여 법안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법안의 통과라는 것이 몇 달 논의를 거친다고 뚝딱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의료계나 시민단체와의 공감대 형성 - 특히 비대면진료와 같은 문제는 의료계와 합의를 거치지 않으면 실현 자체가 어렵다 - 이라는 중대한 관문을 또 넘어야 한다. 

새로운 법률이 만들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현행 법제의 테두리 안에서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의 범위를 설명하는 책자인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 및 사례집」이 2차(2022년 9월)까지 발간되어 있다. 간행 주체는 보건복지부.

법을 통한 규제와 관련해서는 크게 포지티브 규제네거티브 규제의 두 가지 형식이 있다고 한다. 포지티브 규제는 허용되는 것들을 목록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목록에 있는 행위만 해야 하고, 그 외의 것을 행하면 위법한 것이 된다. 반대로 네거티브 규제는 해서는 안 될 행위를 목록에 담는 것이다. 즉 '이 목록에 있는 것만 아니면 뭐든지 해도 된다'에 해당한다. 규제의 강도로 따진다면 당연히 포지티브 규제가 네거티브 규제보다 더욱 강력하다. 우리나라 법제는 대부분 포지티브 규제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를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는 규제 혁신은 문재인 정부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 포지티브 규제: 목록에 있는 일만 해야 돼!
  • 네거티브 규제: 목록에 있는 일 빼고 다 해도 돼!

이상에서 소개한 '포지티브 & 네가티브'의 두 가지 중요한 개념에 대한 약간 복잡한 사례를 들어보겠다. 다음은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에서 발간한 「알기쉬운 신의료기술평가 제도 A o Z」(링크)에서 인용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은 의료행위(medical procedures)와 의약품(pharmaceuticals)에 대해 서로 다른 보험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의약품의 경우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적용하여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받은 의약품 중 치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우수한 의약품 일부를 급여 대상으로 적용하며 그 외의 의약품은 비급여로 사용 가능하다. 의료행의의 경우 기본적으로 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으나 건강보험 재정 한계로 인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정한 심사기준에 의해 급여 대상 행위를 별도로 인정하는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이 혼재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의료행위의 경우 급여와 비급여 목록을 모두 정부에서 관리한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의료행위(의약품 제외)의 건강보험 진입 여부 결정을 위해 의료행위와 신의료기술평가를 시행하며, 건강보험 가입자(우리나라 국민)에게 보편적인 의료환경에서 사용될 만큼의 임상적 안정성·유효성을 갖추었는지 해당 분야 의료인과 함께 국내외 임상문헌에 기반한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 방법을 활용하여 평가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의 독특한 구조에 기인하여 새로운 의료행위는 신의료기술평가에서 탈락하는 경우 건강보험(급여 또는 비급여 의료행위 목록)에 진입할 수 없으므로 해당 기술은 건강보험 가입자들에게 비급여로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 및 사례집」에서는 의료행위의 개념을 법에서 정의하지 못한 상황에서 건강관리서비스의 개발 및 제공에 도움을 주고자 허용되는 행위와 금지되는 행위의 예시를 들어 주었다. 그런데 이 예시라는 것이 오히려 자율성과 상상력을 크게 제한하는 것 같다. 비록 예시이지만,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전부 나열함으로써 마치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규제가 혼재된 것과 같은 복잡한 모양을 띠고 있다. 어떤 문서를 작성할 때 흔히 샘플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샘플이라는 것이 새로 작성하려는 내용에 대한 일종의 '한계'로 작용하는 점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샘플이 있으면 문서 작성이 손쉬운 것은 맞지만...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의 정의는 어떻게 내려져 있는가? 이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건강의 유지·증진과 질병의 사전예방·악화 방지를 목적으로, 위해한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올바른 건강관리를 유도하기 위해 제공자의 판단이 개입(의료적 판단 제외)된 상담·교육·훈련·실천 프로그램 작성 및 유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

쉽지 않은 정의이다. 의료행위의 판단 기준 역시 마찬가지이다. 법에서 정의하고 있지 못하므로 대법원 판례(2018.6.19. 선고 2017도19422)에 의존해야 한다.

'의료행위'란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진찰, 검안, 처방, 투약 또는 외과적 시술을 시행하여 하는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행의 및 그 밖에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수 있는 행위를 의미한다.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는 추상적 위험으로도 충분하므로, 구체적으로 환자에게 위험이 발생하지 아니하였다고 해서 보건위생상의 위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가이드라인 9쪽에는 비의료기관의 의료행위 금지규정 위반 대표 사례를 실었다. 

  1. 특정 증상에 대해 질환의 발생유무·위험을 직접적으로 확인하여 주는 행위
  2. 질병의 치료를 직접적 목적으로 하는 상담 및 조언행위
  3. 질병 확인을 위한 문진·검사·처치 등을 행하고 의료기관에 의뢰하는 행위
3을 규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여겨지지만, 1과 2는 조금 더 자유롭게 금지를 풀어도 되지 않을까? 1과 2는 DTC 유전자검사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논리와 매우 닮았다. DTC 유전자검사의 제한은 겉으로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취지를 철저히 지키는 규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료계의 강력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 이 가이드라인 전체에서 '윤리'라는 낱말은 딱 3회 등장하는데, 전부 생명윤리법을 일컫는 것이었다.

다음은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 및 사례집(2차)」의 13쪽을 인용한 것이다.



예시를 보고 나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머리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 창의력을 발휘하여 어렵사리 사업 아이디어를 만든 다음 '의료행위 여부 유권해석 신청서'라는 것을 작성하여 이 행위가 법을 저촉할 가능성이 있는지 검토를 거쳐야 범법자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사업하기 참 어려운 현실이 아닌가? 허용이 되는 행위인지 혹은 불법인지를 일일이 문의해서 해야 하니 말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사견에 불과하다... 그리고 현행 DTC 유전자검사 역량 인증 제도에 대해서도 불만을 많이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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