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3일 목요일

2021년 9월에 올림푸스 DSLR E-620을 쓴다는 것은...

디지털 카메라의 시장이 해가 갈수록 쭈그러들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레트로 감성에 필름 카메라와 바이닐(LP)이 잠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산업의 흐름을 바꿀 정도는 되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

스마트폰이 일반인을 위한 카메라 수요를 흡수하면서 소위 전문가용 카메라로 불리던 DSLR은 아예 판형을 풀프레임(과거 필름의 크기와 같은 36 x 24mm)으로 키우거나 혹은 동일한 센서 크기를 갖는 미러리스로 체제를 바꾸어서 진지한 아마추어 계층을 흡수하고 있다. 그래도 과거 필름 DSLR의 전성기에 비교할 바는 아니다.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는 캐논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풀프레임 미러리스라는 새로운 유행을 불러 일으킨 데에는 소니가 크게 기여한 것 같다.

나도 한때는 꽤 진지하게 사진을 찍고 직접 암실 작업(흑백)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게 벌써 30년 가까운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다. 거실 장식장에는 이제 작동 상태를 신뢰할 수 없는 카메라 본체와 렌즈가 꽤 많이 잠을 자고 있다. 나 역시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던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고, 특별한 후처리 없이 구글 포토에 그냥 자동 업로드하는 사진 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나의 첫 DSRL은 올림푸스의 E-620이다(PRREWIEW에 실린 정보 링크). 2010년 11월 초에 두 개의 줌렌즈를 포함한 키트를 할인 행사 가격에 구입하여 한동안 잘 사용하였으나, 만 4년째가 되면서 IS(image stabilization)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서 점점 쓰지 않게 되었다(관련 글 링크). 그런 일이 벌어진 직후 가족 여행을 위해 펜탁스 Q 10(5-15mm 렌즈킷)을 구입하여 조금 쓰다가 현재와 같이 스마트폰으로만 사진을 찍는 체제로 굳어지게 되었다. E-620은 다른 필름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거실 장식장 속에 갖인 상태로 몇 년을 그대로 지내고 있었다. 

어떤 일이 갑작스런 계기가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번 추석 연휴를 보내면서 문득 (D)SLR의 감성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터치 스크린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하드웨어 버튼(또는 다이얼)을 조작하고, 아이 레벨 뷰파인더에 직접 눈을 대고 피사체를 바라보며 셔터 릴리즈 버튼을 누르는 경험을 다시 해 보고 싶었다. 배터리를 충천하여 실로 오랜만에 카메라를 조작해 보았다. 확실히 Ansmann의 호환 배터리는 문제가 있었다. 충분한 시간을 충전하였지만 충전기의 표시등이 녹색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적색 상태에서 깜빡거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정품 배터리는 제대로 작동을 하였다. 넥 스트랩의 중간에 덧댄 미끄럼 방지용 인조 가죽(?)은 부스러지기 시작하였고, USB 단자를 덮는 고무 마개는 케이블을 꽂기 위해 젖히는 순간 탄성이 다 없어져서 툭 부러져 버렸다.

비록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일부 외장재는 이렇게 부스러지는 상태였으나, 2014년 11월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던 E-620가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조금씩 제 기능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작동이 되다 안되다는 반복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그것은 상태가 나빠진 호환 배터리를 충분히 충전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였던 것 같다. 


어댑터를 통해서 헬리오스 수동 렌즈를 끼워 보았다.

올림푸스한국은 2020년 5월, 국내에서 카메라 사업을 완전히 종료함을 밝힌 바 있다. 사후 서비스는 2026년 3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한국 소비자들이 유난히 센서의 크기에 집착하는 것이었을까? 공식적으로는 한국 시장에서 물러나는 것이지만, 올림푸스가 계속 카메라를 생산할지는 알 수가 없다. 마이크로 포서즈 형식의 카메라 및 호환 렌즈는 앞으로 나온다고 해도 해외 직구를 통해 사는 것 말고는 구입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E-620은 훨씬 전에 버림받은 '포서즈' 형식이 아니겠는가? 올림푸스의 마이크로 포서즈 시스템 바디 모델 번호 체계는 너무나 헷갈리므로 별도의 문서를 참조하는 것이 낫다. OM-D는 E-M# 형태의 바디에 해당하는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어제 하루 동안의 출사에서 배터리 문제를 제외하면 E-620은 별 문제가 없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2014년 늦가을 당시에는 왜 IS 불량 현상이 빚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전제품'과 다를 바가 없는 DSLR 본체가 앞으로 얼마나 잘 작동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만약 E-620 본체가 정말로 수리가 어려울 정도로 망가진다면, 14-42 mm및 40-150 mm의 두 줌렌즈는 어디에 쓴단 말인가? 예비용으로 적절한 마이크로 포서즈 바디와 렌즈 어댑터(MMF-1/2/3)을 구해 두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차라리 캐논의 보급형 DSLR 바디를 사서 역시 놀고 있는 EF 렌즈를 끼워서 쓰는 것이 바람직할까?

추석 연휴 마지막 날에 군산에서 올림푸스 E-620으로 찍은 사진 몇 장을 올려 본다. 휴대폰으로 찍은 세로 사진 혹은 좌우로 긴 사진만 보다가 오랜만에 4:3 비유의 이미지를 보니 정말 느낌이 새롭다. 촬영 정보를 살펴보면 해상도는 휴대폰보다 더 낮다. 최대 해상도인 4032 x 3024 픽셀로 촬영해도 구글 포토의 무제한 업로드 기준인 1,600만 화소에 미치지 못한다.




자작 오디오 앰프가 제자리를 잡으면서 여가 시간에는 영화를 보는 것 말고는 별로 할 일이 없게 되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다시 사진(장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다음에 관심을 갖게 될 대상은 혹시 자전거는 아닐까? 몇 가지 되지 않는 분야를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것만 같다.

IS 기능이 망가진 것은 확실하다. IS 설정을 하면 빨간 경고 표시가 깜빡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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