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1일 일요일

한자 丁에는 '고무래'라는 뜻이 전혀 없다

丁 넷째 천간 정, 장정 정

단 두 획으로 이루어진 매우 간단한 모양의 한자이다. 장정이란 한 사람의 일꾼 몫을 하는 어른 남자를 뜻한다. 군대에 갈 연령, 즉 징집 연령에 달한 남자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한자는 한국 또는 중국인의 성씨에도 쓰인다. 우리 집안의 성이 바로 이 한자를 쓴다. 인구 비율로 훨씬 많은 鄭(나라 정, 나라 이름 정)과 구별하기 위해 흔히 丁자를 '고무래 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무래는 곡식 낱알 등을 긁어모으는 농기구의 일종으로 이 글자와 모양이 똑같다.

출처: 국립중앙과학관

그러나 이 글자 자체에 고무래라는 뜻(훈, 訓)은 전혀 없다는 것이 나의 상식이었다. 과거에 분명히 한자사전에서 이러한 설명을 분명히 보았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이 丁자를 '갈고리 정'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아연실색을 한 적이 있었다. 남의 성씨를 마치 공포영화에 나옴직할 흉칙한 물건으로 칭하다니...

며칠 전에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면서 그냥 호기심에 丁자의 의미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무래'라는 뜻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먼저 네이버 한자사전. '고무래'라는 뜻이 맨 위에 있다.


다음 사전. 여기는 정확하게 풀이하였다. 매우 친절하게도 '※ 흔히 「고무래 정」이라 칭하는 것은 글자 모양에 따른 속칭임.'이라는 추가 설명을 달았다.


나무위키. 고무래를 맨 위에 올렸다.


이외에도 한자 학습을 위해 만들어진 많은 사이트에서 이 한자가 '고무래'를 뜻한다고 기록해 놓았다. 이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마치 '입 구(口)'자의 모양이 네모를 닮았다고 하여 이를 '네모 구'라고 부르다가 인터넷 한자사전에 '네모'라는 뜻이 있다고 등재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 실제로 口자를 네모라는 뜻으로 쓴 사례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丁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거 혹은 현재의 문헌에서 이를 고무래라는 뜻으로 쓰지 않았다면 이런 훈이 있다고 붙여서는 안된다.

정말 내가 알고 있는 丁의 뜻이 맞는지 한자 사전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요즘은 종이책으로 된 사전이 거의 나오지를 않고 집에도 국어사전과 영한사전 뿐이라서 직접 도서관에 가서 민중서림의 한자대사전(전면개정·증보판)을 찾아 보았다.


그 어디에도 고무래라는 뜻은 없다. 글자의 본래 모양은 '못'이지 '고무래'가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도 '고무래정으로 훈함은 잘못'이라고 하였다. 홍윤표 연세대 교수도 이 한자에 고무래라는 해석을 달았던 시대는 없었음을 분명히 하였다('사나이'의 어원).

사실에 기반한 것도 아니고 검증도 되지 않은 엉터리 지식이 인터넷을 떠돌면서 진짜 지식으로 이렇게 둔갑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보았다'라는 것은 그 지식 자체가 정확함을 입증하는 근거가 전혀 되지 못한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