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Bacillus라는 genus는 최신의 잣대로는 별로 관계가 없는 박테리아까지 한데 품어주는 넉넉한 집 역할을 해 왔었다. 작년이었던가, 유전체학 시대에 걸맞는 분석 결과를 근거로 이렇게 많은 식구를 거느리던 바실러스 가족은 새로운 genus로 하나 둘 독립해 나가가기 시작하였다. 가장 큰 집안이었던 Bacillus subtilis와 Bacillus cereus clade는 변화가 없지만, 나머지 것들은 생소한 genus 명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혁명적(?) 수준의 변화를 가져다 준 2020년의 주요 논문을 직접 찾아서 읽어보는 것이 올바른 자세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성가시다면, 중요한 사실을 요약하여 작성한 가벼운 글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음의 글은 찰스 리버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Christine Farrance라는 사람이 지난 7월에 게재한 글이다.
Reclassification of Bacteria Happens
이 글이 실린 Eureka: a dose of science라는 웹사이트는 찰스 리버 연구소의 과학 블로그라고 한다. 블로그를 방문해 보면 히스패닉 문화나 흑인 과학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등 과학 그 이상의 정신을 담고 있었다. 별 영양가도 없는 유튜브에서 이상한 뉴스, 해괴한 동영상을 보느니 이런 곳에 올라온 자료를 보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새롭게 제안된 분류 체계에서 B. velezensis나 B. siamensis는 어떻게 자리를 잡고 있는지 아직 상세하게 살펴보지는 못하였다. Farrance가 소개한 논문(Patel and Gupta, Int. J. Syst. Evol. Microbiol. 2020;70:406–438 링크)의 그림을 보면 이들은 전부 B. subtilis clade에 속하므로 그 분류학상 위치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Clostridium botulinum도 더하면 더했지 바실러스보다 나은 상황이 아니다. 내가 몇 가지 분석을 해 보았을 때 genus 수준에서 재분류를 해야 함이 명백하다. 그런데 누군가 이를 논문으로 정식으로 제안을 하여 미생물 분류학계에서 인정을 받는다면, 질병관리청과 같이 이 세균을 법률로써 다루어야 하는 공식 기관에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예를 들어서 보툴리눔이 4개의 새로운 종으로 나뉜다고 가정해 보자. 몇 가지 법에서 정의한 고위험성병원체 체계를 이에 맞추어 고쳐야 한다.
대장균(Escherichia coli)는 세균성 이질을 일으키는 Shigella와 유전체학적 기준으로는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이를 만약 한 종으로 합쳐 버린다면? 식품에는 허용하는 대장균의 수가 있지만 내가 알기로 이질균은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상당한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그 경계를 허물거나 혹은 새롭게 만드는 것의 파급 효과는 상당히 크다. 미생물 분류의 문제가 과학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 및 보건을 다루는 영역까지 건드린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미생물 학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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