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7일 금요일

학술논문 출판에서 scooping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 ASM Journal의 새로운 정책

구글에서 영단어 'scoop'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 보았다. 국어에는 이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낱말은 없다.

팝콘이 담긴 스쿠프 사진은 Pixabay에서 내려받은 것(Pixabay license - free for commercial use)


공들여 연구한 내용을 학술논문으로 정리하여 이제 막 투고를 하고 심사 중인데, 별안간 같은 주제의 논문이 다른 학술지에서 먼저 발표된다면 이처럼 맥이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한창 떠오르는 주제라면 이를 연구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어디 나 혼자뿐이겠는가? 어떠한 아이디어를 확인하기 위해 A라는 모델 생명체에서 연구를 진행하여 논문을 투고하고 심사 과정에 있는데, 다른 연구팀에서 동일 또는 유사한 주제를 B라는 모델 생명체에서 연구하여 오늘 갑자기 논문을 출판했다고 치자. 이러한 사실을 리뷰어가 알게 되면 내 논문이 무사히 출판될 가능성이 적어질 것이 자명하다. 

어디서 주워 들은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 본다. 리뷰어가 투고자 A의 논문을 유난히 오랫동안 심사를 하면서 시간을 끌고, 그 사이에 그 논문의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리뷰어 자신(혹은 잘 알고 지내는 다른 연구자?)이 별도로 실험을 진행하여 재빨리 논문을 먼저 낸 다음, 비슷한 연구 결과가 이미 발표되었으니 A의 논문을 출판에 적합하지 않다고 거절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 범죄에 가까운 행위이다. 실제로 이러한 일이 얼마나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scoop의 아주 나쁜 사례이다. 대부분의  scooping은 경쟁적인 연구 분야에서 우연의 일치로 벌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ASM(American Society for Microbiology)에서 New Scooping Protection Policy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 정책과 관련된 웹사이트는 이곳이다. ASM 학술지에 투고를 한 경우, 그보다 앞서 6개월까지 유사한 논문이 발표되거나 preprint로 공개되었는지를 점검해 준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는 논문 투고를 준비하는 저자가 사전에 꼼꼼히 점검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이 정책을 음미해 보자면 투고자를 위해 scooping을 방지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주 최근에 이미 다른 연구자에 의해서 논문으로 공개된 것과 유사하거나 일치하는 연구 결과를 ASM에 또 투고하는 헛짓거리를 하지 말라는 것 아닌가?

이는 저자를 scoop에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저널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에 더 가까워 보인다. '누가 가장 먼저 했는가?'는 학문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누구나 다 중요하게 여기고 기억하는 기준이 된다. A라는 저널에 어떤 연구 결과가 먼저 발표되고, 뒤이어서 B라는 저널에서 이와 유사한 것이 발표된다면(B에 논문을 투고한 저자나 리뷰어 모두 A 저널에 유사한 연구 결과가 앞서서 발표된 것을 미처 모르는 상태에서), A 저널에 실린 논문의 인용 가능성이 더 커진다. 임팩트 팩터 또는 여러 가지 지표료 매겨지는 학술지의 순위에서 A << B가 아니라면 말이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므로 '미처 모르고 있었다'라는 변명을 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의 독창성을 검증하기 위해 미리 검토해 봐야 할 정보의 범위가 너무나 넓어지고 있으니 삶의 피로도 역시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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