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0일 목요일

꼰대빌리티, 꼰대 지수, 꼰덱스(꼰대 + index)

식사 자리에서 '꼬장ship'이란 말을 들었다. 요즘 널리 쓰이는 '꼬장을 부린다'는 표현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에 대한 글을 찾아보았다.

'꼬장부리자 마라'라는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꼬장쉽(꼬장십)이란 말을 듣고 나는 즉석에서 꼰대빌리티라는 말을 제안했다. '꼰대' + '-ability'를 합성한 낱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꼰대 지수 혹은 꼰덱스(꼰대 + index)가 높다'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원래 '꼰대'는 아버지 혹은 선생님을 일컫는 학생들의 은어였다.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고, 과거 지식과 경험(지금은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는)에 집착하는 사람이며,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에 절어 있고, 위계에 따른 질서 크게 의존하며,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점은 남을 가르치려 들려는 것이다. 지금은 부정적인 쪽으로 그 의미가 더욱 확산되어 기성세대가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젊은이에게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강요하는 행위를 '꼰대질'이라 부르게 되었다(다음사전 링크).

이러한 낱말이 풍자적으로 쓰일 때에는 순기능이 있지만, '낙인 찍기'로 쓰인다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람을 일부분만의 모습으로 평가하여 특정 부류에 속한다고 결론을 내려 버리고 결국 혐오의 선글라스를 쓰게 만들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사회 현상이 바로 혐오 아니던가?
너 빨갱이지?
그 인간, 꼰대야. 
꼰대가 아닌 참 어른이 되는 길은 정말 힘들다. 향을 싼 종이에서 향내가 나듯, 생각의 전파는 자연스러워야 하며 자신의 생각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사회가 총체적 위기라면 웅변가나 선동가가 필요하기는 하다. 하긴 요즘 광화문 네거리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사회는 위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나서서 조언을 하지 않으면 당장 큰 일이 날 것처럼 안타깝게 여겨지더라도, 반감을 불러 일으키는 방식으로 전달해서는 안된다.

신사답지 못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출근길에서 만난 어느 선배 직원의 이야기를 좀 쓰려고 한다. 직접 뭐라 말은 못하고 블로그에 글이나 올리고 있는 내 모습이 정당하지 않다고 비판을 받아도 할 수 없다. 내가 답답하니까.

그분은 늘 열심히 공부하고 네트워킹에도 열심이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데에도 바지런하다. 독서모임, 근처에서 열리는 수많은 행사, 네이버 오디오북을 통한 학습... 이런 것을 하면서 시대에 앞서나가기 위해 노력하신다.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모양이다. 나를 보고는 철학자 최진석 박사(기사 링크)를 아느냐고 하셨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 좀 하세요!"

음... 내가 젊은 사람들에게 '책 읽으세요, 음악 들으세요, 미술관 종종 가세요, 가끔 납땜질도 해 보세요'라고는 전혀 하지 않는데...

간혹 출근길에 만나는 같은 직장의 젊은 동료들에게는 '젊은 사람들이 그게 뭐야, 어깨 좀 펴고 다니세요!'라고 호통을 치시기도 한다.

'젊은 사람이 왜..' = '남자가 되어서는...' = '여자가 그래서는 쓰나' 다 비슷한 얼개를 지닌 부정적 어법이다. 자기 반성을 위해서는 좋은 어법이 될 수 있으나, 남에게 내뱉기에는 대단히 조심스런 표현이다.

꼰대빌리티를 낮추자. in꼰대빌리티 혹은 un꼰대빌리티가 필요하다. 상식 차원에서 부정의 접두사 in-과 -un의 차이를 알아보자.

What's the difference between in- and 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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