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에 무선 마이크 이야기라는 글을 썼다. 국내에서 특별히 허가를 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무선 마이크의 주파수 대역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주파수 분배와 관련한 정책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결정되는지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호기심은 결국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아주 싼 가격의 무선 마이크 세트(2개 들이)를 사는 것으로 이어졌다.
광택이 나는 플라스틱으로 마감 처리된 마이크 본체는 매우 가볍고 장난감과 같은 느낌이었다. 마이크 본체와 수신기에는 전부 18650 리튬이온 배터리가 들어 있었고, USB-C 타입의 충전기를 직접 꽂게 되어 있었다. 충전을 완료한 뒤 테스트를 해 보았다. 전원을 넣자마자 마이크와 수신기의 연결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Behringer UM2 오디오 인터페이스에 연결하여 Audacity로 확인해 보니 화이트 노이즈가 조금 들린다. 실제로 믹서에 연결하여 파워앰프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어 봐야 원래의 목적(행사 등에서 사용)에 잘 어울리는 물건인지 판별을 완료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무선마이크를 이용하여 녹음을 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행사를 기록하기 위한 목적으로는 할 수도 있겠다.
마이크 A는 630.65MHz, B는 661.85MHz로 송신이 이루어진다. 채널 변경 기능은 없는 것 같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파는 같은 제품 광고를 보면 마이크에 표시된 주파수가 전부 달랐었다. 저가 제품이라서 아마 제조 단계에서 랜덤하게 골라 포장하여 보내는 것 같다. 설명서에는 같은 주파수와 ID 코드를 쓰는 무선 마이크가 근처에 있어 cross-talk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적혀 있지만, 설명서에 나오는 frequency hopping button이라는 것이 실제 물건에는 없다. 아래 사진 설명에도 보였듯이, 각 마이크의 송신용 채널은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디스플레이를 보라. 안테나 옆의 막대기는 전파의 강도나 배터리 잔량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다. 디스플레이 전체에 한꺼번에 불이 들어온다! 게다가 FREQUENCY를 FREQ UEWCY라는 정체 불명의 두 단어로 표시하였다. 작동이 아무리 잘 된다고 하여도 글씨 인쇄가 틀렸다면 신뢰가 가지 않는다. |
이 무선 마이크의 주파수 대역은 국내법에 의하면 방송이나 공연 관련 사업자가 허가를 받아서 사용하는 것에 해당한다. 공교롭게도 바로 어제, KC 인증이 없으면 6월부터 해외 직구가 금지될 것이라는 뉴스가 전국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이 마이크는 전자제품이자 통신기기로서 리튬이온 배터리를 내장하였고, 사용하는 주파수 역시 일반인이 허가를 받지 않고 쓸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문제투성이(?)의 물건이 법망의 빈틈을 헤집고 일단 내 손에 들어온 셈이다.
직구 제한이 실제 어떻게 실현될지는 지켜 보아야 한다. 알리익스프레서나 테무에 요청하여 인증 받지 못한 제품이 한국에는 배송되지 못하게 시스템을 바꾸라고 할 것인지(별로 가능할 것 같지는 않음), 또는 한국 세관에서 전부 통관을 막을지? 후자의 경우 산더미처럼 쌓인 통관 불허 직구품을 어떻게 친환경적으로 폐기할 것인지? 나와 같이 중국에서 각종 전자제품이나 부품을 싸게 구입하여 취미로 납땜질을 하던 사람들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정부에서는 안전을 그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아마도 값싼 중국제품이 밀려 들어오면서 국내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심 끝에 내놓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정책이 정말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이유와 같이 국민 안전을 증진하는 효과를 낼 것인지? 하필이면 생물보안법(Biosecure Act) 통과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관세 부과 등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정책에 대하여 '동맹국'인 우리도 공조를 취하는 것인지? 강대국의 정책에 따라 휘둘려야 하는 우리는 제대로 목소리는 내지도 못하고 그저 중국이 배제되면 어떤 반사 이익이 돌아올지 주판알을 굴리기에 바쁜 것 같다.
미국의 생물보안법은 국내의 유전체 연구자 및 관련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미 보수 언론을 통해서 중국이 국내 유전체 산업에 드리우는 그림자에 대한 지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논설실의 뉴스 읽기] 100만명 유전체 ‘韓 바이오 빅데이터’ 본격화… 미·중 바이오 패권 戰場될 우려 - 조선일보 2024년 4월 19일
이 기사를 읽고서 '중국 기업은 정말 걱정스럽다. 미국이 정말 강력한 제재 조치를 할 만도 하다. 우리도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뜻을 같이 하고 여기에 공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할 말은 많지만, 여기까지만 쓰겠다.
2024년 5월 19일 업데이트
국가 정책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국내 안전인증 없는 제품' 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 - 한겨레신문 2024년 5월 19일
국무조정실 "현실적으로 불가능...국민께 혼선 끼쳐 죄송"
이정원 차장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2024년 5월 20일 업데이트
이번에 구입한 무선 마이크를 믹서에 연결한 뒤 파워 앰프의 전원을 올려 보았다. 유선 마이크(카날스 BKD-101)보다 출력도 낮고, 디테일도 떨어지며, '쉬-'하는 화이트 노이즈도 꽤 높다. 배경 소음이 있는 야외에서는 스피치용으로 대충 사용할 수 있겠지만, 마음에 드는 품질은 절대 아니다. 역시 싸고 좋은 물건은 있을 수가 없다. 어쨌든 케이블 연결 없이 소리가 난다는 것에만 만족을 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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