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30일 금요일

[독서 기록] 『공포가 과학을 집어 삼켰다』와 『디자인은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가는가』


탈핵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얼핏 보면 서로 관계가 별로 없는 분야의 주제이다. 전문가들이 흔히 하는 말 있지 않은가? 
'제 분야가 아니라서..(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또는 괜히 이야기해서 구설에 오르고 싶지 않습니다)' 
누가 나에게 원전 문제에 대해서 묻는다면, 나 역시 비슷한 논리로 이를 회피할 것이다. 난 생명과학자니까. 아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해 물어도 또 내 전공을 세분화하여 살짝 피해 나갈 구실을 찾을 것이다. 나는 미생물, 특히 세균의 유전체를 연구하는 사람이니까..
  • 공포가 과학을 집어삼켰다(원제: Radiation and Reason - The Impact pf Science on a Culture of Fear)
  • 지은이: 웨이드 앨리슨
  • 옮긴이: 강건욱·강유현
두 공역자는 부녀 관계이다. 학술 논문에 부모와 나란히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일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고 이제는 누구나 조심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부녀 관계임을 밝히면서 공동 작업을 했음을 밝혔다는 것은 그만큼 각자가 제 몫을 충분히 했음을 반증한다고 생각한다. 강유현이 쓴 역자 서문의 일부를 소개한다.
많은 물리과 대학생들 또한 대학 졸업 후 대다수가 금융, 회계, 컨설팅 분야로 진출하며, 비전문가뿐만 아니라 전문가마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생각, 즉 정사유(正思惟)를 벗어난 자본주의적인 욕심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전문가로서 활약을 할 수 있는 많은 인재들이 욕심을 앞세워 사회와 인류를 위한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결국 개인 투자자들이나 기업가들이 올바른 투자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통찰력과 과학적 지식과 논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287쪽)

연구분야에 종사하던 사람들에게 자본주의적 영감을 불어넣어 사업화의 길을 걷도록 하는 것이 마치 올바른 길이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처럼(혹은 내 욕망을 채우는 길인가?) 느껴지는 요즘의 분위기에서는 매우 신선한 시각이 아닐 수 없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이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고도 어떻게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원래 2009년에 쓰여진 책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방문기를 에필로그 형태로 다루었다. 원전 방사선 유출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보다 '패닉' 자체가 더 큰 문제였다. 사실 인명피해는 쓰나미에 의한 것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지나치게 높고 안전 규제 역시 실제적인 위해성을 입증할 수 없는 수준에서 너무나 강한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전에 대한 새로운 기준은 ALARA(As Low As Reasonable Achievable)에서 AHARS(AS High AS Relatively Safe)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쟁점은 저선량 피폭이 암 발생 등의 위험 가능성을 현저히 높이는가에 관한 것으로 귀결된다. 저자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암 치료를 위해 방사선 요법을 택하는 경우 그 부작용은 환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감내하겠다는 조건으로 치료를 받는 것이다. 지난 7월 27일 그린란드에서는 8억톤은 빙하가 녹아 내렸다고 한다(관련 기사). 과연 신재생에너지만으로 인류가 요구하는 수준의 복지를 달성하면서 빙하를 지킬 수 있을까? 선진국 국민들은 전부 에너지를 덜 쓰기로 합의하고, 이제 막 자동차나 에어콘의 혜택을 입기 시작한 인구 폭발 중의 개발도상국 국민들에게는 그냥 현재 수준의 삶을 살라고 설득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대안은 원자력 발전 뿐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

딸아이가 디자인 관련 대학을 목표로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입시 설명회 등을 통해서 기존의 대학에서 어떤 문제를 내는지 설명을 들은 일이 있다. 나의 느낌은 이러했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대학에서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도전하는구나! 나의 전공인 생명과학도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 디자인은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가는가(원제: How design makes the world)
  • 지은이: 스콧 버쿤(Scott Berkun) https://scottberkun.com/
  • 옮긴이: 이정미

제한된 자원만을 가지고서 최대의 효율을 힘겹게 추구해야만 했던 과거(그렇게 먼 과거도 아니고, 어쩌면 지금도 별로 바뀌지 않았는지도)에는 '디자인'이란 다분히 시각적인 것이었고 또 이를 감안하여 일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처럼 여겨지기도 했었다. 디자인이라는 낱말이 담고 있는 뜻이 워낙 광범위하고 시대에 따라서 조금씩 변하다보니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계획'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같다. 제 1 장의 제목은 감히 이러하다. '모든 것은 디자인을 담고 있다'

책의 말미에서는 다음과 같은 체크 리스트를 제시하였다. 이른바 4가지 질문이다. 꼭 디자인과 관련한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현재 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 이런 4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1. 무엇을 개선하고자 하는가?
  2. 누구를 위해 개선하려고 하는가?
  3. 당신의 디자인 결정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4. 당신이 한 일로 현재 혹은 미래에 피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만약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이 4가지 질문을 한번 던져 보자. 특히 2번 질문은 어떠한 과업의 고객을 명확히 하고자 할 때 유용한 질문이다. 주어진 과업에 대해서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 바로 그 결과물을 직접적으로 활용하지는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정부에서 발주하는 많은 사업이 그러하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므로 사양서에 맞추어 제대로 목표가 달성되었는지를 꼼꼼히 점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사업의 결과물을 실제로 활용하는 대상은 발주처(정부)가 아닌 일반 대중인 경우가 많다. 돈을 직접 대는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정작 실제 사용자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게 된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아마 정부출연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대략 감을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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