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30일 화요일

국정원은 왜 리브레오피스(LibreOffice)의 다운로드 사이트를 차단하는 것일까?

업무용 PC에 리브레오피스를 설치하려고 다운로드 사이트를 클릭했더니 국가정보원 권고사항에 따라 이용하지 못한다는 차단 메시지가 뜬다.



아마도 IP 주소로 파악한 서버의 위치가 불온한(?) 곳에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휴대폰으로 다운로드 사이트에 접속해서 설치용 파일을 내려받은 뒤, 업무용 이메일로 보내서 무사히 설치를 마쳤다. 

PC의 전원을 내리면 모든 오피스 파일, pdf 및 zip 파일 등을 삭제하는 신비한(?) 업무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공식적인 문서를 작성하여 내부적으로만 공유하도록 만들어진 업무망 PC에서는 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으니, 자료 수집이 가능한 외부망 PC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아이디어를 정리하여 삭제되지 않는 '불멸의 파일'로 남겨야만 했다.

자동 파일 삭제 시스템은 파일의 확장자를 이용하여 지울 파일을 결정하도록 되어 있어서, 그렇게 지능적이지는 않다. 리브레오피스에서 사용하는 OpenDocument(.odt) 파일이나 단순 .txt 파일 및 이미지 파일은 지워지지 않고 남는다. 이렇게라도 되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 

'소트프 해킹'이라는 말을 독서 중에 접한 일이 있다.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금지된 행위로 볼 수도 있지만, 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아주 약간의 위반(?)을 하는 것을 말한다. 책임은 물론 본인이 져야 할 것이다. 외부망 PC에 리브레오피스를 설치하는 것은 소프트 해킹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요청을 하면 상용 오피스 소프트웨어를 외부망 PC에 설치하도록 허용해 주니까 말이다.

리브레오피스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소박하다. 약간 불편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모든 오피스 프로그램은 반드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을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림을 다루려면 GIMP나 Inkscape와 같은 좋은 공개 소프트웨어를 쓰면 된다.

모든 메뉴가 글씨만으로 되어 있어서 약간은 불편하지만...


2022년 8월 29일 월요일

KRIBBuntu-focal_2207 제작 완료 및 공개

2022년 8월이 다 지나가는데 버전 2207이라니 부끄럽기만 하다. 7월에 만든 배포(distro)에 사소한 문제가 있어서 이를 어제 수정하였고, export와 import를 거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다음, 구글 드라이브에 올려서 공개형태로 전환하였다(xz 포맷으로 압축한 KRIBBubtu-focal_2207의 구글 드라이브 링크). 제작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다음의 위키 페이지에 나온다.

KRIBBuntu-focal_2205 distro 제작 및 재설치 과정 

위키 페이지 타이틀은 버전 2205(a)에 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버전 2207를 만드는 과정이 포함되었다. KRIBBuntu-focal_2207에서 실행할 수 있는 미생물 유전체 분석 명령어 모음은 여기(엑셀 파일)에 있다. 파일 이름이 percent encoding 상태라서 보기에 좋지 않다. 엑셀 파일의 원래 이름은 '실습용_명령어_모음_220726_.xlsx'이다. 도쿠위키(DokuWiki)에서 한글로 표시된 URL 또는 파일명을 의도한 대로 표시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런지... 위키 엔진의 문제인지 혹은 접속에 사용하는 웹브라우저의 설정 문제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정작 KRIBBuntu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KRIBBuntu란, Linux용 Windows 하위 시스템(Windows Subsystem for Linux, 줄여서 WSL이라 부름)에서 돌아가도록 만든 우분투 기반의 배포이다. 'focal'이란 Focal Fossa, 즉 우분투 20.04LTS를 기반으로 했음을 의미한다. KRIBBuntu를 만든 목적은 올해 세 차례 진행했던 미생물 유전체 분석 실습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데스크탑이나 노트북 컴퓨터에 부담 없이 설치하여 NGS read(short, long, short + long hybrid)의 조립과 평가, 조립물에서 추출한 16S rRNA 염기서열에 대한 분석, ANI 분석 등을 실시하는 것이 목표였고, 명령어 모음에서는 꽤 수준 높은(?) Bash shell script 작성 기법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Conda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버전 2207에서는 mamba도 조금씩 사용하였다. Dependency를 면밀하게 검토하여 conda package를 빠르게 설치하는 데에는 conda보다 mamba가 월등한 것 같다. 버전 2207을 만들 때에는 sudo 명령어를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리눅스 서버를 오직 일반 사용자 권한으로만 써야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KRIBBuntu-focal_2207을 WSL에 설치하는 설명(별로 친절하지는 않음, 죄송...)을 잘 참조한다면, 본격적인 리눅스 서버에 미생물 유전체 분석용 응용 프로그램을 설치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버전 2207은 최근 구입한 ThinkPad E14 G3(AMD Ryzen 7 Mobile 5700U, 16GB memory, Windows 11)에서 테스트를 완료하였다. 버전 2205에는 포함하지 않았던 canu assembler와 prokka를 넣었다는 것도 크게 달라진 점이다. 단, canu를 돌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WSL용 메모리도 넉넉하게 확보해야 한다. 아마 기본 설정은 시스템에 설치된 물리적 메모리의 50%일 것이다.

버전 2207에 각종 응용 프로그램을 설치하면서 극복해야 할 문제가 상당히 많았었다. 이를 위키 문서에 상세하게 소개한다면 직접 프로그램을 개별적으로 설치해 보려는 사람들(WSL이 되었든 진짜 리눅스 데스크탑이 되었든)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계속 게으름을 발휘한다면 문서 업데이트에 너무 몰두하지 말고 그저 xz 압축 파일을 가져다가 활용하라고 유도하게 될 것이다.

2022년 8월 27일 토요일

ThinkPad E14에 Windows 11을 설치하다

정확히 일주일 전에 용산 전자랜드에서 구입했던 씽크패드 E14 Gen3의 운영체제를 Windows 10에서 11로 업그레이드하였다. 업무용으로 쓰던 다른 컴퓨터에서는 설치 과정을 끈기 있게 기다리지 못해서 늘 중간에 그만 두고는 하였다.

내 능력도 이렇게 쉽게 업데이트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드디어 첫 화면을 만나다.

업그레이드 후 특별히 부작용이 생긴 것은 없는지 둘러보았다. 일반적으로 상위 버전의 운영체제는 더 좋은 하드웨어를 요구하니, 작동이 더 느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특별한 문제점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설치된 일부 앱의 호환성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WSL에서 실행하는 우분투는 아직 괜찮았다.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는 크게 달리진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작업 표시줄이 조금 더 산뜻하게 바뀐 것을 제외한다면. 다른 운영체제에서 종종 보던 스타일인데 결국 좋은 것은 서로 조금씩 모방하면서 비슷해지기도 하고, 또는 더 나아지기도 할 것이다.

복수의 OneDrive 계정에 대한 로그인 상태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것은 편리하다.



불필요한 앱이 자동적으로 깔린다거나, 은근히 Edge의 사용을 강요하는 등의 사소한 불편함이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최신 운영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드웨어 사양이 열악하지만 않다면.

파견 근무지에 가져갈 컴퓨터(노트북 및 우분투가 설치된 데스크탑)는 전부 AMD Ryzen이 장착된 것이다. 이것 역시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이다.

짐 꾸리기 -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인가

내 가방은 얼마나 큰가? 무조건 많은 물건을 담을 수만 있다면 좋은 것인가? 너무 크면 들고 이동하기가 어렵다. 가방의 크기는 유한하므로, 무엇을 담고 무엇을 두고 가야 할지 신중하게 결정해야만 한다. 

여행이란, 일상 생활을 편리함을 목적지에서 그대로 재현하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물건을 하나 가득 싸서 가져가게 되면, 여행지에서는 한 번도 꺼내지도 못하다가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짐을 정리하면서 재발견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1년 동안의 파견 근무를 위해서 얼마나 짐을 꾸려야 하나? 지난 7월에는 가져가야 할 연구용 데이터를 저장 매체에 옮기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가장 마지막에 만든 Mozilla Firebird(이메일 애플리케이션)의 프로필 백업은 너무 커서 노트북 컴퓨터로 옮긴 뒤 압축 해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거 약 10년 동안의 이메일 기록을 파견지에 가져갈 필요가 있는 것일까? 파견 근무에서 할 일은 내가 하던 연구와 100% 일치하지는 않는다. 연구의 연속성을 위해서 퇴근 후 이따금 일을 처리할 필요는 있다. 그렇다고 하여 이메일 백업까지 다 가져가서 펼칠 필요가 있을까? 

거창하게도 데스크탑 서버를 공식 반출 신청하여 가져갈 계획을 갖고 있다. 이것은 정말 최소한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따금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취미와 관련한 물건을 얼마나 가져가야 하는지 또한 아직 확실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음악을 듣기 위해 사무실 책상에서 쓰던 스피커셋과 초소형 class D 앰프를 가져갈 예정이지만, 왠지 진공관 싱글 앰프도 하나 가져가고 싶다. 홈 레코딩을 하겠다고 장만한 마이크로폰, 스탠드, 믹싱 콘솔을 어떻게 할 것인가? MIDI 키보드는? 동영상 강의를 녹화하려면 이 중에서 일부는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그러나 가을이 지나기 전에 강의를 만들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가 어렵다.

여유보다는 효율을 따져야 한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짐을 효율적으로 싸서 가져갔을 때 마음에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가져간 물건만큼 이를 이용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홀가분하게 벗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현재의 내 생활을 다 펼쳐서 재현하려 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얻어서 다른 측면에서 내 생활을 새롭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더 낫다.

뭐든지 많을 수록 좋다, 질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빅데이터 시대에 어울리는 이 이야기는 저장 매체(즉 가방)의 가격과 용량이 계속 개선됨을 떨어짐을 전제로 한다. 내 가방(물리적 가방과 마음의 가방 전부)의 크기는 유한하다. 넣지 못한 물건을 아쉬워하지 말도록 하자. 

마음의 가방에 '과거'를 채워서 여행지에 오지 말라. 새로운 곳에서 만난 새로운 것으로 여행 자체를 즐기고, 그것으로 가방을 채워 돌아가자.

퇴근길에 만난 돈화문

금일 영업 종료!






2022년 8월 25일 목요일

개인정보의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국내법인 개인정보 보호법에서 정의한 '개인정보'는 개인과 관련한 정보인가, 혹은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인가? 후자, 즉 개인식별정보에 가깝다는 것이 중론이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2조1항("개인정보"란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를 말한다)에 딸린 문구(목)를 살펴보자. 

  • 가.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하여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
  • 나. 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정보. 이 경우 쉽게 결합할 수 있는지 여부는 다른 정보의 입수 가능성 등 개인을 알아보는 데 소요되는 시간, 비용, 기술 등을 합리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 다. 가목 또는 나목을 제1호의2에 따라 가명처리함으로써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기 위한 추가 정보의 사용·결합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정보(이하 "가명정보"라 한다)

나는 여기에서 가목의 설명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폭력행위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다고 가정해 보자.

작대기, 몽둥이 등을 통하여 사람을 때리는 행위

전혀 어색함이 없다. 그러면 이것을 다음과 같이 비틀어 보자.

작대기, 몽둥이 등을 통하여 사람을 때리는 도구

좀 이상하지 않은가? 같은 구조를 이용하여 '필기도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고 생각해 보자. 역시 어색하다.

연필, 펜 등을 통하여 글씨를 쓰는 도구

다시 한 번 개인정보의 정의 가목을 살펴보자.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하여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

굵게 표시한 낱말은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과 같이 이를 통하여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라고 하는 것이 어법상 맞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법 조문을 만든 원래의 뜻이 훼손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통하여'를 그대로 두려면, 맨 끝에서는 동작이나 상태를 뜻하는 말로 끝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는 '정보'를 설명하는 말로는 적당하지 않다. 

개인정보의 정의가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지적하는 바다. 특별히 나는 제2조1항 가목이 비문(非文: 비문법적인 문장)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학술적 목적이든 산업적 목적이든 개인정보를 활용하려면 정보주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비식별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뒤에서 설명). 그런데 비식별화가 완벽하면 정보로서 쓸모가 없어진다. 출처는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이런 글이 있다. 눈을 가리면 공정해질 것이라고 믿는가? 글쎄다... 객관적으로 공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조치를 취하면 공정해 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 중요한 현실이다.

De-indentification leads to information loss which may limit the usefulness of the resulting health information.

비식별, 재식별, 익명화 등의 용어가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는 것도 개인정보 보호법이 갖는 큰 문제이다. 최근 카카오헬스케어로 자리를 옮긴 신수용 교수의 글(블로그)을 조금만 찾아 읽어 보면 이것과 관련한 제반 문제를 줄줄이 파악할 수 있다. 좀 시간이 지났지만 2018년에 BioINpro에 발표한 보건의료 데이터 비식별화: 문제점과 대안부터 읽어 보는 것도 좋다. 이 글이 나온 것은 데이터3법이 정식으로 시행(2020년 8월) 전이므로, 개인정보 보호법 내에서는 가명처리에 관한 정의가 포함되기 전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현행 개인정보 보호법 제2조1의2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단. 비식별화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는다.

"가명처리"란 개인정보의 일부를 삭제하거나 일부 또는 전부를 대체하는 등의 방법으로 추가 정보의 사용·결합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비식별화(de-identification)는 식별 가능한 정보를 제거한다는 일반적인 용어이다. 비식별화는 암호화와 다르다. 암호화는 데이터가 사고로 유출되었을 때 이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고, 비식별화는 데이터를 공개해서 활용할 때 해당 정보에 포함된 데이터가 식별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이다(신수용, 정보과학회지 2017년 2월호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헬스케어 데이터 익명화" 중에서). 비식별화의 구체적인 방법에는 pseudonymization(가명화: 복원 가능)과 anonymization(익명화: 복원 불가)이 있는데, 국문으로는 종종 비식별화와 익명화를 혼용하는 경향이 있다. 정확히 따진다면 (익명화)  (비식별화)이다. 생명과학자의 행동 반경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생명윤리법에는 '가명처리'에 대한 내용은 없고, 제2조19항에 익명화에 대한 정의만 나온다.

“익명화”(匿名化)란 개인식별정보를 영구적으로 삭제하거나, 개인식별정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당 기관의 고유식별기호로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가명정보 처리 가이드라인」(2020.9.) <참고 1>에는 개인정보의 가명·익명 처리 기술 종류를 나열하였으니 학문적으로 관심이 있다면 어떤 방법이 있는지 훑어볼 일이다.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2021.1., 일부 개정안에 대한 의견 조회가 끝났음 - 링크)에서는 가명처리의 개념을 비로소 실어 놓았고, <붙임 1>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에 따른 다음과 같은 생명윤리법 유권해석을 내어 놓았다.

개정 개인정보 보호법의 '가명처리'는 생명윤리법의 '익명화'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함.

아하... 그렇게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유전체 정보는 본인 동의 및 극히 적은 예외 사항을 제외하면 가명처리를 하지 못하게 유보하였단 말이다. 데이터3법의 개정 취지가 생명윤리법이라는 벽을 뚫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는 의료법의 벽을 뚫지 못한다.

개인정보 보호법과 생명윤리법이 복잡하게 얽힌 틈바구니에서 연구자 또는 사업자를 어렵게 하는 상황이 싹튼다. 유전체 정보에 민감한 생명과학자로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파고들어 보고 싶다.

미국 NHIGRI(National Human Genome Research Institute)의 Privacy in Genomics도 처음 공부하면서 읽기에 좋은 자료이다. 개정 커먼룰(Common Rule)의 유전체 시퀀싱 및 인체유래물에 관한 정책 변경 사항도 읽어보기 시작하였다. 정작 내가 커먼룰이 무엇인지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 유럽의 개인정보 보호법에 해당하는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도 그렇구나...

2022년 8월 30일, 9월 8일, 9월 19일 업데이트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제23조에서 '민감정보'를 언급하고 있다. 민감정보란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등에 관한 정보, 그 밖에 정보주체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정보라 하였다. 유전자검사 등의 결과로 얻어진 유전정보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정의한 민감정보(즉 개인정보의 일부)는 동법 제2조1항의 개인정보 정의 목록 3가지(가, 나, 다)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 잘 파악이 되지 않는다. 

여기까지 글을 쓴 다음 관련 자료를 더 찾아서 읽어 보았다.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법 조문에 나타나는 '개인정보'의 해석을 아주 주의해서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동법 2조에 나오는 개인정보의 정의가 가장 중요하다. 23조에 나오는 민감정보의 설명에서는 '이러이러한 개인정보'라 하였는데, 여기서의 개인정보는 2조의 개인정보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개인정보, 즉 개인과 관련된 정보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민감정보와 더불어 '개인식별정보' 역시 동법 제24조에서 별도로 정의하고 있다. 

나의 의문을 다시 정리해 보겠다. 민감정보와 개인식별정보는 매우 중요하므로 어떤 정보가 여기에 포함되는지, 그리고 처리에는 어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별도의 조문(시행령 포함)에서 정의하였다. 그런데 민감정보와 개인식별정보는 동법 제2조제1호에서 가-다목으로 나열한 개인정보의 정의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가? 그런 것과 상관이 없나? 누가 좀 속 시원하게 답변을 해 주면 좋겠다.

9월 16일 코엑스에서 열린 <디지털 헬스케어 연합포럼 2022>에서 주제발표자로 참석한 곽환희 변호사(법무법인 오른하늘)에게 이메일로 이 궁금증을 문의해 보았다. 제4회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페스티벌 2022 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던 이 행상에서 곽 변호사는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법 규제와 입법 진행 상황>을 주제로 발표를 하였었다. 유익한 행사를 책상에 앉아서 유튜브로 편안하게 볼 수도 있지만, 현장에 직접 가게 되면 발표자 등 주요 인사와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은 일이다. 이메일로 받은 답변을 허락을 얻은 뒤 여기에 공개해 본다.

곽 변호사님, 고맙습니다^^ 

  1. 민감정보의 경우 같은 법 제23조 제1항에서 이에 대해 열거하고 있고, 같은 법 시행령 제18조 각 호에서 추가로 정보주체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민감정보의 경우 그 자체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건강, 범죄경력자료 등)가 있기도 하지만, 다른 정보와 결합하여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사상, 신념, 정치적 견해 등)도 있기 때문에 같은 법 제2조 제1호 가목과 나목이 혼재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2. 개인식별정보의 경우 같은 법 시행령 제19조에서 개인식별정보에 대해서 열거하고 있고, 주민등록번호, 여권번호, 면허번호, 외국인등록번호가 이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그 자체만으로 개인을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법 제1조 제1호 가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10일 후생신보의 2022 신년특집 4차 산업혁명시대 '디지털 헬스의 새로운 시작'에도 곽 변호사의 기고문 <3. 보건·의료데이터의 활용과 법적제한>이 실렸기에 여기에 그 URL을 소개하도록 한다. 6개 글 전부를 숙독하여도 좋을 것이다.

2022년 8월 23일 화요일

이마빌딩으로 출근하기

세종대로 근처를 거닐다 보면, 미국 대사관 뒤로 갈색 타일을 두른 15층 건물이 눈에 뜨인다.  꼭대기에 붙은 이름은 '利馬'. 이마? 말을 이롭게 한다? 처음에는 말 산업 또는 한국마사회와 관련한 빌딩일 것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아마 나와 같은 오해를 한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출처: 서울경제


이마빌딩은 이마산업이 30년째 관리해 오고 있는 오피스 전용 건물로서 삼봉 정도전의 집터였다고 한다. 당연히 한국마사회와는 관련이 없다. 2017년 서울경제에 실렸던 기사(건축과 도시)를 보면, 이마빌딩은 풍수지리적으로 최고명당의 위치에 자리잡은 건물로서 많은 입주사가 크게 번창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말 산업과는 무관하지만, 이 기사에 따르면 조선시대 왕실 전용 마굿간, 서울시경 기마대 등이 위치하여 말과 연관이 깊은 것은 사실이다.

서울을 떠나 대전에 정착한 지 어언 35년,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이마빌딩에 자리잡은 사무 공간에서 일을 하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숙소로 마련한 오피스텔에 입주할 날짜가 아직 되지 않아서 며칠 동안은 운니동에 있는 허름한 모텔에서 묵고 있는데, 돈화문 보며 걷기 시작하여 운현궁을 옆에 두고 걷다가 멀리 경복궁과 동십자각을 바라보며 끝나가는 출근길의 정취가 너무나 좋다. 9월 1일이 되어 오피스텔로 입주하게 되면 정반대 방향에서 현대적인 건물 사이를 누비면서 이마빌딩으로 출근하게 될 것이다.

근무 첫날은 전산 시스템을 익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보안에서 비교적 자유로운(지메일이나 구글 드라이브를 접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지만)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일을 하다가 업무망과 인터넷망이 완전히 분리된 정부 전산 시스템의 개념이 잘 잡히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안정성'과 '보안'을 최대화하기 위한 정부의 전산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수고가 눈에 보이는 듯하였다. 사람은 하나인데 왜 이메일 주소는 세 개나 되는 것인지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지만.

혼자 쓰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칸막이로 나뉜 공용 사무실을 쓰는 것도 매우 새롭다. 이 분위기에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 8월 1일 전에는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서 정보를 나누고 토론을 하는 모습이 직장 대부분의 일하는 모습일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서 일할 공간을 마련하느라 지원국 사람들(소위 '늘공', 비하를 하는 낱말이 아니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오해가 없으시길)은 무척 많은 수고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은 아직 어리둥절함을 떨쳐버리지 못한 상황에서 뭔가 지원이 부족함을 느끼기 쉽다. 전산 시스템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다들 애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옆자리와 등 뒤에 앉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고 또 주기도 한다. 

Pseudo-'어공'이 되었으니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조심스럽다. 진짜 공무원처럼 블로그나 유튜브 운영을 위해 사전에 허가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업무와 관련된 설익은 정보를 부지불식간에 유출하면 안 될 것이다. 아마도 볼거리가 가득한 출퇴근길의 분위기를 기록하는 수준에서 그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마빌딩 1층 로비에 위치한 말 조형물. 머리 모양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크고 긴 꼬리 때문에 다람쥐로 착각할 수도...

이마빌딩 지하를 흐르는 샘물.





2022년 8월 21일 일요일

ThinkPad의 매력을 찾아보자



매력은 성능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씽크패드를 처음 쓰는 나에게 다가오는 매력은 바로 '빨간 점'이다. 터치패드에 워낙 익숙해 있어서 트랙포인트를 꼭 수고스럽게 익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연히 작동 중일 때 커버 뒷면을 살펴보았을 때 영문 i자의 점이 빨갛게 빛나는 것을 보고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트랙 포인트, 무선 마우스의 휠 모두 검정 바탕의 빨간색으로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애플 모바일 기기는 성능과 디자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서 유독 높은 고객 충성도를 보이고 있지 않던가? '내가 이 IT 기기를 씀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화되고, 한 단계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는 것, 이것이 정말 중요한 포인트이다. 고객의 마음을 이러한 측면에서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가격이 경쟁품에 비해 월등히 높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객관적인 성능이 경쟁품보다 낮아도 상관이 없을 수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가? 내 나이와 성별을 생각해 보면 매력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지만,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용산 전자랜드에서 레노버 ThinkPad E14 Gen3 노트북 컴퓨터를 구입하다

Dell XPS 13 9310 노트북 컴퓨터의 화면 상태(이전 글 링크)가 완전히 이상해져서 사용이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파견 근무지에서 틈틈이 원 소속기관의 고유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공식 반출 허가까지 받았는데 화면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정말 난감하였다. 1년의 무상 보증 기간도 끝났고, 파견 중에는 장비의 수리 비용을 처리하기도 마뜩잖다.

"에라, 기왕 이렇게 된 거, 내 돈을 주고 개인용 노트북 컴퓨터를 구입하자!"

컴퓨터를 고르는 것은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럽다. 업무용 컴퓨터를 구입할 때에는 대략적인 사양과 예산을 정해 둔 다음 납품업자와 시간을 두고 상담하면서 확정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지만, 개인적으로 쓰기 위해 구입하려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노트북 컴퓨터라면 성능, 휴대성, 안정성, 사후 서비스 편의성 등 고려할 것이 매우 많다.

몇 시간의 고통스러운(?) 검색과 조사를 거친 뒤, 가격 대 성능비가 좋은 AMD Ryzen 프로세서를 장착한 제품을 고르기로 했다. 레노버의 것이 가장 적당해 보였는데, 다음으로는 이를 어디에서 구입하느냐의 문제가 남았다. 가장 싸게 사려면 온라인 매장에서 구입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정식 파견 근무가 시작되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월말까지는 머물 장소가 확정되지 않아서 물건을 택배로 받아보기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과감히 온라인 매장을 택하기로 했다. 검색을 하니 용산 전자랜드에 레노버 전시장(페이스북 링크)이 있다고 하여 가 보기로 하였다. 토요일(2022년 8월 20일) 낮에 마침 서울에서 있었던 결혼식에 참석했던 터라 전자랜드를 방문하기가 수월하였다.

선택의 기준은 단순하였다.

  • AMD RYZEN 장착
  • Windows가 이미 설치된 것
  • 메모리는 되도록 16GB
  • 100만원 미만

13형은 너무 작고, 15형은 갖고 다니기에는 꽤 크고 무거워서 최종적으로 14형을 택하기로 하였다. 오프라인 매장의 장점은 조작성, 크기, 무게 등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비록 가장 싼 가격에 살 수는 없다 하여도. 최종적으로 고른 것은 ThinkPad E14 Gen3-20Y7006PKR(AMD Ryzen 7 5700U with Radeon Graphics 1.80GHz)으로 메모리와 SSD가 각각 16GB와 512GB로 업그레이드된 상태였다. 운영체제는 Windows 10 Pro였다. 다나와 최저가격(링크)과 비교하면 좋은 가격으로 구입한 것 같다.

어제 고민하고 오늘 사기! 너무 급하게 산 것은 아니었겠지?


바이오스 업데이트 중.


마감, 조작성, 속도, 크기, 무게, 발열 정도 모두 마음에 든다. 불편한 점을 찾으라면 키보드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정도? 휴대성이 아무리 좋아도 화면이 답답한 13인치를 고르는 것은 별로 현명하지 못함을 깨달았다. 특히 내가 쓰던 Dell XPS 13에는 본체에 USB-C 포트밖에 없어서 외장 HDD나 USB 메모리를 꽂으려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씽크패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트랙포인트(소위 '빨콩')과 디자인적 일체감을 보이는 무선 마우스 역시 매력 포인트. 배터리 용량은 아직 잘 모르겠다.

변화하는 용산전자상가 일대.


OneDrive 생태계에는 아직 익숙하지 못하다. 바탕화면도 OneDrive의 것인 상태에서는 터미널 앱에서 $env:USERPROFILE\Desktop을 써서 바탕화면의 파일을 접근하기가 어렵다. 이 문제는 좀 더 알아봐야 되겠다. 검색을 해 보니 친절한 설명이 있어서 이를 참조하기로 하였다.

바탕화면은 시스템의 기본값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단, 로컬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원드라이브를 통한 복구를 하지 못하게 되므로, 바탕화면에 중요한 파일을 하나 가득 늘어놓는 일은 하지 말자.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컴퓨터를 구입했지만 전혀 후회스럽지 않다. 생활과 업무에 새로운 활력이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2022년 8월 19일 금요일

권선기 DIY - 두 종류의 볼트(M10 & M6)를 연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권선기의 핵심 요소인 회전부(전동 드릴 활용)의 속도 조절 문제를 해결했으니 드릴을 고정할 방법만 찾으면 된다. 어제 퇴근을 하고 보니 쿠팡에서 주문한 전동드릴 거치대 + 그라인더날 고정 어댑터 세트(숏타입)가 배송되어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서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라인더날 고정 어댑터가 과연 권선기의 축으로 쓰일 전산볼트(M6)에 연결이 가능한 상태인지가 몹시 궁금하였다.


가장 앞부분에 보이는 구멍 4개 뚫린 부속은 가공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중앙 구멍에 나사산이 가공된 일종의 너트인데, 축과 수직을 이루지 못한다. 가격이 워낙 저렴하니 참아야 한다!

드릴 고정부는 매우 튼튼하였다. 거치대 전체를 적당한 판에 고정하면 드릴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드릴 척에 물린 어댑터의 반대편에는 M10 규격의 수나사가 가공된 상태이다. 여기에 M6 전산볼트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8 mm와 6 mm 축을 서로 연결하는 커플링은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10 mm와 6 mm를 이어주는 물건을 찾기는 쉽지 않다. 전면부의 베어링을 통째로 뺄 수 있다면 전산볼트를 드릴 척에 직접 물리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베어링을 뺄 수 있을까?



어댑터는 겨우 분리했지만 베어링을 뽑아낼 길이 없다. 축 고정링(한쪽이 열린 고리 모양의 것)을 전용 공구 없이 겨우 비틀어서 어댑터를 분리하였다. 내경 12 mm의 베어링이 노출된 것은 좋은데, 여기에 M6 전산볼트를 지지하게 만들 수는 없다. 물론 로드엔드 베어링이 있으니 이를 외부에 고정하여 전산볼트를 지지하면 되지만...

저 베어링을 어떻게 해서든 뽑아낸다면, 내경 6 mm 베어링을 구해다가 끼워 넣으면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베어링을 분리할 방법이 없다. 베어링 고정링을 힘겹게 뽑았지만 베어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드라이버로 가장자리를 톡톡 쳐 보았지만 도대체 어떻게 고정이 되어 있는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축에 고정된 베어링을 분리할 때에는 전용 공구를 쓰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 하우징에 박혀 있는 것은 어떻게 뽑아낼 것인가? 이것 역시 공구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다음 동영상의 1분부터 보면 '내경 풀러'라는 것을 쓰면 된다고 한다.


베어링을 넣고 빼는 데에는 베어링보다 훨씬 비싼 공구를 써야 한다는 것(그렇지 않으면 베어링이나 하우징이 다 망가질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농기계나 모터사이클을 수리할 것이 아니라면 이것 하나 빼자고 베어링 관련 공구를 구입할 수도 없다. 그러니 전동드릴 거치대에 이미 결합된 상태의 내경 12 mm 베어링은 뽑아낼 생각을 아예 하지 말아야 되겠다.

이 베어링을 그대로 둔 채로 권선기를 최종 조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해 보자. 일단은 3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고민을 시작하였다.

  1. 전산볼트(M6)를 내경 12 mm 베어링에 전혀 고정하지 않은 상태로 관통시키고, 외부에서 별도의 지지용 기구를 만들어 붙인다. 수동 권선기 시절에 쓰던 로드엔드 베어링을 재활용하면 된다.
  2. 전산볼트에 무엇이든 끼워서 외경이 12 mm가 되게 만든다. M5용 와셔 중에 외경이 12 mm인 것은 구하기 쉬운데, 내경이 5.3 mm이므로 넓혀야 한다. 생활 주변에서 이런 물건을 과연 찾을 수가 있을런지?
  3. 그라인더날 어댑터(M10 볼트)를 원래대로 끼워 넣은 뒤, 여기에 무슨 부품이든지 이어 붙여서 전산볼트에 회전력을 전달할 수 있게 만든다. 커플링 기성 제품 중에서 찾을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M10과 M6 볼트를 연결하는 가장 적당한 방법은?

Flange coupling이라면 연결하려는 두 축의 직경에 다소 차이가 있어도 수용 가능하다. 기왕이면 내부에 나사산이 가공되어 있으면 볼트를 연결하기에 적당할 것이다. "threaded flange coupling"으로 검색을 하니 내가 찾는 물건이 나왔다. 그냥 flange coupling으로 검색하면 유체를 수송하는 관을 연결하는 커플링이 상위 결과에 나올 것이다.

M6/M8/M10/M12mm Thread Hole Iron Rigid Flange Coupling Motor Guide Shaft Coupler Motor Connector, 알리익스프레스 링크

국문으로 달린 설명은 "M6/M8/M10/M12mm 나사 구멍 철 단단한 플랜지 커플 링 모터 가이드 샤프트 커플러, 모터 커넥터"이다. M10과 M6용을 각각 하나 씩 구입하여 M5 볼트 3개로 서로 연결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M6용 플랜지 커플링의 축 고정부 외경이 12 mm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M6용 커플링을 하나만 구입해서 전산볼트에 돌려서 끼워 넣은 뒤(앞뒤는 볼트로 막아서 회전하지 않게 만들고), 이를 베어링에 살짝 삽입하면 되지 않을까? 플랜지 커플링은 중심이 일치하지 않으면 좋지 않으니, 커플링을 하나만 사용하여 베어링에 끼워넣는 방식으로 적용하면 가장 간단하게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무거운 그라인더날 어댑터를 쓰지 않게 되므로 동력 손실도 줄어들 것이다. 플랜지 커플링의 축 고정 부분에 해당하는 17 mm 높이가 베어링에 끼워 넣기에 적당한지 확인하면 된다. 조사와 고민을 거듭한 결과 좋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나는 M6 규격의 볼트를 매우 좋아한다. 특히 육각 렌치로 머리를 돌려서 조이는 검정색 볼트에 특별히 애정이 많다. 그 이유는 아마도 optical breadboard에 부품을 올려 뭔가를 만들던 약 24년 전의 추억 때문이다. 이 작업에서는 M6 렌치볼트를 무척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M6 전산볼트도 친근함이 느껴진다. 당시 물건을 많이 구입했던 (주)OMA는 현재 우리집 가까운 곳에 사옥을 올려서 입주해 있다. 한국전광, 광자동화, Hamamatsu Photonics...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회사명이다.

뭔가 만들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리는 이 증세는 아마 평생토록 고치지 못할 것이다.

[업데이트] 6 mm x 10 mm 커플링 찾기

플렉시블 커플링 단일 제품으로서 직경 6 mm와 10 mm 축을 연결하는 것이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지만 그것은 오해였다. 예를 들어 알리익스프레스의 링크(CNC 플렉시블 커플링 샤프트 커플러 스테퍼 모터 커넥터, D25 L30 Jaw 알루미늄 합금)를 하나 소개한다.

2022년 8월 18일 목요일

조광기를 이용한 AC 220V 직결형 전동 드릴의 속도 조절에 성공하다

원래는 백열등의 밝기를 조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광기를 AC 모터의 속도 제어에 사용해도 된다는 글을 보고 자신을 얻어서 쿠팡에서 1000W급 조광기를 하나 구입하였다. 좋은 사례는 조광기 및 모터 속도제어를 비롯하여 글과 동영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임시로 확인만 할 것이라서 대충 배선을 한 다음 안전을 위해 절연 장갑을 끼고서 전동 드릴을 조절해 보았다. 방아쇠를 끝까지 당긴 뒤 고정핀을 누른 다음, 220V에 연결한 조광기의 놉을 돌려 보았다. 전원 스위치가 포함된 제품이라 사용이 편리하다,


모터가 덜덜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놉을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이에 따라서 회전수도 증가하였다. 완벽하게 제어가 된다! 방아쇠에 기구를 부착하여 드릴의 회전수를 조절한다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발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DC 모터를 이용한 충전식 드릴은 조광기를 이용한 속도 제어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방아쇠를 누르는 깊이를 조절하는 것 말고는 회전수를 제어할 방법이 없다. 충전식 전동공구가 인기를 끄는 현실에서 단지 값이 싸고 단순하다는 이유로 AC 직결식 전동 드릴을 구입한 것이 이제 와서는 오히려 좋은 선택이 되었다.

진공관 앰프의 B전압(DC)을 상시 확인하기 위해 300V 이상까지 표시 가능한 LED 패널미터 몇 개를 구입한 일이 있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 되어 버렸다. 이때 한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으니, 그것은 바로 교류형을 구입하고 말았다는 것... 이것을 어디에 써야 할지 늘 고민을 했었는데, 바로 오늘 그 쓸모를 발견하였다. 조광기를 이용한 속도조절기에 삽입하여 출력 AC 전압을 표시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권선기에는 자석을 이용한 회전수 카운터가 들어갈 예정이니 큰 의미가 없지만, 납땜 인두의 온도 조절 용도라면 작동 전압을 표시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적당한 나무판을 구해서 부품들을 늘어놓고 고정하면 된다.

앗, 그런데 조광기를 통해서 나오는 교류의 파형은 일반적인 60Hz 사인파가 아니다. 교류 몇 볼트라고 측정된 값을 숫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무식이 드러났다...

출처: http://www.euchips.com/news/58680.html


조광기에 이어서 구입한 물건은 전동 드릴을 수평으로 고정하는 기구이다. 원래 그라인더 날이나 원형 톱날을 달아서 전동 드릴의 활용도를 높이도록 한 물건인데, 쿠팡을 뒤적거리다가 가격이 매우 저렴해서 드릴 고정용으로 활용해 보기로 하였다. 출력 트랜스 자작용 권선기를 꿈꾸면서 늘 구입을 검토하던 물건이었다. 퇴근 후 어떤 물건이 집에 와 있을지 몹시 기대가 된다.

2022년 8월 15일 월요일

자작 권선기를 만드는 올바른 방법을 찾아서...

다음 사진에 보인 수동 권선기는 2018년에 진공관 앰프용 출력트랜스의 코일을 직접 감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으로 싱글용 5K:8 출력 트랜스를 한 조 만들어서 그럭저럭 사용해 왔다. 의욕은 좋았으나 정렬 권선은 두 층을 넘기기 못하였고, 결국 1차측은 막감기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게다가 J-50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코어의 최적 1차 권선 수(1350회)를 채우지 못하여 남는 공간이 많아 모양새가 너무나 보기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다 풀어내고 정성스럽게 다시 선을 감은 다음 다시는 트랜스를 직접 감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였다.

이 다짐을 실행에 옮기려면 제대로 된 권선기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한 번만 더 감고 더 이상 권선 작업을 하지 않으려면, 권선기 자체를 만드는 작업에 최선을 기울이기는 어렵다. 되도록 있는 부속을 최대한 활용하고, 재활용 여부가 불투명한 부품을 사 모으는 일은 가급적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을 과연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완전 수동 권선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최소한 한 손은 손잡이를 잡고 축을 돌려야 하는데, 남은 한 손으로 에나멜선을 붙들고 고르게 정렬이 되도록 감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속도 조절이 가능한 가정용 전동 드릴(SKIL 6370, 550W, 0-3000 rpm, 충전식이 아니라 AC 220V에 직접 연결하는 전동 공구)를 쓰되 권총형 방아쇠를 누르는 깊이를 조절하여 속도를 저속으로 유지하여 두 손을 자유롭게 만들어 보고자 하였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했다. 그러나 실제로 볼트를 천천히 돌려서 방아쇠를 작동시키면, 볼트의 돌출 정도에 따라서 드릴 속도가 서서히 변하지를 않았다. 반응이 없다가 갑자가 '드르륵' 하면서 고속으로 작동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구멍을 뚫는 일반적인 전동 드릴의 용도에서는 이렇게 거친 수준으로 속도 조절을 해도 상관이 없지만, 코일 권선을 위해서는 더욱 미세한 조정이 필요하다. 손가락을 써서 아주 조심스럽게 방아쇠를 당겨도 부드럽게 회전속도가 바뀌도록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물리적으로 다른 기구를 중간에 넣어서 잘 작동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다른 방법으로 드릴의 회전 속도를 조절할 수는 없을까? AC에 직결하여 사용하는 모터 제품이니 전등 밝기 조절용 디머 스위치(조광기)를 쓰면 될 것도 같다. 이를 구입해 놓으면 납땜 인두의 온도 조절 용도로도 사용 가능할 것이다. 

구글 검색 결과


조광기 + 가정용 전동 모터(220V 직결용)의 조합에서 실패한다면, 소형 DC 모터를 쓰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러려면 속도 제어 + 커플링 문제 + 기어 부착 등 일이 점점 커진다. 전동 모터는 드릴 비트를 고정하는 척에 권선기 축을 직접 연결하면 되니 모든 일이 한결 수월하다. 단, 드릴 본체를 튼튼하게 고정할 방편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망가진 헤어 드라이어에서 적출한 소형 DC 모터가 하나 있다. 모델명은 RS-385S이고 DC 36V, 19000rpm으로 작동한다. 소형 모터 중에는 755라 불리는 것이 꽤 유명하다고 한다.  

교류 전원을 연결할 수 있도록 정류 다이오드가 연결되어 있다. 이 모터를 꺼낸 헤어 드라이어를 분해했던 기억으로는 히터가 직렬로 연결되어 있어서 모터에 공급할 전압을 정격 수준으로 낮추었던 것 같다. 내가 갖고 있는 전원 트랜스포머를 이용하여 AC 12V 또는 24V를 연결해도 잘 작동함을 확인하였다.

다음의 동영상은 DC 12V용 모터인 365/380/385/390을 비교한 것이다. 위에서 보인 RS-385S는 36V를 공급할 수 있도록 개선된 385 계열의 호환 모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마련해 놓은 모터는 축 지지부(베어링이 있는 모터인지는 모르겠다)가 손상되었는지 작동 소음은 대단하다. 이 모터를 어떻게 감속하여 권선기의 구동부로 사용할 것인가? 정렬 상태를 확인하면서 감으려면 빨라야 200~300 rpm을 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DC 모터 제어용 보드는 매우 쉽게 구할 수 있다. DC 입력은 집에 널린 스위칭 전원 공급 어댑터를 쓰면 된다.

출처:  쿠팡


그러나 1만 rpm을 훌쩍 넘겨 작동하는 모터에 속도 제어용 보드를 달아서 250 rpm 정도로 돌게 만들면 과연 토크가 제대로 나올까? 

정지 상태에서 회전수를 천천히 올리려면 제어 보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타이밍 벨트나 기어를 이용한 감속도 해야 될 것이다. 샤프트 직경 2.3mm짜리 소형 모터에 어떻게 이런 부속을 붙일 것인가?

3D 프린터용 타이밍 벨트-풀리 세트(3:1~4:1 정도 감속)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제품은 모터의 샤프트 직경을 자유롭게 택하기가 어렵다. 어댑터를 붙여서 2.3mm를 5 또는 6mm로 만들고, 여기에 풀리를 달고... 그러느니 차라리 'DC 기어드 모터'를 새로 사서 200~300 rpm을 얻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아래에 보인 기어드 모터는 12,000원 정도면 구입이 가능하다.

모델명: GM25B-2430(24V), 출처: motorbank


아두이노 키트에 포함된 소형 스테핑 모터 28BYJ-48을 쓸 생각도 잠깐 해 보았으나, 회전 속도가 너무 느리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30 rpm 정도가 최대라고 한다.

자작 정신을 최대한 발휘하고 싶다면, 기존에 사용하던 직경 200mm 회전 원판과 모터를 '벨트(피댓줄)'로 연결하여 20:1 정도의 감속비를 얻는 것이다.

회전축은 전산볼트를 절단한 것이다. 축을 지지하기 위해 구입한 로드 엔드 베어링은 애초에 잘못 선택한 물건이었다(2018년 글). 

벨트의 재료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 고무줄? 턴테이블용 벨트? 밴드 형태의 고무줄이 아니라면 끝은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가? 모터 축 및 원판의 가장자리에서 벨트가 이탈하지 않게 하려면 어떤 처리를 해야 하나?  구글에서 'belt pulley diy'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니 나무를 이용하여 V-belt 풀리를 만드는 동영상이 몇 개 나온다. 제목만 나열해 보겠다. 내가 쓸 원판은 별로 두껍질 않아서 홈을 만들기는 어려우니 다른 아이디어를 떠올려 봐야 한다.

  • Making big V-belt pulleys from plywood
  • How to make a belt for pulleys
  • Making a flat-belt pulley wheel from an old pipe

내 접근 방법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특히 소형 DC 모터를 쓰는 경우 속도 조절 보드와 감속장치를 같이 쓰는 것이 과연 맞는지... 이외에도 궁금한 점이 더 있다.

  • 3D 프린터 제작 시 사용하는 open type의 타이밍 벨트는 도대체 어떻게 연결(접착?)하나?
  • 소형 구름 베어링과 구동축은 도대체 어떻게 결합하나? 모르면 자료를 찾아보자. 한국NSK주식회사에서 배포하는 베어링 핸드북(기초편)이 있다. '헐거운 끼워 맞춤'이라는 용어가 있다!
  • 축이 액시얼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모든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3D 프린터를 한 번 만들어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하여 쓰지 않을 권선기 자작을 위한 조건으로는 너무 거창하다. 그리고 프린팅 재료의 유해성 문제가 불거진 이상 3D 프린팅을 집에서 해 보기는 싫다.

누가 또 알겠는가? '이번이 마지막 공작'은 언제나 거짓말이 되었으니 말이다

2022년 8월 13일 토요일

바쁜 8월...

글을 올리는 빈도가 현저히 낮아졌다는 것은 바쁘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동안은 한가해서 한 달에 13편 정도(목표는 12편 이상)의 글을 꾸준하게 작성했다는 말인가? 마치 태만하게 근무하는 것처럼 보이니 그렇게 말하기는 싫고, 단지 8월 들어서 마음의 여유가 줄어들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서류상으로는 나는 현재 다른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정부의 요청으로 1년 동안 그곳으로 가서 근무를 하도록 파견에 관한 인사발령은 이미 8월 1일에 받은 상태인데, 아직 사무실 공사가 끝나지 않아서 원 소속기관에 머무르면서 8월에 부여된 과제물을 처리하고 있다. 더욱 공식적으로는 8월 첫 3주는 재택 근무를 하라고 했지만, 집에서 성능이 떨어지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일을 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내가 맡은 과제를 완수하려면 원 소속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접촉해야 하기 때문에 편하게 사무실에 나와 있는 것이 낫다. 

대전의 집을 떠나 생활 근거지를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 파견 근무라서 신경 쓸 일이 많았다. 거처를 구하는 문제는 비교적 일찍 해결을 하여 지금은 입주만을 기다리고 있다.

외부 파견을 나간다 해도 내가 쓰던 사무실을 정리해서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거나, 혹은 출입이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휴직 처리 중이라면 사정이 달라졌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부 조직에서 일하게 되는지에 관해서 여기에 적는 것은 8월 말이 될 것이다. 업무 성격상 블로그에다가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을 한다고 적는 것은 부적절한 일임이 자명하다. 

이런 질문을 받았다.

"파견 나가신다면서요? 좋은 일인가요?"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출연연구소의 사무실 구석에서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던 나에게 더 큰 바깥 세상을 만나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하던 숙제나 마저 해야지... 토요일 오전, 도시락을 싸서 사무실에 나와 자료를 마무리하는 중에 글을 적었다. 매번 도시락을 챙겨주는 아내에게 감사를!

2022년 8월 8일 월요일

나의 Dell XPS 13 9310은 과연 정상인가?

Dell XPS 13 9310 노트북 컴퓨터(지원 정보 사이트)의 이상 작동 빈도가 과거보다 높아졌다. 꺼진 상태에서 덮개를 열면 정상적으로 부팅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화면 전체에 하양-빨강-초록-파랑의 원색이 번갈아 나타나다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덮개를 덮고 한참 뒤에 열거나, 혹은 전원 버튼을 누른 상태로 지속하면 반가운 Dell 로고와 함께 부팅이 된다. Dell Community 사이트에서 나와 비슷한 문제를 겪은 사람의 글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다시 찾지를 못하겠다. 휴대폰을 곁에 놓고 문제가 생긴 바로 그 현장을 동영상으로 녹화해 두면 좋으련만!

영문 Dell Community 사이트에서 검색을 다시 시도하여 이 현상을 영문 커뮤니티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출처: Dell 기술 자료 문서 문서번호 000188578


이것은 원래 LCD BIST(Built-In Self Test)를 할 때 나타나는 화면이라고 한다(링크). 화면의 문제가 비디오 카드의 문제인지, 혹은 LCD 패널(화면) 자체의 문제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진단용 화면이다. 정상적인 부팅 과정에서 LCD BIST 화면이 이따금 나타난다는 것은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Dell 기술자료문서 000188578에서는 POST 중 강제 종료 후 Inspiron, Vostro, Latitude 컴퓨터에서 LCS BIST가 자동으로 실행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소개하였다. 이는 인텔 ME(Management Engine)과 BIOS 통신 간의 타이밍 불일치로 인해 발생하며, BIOS 업데이트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별안간 LCD BIST 화면이 나타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노트북 컴퓨터 내부에서 LCD 패널과 비디오 카드를 연결하는 커넥터의 연결 상태가 불량할 때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글도 있었다. LCD BIST를 실시하려면 전원을 끈 뒤 어댑터가 연결된 상태에서 'D'키를 길게 누른다. 하지만 실제로 테스트를 해 보니 'D'와 전원 버튼을 동시에 눌러야만 LCD-BIST 화면이 시작되었다.

다른 문제도 가끔 일어나곤 했다. 전원을 완전히 껐는지. 혹은 절전 모드로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덮개를 닫은 뒤 가방에 넣어 두었는데 몇 시간이 지나서 꺼내어 보니 열이 펄펄 나고 팬까지 도는 상태였다. 아마도 자동으로 절전 상태로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았다.

작년 5월에 구입한 직후에도 가끔 이런 일이 벌어졌었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동안 노트북 컴퓨터를 쓰지 않다가 막상 출장길에 들고 가려고 아침에 덮개를 열면서 작업 파일을 확인하려 했더니 '화면 flashing 현상'과 함께 부팅이 되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Dell Complete Care 기간이 지나기 전에 점검을 받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서비스 태그가 어떻게 되는지 기록도 해 놓지 않을 정도로 무신경하게 사용했으니...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것보다는 데스크탑 PC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선호하는지라 뜻밖의 장애 상황에 대처하기가 어렵다.

본체 어딘가 서비스 태그가 새겨져 있지 않을까? Dell Inspiron 데스크탑 PC를 두 차례 구입하여 사용한 경험으로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니 본체 바닥면에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ST: 및 EX:). ST가 바로 서비스 태그를 의미하는 것이엤지... Dell 제품지원 사이트에 접속하여 서비스 태그를 입력해 보았다.

지원 서비스 만료일은 올해 6월 29일까지였다. 구입일이 2021년 5월 31일이라서 서비스 만료일도 이것에 맞추어 끝났을 것이라 생각하고 점검 또는 서비스 연장은 힘들겠다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6월에도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오, 안타깝기 그지없다.

보증이 만료되었다 하더라도 Dell에서 제공하는 지원 비디오, 기술 자료 및 한국어 커뮤니티 포럼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돈을 들이지 않고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Dell Community 사이트가 아닌가 한다.  



기술 자료 사이트에서 소개하는 <일반적인 문제 해결>, 즉 'Dell 컴퓨터가 켜지지 않고 Windows가 실행되지 않고 실행 속도가 느려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이를 해결합니다'를 따라 하여도 해결이 되지 않는 심각한 고장이 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센터 방문/엔지니어 방문 점검/회수 점검을 통해 유상으로 수리 진행이 가능하다지만, 정작 견적을 받아 보면 비싼 가격에 놀라게 될 것이다. 부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빈다! 

오늘 날짜로 드라이버를 업데이트하였다. Windows와 병행하여 깔았던 리눅스를 지우고 보안 프로그램을 삭제하느라 공장 초기화를 최근 진행하면서 드라이버 업데이트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느낀 점은 '노트북은 노트북 답게' 쓰자는 것이다. 나는 매번 전원을 끈 다음 뚜껑을 닫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컴퓨터의 상태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가끔 전원을 완전히 껐다가 재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안드로이드 휴대폰도 속도가 느려지면 재부팅을 권유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작업을 한 뒤 그냥 뚜껑을 닫아서 절전 상태로 유지하는 버릇을 들이려 한다. 데스크탑 컴퓨터도 많아야 하루에 한 번 켜고 끄며, 작업량이 많을 때에는 며칠 동안 켠 상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루에도 몇 십번도 더 덮개를 여닫는 노트북 컴퓨터를 그때마다 전원을 완전히 내리는 것은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2022년 8월 2일 화요일

더 많은 음성 통화를 위해 핀다이렉트 요금제를 변경하다

오늘을 기준으로 핀다이렉트를 281일째 사용하고 있다. 핀다이렉트는 스테이지파이브라는 카카오 계열사에서 운영하는 알뜰폰 서비스(MVNO, 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이다. KT의 통신망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에 통화를 조금 많이 했더니 기본으로 제공하는 100분을 말일 전에 다 써버렸기 때문에 요금제를 바꾸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SKT에서 핀다이렉트로 처음 넘어왔을 때 선택한 요금제는 데이터안심 15GB+(기프티쇼)였다. 가입 당시 월 납부액은 부가세를 빼고 2만원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3만원으로 올라 있었다. 나의 3개월 평균 데이터 사용량을 조회해 보니 2.04GB에 불과하다. 이동 중에 영화를 보는 버릇이 전혀 없고 웹 서핑 정도나 하는 것이 전부라서 월 15GB의 데이터는 지나치게 많다.

핀다이렉트 가입 당시 유심 개통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매우 불편하였던 기억이 나서(당시 작성한 글 링크) 요금제 변경 역시 애를 먹을 것으로 걱정을 하였다. 114로 전화를 두어 차례 시도하다가 깨끗하게 포기를 하고, 낮 12시 45분쯤에 카카오톡으로 상담을 신청하였다. 점심 시간이라서 상담이 원활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원하는 요금제를 알리고 실제 변경이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문자까지 다 받았지만 아직 오후 1시가 되지 않았다.

바뀐 요금제는 핀다이렉트Z Mini이다. 데이터는 7GB, 통화와 문자 메시지는 무한이다.



이번 8월부터 한시적으로 정부 조직에서 일을 하게 되어 예전보다는 전화 통화를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내가 어떤 조직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에 관하여  이 블로그에서 가볍게 다룰 수는 없다. 업무를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 과학과 기술은 세상을 움직이는 핵심이 아닐 수도 있다.
  • 내가 종사하는 생명과학(또는 공학)이라는 돋보기로 세상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다. 
  • '연구단지'는 대전광역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 나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속하는 26개 소관연구기관을 잘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그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소관의 정부출연연구기관 중 하나인 KRIBB을 잘 모를 것이다.

더 큰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나의 땀방울 하나를 더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해 보고 싶다. 값진 경험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