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에 대해서는 가슴 아픈 기억도 있다. 2000년대 초반에 꽤 비싼 값을 주고 신품을 구입하여 정말 열심히 쳤던 88건 해머액션 건반의 Fatar SL-990(현재 팔리는 모델은 PRO version)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자체적으로 소리가 나지 않는 MIDI controller keyboard라서 같이 구입한 Alesis NanoPiano 모듈에 연결하여 사용했었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3-4년 정도 사용했을 무렵 한두개의 키에서 소리가 나지 않게 되었다. 건반을 직접 분해하여 PCB와 실리콘 멤브레인 접점(silicon rubber contact)을 닦아내기도 하고 대전의 악기 수리점에 힘겹게 들고가서 수리를 맡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소리가 나지 않는 키가 점점 늘어났다. 이에 나는 본격적으로 건반 접점을 대대적으로 청소하기로 작정을 하고 분해를 했다가 멤브레인의 조립이 너무 힘들어서(요령을 잘 몰라서 그랬던 것이다) 결국은 포기하고 대충 조립하여 팽개쳐 두었다. 그 이후로는 중고로 구입한 워크스테이션인 Korg X2(76 건반)에 완전히 자리를 내어 주었다. 그러면 X2는 지금 어떠한 상태인가? 책장과 책상을 방에 들이면서 더 이상 놓을 자리가 없어서 필요한 때만 사용하려고 벽에다가 길게 세워 놓은 채로 또 몇 년이 흐르고 있다.
구조적으로 보자면 synthesizer + keyboard + sequencer에 해당하는 Korg X2가 Fatar SL-990보다 훨씬 복잡한 기기이다. X2 역시 손을 볼 곳이 몇군데 있다.
- 데이터 저장/복원용 FDD가 수명을 다함(MIDI cable을 연결하여 컴퓨터에서 SysEx를 전송하는 방법이 있다)
- 액정 백라이트가 어두워짐
- 세게 눌러야 작동되는 스위치가 몇 개 있음
- E3 키의 벨로시티가 약간 낮음
이에 비하면 SL-990은 매우 간단한 기기이다. 엄청나게 무겁다는 것을 제외하면! 주 회로기판과 리본 케이블, 건반 뭉치, 88개의 접점을 갖는 회로기판이 전부이다. 키 몇개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방치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하면 교체용 부품을 파는 곳과 건반 수리 동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왜 처음 고장 증세가 나기 시작했을 때 진작 이러한 정보를 찾아볼 생각을 안했을까? 당시에는 구입처 또는 전문 수리점 정보만을 알아보다가 너무나 무거운 건반을 보내고 받을 방법이 없어서 그만 두고 말았었다.
미국의 MIDI Store라는 곳에서는 Fatar 건반용의 '모든' 부품을 취급한다. 쉽게 말해서 케이스를 제외한 모든 것을 다 판매한다고 보면 된다. 여기에서 rubber contact만 필요한 만큼 구입해서 교체하면 그만이다. 만약 contact를 교체하지 않고 접촉면을 청소하는 정도의 수리만 하겠다면 다음의 사이트(at bustedgear.com)를 참조하면 된다. 유튜브에는 관련 동영상이 너무 많아서 적당한 것을 고르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 Cleaning the keyboard contacts
- Key contact cleaning(rubber contact를 다시 끼우는 요령 참조)
접촉면을 닦을 때 사용하는 세정제로는 91% 이소프로판올(IPA)을 쓰라고 한다. 시중에서 91% 재품을 구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약국에서 소독용으로 파는 것은 70% 이소프로판올이기 때문이다.
올해의 목표는 이제 확고해졌다. 나의 건반들을 예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 다만 전동 드라이버를 하나 구입해야 되겠다. 수십 개의 볼트를 손으로 풀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손목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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