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4일 금요일

KMB 2022 학회 마지막 날 받은 뜻밖의 포스터 발표 장려상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 국제학술대회 삼 일째 접어드는 날 아침, 발표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포스터 발표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니 혹시 폐막식 때 상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학회 마지막 날이라서 수상자가 벌써 자리를 뜬 것은 아닌지 미리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상을 받을 일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대학원생이 포스터 발표자로서 상을 받게 되는데 머리에 허옇게 서리가 내린 중견 연구자가 포스터 발표자로 상을 받다니... 한국연구재단의 안내에 의하면 중견 연구자는 박사 학위 취득 후 10년이 경과한 사람이다. 이러한 기준을 따른다면 나는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무려 25년이 지났다. 정부출연연구소 소속 기준으로 정년 퇴직이 10년 미만으로 남았다.


시상식 사회를 보던 연세대 반용선 교수로부터 '수상자 중에 나이가 많은 분도 계시네요'라는 농담 섞인 말을 들으며 학생들 틈에서 쑥스럽지만 상장을 받았다. 수십 명의 수상자가 한꺼번에 단상에서 사진을 찍을 때에는 학회장 이정기 교수님의 배려로 바로 곁에 설 수 있었다. 쑥스럽고도 유쾌한 추억을 하나 남기게 되었다. 혹시 나를 잘 아는 포스터 심사위원의 '장난(?)'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첫날 개회사를 하시던 학회장 이정기 교수님.

보통 학술대회 포스터라면 대학원생이나 연구원이 실험한 결과를 정리하여 직접 포스터를 작성하여 저자 이름 중에서 맨 앞에 위치하게 되고, 현장에서 발표를 진행한다. 그리고 전 과정을 지도 감독한 지도 교수가 맨 뒤에서 교신 저자로 자리잡게 된다. 이번에 상을 받은 내 포스터는 다른 연구원이 만든 실험 결과를 넘겨받아 생명정보학적 분석을 실시하여 내가 직접 포스터를 만들었다. 기본 가설을 세우기 위하여 NCBI에서 천 개 이상의 미생물 유전체 서열을 다운로드하여 분석 결과를 만들기도 하였다. 포스터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도 나였고, 저자 목록의 중간을 차지하던 연구원과 UST 학생은 나의 동료일 뿐이다. 나는 그 동료들을 지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고, 그 UST 학생의 지도 교수도 아니다. 보통의 대학에서 연구 활동이 벌어지는 구조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내가 일하는 곳은 UST 캠퍼스의 하나인 것은 맞지만, 내가 2018년부터 2년 동안 기업 파견을 다녀오면서 UST 겸임교원을 그만 둔 이후 재임용 신청을 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내가 제1저자로서 논문이나 포스터를 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후학을 양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좋은 연구를 하게 만들고 연구 과제 등을 통해 아낌없는 서포트를 하는 것이 현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중견 연구자'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후배 연구자를 키워나가는 방법은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가 매우 다르다. 이전부터 존재하던 학연 제도, 그리고 UST라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제도를 통해서 정부출연연구소는 대학의 형식을 따라가려고 애를 쓰지만 결코 같아질 수도 없고, 같아져서도 안 된다. 나는 이렇게 '잘 만들어진' 제도를 제대로 이용하지도 못했으며, 나를 돋보이게 애를 쓰지도 않았고, 그저 자유로운 영혼으로 연구를 즐기며 살아왔던 것 같다. 사람들을 규합하고 큰 일을 꾸미는 능력, 추진력, 그리고 내가 아무리 독학으로 따라잡으려 애를 써도 잘 되지 않는 (bio)informatics 분야의 분석 결과를 수월하게 쏟아내는 연구자들의 발표를 2박 3일 동안 들으며 과연 나는 어떤 경쟁력을 갖추고 이 분야의 발전에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많은 반성을 하였다. 아니, 단 한 점이라도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1,800명 정도가 사전 등록을 한 대규모의 학술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 애를 쓴 학회 관계자와 봉사자, 그리고 후원 업체들에게 이렇게 개인 블로그로나마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태평양 건너편의 해외 석학이 온라인으로 실시간 기조 연설(plenary lecture)을 하고 있다. 오디오 상태도 매우 완벽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세상이다. 


굿바이, H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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