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을 위한 프로젝트로 남겨 두려 했다가 쉬는 김에 끝장을 보기로 하였다. 출력 트랜스 2차 권선에서 초단 캐소드로 저항을 연결하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을 취하였다. 캐패시터는 달지 않았다. Pinterest에서 찾은 Stephan Gloeden의 회로도에서는 33K 저항을 사용하고 있었다. 부품통에는 이에 딱 맞는 수치의 저항이 없어서 저항 두 개를 직렬로 연결하여 비슷한 값을 만들었다. 캐소드 단자까지는 실드선을 사용하여 연결하였다.
상당히 어지러운 배선이지만 소리만 잘 난다면... |
선재 피복 색깔의 선택에는 일관성이 없고, 지나치게 길다. 배선을 자주 정리하는 아마추어의 입장에서는 작업을 할 때마다 자꾸 선이 짧아지니 길게 배선하는 것도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다. 잡음이 타고 들어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
작동 전압을 측정해 보았다. 그라운드를 기준으로 플레이트는 262~263V, 스크린 그리드는 243~246V, 5극관쪽의 캐소드에는 6.2~6.5V의 전압이 걸림을 확인하였다.
2014년 내 생애 첫 진공관 앰프로 주문 제작을 하여 그 특성도 잘 알지 못한 상태로 그저 '이게 진정 좋은 소리로구나'하는 편견 또는 착각에 빠져 살다가 조금씩 불만스런 점을 발견하게 되고, 급기야 거의 전부를 걷어내고 다시 만들면서 뒤늦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다른 앰프의 제작을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많은 경험을 바로 이 PCL86 싱글 앰프를 통해 하게 된 것이다. 개조 전에는 소리가 점점 마음에 들지 않아서 더 이상 듣지 않으려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다.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원 제작자의 설계 포인트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이는 전부 이번의 작업을 통해 상식적인 수준으로 개선하였다.
- 싱글 엔디드 앰프이면서 왜 출력 트랜스의 코어 사이에 갭을 넣지 않았을까?
- 왜 상판 자체를 그라운드로 이용했을까? 상판을 그라운드에 연결했다는 뜻이 아니다. 상판을 그라운드 "선"처럼 사용했다는 것이다.
전원 트랜스와 출력 트랜스를 다음과 같이 배치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점은 원 제작자로부터 배울만한 포인트였다. 단, 나의 경우에는 두 트랜스 모두 코어 측면을 가리는 밴드가 없었다. 따라서 밴드가 있거나 또는 트랜스가 케이스에 들어 있는 경우라면 어떻게 배치하든 전원 트랜스로부터 유도되는 잡음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코어를 이러한 방향으로 배치하면 전원 트랜스로부터 험이 유도되지 않는다. 적어도 내 귀로는 들리지 않았다. |
최악의 험이 출력 트랜스로 유도된다. |
90도 돌려 놓으면 바로 위의 배치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잡음이 유도된다. |
네이버의 앰프 자작 관련 카페에서 글을 읽다가(회원은 아님) 이런 글을 발견했다. 진공관 앰프는 사용하는 전력에 비하여 효율이 매우 떨어지므로 매우 환경 비친화적이다. 1인 1앰프로 제한을 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백열등의 생산이 금지된 것과 마찬가지로, 민수 용도의 전자제품에서 진공관을 쓰지 못하게 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흠, 그렇다면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나오는 에너지에 의존하는 모든 취미 활동을 막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의 취미를 지원하는 시장은 누군가에게는 생계 수단이 되기도 한다. 클라우드에 올린 10GB의 사진도 탄소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당연하다. 참 어려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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