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대출 기간을 한 차례 연장하였지만 깊이 생각을 하면서 독서 기록을 남길 시간이 부족하였다. 책 표지와 제목 정도를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 신지영 교수의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 <언어의 높이뛰기>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뉴 호라이즌. 이상인 지음
- 지리 기술 제도: 제프리 삭스(Jeoffry D. Sachs) 지음/이종인 옮김. 원제는 <The Ages of Globalization>
- 하버드가 밝혀낸 외계의 첫 번째 신호 <오우아무아>: 아비로브(Avi Loeb) 지음/강세중 옮김
책을 읽을 때에는 '이런 것을 기억해 놓고 나중에 꼭 독후감에 써야지'라고 다짐했던 포인트가 꽤 많이 있었다. 인상이 깊었던 쪽을 사진으로 찍어 놓기도 하고, 심지어 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내겠다고 저장 정보를 기록해 놓기까지 하였었다. 그런데 반납 기일이 다 될 때까지 블로그 작성을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와서 책 제목이라도 기록에 남기겠다는 일념으로 노트북 컴퓨터를 여니 그 다짐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신지영 교수의 책은 전에도 한번 읽은 적이 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의 잘못된 쓰임새라든가, 비민주적이고 차별적인 요소 등을 가려내고 올바르게 쓰려는 운동을 오래 지속해 온 학자이다. 책의 앞부분에는 초임 교수 시절, 교수는 당연히 나이가 어느 정도 든 남자일 것이라는 사고의 틀 안에 갇힌 학교에서 겪었던 언어 속의 여러 불합리한 모습을 고발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랬다면 책의 부제를 '신지영 교수의...'라고 시작하도록 저자가 놔 두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대화 중에 상대방을 부르는 적절한 호칭이 우리 언어에는 없다. 함부로 부를 수가 없어서 이를 극도로 꺼리고, 상대를 부르는데 쓸 낱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 한국어를 포함한 극소수 언어의 현실이다. 우리말에서는 호칭에서 상하관계를 분명히 드러내어 불러야 하기 때문에 영어의 'you'와 같이 평등하게 2인칭을 부르는 말이 아예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사이에서는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어디에 근무하며 직함은 무엇인지를 꼬치꼬치 캐물어야 하고 그것이 실례가 되지 않는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신지영 교수가 '대통령'이라는 낱말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연을 볼 수 있다. 나도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대권'이라는 말이 나는 너무나 듣기가 싫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권한을 행사할 뿐인데, '대권' 나라에서 가장 큰 권력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쓰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은데 눈이 침침하고 화면은 너무나 작다. 가끔은 설명을 위해 한자어도 섞어서 쓰고 싶은데 마우스가 없는 노트북 컴퓨터에서 작업을 하기가 힘들다. 노화에 따른 신체적인 변화를 겪는다고 보고 싶지는 않다. 길게 누워서 스마트폰이나 문지르며 생각은 생략한 채로 '건너뛰기 정보 입수'에만 몰두한 부작용이 아닌가 싶다.
아비 로브의 책은 과학을 하는 자세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이번에 빌린 책 중에서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느꼈다.
나는 그러한 모든 의사결정 기관이 자원의 상당 부분, 말하자면 20% 정도를 고위험 프로젝트에 의무적으로 할애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금융 포트폴리오와 마찬가지로 인류는 과학에 분산 투자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많은 연구원이 처한 상황은 이러한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젊은 시절의 열정을 잃고 경력 사다리를 통해 종신 고용직까지 오른 뒤에는 더하다. 연구원들은 그 직업의 안정성을 활용하는 대신 학생들과 박사 후 연구원들로 구성된 메아리 방을 만들어 과학적 영향력과 명성을 증폭하는 데 쓴다. 영예는 학계의 얼굴을 꾸며 주는 화장일 뿐인데도 집착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나는 종신 고용직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다. 학회 같은 곳에서 만난 사람이 '김 아무개 교수님, 박 아무개 교수님'이라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나누다가 내 앞에 와서는 약간의 뜸을 들이면서 '정 박사님'이라고 고쳐 부르는 것이 불편할 뿐이다. 이런 일과 관련된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꽤 있다. 그러나 자존심 문제도 있고 하니 상세하게 적지는 않겠다. 호칭을 통해서 사회적 지위를 재확인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일이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로를 부를 수 있는 말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하여 여기 인용한 글귀를 공감하지 못한다거나, 그럴 자격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권위에 대한 맹종이 아니라 열린 사고이다. 과학사에서 일어난 혁명적인 사건은 모두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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