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내려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 연구비(인건비를 포함해야 함)가 기본적으로 들어가고, 논문 원고를 영어로 작성하여 교정을 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돈이 든다. 학술지를 선택하여 투고하면 지난한 검토 과정(review process)을 거쳐서 게재 승인이 떨어진다 해도, 최종적으로 게재료를 납부해야 정식으로 출판이 된다. 게재료는 논문 출판 기관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논문의 저자 입장에서는 출판을 끝으로 돈이 더 이상 들지 않겠지만, 이를 읽으려는 독자는 돈이 들 수도 있고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요즘 OA(open access)가 추세라고 한다. 이는 이용자들에게 학술정보, 논문 등을 무료로 개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출판사는 자선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므로, OA로 논문을 공개하려면 저자에게 더 비싼 게재료를 내게 한다.
OA가 아닌 경우, 보통은 논문 PDF 파일 하나에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다운로드를 받게 된다. 일반 논문에 비하여 인용 횟수가 높을 것임은 자명하므로, 이에 굴복하여 큰 돈을 지불하도록 결정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이용자가 소속된 기관이 해당 출판사에 꽤 큰 금액을 연 단위로 지불한 회원이라면, 이용자는 논문 이용료를 개별적으로 내지 않아도 된다.
최근 국내 학회에서 발간하는 어느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여 심사를 거친 후 게재 승인을 받았다. 공개일자는 바로 어제. 실제 발간은 Springer Nature라는 회사에서 진행한다. 국내 학회에는 50만원의 게재료를 납부한 상태였다. 그런데 Springer Nature에서 온 안내 메일을 보니, OA로 출판하려면 무려 2,900달러를 내라는 것이었다. 납부 증명을 가져오면 국내 학회에서는 이미 냈던 돈 50만원을 돌려준다고 하였다.
2,900달러라니... 임팩트 팩터가 5를 넘는 '고급' 학술지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OA를 선택하는 것은 포기하였다. 따라서 내 논문의 PDF를 다운로드하려는 이용자는 소속 기관이 이 학술지를 구독하지 않는 경우 34.95유로, 즉 오늘 환율로 약 46,645원을 지불해야 한다. 어제 저널 웹사이트의 latest articles에서 가장 위에 자리잡은 내 논문은 전문이 공개되어 있지만, 아마 조금 뒤면 초록만 공개되는 상태로 바뀔 것이다. 한 저널에 실린 논문이 추가 비용을 냈는지에 따라서 어떤 것은 OA, 어떤 것은 돈을 주고 사서 보는 것으로 운명이 갈린다. 물론 논문을 읽으려는 사람의 소속 기관이 이 저널을 구독하고 있다면 차이가 없겠지만.
게재료가 치솟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다. 예를 들어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에서 발간하는 Journal of Microbiology and Biotechnology는 올해 3월 1일부터 게재료(article processing charge, 줄여서 APC 또는 출판비)를 무려 120만원으로 인상하였다. 학회 회원에게는 할인이 적용되어 70만원을 받는다. 외국인 투고자는 600달러를 내야 한다.
논문 게재 실적이 연구자들의 승진이나 연구비 신청 경쟁에서 매우 중요한 근거로 쓰이게 되니 이를 이용하는 비즈니스가 성장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다만 이를 악용하는 약탈적 학술지(predatory journal)가 자꾸 생겨나서 검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현실을 비꼰 글 몇개를 인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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